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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여호와는 고난당한 자를 변호해주시며(시140:1-13)

by 권또또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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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도 표제에 ‘다윗의 시’라고 나와 있습니다. 특별히 6절에 나타난 다윗의 고백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간구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6절에 내가 여호와께 말하기를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여호와여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하였나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윗의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라는 고백으로 하나님을 절대주권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 곧 ‘여호와여’라고 부르며, 자신을 도와주실 분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자신의 도움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은 과거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경험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7절에 내 구원의 능력이신 주 여호와여 전쟁의 날에 주께서 내 머리를 가려 주셨나이다 여기에서 ‘내 머리를 가려주셨다’라는 표현은 ‘내 머리를 막아주셨다’는 뜻입니다. 전쟁터에서 적군의 창과 활로부터 하나님께서 막아주시고, 지켜주셨다는 표현이죠.

보통 전쟁에서 군대장관이나 왕은 수장의 부하들로부터 보호를 받지 않습니까? 오늘날의 대통령도 경호실장을 비롯한 경호원들로부터 보호를 받듯이, 옛날 군주나 군대장관들 역시 부하 장수들로부터 보호를 받습니다. 심지어 부하 장수들이 화살받이를 하는 경우도 많았죠.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부하 장수들로부터 보호를 받은 걸 회상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보호해 주심을 회고한 것입니다. 그만큼 다윗은 하나님은 다윗의 생명을 지켜주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과거에 자기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께서는 현재 마주하고 있는 악인들의 위협으로부터도 신실하게 건져주실 것을 확인하며, 간구하는 것, 오늘 본문을 통해 다윗이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시편 140편은 크게 고백 간구 그리고 선포로 구성돼 있습니다. 1-3절은 악인들로부터 보호해 주시기를 요청하는 기도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악인들에 대한 표현을 1절과 4절과 11절에서는 ‘포악한 자’로, 또 5절에서는 ‘교만한 자’로, 그리고 11절에서는 ‘악담하는 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격이 다른 것 같지만 포악한 자도, 교만한 자도, 그리고 악담을 퍼붓는 자도 모두 악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악인들로부터 1절에 여호와여 악인에게서 나를 건지시며 포악한 자에게서 나를 보전하소서 또 4절에 여호와여 나를 지키사 악인의 손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나를 보전하사 포악한 자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하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3절 끝부분에 (셀라)가 나오고, 또 5절 끝부분에 (셀라), 그리고 8절 끝부분에 (셀라), 3개의 셀라가 나오고 있는데, 언젠가도 말씀드린 바 있는데, 셀라는 노래로 치면 ‘후렴구’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셀라를 기점으로 나눈다면 4개의 연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4개의 연은 악인들로부터 건져달라는 ‘간구’와 그 악인들을 ‘고발’하는 내용, 그리고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선포’하는 내용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바꿔 말해 아무리 악한 자들이 판을 치고, 의로운 자를 억압한다 해도, 끝내는 하나님께서 정의의 손길로 의로운 자들의 길을 환히 열어주신다는 그런 믿음의 고백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죠.

 

특별히 다윗이 간구하는 가장 주된 핵심이 무엇입니까? 악인으로부터 구원 요청입니다. 이 다윗의 간구를 들여다보면 누구의 기도가 떠오릅니까? 우리가 주일날 오후에 이제 살펴보기 시작한 ‘주님의 기도’ 곧 Lord's Pray 곧 ‘주님의기도’를 떠올릴 수 있죠. 그 중에서도 ‘악에서 구하옵소서.’하는 부분이 생각이 납니다. 중요한 것은 악에서 구해 달라고 하는 예수님의 기도는, 그만큼 그 시대에도 악한 자들이 넘쳐났다는 것이고, 그 이전 시대는 물론이고, 그 이후의 시대에도 악한 자들이 세상을 주름잡고 활개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악이 완전히 제거되면 좋겠고, 오직 선만이 존재하는 시대에 살았으면 하는 좋겠다고 이야기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첫째 날에 빛과 어둠을 지으셨는데, 그때의 빛은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신 넷째 날의 그 발광체 빛이 아니라, 진리와 각성의 빛이고 어둠이란 그 반대급부의 어둠을 말하는 것이죠. 그렇게 빛과 어둠을 지으셨고, 궁창 위와 궁창 아래, 또 땅 위와 땅 아래를 지으셨고, 그렇게 바탕을 깔아 놓으신 다음에 이제 하나씩 채워 넣을 때에도 모든 것들을 암수 한 쌍 이상씩 만드셨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만큼 빛과 어둠, 해와 달, 하늘과 바다, 날짐승과 기는 짐승, 남자와 여자처럼, 쌍으로 만드셨듯이, 악한 자들과 선한 자들도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악한 것들, 악한 자들이 다 망하기를 바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일례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대왕,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성전을 파괴했던 그를 예레미야 25장 9절에서는 내 종 느부갓네살이라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그런가 하면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 역시 패역부도한 왕인데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44장 28절을 통해 내 목자라고까지 칭하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악한 왕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주관해 나가신다는 것입니다. 그 악한 왕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등지고 살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을 때, 그들을 징치하는 도구로 사용하셨고, 또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을 통해서는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금 포로에서 귀환하는 칙령을 반포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만큼은 악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신다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악인의 악도 끝이 있고, 선인의 고난도 끝이 있다는 것, 그것이 곧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임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 땅에 우리가 사는 날 동안 ‘악에서 구하소서’하고 간구하는 것은, 우리가 그런 악한 자들과 결탁하지 않도록, 악한 자들의 계획을 잘 구별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간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 140편은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경험했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피해 ‘놉’ 땅이라는 곳의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갔습니다. 그 때 다윗은 ‘아히멜렉’으로부터 ‘진설병’과 ‘골리앗의 칼’을 얻었습니다. 그것이 사무엘상 21장에 나오는 내용이죠. 이 때 이 모든 것을 옆에서 본 후 밀고한 사람이 사울의 목자장인 ‘도엑’이었습니다. 다윗은 그곳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갔지만 제사장 ‘아히멜렉’은 사울로부터 죽임을 당하죠. 이 때 제사장 ‘아히멜렉’만 죽였던 게 아니라 사울은 ‘아히멜렉’을 비롯해 에봇을 입은 자 85명, 곧 제사장 85명을 함께 죽인 것입니다.

그처럼 악인은 무고한 자를 죽인다는 사실입니다. 그로 인해 다윗이 심한 죄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자기 자신의 일로 인해 죄없는 제사장들이 죽임을 당했다면서, 자책감에 빠져들었고, 그래서 더더욱 처절하게 악한 자들로부터 구해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다윗도 실제로 왕이 되었을 때, 악한 자로서 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까? 그렇듯 사울의 모습을 일평생 반면교사 삼아야 할 다윗이었지만, 자신도 권력의 화신이 될 때, 그렇게 악한 자의 전형을 드러낼 수 있는 것, 오늘 우리 자신들도 늘 경계해야 할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2절의 말씀처럼 악인들은 늘 마음속으로 악을 꾀하고 싸우기 위해 매일 모이고, 3절 말씀처럼 뱀같은 혀와 독사의 독이 가득한 입술로 괴롭히고, 4절의 말씀처럼 손으로 의로운 자의 걸음을 밀쳐 버리는 일들을 저지르죠. 그러나 그런 악인들의 괴롭힘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잡으며, 사람들을 이롭게 하려고 하는 선한 자들은 끝내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사실, 하나님의 전적인 보호하심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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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윗은 그런 하나님, 선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아는 까닭에, 12-13절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시며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리이다 진실로 의인들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들이 주의 앞에서 살리이다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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