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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은 인생에 대한 이론과 실제적인 부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각 장은 절마다 서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각각의 말씀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내용을 이루기도 합니다. 잠언에서 주로 다루는 주제는 지혜와 도덕, 말의 사용,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관계, 노동, 그리고 재물 등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모든 주제들이 인간관계의 삶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그것을 수직적인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그 원천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제도 솔로몬에 대해 말씀을 드린 적이 있지 않았습니까? 사실 솔로몬은 다윗의 19명의 아들들 가운데 10번째 해당되는 아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은 다윗과 밧세바의 관계에서는 태어난 두 번째 아들입니다. 이른바 아버지 다윗과 어머니 밧세바의 부정한 관계를 통해 태어난 아들, 그 후에 태어난 두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주변 아들들의 입방아에 솔로몬이 오르락내리락 하지 않았겠습니까? 부정한 자식이라고 말입니다. 그만큼 솔로몬은 19명의 형제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눈치를 보며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 솔로몬에게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삼하12:24-25)라는 별칭인 ‘여디디야’로 부르게 해 주셨습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서글프고 떳떳하지 못한 출생의 신분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너를 감싸주시고 너를 사랑해 주실 것이란, 그런 뜻이었습니다. 바꿔 말해 그만큼 너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그 분의 지혜와 그 분의 사랑 속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라는 주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솔로몬은 어린 시절부터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욱더 의지하며 살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것이 곧 18명의 배다른 형제들을 제치고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주신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 1절을 통해서도 “내 아들아”하고 첫 운을 떼면서 전하고자하는 ‘지혜’가 이 세상의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지만, 결코 하나님의 수직적인 은총과 사랑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솔로몬이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인생길목에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이 없었던들 결코 왕이 될 수도, 또한 이와 같은 지혜의 잠언들을 남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 바탕 위에 본문 1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잘 지켜 나갈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하고 권면하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으로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레베크’는 인간의 감정과 행동 사상의 원천이 되는 곳을 뜻합니다. ‘지키라’는 말은 ‘순종하다’, ‘보호하여 지키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만큼 1절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인격적인 순종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을 그렇게 마음을 다해 순종하며, 그 말씀을 적극적으로 지키고자 할 때 누리는 은총이 무엇인지, 2절에서 일깨워 줍니다.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인격을 다해 지킬 때 누리는 은총은 ‘장수’와 ‘평안’입니다. 우리에게도 장수는 복 중의 큰 복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장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신앙의 중심을 지킨 사람들이 누리게 되는 가장 복 중의 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평강’은 주로 육체의 건강이나, 정치적 동맹 상태, 원만한 인간관계, 그리고 국가의 태평성대 등 외적인 측면을 말하는 부분도 있지만, 모든 위험과 장애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마음의 평정상태를 가리키는 내적인 측면도 포함된 평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그 말씀을 지켜갈 때, 외적인 장수의 복도 누릴 뿐만 아니라 내적인 마음의 안정까지도 누리며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그렇죠. 나라가 아무리 태평성대를 이룬다 해도, 나 자신의 삶이 평강하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안정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건강한 육체를 지녔다 해도,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면, 결코 안정된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이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각자의 마음으로 지키며 살아갈 때, 진정한 평강, 온전한 샬롬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어제 하루의 삶을 돌아보실 때, 어제의 삶속에 주님의 샬롬이 매 순간 마음 가운데에 있으셨는지요? 만약 순간순간 마음에 샬롬이 아니라 번민과 두려움이 있었다면 그 순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린 시간일 것이며,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한 순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어제와 다른 하루를 살아갈 것입니다.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마음으로 지켜간다면, 오늘의 삶은 우리를 평강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물론 순간순간 어제의 삶을 오늘에 반복할 수도 없지 않겠지만, 그만큼 완벽한 인간은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한 걸음 한 걸음 믿음의 진일보를 이뤄나가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3-26절까지는 하나님의 법과 명령에 대한 구체적인 항목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의 유지와 그 유익에 대한 설명이라 할 수 있죠. 특별히 11-18절에 아주 멋진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한마디 한 마디 말씀이 수정과 같은 보화와 같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징계, 곧 하나님의 견책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 분의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는 것, 그 분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징계하시지 결코 사랑치 않으시면 징계하지 않는다고 일깨워주십니다. 그렇기에 그 분이 원하시는 삶에서 이탈할 때 그 분이 징계하고 채찍질하면 그것을 달게 받으라는 뜻이죠. 그래서 그 분이 이끄시는 삶의 지혜를 얻는 것이 이 세상의 은이나 정금보다 낫다고, 이 세상의 그 어떤 부귀영화로도 그 분의 지혜를 비교할 수 없다고 권고하시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이 세상 어떤 금은보화보다도 그분의 말씀을 통해 깨우쳐 주시는 지혜가 곧 생명나무와 같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만큼 잠언의 모든 구절이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주목해 지혜로운 삶을 살도록 견책하는 것 같지만, 실은 수직적인 차원의 하나님의 말씀속에서 얻는 지혜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그리고 27-31절까지는 이웃과의 관계, 인간 사이의 수평적 관계성을 통해 지혜를 추구하는 것에 대한 유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 이른바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소통하며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베풂의 삶을 살아가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기회와 능력이 있을 때, 그렇게 우리에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선을 베풀면서 살아가는 게 실은 아름답고 선한 인간관계를 맺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더욱이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듯 아래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길이기도 하죠.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30
본문 35절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 참 지혜를 소유한 자는 아버지의 절대적인 주권 속에서 자녀의 자격을 얻게 되고, 대신에 미련한 자는 치욕을 소유한다고 말씀합니다.
오늘도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스런 상속을 받는 자로 살아가도록, 이 새벽시간에 이 자리로 부르셔서, 당신의 지혜로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위에서부터 주시는 주님의 법도를 따르고, 아래로 선을 베푸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생명나무가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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