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열기)(예화)지난 주에 잠깐 이야기한 그 사모님에 대해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 분은 올해 쉰여덟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만 해도 목포에서 제일 잘 나가는 부잣집 딸이었습니다.
그 분의 아버지는 매일신문사와 지금의 삼양사인 당시의 삼화사를 운영하고 있었죠.
무안 삼향 유교리 가는 길목에 있는 중등포 저수지 둘레의 인근 땅들도 모두 그 아버지 땅이었습니다.
집도 목포에서 제일 좋은 2층 한옥에 살았습니다.
그 당시 유치원과 초등학교도 자동차를 타고 다녔다고 하죠.
성악가 꿈을 키우고자 조선대학교 음대 교수로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지도를 받았다는데 직접 목포 그 집으로 내려와 레슨을 했다고 하죠.
그런데 그토록 건강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갑자기 위가 좋지 않아 목포와 서울의 병원을 찾아다녔습니다.
가는 곳마다 어쩔 도리가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급기야 일본에 가서 치료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내 목숨이 내 것 같지만 언제 하나님께서 내 목숨을 거둬가실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얼굴도 신체도 피부도 내가 다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가시 하나만 찔려도 아파하는 우리 자신 아닙니까?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지만 그토록 건강을 자신하던 사람도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것이죠.
그 분도 젊은날의 건강을 자신다하다가 갑지가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녀의 어머니는 한순간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은 셈 아니었겠습니까?
당시 신문사 기자까지 두고 있던 매일신문사는 하루 아침에 공중분해 되고 말았습니다.
삼화사도 가까운 인척이 인수했지만 경영능력이 안 돼 곧바로 다른 사람이 인수해서 지금의 삼양사가 됐다고 하죠.
그 와중에 그녀의 어머니는 네 딸을 대학에 보내고자 2층 한옥을 팔고 점차 작은 집으로 이사하다가 결국 상동의 서민주택에 들어갔습니다.
한 번도 손에 물을 묻혀 본 적이 없다던 그 어머니도 하루아침에 직접 밥을 해 먹어야 했고 딸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골목길 행상에 나서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 드라마 같은 이야기는 무안군 일로 장터를 오가면서 그분의 남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게는 시골 동네 형님이기도 한 그분의 남편은 현재 환갑이고 우리 지방회 선배 목사님이기도 합니다.
스무 가지 반찬이 나오는 일로 장터 백반집에서 밥을 먹고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실 때 그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분의 아내가 어쩌다 한 번 농담을 한다면서 말에요.
“여보. 울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난 당신을 쳐다보지도 않았겠죠?”
어쩌면 그게 사실일지 모릅니다.
지금껏 그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시골 총각이 눈에 들어오기나 했겠습니까?
목포에서 제일 잘 나가는 부잣집 딸이 지도읍 금출동의 가난한 동네 형님과 눈이나 마주치려고 했겠습니까?
하지만 그 분의 아버지가 죽고 가세가 기울자 그녀의 어머니와 네 딸 모두 가난한 심령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고 합니다.
그때 비로소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외하고 가난한 골목길의 아이들 마음도 이해하게 됐다고 하죠.
그녀도 성악 레슨을 곧바로 그만뒀고 엄마와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고자 목포 가톨릭 간호대를 나왔다고 하고요.
그 후 그분이 들어간 곳이 바로 목포 고하도 공생원이었습니다.
공생원(共生園)은 함께 사는 ‘에덴동산’(Garden of Eden)이란 뜻으로 ‘더불어 사는 곳’입니다.
공생원은 1928년 기독교 전도사 윤치호(1909-1951?)가 목포의 어느 다리 밑에서 추위에 떨던 어린 고아 7명을 데려다 함께 생활하면서 시작이 된 곳입니다.
더욱이 공생원은 윤학자(尹鶴子) 일본말로 타우치 치즈코(田内 千鶴子)가 윤치호 전도사와 부부의 연을 이뤄 돌본 곳입니다.
윤학자는 1919년 7살 때 조선총독부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따라 목포에 왔다가 1968년 10월 죽을 때까지 공생원 아이들을 돌본 분입니다.
그런 공생원에 그 사모님이 간호사로 들어가 길 잃은 아이들을 돌보다가 지금의 그 목사님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전자책]귀먹은 하나님 응답하소서 - 예스24
성경으로 문화 읽기를 접목한 세 번째 책이다. 첫 책은 출애굽기로부터 시작해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책은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 사사기, 룻기, 사무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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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만약 그 사모님이 부잣집 딸로 계속 살았다면, 아버지를 잃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지금의 그 목사님을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공생원에 들어가 길 잃은 고아들을 돌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섭리 가운데 그 사모님을 불렀고 공생원으로 보내서 길 잃은 아이들을 돌볼 긍휼의 마음, 가난한 마음을 불어넣어주신 것이었습니다.
(적용)우리도 인생의 길을 잃어보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 아버지를 진정으로 만날 수는 없습니다.
내 심령에 가난한 마음이 들지 않고서는 결코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길 잃은 영혼 품을 수가 없는 것이죠.
실은 그 마음 자체를 우리 예수님께서 불어넣어주신 것이고 그 본을 보여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하나님의 본체요 하나님과 동등된 위격을 지닌 성자 하나님께서 계속 하늘의 자리만 고집했다면 어찌 인류의 구속을 이루셨겠습니까?
성자 하나님의 그 자리를 내려놓고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고 인간의 몸으로 십자가에 죽으셨기에 우리에게 구원의 역사가 주어진 것이죠.
그만큼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인간이 느끼는 희노애락을 다 경험하셨기에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모르는 길 잃은 영혼을 주님은 기꺼이 품을 수 있는 가난한 심령의 소유자이신 줄 믿습니다.
이 땅의 누구든지 자신이 처한 쓰디쓴 고통과 괴로움을 우리 주님께 아뢰고 의지하기하면 하면 지금도 주님은 그 고통과 괴로움을 기꺼이 품어주시는 구세주이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전자책]야긴과 보아스 - 예스24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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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예수님께서는 밤새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기도하셨고 아침이 밝아오기까지 다섯 번의 법정에 끌려다녔습니다.
그로 인해 골고다 언덕을 향하는 길목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죠.
그때 아리마대 출신의 요셉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갔습니다.
오전 9시 무렵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못이 박히셨고 정오 12시에 날이 어두워지더니 오후 3시까지 온 땅에 흑암이 뒤덮었습니다.
그날의 흑암은 자연계의 7분짜리 일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흑암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빠져나와 자유와 해방의 빛을 맛보기 위한 3일간의 흑암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요엘서 말씀처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진 그런 흑암(욜2:31)이었습니다.
그 흑암은 빛과 반대되는 흑암이자 생명과 반대되는 사망의 흑암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흑암 속에 당신의 생명을 갈아 넣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당신의 죽음을 통해 인류를 향한 대속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우리의 인생에 그 어둠과 흑암이 찾아올 때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그 흑암 속에 우리의 영혼을 갈아넣는 길인 줄 믿습니다.
그것이 광명한 빛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흑암의 끝지점에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에 탄식하며 외쳤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물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버린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인류를 향한 대속의 죽음을 완성하기 위해 잠시 잠깐 고개를 돌린 것 뿐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탄식하며 외칠 때 당장이라도 응답하셨다면, 그래서 십자가에서 내려주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인류를 향한 대속의 역사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탄식 앞에 하나님께서 무응답으로 응답하신 것은 독생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라는 하나님의 무언의 격려였습니다.
(전개)지난 시간에 우리는 ‘어찌하여’라는 말씀에 초점을 맞춰 살펴봤습니다.
‘어찌하여’라는 말은 아람어 관용구라고 했습니다.
‘달리다굼’ ‘에바다’ ‘마라나타’ 등이 모두 아람어인데 예수님도 그 아람어를 직접 사용하셨죠.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도 아람어인데 그중 ‘라마’는 ‘어찌하여’라는 뜻이고 헬라어로 ‘레마’(λεμά)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의 히브리어로 ‘어찌하여’라는 단어는 ‘레모드’(לָמָה)와 ‘마두아’(מַדּוּעַ,출1:18)가 있다고 했죠.
둘 다 ‘무엇 때문에’ ‘왜’라는 의미가 있지만 레모드는 앞으로 일어날 섭리를 묻는 성격이 강하지만 마두아는 과거에 일어난 원인에 초점을 맞춘 단어라고 했습니다.
애굽의 파라오가 이스라엘의 산모들이 사내아이들을 낳는다면 모조리 죽이도록 했지만 히브리 산파들은 다 살려냈죠.
그때 파라오가 ‘왜’ ‘어찌하여’ 살려뒀느냐 하고 묻는 그 말이 바로 마두아였습니다.
그에 비해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애굽의 파라오 앞에 맞설 때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이 더 많은 고역에 시달리며 모세를 원망했죠.
그때 모세는 ‘왜’ ‘어찌하여’ 나를 백성의 지도자로 삼는 것입니까, 하고 질문할 때 ‘레모드’가 사용됐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와 사망의 땅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 생명의 땅으로 나아가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죠.
믿음의 사람은 과거에 일어난 일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도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과거에 붙잡히고 매여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에 역사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의문이 들 때 그때 ‘왜’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하나님께 질문할 수 있지만 그 너머에 하나님의 대답이 명확하다면 기꺼이 순종하길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지금 당장은 ‘왜’ ‘어찌하여’ 이런 고난과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그 너머의 대답은 너무나도 명확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십자가 죽음을 맞이하는 게 고통이고 괴로움이지만 그 너머에 부활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 너머에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그 주님을 부활의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한다는 것 말입니다.
모든 인류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 말입니다.
그 대답이 분명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왜’ ‘어찌하여’하고 물었지만 곧이어 온전하게 순종하여 십자가 죽음을 마지막까지 완수하신 것이었습니다.
[전자책]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예스24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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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주목하고자 하는 말씀은 35-36절 말씀입니다.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막15:35-36)
(원해)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 있던 사람들, 로마 병사들 편에 있던 자들, 예수님과 반대편에 있던 자들은 다들 예수님이 엘리야를 부른다고 이해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하셨는데 다들 그렇게 엘리야를 부른다고 잘못 들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만큼 나약하기 때문에 구약시대에 죽음을 보지 않고 불수레와 불말을 타고 하늘로 승천했던 그 엘리야에게 도움을 청한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러면서 로마 군인 하나가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셔서 갈대에 꿰어 신 포도주를 마시게 했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에 로마 군인들이 신 포도주를 해면에 적셔 줬죠.
‘해면’이란 헬라어로 ‘스포고스’(σπόγγος)인데 바다의 해면동물로서 영어로는 스폰지(sponge)입니다.
물을 빨아들이는 스폰지인데 오래 전에는 해면동물을 스폰지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말 ‘신포도주’는 헬라어로 ‘옥소스’(ὄξος)인데 ‘식초’(vinegar)에 가까운 포도주입니다.
구약의 히브리어로 ‘호메쯔’(חֹמֶץ)가 있는데 ‘포도주’보다는 ‘초’(민6:3,룻2:14)를 뜻하는 말입니다.
마가와 마태와 누가 공관복음 기자들은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께 신맛나는 식초를 준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그 식초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19:30).
놀라운 것은 구약의 시편 69편 21절에 예수님께서 초를 받아 마신다는 것이 이미 예언된 말씀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시69:21)
그런데 어떻습니까?
물에 희석되지 않은 식초를 보통 사람이 마실 수 있는 일입니까?
그것은 너무나도 신 레몬 농축액을 마시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러니 죽어가는 사람의 마른 입술에 식초를 마시게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잔인한 일입니다.
물론 로마 군인들이 희석되지 않는 식초를 예수님께 내밀지는 않았겠죠.
당시 로마 군인들은 자신들의 피로를 풀고 새 힘을 얻고자 식초와 신맛 나는 포도주를 섞어 마셨다고 전합니다.
그들이 근무하는 예루살렘의 골목 어귀에서 잠시 짬을 내 쉴 때면 관습적으로 그걸 나눠 마셨는데 그것을 예수님께 내민 것이었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식초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피로를 풀고 새 힘을 얻고자 식초와 신맛 나는 포도주를 섞은 걸 마셨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죠.
예수님께서는 길 잃은 인간이 토하고 싶은 죄의 신맛을 모두 품으셨다는 뜻입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입에서 나오는 것 곧 그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더로운 죄악들을 품으시고 대속하고자 말입니다.
(원성)마태복음 15장 11-20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15:11-20)
[전자책]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예스24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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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그 속엔 신맛나는 더러운 죄악들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들 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이 세상으로 나오는 것들이 모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로부터 오는 것들이니 말입니다.
에덴 동산의 선악과를 바라보는 아담과 하와의 마음 속에도 먹음직하고 보암직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그만큼 인간은 죄의 신맛으로 가득차 있는 탐욕으로 가득차 있는데 예수님은 우리의 죄악의 신맛을 다 대속해주시고자 로마 병사들이 골목길에서 마시던 그 식초맛 나는 신포도주를 받아들이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자기 아버지를 잃은 부잣집 딸이 영생의 빛이신 주님을 만나 길 잃은 고아들의 공생원에 들어가 그 아이들을 품는 것과 똑같은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인생의 흑암이라는 터널을 통과한 경험이 있는 자들이 또 다른 흑암을 맞이한 이들을 기꺼이 품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누구든지 인생의 고통을 경험한 이들이 또 다른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품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로마 병사들이 예루살렘의 뒷골목에서 마시던 식초와 신맛 나는 포도주를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죄의 신맛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을 모두 품을 수 있는 긍휼을 베풀고자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죄의 신맛을 지닌 사람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 아니겠습니까?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의 죄의 신맛을 품고 대속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식초와 신맛 나는 포도주를 받아들이시는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2층 한옥집에서 살던 부잣집 딸이 그런 고통과 아픔을 겪지 않았다면 생명의 빛이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할 수 있었겠느냐?”
“그녀가 그런 아픔과 고통의 골목길을 맞이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역사하셨기에 고하도의 공생원에 들어가 길 잃은 고아들의 어머니로 살 수 있지 않았겠느냐?”
“엘리엘리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외친 예수님께서도 로마 병사들이 뒷골목에서 마시던 식초와 신맛나는 포도주를 받아들인 것도 그런 연유이지 않겠느냐?”
“모든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말과 비방과 같은 신맛나는 죄악을 주님께서 품고 대속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그 주님께서 네 속에 있는 죄의 신맛 나는 것들을 다 품어주셨음을 온전히 믿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 세상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을 위해 주님이 대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네 죄의 신맛나는 것들을 대속해 주기 위함이지 않았더냐?”
“그 은혜를 네가 기억하고 그 은혜를 네 심령 속에 간직하고 있다면 더더욱 빛의 세계 속에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그런 은혜를 진정으로 누린 자라면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찬양)죄악에 썩은 내 육신을 주님이 쓰시려 했네 죽음의 덫에 걸려 있는 몸 주님이 쓰시려 했네
속죄하는 손 치유하시고 속죄하는 발 치유하셨네 새 생명 얻은 이몸 다바쳐 주님께 영광돌리리
먹물로 칠한 내 육신을 주님이 희게 하셨네 십자가 보혈 증거하라고 주님이 살리셨네
기도할 때에 음성주시고 찬송할 때에 기쁨주시네 내 작은 입이 내 작은 몸이 주님의 붙들린 자라
평생 갚아도 빚진 자 되어 주님의 빚진 자 되어 주님가신 길 택하였건만 눈물만 솟구치네
생명주신 이 주님이시라 능력주신 이 주님이시라 말씀전하여 복음전하여 주님의 빚을 갚으리
[전자책]하나님의 시간표 - 예스24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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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재미교포 김춘근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2025년 3월 10일 향년 85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분입니다.
그가 쓴 〈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Why Me2〉에 그분의 간증이 나옵니다.
1939년 한국에서 태어난 그는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단돈 20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갔죠.
30대 초반에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페퍼다인 대학교와 알래스카 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교수를 역임합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1976년 그는 간경화로 죽을 고비가 찾아옵니다.
인생의 처절한 신맛을 느낀 때였습니다.
그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산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처럼 ‘Why me?’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불행이 찾아오는 것입니까’하고 기도했습니다.
‘저처럼 열심히 산 사람도 없을 텐데’, ‘저처럼 교회봉사에 열심인 사람도 없을 텐데’하면서 말이죠.
한참 기도하는데 그의 속에 숨어 있는 쓰디쓴 죄악들을 하나님께서 드러나게 해 주셨습니다.
자기 지식이 최고라는 교만과 아내와 자녀들에게 잘못했던 삶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자기 완악함과 교만함을 하나님 앞에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죄를 씻어주시고 그의 몸을 치유해주시고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그 후 완치된 그는 알래스카에서 대학교수로 또 교회의 봉사자로 성실하게 섬겼습니다.
주위에서 그를 칭송하면서 ‘알래스카의 요셉’이란 닉네임을 붙여줬습니다.
그 후 기독교청년들을 변화시키는 영적단체 JAMA(Jesus Awakening Movement for America)를 세웠고 차세대리더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는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도 ‘Why me?’를 부르짖었습니다.
물론 그때의 ‘Why me?’는 이전의 ‘Why me’와는 완전히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
그 전에는 왜 쓰디쓴 신포도주와 같은 죽음의 맛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까, 하는 why me였죠.
그때 주님은 자신의 죄의 신맛, 교만과 아집과 무례의 죄악들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거듭났고 주님의 치유를 통해 다시 살아나 청년들을 주님의 리더로 세웠던 것이었습니다.
그때서야 ‘why me’를 온전히 깨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적용)물론 김춘근 장로님이 그런 인생의 쓴맛을 경험한 후에 새롭게 거듭난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신포도주를 마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죄악을 다 짊어지셨고 대속해주셔 치유와 회복을 맛보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주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신포도주와 같은 죄악의 신맛도 친히 품으시고 용서해주시고 치유해 주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전자책]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 예스24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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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실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요. 주님. 김춘근 장로님도 인생의 신포도주같은 죄악들을 토해내고 온전히 거듭나도록 간경화라는 처절한 신맛을 깨닫게 하셨네요.”
“주님. 제 안에 김춘근 장로님과 같은 교만과 아집과 무례함이 숨어 있다면 그런 신포도주같은 죄악들을 주님 앞에 다 토해내며 회개하게 해 주세요.”
“그리하여 내 죄악을 씻어주시고 내 연약함을 치유하시고 내 삶을 회복시켜주셔서 하나님나라의 참된 증인으로 살게 해 주세요.”
“이 모든 일들이 십자가 위의 주님께서 인간의 탐욕으로 가득한 신포도주와 같은 것들을 다 마셨기 때문에 가능한 줄 믿습니다.”
(찬양)주님의 쓴잔을 맛보지 않으면 주님의 쓴잔을 모르리
주님의 괴로움 당하지 않으면 주님의 고통을 모르리
주님의 십자가 져보지 않으면 주님의 죽으심 모르리
주님의 쓴잔은 내 것이며 주님의 괴로움 내 것이며
주님의 십자가 내 보물이라 또한 그의 부활 내 영광이라
[전자책]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예스24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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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의 신맛나는 죄악을 짊어지시려 십자가에서 식초와 같은 포도주를 마신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식초와 같은 신맛 나는 포도주를 마셨기에 우리의 신맛나는 모든 죄악들을 품으시고 용서해주시고 치유해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 주님은 우리 속에 있는 교만과 아집과 완고함과 무례함의 죄악들을 주님 앞에 토해낼 때 모두 씻어주시고 치유해주시고 인생의 새 길을 열어주시는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 속에 충만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