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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은 우리에게 많은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예전에 어떤 분이 지혜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하루에 한 장 씩 잠언을 읽으면 31장으로 된 잠언을 1달에 1번씩을 읽을 수 있고 1년이면 12번을 읽을 수 있다고 하면서, 잠언을 즐겨 읽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잠언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까지도 지혜를 얻기 위해 읽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잠언을 읽으면서 도덕적으로 또 윤리적으로 해석을 하죠. 그런데 잠언에서 이야기하는 지혜의 핵심은 인간의 명철함에만 있는 게 아니라 지혜의 근본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세상적인 도덕경 차원에서 읽은 사람과 신앙인들이 읽은 잠언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잠언 6장 1절도 “내 아들아”하고 시작합니다. 솔로몬이 자기 아들에게, 다시 말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스라엘의 아들들 당신의 선민에게, 그리고 오늘을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에게까지 전해주고자 하는 훈계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6장은 보증에 관한 내용과 게으름에 대한 내용, 그리고 불량하고 악한 자에 대한 내용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에 관한 것 곧 음행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제일 먼저 이야기하는 부분은 ‘담보’와 ‘보증’에 관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이외에도 잠언서의 여러 곳에서 보증을 삼가라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도 보증문제 때문에 나중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보증의 위험성을 잘 알 수 있는 바죠. 하지만 주변에는 잘 아는 사람이나 가까운 가족이 보증을 요구할 때 냉정하게 거절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죠.
‘보증’이라는 단어는 다른 사람의 신분, 행동을 뒷받침해서 책임을 진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의 모든 빚까지도 내가 모두 담당하겠다는 뜻을 지닙니다. 그런데 성경은 보증이란 단어를 누구에게 한정해서 사용하고 있는가? 바로 하나님에게만 보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인간에 대해서는 보증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인간은 그만큼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부족함 투성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만큼 변덕이 심하고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어떤 인간도 인간에게는 서로 보증을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런 연약한 인간, 한계가 있는 인간, 변덕이 심한 인간, 무능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완벽하신 분이기에, 그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은 보증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나 형제에게 내가 가진 것의 일부를 나눌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내 이웃이나 형제의 빚을 무한정으로 책임질 수는 없는 것이죠. 우리는 이웃이나 형제의 미래에 대해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누가 됐든지 간에 함부로 보증을 설 수 있는 입장은 못 되는 것이죠. 다만 내가 능력이 있고 여유가 있다면 그 한도 내에서 그냥 베푸는 게 가장 지혜로운 삶이죠. 그래야 나중에 후유증을 겪지 않고 인심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관점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내가 상대를 보기에 별 문제 없어 보이고, 내 생각에 그 사람이 옳은 것 같아 보인다 해도, 결코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해서도 안 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우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하던지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여쭈어보면서 일을 행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채 의리나 인정에 이끌려 내가 하나님보다 앞서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후회의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두 번째로 깨우쳐주는 말씀은 ‘개미를 통한 게으름에 대한 경계의 메시지’입니다. 개미와 배짱이, 어린 시절에 많이 듣던 우화 아닙니까?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미물에 불과한 개미조차도 부지런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감당한다는 점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이 게으르게 살아서야 되겠냐는 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더욱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부지런함으로 더 많은 재산을 모으고, 더 많은 성공을 거두기 위해 부지런한 게 아니라, 말씀이 우리에게 그렇게 살도록 가르치고 있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우리도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도 부지런한 목수로 열심히 사셨지만, 공생애 3년 동안에도 정말로 부지런히 사셨습니다. 그 3년 동안에 수많이 사람들이 주님께 나왔고, 그들의 병을 고쳐주셨고,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정도로 부지런한 주님의 공생애 삶을 주님께서 뭐라고 표현하셨는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눅9:58)하고 말씀할 정도로 그야말로 발 뻗고 편안하게 주무실 수 있는 숙소조차 없이 부지런한 삶을 사셨기에, 우리도 그 길을 좇아 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자칫 신앙인 가운데에는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기 때문에, 나는 기도만 한다, 나는 가만히 있는다, 그렇게 핑계를 대면서 자신이 만나야 할 사람도, 자신이 애써야 할 부분까지 팽개치며 사는 신앙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모습을 본받지 못한 악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보여주셨던 것처럼 내가 해야 할 일에는 땀흘리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하죠. 그렇게 주님의 본을 좇아 최선을 다하면 그에 상응하는 열매로 갚아주시겠죠.
오늘 본문 12-19절 내용은 ‘불량하고 악한 자’에 대한 묘사와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불량하고 악한 자’의 행동이 결국엔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임을 알 수 있죠. 불량하고 악한 자나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자는 대부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하나님께 순종치 않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께 순종하며 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며 살 것 같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더라도 그리고 우리 자신을 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반항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살도록 하기 위해 때론 타이르기도 하시고, 때론 설득하기도 하시고, 때론 혼내기도 하시고, 때론 엄포를 놓습니다. 그때 순종하면 그 인생이 복이 되지만, 그렇지 않고 불순종하면서 자기 고집을 피우는 이들은 하나님의 더 깊은 은혜를 체험치 못하는 것이죠. 그러다 15절의 표현처럼 어느 순간 재앙이 덮칠 때에도 어떤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어려움을 당하고 마는 것이죠. 그만큼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 속에 있다는 것은 내가 고집 피울 때도 없잖아 있지만, 그것이 주님께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는 쪽을 생각한다면 내 고집은 꺾고, 하나님의 은총에 순종하며 사는 것, 그것이 복된 인생이 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오늘 본문의 1-19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보면 우리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능한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 어떤 사람도 보증해줄만한 사람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수시로 하나님을 거역하며 살고 있고, 그렇게 살아가려는 죄의 유혹을 받고 있는 게 우리들 모습이죠.
그런데 인간의 연약함, 곧 우리 자신의 연약함은 그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본문 20-35절을 통해 보여주는 또 다른 인간의 연약함이 있습니다. 이른바 음행에 관한 내용입니다. 특별히 24절과 26절, 또 29절과 32절에서 그런 점들을 꼭 꼬집어서 이야기합니다. 그것을 통해서도 우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솔로몬이 산 증인으로서, 자기 아들들만큼은, 그리고 이스라엘의 자녀들만큼은, 곧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만큼 그런 데 넘어가는 유약한 존재로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그 분의 훈계와 책망의 말씀을 깊이 새기면서 살도록 23절에서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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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 인생의 등불이요 빛이요 책망이신 생명의 말씀을 좇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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