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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에 갇힌 루터의 1년, 하나님 찬양의 시간

by 권또또 2022.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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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로마서 323-24절에 이르렀다. 성 히에로니무스의 공인 본문은 이렇다.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킹제임스 본은 말을 약간 바꾸었다.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대속을 통하여 그 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루터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고쳐 썼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이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될 수 있음을 압니다.’”(221)

 

제임스 레스틴의 <루터의 밧모섬> 에 나오는 이야기다. 루터는 교황청의 면벌부에 대한 이의 제기 차원에서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 앞에 붙였다. 그 일로 보름스 제국회의장에 불려갔다. 그때 루터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렸다. 그 길은 죽음의 사지로 끝날 것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루터는 그것이 진리를 세울 수 있는 길임을 확신하며 나아갔다.

 

그런데 제국회의장에는 똑똑한 검사와 같은 유명한 신학자가 교황청을 대변하는 논리적인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루터는 그에 대해 반격조차 못하는 듯 힘없는 답변만 늘어놨다. 하지만 그 다음날 루터는 하나님의 격려와 지지 속에서 명쾌한 오류를 밝혀냈다. 이로써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루터를 지지하는 층들이 더 두텁게 형성됐다.

 

문제는 보름스 제국회의장을 빠져나가는 길목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루터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목이었다. 귀향 8일째에 접어들던 루터는 그만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때 그는 작센 도시의 프리드리히 선제후의 지원을 받아 바르트부르크성에 1년간 숨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가톨릭의 사제들만 성경을 독점하던 라틴어 번역본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그 번역본을 통해 독일 성도들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조차 성경을 읽게 되었다.

 

바로 그와 같은 업적을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거둔 것이었다. 마치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됐을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환상을 열어 미래에 있을 일을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그만큼 루터는 자신이 처한 절박한 자리를 하나님께서 연단시키는 훈련장으로 삼았다. 그 당시 로마 교황청의 주도 세력에게 기댈 것 없던 루터는 오직 하나님께만 매달리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랐던 것이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146:15)

 

시편 146편부터 시편의 마지막인 150편까지는 각 시편마다 ‘할렐루야’로 시작한다. 물론 마지막 갈무리할 때도 ‘할렐루야’로 끝을 맺는다. 그만큼 그 다섯 편의 시들은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마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할렐루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할랄’(הָלַל)이다. 그 단어는 ‘빛나다’(to shine), ‘찬양하다’(to praise), ‘자랑하다’(to boast)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빛나고 자랑스러운 일이라 하나님을 드높이며 찬양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1)

 

시편 146편은 전반부(1∼5절)에서 인간의 연약함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행17:24-31)을 찬양한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라 때로 세상의 권력자를 의지할 때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카리스마 넘치는 통치자가 성공을 거둔다 해도 그를 의지하지 말라고 한다. 그 호흡이 끊어지면 아무런 도움이 못 되기 때문이다. 그토록 인간이 연약한 존재라는 뜻이다.

 

146편의 후반부(6∼10절)는 하나님께서 약하고 눌린 자를 건지시는 분이시기에 그 분을 찬양토록 한다. 하나님은 긍휼과 병든 자를 돕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붙드시는 분이시다. 그만큼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하나님나라를 허락(마5:3)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갇힌 자를 자유케 하신다(사61:1, 눅4:18).2)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루터의 번역이 지금껏 교회사를 새롭게 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결코 인간은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결코 인간은 새롭게 태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격려하심이 없이는 결코 인간은 절박한 상황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루터처럼 내가 처한 자리를 믿음의 자리로 훈련시킬 때가 있다. 세상의 가치로 바라보면 바르트부르크성에 갇힌 루터는 하수구에 빠진 생쥐꼴이었다. 더욱이 그곳에서 성경을 번역하는 일도 지루한 일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기간은 무의미한 낭비가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에 드러내는 가장 값진 기회였다. 그 성안에 갇힌 루터의 1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을 드높이는 찬양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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