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설교열기)(예화)작년 가을에 신옥희 권사님이 김을 줬습니다.
- 저는 그때 ‘곱창김’이라는 게 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 그 말을 들을 땐 곱창김을 ‘고창에서 나는 김’인 줄로 생각을 했었습니다.
- 하지만 요즘은 곱창김이란 말을 많이 듣습니다.
- 모양이 곱창처럼 길고 구불구불하다 해서 ‘곱창김’이라고 붙인 이름이라고 하죠.
- 신옥희 권사님이 ‘증도 햇 곱창김’을 주시면서 말씀하셨어요.
- “목사님. 이게 〈인간극장〉에 출연한 소악도 분교 학생 현우가 생산하는 김이예요.”하고 말이죠.
- 그때는 뭐가 다를까 했는데 그 맛을 보니까 조금은 다른 것 같았어요.
- 더욱이 그 김을 만들어내는 김현우라는 33살의 친구를 인터넷에 찾아오니까 더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 초등학교 시절 김현우는 전교생 1명에 교사도 1명뿐인 소악도 분교를 다녔습니다.
- 유일한 친구가 있다면 강아지 흰둥이가 전부였죠.
- 그곳엔 진학할 중학교가 없어서 14살 때 할머니가 있는 목포의 할머니 집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 그 후 부산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금 고향에 돌아와 부친이 운영하는 김 공장 일을 도우며 김을 생산했습니다.
- 더욱이 소악도 12사도 순례길의 여행객들을 위해 무인점포처럼 〈쉬랑께 카페〉도 운영하고 있고요.
- 그곳 카페는 돈을 받지 않고 기부금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 기부금으로 장학재단과 복지재단에 많은 기부도 했습니다.
- (깨달음)이런 사실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니까 증도 햇 곱창김이 더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 김 양식 방법이 부유식과 지주식이 있다고 합니다.
- 부유식은 깊은 바다에 닻을 놓고 부표를 띄워 김발을 매달아 양식하는 방식이라고 하죠.
- 지주식은 수심이 얕은 바다에 기둥을 세우고 김발을 매달아 양식하는 방식이고요.
- 지주식 김은 밀물 때 물속에서 갯벌이 내준 영양분을 섭취하여 자라지만 썰물 때는 햇볕에 노출할 수밖에 없어서 성장이 멈춘다고 해요.
- 그래서 그런지 지주식 김은 천천히 자라고 더 단단하게 성장하는 탓에 맛의 풍미가 더 깊다고 하죠.
- 소악도 청년 김현우는 그런 곱창김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 ‘소악도’(小岳島)가 섬 사이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지만 실은 작은 언덕의 포구를 뜻하는 섬이지 않겠습니까?
- 그 까닭에 다들 장성하면 육지로 나가지만 김현우만큼은 그곳 섬을 지키고 알리는 파숫군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 더욱이 그곳에서 검은김을 생산하고자 자기 영혼까지 갈아 넣고 있으니 그는 그 일에 제사장이자 어린 양처럼 살고 있는 모습이죠.
- (적용)그런 검은색 김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다소 낯설어하고 이질감을 느낄지 모릅니다.
- 더욱이 그 김색깔이 어둠과 죽음을 상징하는 색이라 더더욱 좋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하지만 그 김 맛을 안 사람들은, 그리고 그 김을 만들고자 자기 영혼을 갈아 넣는 김현우와 같은 사람을 생각한다면, 어찌 김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우리도 마찬가지죠.
- 내가 잘 나거나 능력이 있거나 남들보다 월등하지 못해도 비록 내 삶이 검은빛을 띠고 있을지라도 그 속에 내 삶을 갈아넣는다면 진정으로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 (역배)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죄로 물든 인류를 구원코자 함이셨습니다.
-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비천한 말 구유통에 태어나신 것도 그렇죠.
-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위해 죄로 물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자 요단강에 내려가신 일도 그렇습니다.
- 공생애 3년 동안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와 연약한 자를 고치고 치료하고 어루만져주신 모습도 그랬습니다.
- 그 공생애 기간 동안 12명의 제자를 불러 당신과 함께 공고동락하며 천국의 가치를 일깨워주신 것도 마찬가지였죠.
- 그리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찬식을 거행하면서 제자강화의 시간을 통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도 그랬습니다.
- 그 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 물로 그 전에 성찬식을 거행할 때 가롯 유다에게 떡을 주면서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하셨죠.
- 그때 가롯 유다는 주님 앞에 회개할 기회가 있었지만 끝내 은전 삼십 양이라는 그 마음속에 깃든 탐욕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 그렇게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 고난의 잔이 엄청난 고통임을 알기에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 그 기도를 세 번씩이나 할 동안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주님의 고난과는 거리가 멀게 잠에 빠져들었죠.
- 그 기도가 끝날 무렵 가롯 유다가 이끌고 온 대제사장의 군사들이 나타났고 가롯 유다가 예수님께 인사할 무렵 곧장 그 군사들이 체포해버렸습니다.
- 그러자 자기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한 베드로는 물론이고 요한과 야고보는 그 즉시 줄행랑 쳤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멀찍이 예수님을 지켜 보며 따라갈 뿐이었습니다.
- 그때부터 날이 밝아오는 시각까지 예수님은 다섯 번의 법정에 끌려다녀야만 했습니다.
- 맨 처음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자 실세였던 안나스의 법정에 끌려가셨고 곧장 가야바의 법정으로 끌려가셨죠.
- 당시 모든 의사결정엔 70명의 산헤드린 의원이 있어야 했지만 그 밤에는 23명만 모여 있어도 결의할 수 있었습니다.
- 하지만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죄를 고발한 사람들은 아무린 죄목을 발견치 못했고 급기야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보냈습니다.
- 빌라도 예수님을 심문했지만 그 어떤 죄목도 찾지 못했고 곧바로 헤롯 대왕에게 보냈습니다.
- 그러나 헤롯 대왕 역시 예수님에게서 어떤 죄목을 발견치 못하자 다시금 빌라도의 법정으로 예수님을 보내버렸죠.
- 그렇게 예수님은 날이 밝아오는 그 시각까지 새벽녘부터 아침까지 다섯 번의 법정에 끌려다녔는데 마지막 빌라도는 군중들의 폭동이 두려워 예수님께 사형선고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 사형선고를 받은 그날 예수님은 자신이 매달릴 그 육중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 밤새도록 기도하셨고 또 날이 밝아오기까지 다섯 번의 법정에 끌려다녀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고 피곤했겠습니까?
- 그러니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동안 수 차례 쓰러질 수밖에 없었죠.
- 그때 로마 병사들은 그 길목에서 지켜보던 구레네 출신의 시몬을 지목해 예수님을 대신해 십자가를 짊어지도록 명령했습니다.
- 그렇게 골고다 언덕까지 오른 예수님은 유대인의 시각으로 제3시 곧 우리 시각으로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대못이 박힌 채 매달렸습니다.
- 그로부터 3시간이 흐른 정오 12시에 온 땅에 흑암이 내리깔렸고 무려 3시간 동안 그 어둠과 흑암이 온 땅을 덮었습니다.
- 그렇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십자가 상의 일곱마디라 하여 ‘가상칠언’을 하셨고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고 하면서 숨을 내쉬고 숨을 거두셨죠.
- (깨달음)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시면서부터 당신의 운명은 십자가 죽음을 피할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 그래야만 죄로 물든 인류를 구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그만큼 당신이 살아가야 할 운명 자체가 어둠이요 흑암으로 뒤덮는 삶이었습니다.
- 그런데도 주님께서 그 길을 기꺼이 짊어지고 나아간 것은 그 어둠과 흑암 뒤에 찬란한 생명의 부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죠.
- (적용)앞날이 불투명한 젊은 부부가 손을 꼭잡고 사랑을 다짐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 갓 태어난 아이의 운명이 암울할지라도 그 아이의 맑은 눈을 바라보며 내가 너만은 꼭 책임지도로 할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 앞으로 살아갈 시대 상황이 아무리 암울한 어둠과 흑암으로 가득차 있어도 부모는 자기 책임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그것이 가정과 자식을 살리는 길임을 알기 때문에 말입니다.
-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십자가 고난의 길인 줄 알면서도 꾸역꾸역 그 길을 걸어간 것은 오직 이 땅에 생명을 주시고자 함이셨습니다.
- (본문)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날 오전 9시를 지나 12시부터 오후 3까지의 상황을 전해주는 말씀입니다.
-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막15:33)
- (원해)여기에 ‘제육시’란 유대인의 시간으로 정오 12시를 말하는 것입니다.
- 그때 온 땅에 어둠이 임했고 그런 어둠은 ‘제구시’ 곧 오후 3시까지 계속된 것이었습니다.
- 이것은 자연계에서 7분가량 일어는 월식과 같은 게 아닙니다.
- 본문의 어둠은 무려 3시간 동안 일어난 암흑이었기 때문입ㄴ디ㅏ.
- 우리말 ‘어둠’으로 번역된 헬라어 ‘스코토스’(σκότος)는 ‘그늘’을 뜻하는 ‘스키아’(σκιά)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 ‘흑암’과 ‘그림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 이 ‘스코토스’가 히브리어로 ‘호세크’(חשֶׁךְ)인데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빛과 반대되는 ‘어둠’(창1:3∼5,사45:7)을 뜻합니다.
- 더욱이 이 어둠은 진리와 생명과 반대되는 거짓과 사망(요8:12)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 (깨달음)구약성경에 그 어둠 그 흑암이 내리깔린 적이 있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통해 해방을 맞이하기 전에 내린 10가지 재앙 중의 하나가 ‘흑암의 재앙’이었습니다.
- 애굽 땅 전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는 그 흑암 재앙이 무려 3일간 계속 되었죠(출10:22).
- 그런데 신약성경의 본문에 일어날 흑암에 대해 구약의 요엘서에 미리 예언이 돼 있습니다.
-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한다(욜2:31)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 그만큼 애굽 땅에 3일간 임한 흑암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명한 해방의 빛을 맞이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 본문의 사건을 예고한 요엘서의 예언도 예수님의 사망과 관련해 일어날 흑암도 실은 광명한 빛의 세계를 열어주기 위한 전 단계에 임할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지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이후에 무려 3시간 동안 온 땅이 어둠과 흑암으로 가득찼습니다.
- 그 어둠과 흑암에 예수님이 포획당해 끝나버릴 것 같지만 예수님은 죽음을 꿰뚫고 부활하신 것처럼 곧이어 찬란한 빛의 부활을 맞이하시는 분입니다.
- (원성)그렇기에 어둠은 빛과 대조되는 것이고 생명과 대비되는 죽음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1:3-5)
-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45:7)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4-5)
-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되는 말씀입니까?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3시간 동안 임한 어둠은 빛과 반대되는 어둠이지만 생명과 반대되는 사망의 어둠이란 사실입니다.
- 실은 그 어둠과 사망 속에 예수님 당신을 꾸역구역 몰아넣으신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라 다시금 빛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 (적용)그것은 소악도의 김현우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 어둠과 죽음의 검은색을 띠는 곱창김을 만들고자 김현우가 고향 땅에 돌아와 자기 영혼을 꾸역꾸역 갈아넣는 것 말입니다.
- 모두가 섬을 떠나고 있지만 그는 섬의 파숫꾼이 되고자 그 김을 만들어내는데 자기 영혼을 몰아넣고 있는 것입니다.
- 그것이야말로 그 일에 제사장이나 그 일에 자기 영혼을 바치는 어린양과 같은 모습이지 않겠습니까?
- 주님께서도 십자가 사건의 암흑 속에 당신의 영혼을 갈아넣으셨습니다.
- 그러나 그 어둠과 암흑에 사라진 게 아니라 찬란한 빛으로 부활하셔서 이 땅 모두에게 영생의 빛을 불어넣어주셨죠.
- 그렇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어둠이요 흑암처럼 보여도 주님께서 보내신 소명임을 아는 사람은 그 일에 자기 영혼을 갈아넣지 않겠습니까?
- 그 길이 외길 인생처럼 보여도, 그 길이 온통 어둠과 흑암에 잠식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 우리 주님은 지금 당장은 소망이 없어 보이는 어둠과 흑암일지라도 그 영혼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 자들을 통해 부활의 역사를 써내려가실 줄 믿습니다.
- 그것이 오늘 본문에 임한 어둠과 흑암의 모습이요 그것이 온 땅에 임하는 것 같아도 주님께서는 그 어둠을 뚫고 친히 부활하신 분인 줄 믿습니다.
-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어둠과 흑암처럼 보이는 그 인생 앞에서도 자기 영혼을 갈아 넣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 “밝은 빛만 부활의 빛만 성공의 빛만 원하지만 주님께서는 때로 어둠과 흑암으로 너를 몰아넣을 때가 있지 않겠느냐?”
- “전교생 1명에 교사도 1명뿐인 소악도 분교 출신인 김현우도 지금 흑암의 빛인 김을 생산하는데 자기 영혼을 갈아넣고 있지 않더냐?”
- “그것이 전국으로 일본으로 그 맛을 전혀 모르는 유럽사람들에게까지 알려져 부활의 빛을 드러낼지 누가 알겠느냐?”
-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께서도 지금 3시간 동안이나 어둠과 흑암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이지 않느냐?”
- “하지만 그 어둠과 흑암이 빛과 생명을 주기 위한 과정이요 찬한한 부활의 역사를 나타내기 위한 전 단계이지 않더냐?”
-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 “네가 걷는 그 길이 굽어도는 것 같고 네가 세운 계획이 빗나갈지라도 주님은 너의 어둠과 흑암 속에서도 새 역사를 준비하시는 분이지 않겠느냐?”
- “지금 어두운 밤을 지나고 흑암으로 뒤덮는 날을 지날지라도 너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 온전히 맡기며 네 영혼을 갈아넣어야 하지 않겠느냐?”
- “네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건널지라도 주님을 신뢰하며 네 영혼을 갈아넣는 너를 통해 주님께서는 어둠과 사망을 꿰뚫고 부활의 역사를 쓰게 하실 테네 말이다.”
- “예수께서는 3시간의 흑암 속에 완전히 잠식당한 것 같지만 3일후 부활하여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새 생명의 역사를 쓰고 계시니 말이다.”
- (찬양)내가 걷는 이 길이 혹 굽어도는 수가 있어도 내 심장이 울렁이고 가슴 아파도
- 내 마음속으로 여전히 기뻐하는 까닭은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심일세
- 내가 세운 계획이 혹 빗나갈지 모르며 나의 희망 덧없이 스러질 수 있지만
- 나 여전히 인도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까닭은 주께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잘 아심일세
- 어두운 밤 어둠이 깊어 날이 다시는 밝지 않을 것 같아 보여도
- 내 신앙 부여잡고 주님께 모든 것 맡기리니 하나님을 내가 믿음일세
- 지금은 내가 볼 수 없는 것 너무 많아서 너무 멀리 가물가물 어른거려도
- 운명이여 오라 나 두려워 아니하리 만사를 주님께 내어 맡기리
- 차츰차츰 안개는 걷히고 하나님 지으신 빛이 뚜렷이 보이리라
- 가는 길이 온통 어둡게만 보여도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
- 차츰차츰 안개는 걷히고 하나님 지으신 빛이 뚜렷이 보이리라
- 가는 길이 온통 어둡게만 보여도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
- (예화)1946년 성탄절 전야에 낡은 2톤 트럭이 웨스 버지니아의 산간지방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 운전수는 탄광에서 석탄을 나르는 이였습니다.
- 이제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 집 쪽으로 난 길에 들어섰을 때 그의 늙은 아버지가 차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 그리고는 10Km쯤 떨어진 산 속에 사는 한 부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죠.
- 몇 달 전에 남편이 죽었는데 사는 게 말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 그러면서 서로 돕고 사는 전통에 따라 광부들이 십시일반으로 상자 몇 개를 만들어 먹을 것과 선물들을 넣었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석탄 몇 부대도 만들었고요.
- 그것을 그 집에 전해주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 그 운전수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 하루종일 일하고 몸은 피곤해서 쓰러질 지경이었기 때문입니다.
- 그것도 성탄절 전야도 늦었는데 자기 집에 기다리는 식구들에게 뭐라고 할 말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 하지만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 “오늘이 성탄이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 그는 짐들을 실었습니다.
- 그 집을 찾아 산 속을 헤맸습니다.
- 한참을 가다보니 비포장도로가 꼬불꼬불 언덕으로 이어졌습니다.
- 더는 올라갈 수 없어서 그는 차에서 내려 2킬로쯤 눈보라 속을 걸어 올라가 오두막집에 도착했습니다.
- 거기에는 그 부인과 어린이들 외엔 그 어떤 차도 수레도 없었습니다.
- 그는 다시금 차로 돌아왔습니다.
- 이번에는 후진으로 그 언덕을 밀어 올라갔습니다.
- 그때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 “하나님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건가요?”
- 그런데 트럭에 눈이 달린 듯 했습니다.
- 낡은 트럭이 그 좁고 꼬불거리는 길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오두막집 끝까지 잘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 그 현관 앞에는 그가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행복한 4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 그는 상자들을 내려놓고 석탄을 부렸습니다.
- 그러는 동안 허름한 옷을 입은 아이들이 가냘픈 몸으로 상자를 나르고 운전수를 오두막 안으로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 모두들 행복해 보였습니다.
- 그리고 그 운전수는 어두운 길을 다시 내려갔습니다.
-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 “이 트럭을 몰고 저 산 위를 후진으로 올라가다니! 이 눈 속에.”
- “과연 어디서 도움이 왔단 말인가?”
- 그때 그는 하나님을 경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이 일을 통해 주님께서 이 험한 세상에 오셔서 자신에게 생명의 선물을 주신 걸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 (깨달음)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 어려움에 처한 이들, 흑암에 갇힌 듯한 이에게, 다가서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 나도 지친 상태요 내가 마주한 일들이 어둠이요 흑암 속에 있는 일이라면 더더욱 꺼릴 수밖에 없습니다.
- 하지만 그 사람을 대하고 그 일을 대하는 게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면 어떻겠습니까?
- 그 일이 힘들고 그 사람을 대하는 게 어려워도 주님의 뜻에 순종한다면 주님께서 분명 기뻐하실 것입니다.
- 어둠과 흑암으로 둘러싸인 그 길에 순종할 때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생명의 빛을 다시금 감사하는 마음으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 (내기도)그래서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 “그래요. 주님. 어둠과 흑암에 갇힌 저에게 생명의 빛을 부어주셔서 영생의 자녀로 삼아주심을 감사드려요.”
- “주님은 내게 생명의 빛을 공급하시려 3시간에 걸친 어둠과 흑암 속에 갇히셨네요.”
- “주님은 내게 영생의 빛을 공급해주시려 3일간의 어둠과 흑암의 사망 속에 사셨어요.”
- “하지만 그 길은 영생의 부활을 위한 단계요 만 왕의 왕으로 부활승천하는 단계의 모습이어셨어요.”
- “지금 내 곁에 누군가 어둠과 흑암에 갇혀 있다면 기꺼이 찾아가 주님의 빛을 전할 수 있돌고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 “나 혼자만의 의지와 결단으로 부족하오니 성령님께서 힘과 능력을 부어주셔서 기꺼이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세요.”
- “그리하여 그 눈보라를 뚫고 후진으로 산 위의 집까지 올라가 선물과 석탄을 그 집에 내려놨을 때 모두가 기뻐했던 그 빛으 주인공으로 살게 해 주세요.”
- (찬양)빛이 없어도 환하게 다가오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 음성이 없어도 똑똑히 들려주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 당신이 계심으로 나는 있고 당신의 노래가 머묾으로
- 나는 부를 수 있어요 주여 꽃처럼 향기나는
- 나의 생활이 아니어도 나는 주님이 좋을 수 밖에 없어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 나는 없어도 당신이 곁에 계시면 나는 언제나 있습니다
- 나는 있어도 당신이 곁에 없으면 나는 언제나 없습니다
- 당신이 계심으로 나는 있고 당신의 노래가 머묾으로
- 나는 부를 수 있어요 주여 꽃처럼 향기나는
- 나의 생활이 아니어도 나는 주님이 좋을 수 밖에 없어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곱창김을 만들어내고 있는 33살의 김현우는 지금도 자기 영혼을 그 검은김에 갈아넣고 있지 않겠습니까?
- 주어진 환경이 답답할지라도 온통 어둠과 흑암으로 가득차 있어도 자기 영혼을 갈아넣는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실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도 온통 어둠과 흑암이 지배하는 그곳에 잠식당한 것 같지만 그를 통해 부활의 새 역사를 쓴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 지금 죽는 것이 사는 것이요 지금 희생하고 헌신하는 길이 찬란한 빛으로 부활하신다는 걸 말입니다.
- 시골 산동네에 눈보라치는 그 집에 석탄과 선물 상자를 전달하는 것이 고통스런 일이지만 그 일을 감당했을 때 그 집 4식구들이 기뻐했음은 물론이고 그를 바라보는 주님께서도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 주님께서 지금 우리 각자를 어둠과 흑암의 코너로 몰아넣으셨다면 주님의 깊으신 부활의 섭리가 있음을 믿고 기쁨으로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그것이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시는 음성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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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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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작년 가을에 신옥희 권사님이 김을 줬습니다.
저는 그때 ‘곱창김’이라는 게 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땐 곱창김을 ‘고창에서 나는 김’인 줄로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곱창김이란 말을 많이 듣습니다.
모양이 곱창처럼 길고 구불구불하다 해서 ‘곱창김’이라고 붙인 이름이라고 하죠.
신옥희 권사님이 ‘증도 햇 곱창김’을 주시면서 말씀하셨어요.
“목사님. 이게 〈인간극장〉에 출연한 소악도 분교 학생 현우가 생산하는 김이예요.”하고 말이죠.
그때는 뭐가 다를까 했는데 그 맛을 보니까 조금은 다른 것 같았어요.
더욱이 그 김을 만들어내는 김현우라는 33살의 친구를 인터넷에 찾아오니까 더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김현우는 전교생 1명에 교사도 1명뿐인 소악도 분교를 다녔습니다.
유일한 친구가 있다면 강아지 흰둥이가 전부였죠.
그곳엔 진학할 중학교가 없어서 14살 때 할머니가 있는 목포의 할머니 집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 후 부산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금 고향에 돌아와 부친이 운영하는 김 공장 일을 도우며 김을 생산했습니다.
더욱이 소악도 12사도 순례길의 여행객들을 위해 무인점포처럼 〈쉬랑께 카페〉도 운영하고 있고요.
그곳 카페는 돈을 받지 않고 기부금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 기부금으로 장학재단과 복지재단에 많은 기부도 했습니다.
(깨달음)이런 사실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니까 증도 햇 곱창김이 더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김 양식 방법이 부유식과 지주식이 있다고 합니다.
부유식은 깊은 바다에 닻을 놓고 부표를 띄워 김발을 매달아 양식하는 방식이라고 하죠.
지주식은 수심이 얕은 바다에 기둥을 세우고 김발을 매달아 양식하는 방식이고요.
지주식 김은 밀물 때 물속에서 갯벌이 내준 영양분을 섭취하여 자라지만 썰물 때는 햇볕에 노출할 수밖에 없어서 성장이 멈춘다고 해요.
그래서 그런지 지주식 김은 천천히 자라고 더 단단하게 성장하는 탓에 맛의 풍미가 더 깊다고 하죠.
소악도 청년 김현우는 그런 곱창김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악도’(小岳島)가 섬 사이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지만 실은 작은 언덕의 포구를 뜻하는 섬이지 않겠습니까?
그 까닭에 다들 장성하면 육지로 나가지만 김현우만큼은 그곳 섬을 지키고 알리는 파숫군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더욱이 그곳에서 검은김을 생산하고자 자기 영혼까지 갈아 넣고 있으니 그는 그 일에 제사장이자 어린 양처럼 살고 있는 모습이죠.
(적용)그런 검은색 김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다소 낯설어하고 이질감을 느낄지 모릅니다.
더욱이 그 김색깔이 어둠과 죽음을 상징하는 색이라 더더욱 좋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김 맛을 안 사람들은, 그리고 그 김을 만들고자 자기 영혼을 갈아 넣는 김현우와 같은 사람을 생각한다면, 어찌 김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죠.
내가 잘 나거나 능력이 있거나 남들보다 월등하지 못해도 비록 내 삶이 검은빛을 띠고 있을지라도 그 속에 내 삶을 갈아넣는다면 진정으로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전자책] 야긴과 보아스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BR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BR 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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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죄로 물든 인류를 구원코자 함이셨습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비천한 말 구유통에 태어나신 것도 그렇죠.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위해 죄로 물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자 요단강에 내려가신 일도 그렇습니다.
공생애 3년 동안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와 연약한 자를 고치고 치료하고 어루만져주신 모습도 그랬습니다.
그 공생애 기간 동안 12명의 제자를 불러 당신과 함께 공고동락하며 천국의 가치를 일깨워주신 것도 마찬가지였죠.
그리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찬식을 거행하면서 제자강화의 시간을 통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도 그랬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물로 그 전에 성찬식을 거행할 때 가롯 유다에게 떡을 주면서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하셨죠.
그때 가롯 유다는 주님 앞에 회개할 기회가 있었지만 끝내 은전 삼십 양이라는 그 마음속에 깃든 탐욕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 고난의 잔이 엄청난 고통임을 알기에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를 세 번씩이나 할 동안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주님의 고난과는 거리가 멀게 잠에 빠져들었죠.
그 기도가 끝날 무렵 가롯 유다가 이끌고 온 대제사장의 군사들이 나타났고 가롯 유다가 예수님께 인사할 무렵 곧장 그 군사들이 체포해버렸습니다.
그러자 자기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한 베드로는 물론이고 요한과 야고보는 그 즉시 줄행랑 쳤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멀찍이 예수님을 지켜 보며 따라갈 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날이 밝아오는 시각까지 예수님은 다섯 번의 법정에 끌려다녀야만 했습니다.
맨 처음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자 실세였던 안나스의 법정에 끌려가셨고 곧장 가야바의 법정으로 끌려가셨죠.
당시 모든 의사결정엔 70명의 산헤드린 의원이 있어야 했지만 그 밤에는 23명만 모여 있어도 결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죄를 고발한 사람들은 아무린 죄목을 발견치 못했고 급기야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보냈습니다.
빌라도 예수님을 심문했지만 그 어떤 죄목도 찾지 못했고 곧바로 헤롯 대왕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헤롯 대왕 역시 예수님에게서 어떤 죄목을 발견치 못하자 다시금 빌라도의 법정으로 예수님을 보내버렸죠.
그렇게 예수님은 날이 밝아오는 그 시각까지 새벽녘부터 아침까지 다섯 번의 법정에 끌려다녔는데 마지막 빌라도는 군중들의 폭동이 두려워 예수님께 사형선고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그날 예수님은 자신이 매달릴 그 육중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밤새도록 기도하셨고 또 날이 밝아오기까지 다섯 번의 법정에 끌려다녀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고 피곤했겠습니까?
그러니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동안 수 차례 쓰러질 수밖에 없었죠.
그때 로마 병사들은 그 길목에서 지켜보던 구레네 출신의 시몬을 지목해 예수님을 대신해 십자가를 짊어지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렇게 골고다 언덕까지 오른 예수님은 유대인의 시각으로 제3시 곧 우리 시각으로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대못이 박힌 채 매달렸습니다.
그로부터 3시간이 흐른 정오 12시에 온 땅에 흑암이 내리깔렸고 무려 3시간 동안 그 어둠과 흑암이 온 땅을 덮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십자가 상의 일곱마디라 하여 ‘가상칠언’을 하셨고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고 하면서 숨을 내쉬고 숨을 거두셨죠.
(깨달음)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시면서부터 당신의 운명은 십자가 죽음을 피할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야만 죄로 물든 인류를 구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당신이 살아가야 할 운명 자체가 어둠이요 흑암으로 뒤덮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 그 길을 기꺼이 짊어지고 나아간 것은 그 어둠과 흑암 뒤에 찬란한 생명의 부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죠.
(적용)앞날이 불투명한 젊은 부부가 손을 꼭잡고 사랑을 다짐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갓 태어난 아이의 운명이 암울할지라도 그 아이의 맑은 눈을 바라보며 내가 너만은 꼭 책임지도로 할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앞으로 살아갈 시대 상황이 아무리 암울한 어둠과 흑암으로 가득차 있어도 부모는 자기 책임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정과 자식을 살리는 길임을 알기 때문에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십자가 고난의 길인 줄 알면서도 꾸역꾸역 그 길을 걸어간 것은 오직 이 땅에 생명을 주시고자 함이셨습니다.
[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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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날 오전 9시를 지나 12시부터 오후 3까지의 상황을 전해주는 말씀입니다.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막15:33)
(원해)여기에 ‘제육시’란 유대인의 시간으로 정오 12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 온 땅에 어둠이 임했고 그런 어둠은 ‘제구시’ 곧 오후 3시까지 계속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자연계에서 7분가량 일어는 월식과 같은 게 아닙니다.
본문의 어둠은 무려 3시간 동안 일어난 암흑이었기 때문입ㄴ디ㅏ.
우리말 ‘어둠’으로 번역된 헬라어 ‘스코토스’(σκότος)는 ‘그늘’을 뜻하는 ‘스키아’(σκιά)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흑암’과 ‘그림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 ‘스코토스’가 히브리어로 ‘호세크’(חשֶׁךְ)인데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빛과 반대되는 ‘어둠’(창1:3∼5,사45:7)을 뜻합니다.
더욱이 이 어둠은 진리와 생명과 반대되는 거짓과 사망(요8:12)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깨달음)구약성경에 그 어둠 그 흑암이 내리깔린 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통해 해방을 맞이하기 전에 내린 10가지 재앙 중의 하나가 ‘흑암의 재앙’이었습니다.
애굽 땅 전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는 그 흑암 재앙이 무려 3일간 계속 되었죠(출10:22).
그런데 신약성경의 본문에 일어날 흑암에 대해 구약의 요엘서에 미리 예언이 돼 있습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한다(욜2:31)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만큼 애굽 땅에 3일간 임한 흑암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명한 해방의 빛을 맞이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본문의 사건을 예고한 요엘서의 예언도 예수님의 사망과 관련해 일어날 흑암도 실은 광명한 빛의 세계를 열어주기 위한 전 단계에 임할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이후에 무려 3시간 동안 온 땅이 어둠과 흑암으로 가득찼습니다.
그 어둠과 흑암에 예수님이 포획당해 끝나버릴 것 같지만 예수님은 죽음을 꿰뚫고 부활하신 것처럼 곧이어 찬란한 빛의 부활을 맞이하시는 분입니다.
(원성)그렇기에 어둠은 빛과 대조되는 것이고 생명과 대비되는 죽음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1:3-5)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45:7)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4-5)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되는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3시간 동안 임한 어둠은 빛과 반대되는 어둠이지만 생명과 반대되는 사망의 어둠이란 사실입니다.
실은 그 어둠과 사망 속에 예수님 당신을 꾸역구역 몰아넣으신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라 다시금 빛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적용)그것은 소악도의 김현우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어둠과 죽음의 검은색을 띠는 곱창김을 만들고자 김현우가 고향 땅에 돌아와 자기 영혼을 꾸역꾸역 갈아넣는 것 말입니다.
모두가 섬을 떠나고 있지만 그는 섬의 파숫꾼이 되고자 그 김을 만들어내는데 자기 영혼을 몰아넣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그 일에 제사장이나 그 일에 자기 영혼을 바치는 어린양과 같은 모습이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도 십자가 사건의 암흑 속에 당신의 영혼을 갈아넣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어둠과 암흑에 사라진 게 아니라 찬란한 빛으로 부활하셔서 이 땅 모두에게 영생의 빛을 불어넣어주셨죠.
그렇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어둠이요 흑암처럼 보여도 주님께서 보내신 소명임을 아는 사람은 그 일에 자기 영혼을 갈아넣지 않겠습니까?
그 길이 외길 인생처럼 보여도, 그 길이 온통 어둠과 흑암에 잠식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지금 당장은 소망이 없어 보이는 어둠과 흑암일지라도 그 영혼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 자들을 통해 부활의 역사를 써내려가실 줄 믿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임한 어둠과 흑암의 모습이요 그것이 온 땅에 임하는 것 같아도 주님께서는 그 어둠을 뚫고 친히 부활하신 분인 줄 믿습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어둠과 흑암처럼 보이는 그 인생 앞에서도 자기 영혼을 갈아 넣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밝은 빛만 부활의 빛만 성공의 빛만 원하지만 주님께서는 때로 어둠과 흑암으로 너를 몰아넣을 때가 있지 않겠느냐?”
“전교생 1명에 교사도 1명뿐인 소악도 분교 출신인 김현우도 지금 흑암의 빛인 김을 생산하는데 자기 영혼을 갈아넣고 있지 않더냐?”
“그것이 전국으로 일본으로 그 맛을 전혀 모르는 유럽사람들에게까지 알려져 부활의 빛을 드러낼지 누가 알겠느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께서도 지금 3시간 동안이나 어둠과 흑암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이지 않느냐?”
“하지만 그 어둠과 흑암이 빛과 생명을 주기 위한 과정이요 찬한한 부활의 역사를 나타내기 위한 전 단계이지 않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걷는 그 길이 굽어도는 것 같고 네가 세운 계획이 빗나갈지라도 주님은 너의 어둠과 흑암 속에서도 새 역사를 준비하시는 분이지 않겠느냐?”
“지금 어두운 밤을 지나고 흑암으로 뒤덮는 날을 지날지라도 너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 온전히 맡기며 네 영혼을 갈아넣어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건널지라도 주님을 신뢰하며 네 영혼을 갈아넣는 너를 통해 주님께서는 어둠과 사망을 꿰뚫고 부활의 역사를 쓰게 하실 테네 말이다.”
“예수께서는 3시간의 흑암 속에 완전히 잠식당한 것 같지만 3일후 부활하여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새 생명의 역사를 쓰고 계시니 말이다.”
(찬양)내가 걷는 이 길이 혹 굽어도는 수가 있어도 내 심장이 울렁이고 가슴 아파도
내 마음속으로 여전히 기뻐하는 까닭은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심일세
내가 세운 계획이 혹 빗나갈지 모르며 나의 희망 덧없이 스러질 수 있지만
나 여전히 인도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까닭은 주께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잘 아심일세
어두운 밤 어둠이 깊어 날이 다시는 밝지 않을 것 같아 보여도
내 신앙 부여잡고 주님께 모든 것 맡기리니 하나님을 내가 믿음일세
지금은 내가 볼 수 없는 것 너무 많아서 너무 멀리 가물가물 어른거려도
운명이여 오라 나 두려워 아니하리 만사를 주님께 내어 맡기리
차츰차츰 안개는 걷히고 하나님 지으신 빛이 뚜렷이 보이리라
가는 길이 온통 어둡게만 보여도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
차츰차츰 안개는 걷히고 하나님 지으신 빛이 뚜렷이 보이리라
가는 길이 온통 어둡게만 보여도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
[전자책]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BR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BR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BR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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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1946년 성탄절 전야에 낡은 2톤 트럭이 웨스 버지니아의 산간지방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운전수는 탄광에서 석탄을 나르는 이였습니다.
이제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집 쪽으로 난 길에 들어섰을 때 그의 늙은 아버지가 차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10Km쯤 떨어진 산 속에 사는 한 부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죠.
몇 달 전에 남편이 죽었는데 사는 게 말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돕고 사는 전통에 따라 광부들이 십시일반으로 상자 몇 개를 만들어 먹을 것과 선물들을 넣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석탄 몇 부대도 만들었고요.
그것을 그 집에 전해주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운전수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종일 일하고 몸은 피곤해서 쓰러질 지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성탄절 전야도 늦었는데 자기 집에 기다리는 식구들에게 뭐라고 할 말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오늘이 성탄이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그는 짐들을 실었습니다.
그 집을 찾아 산 속을 헤맸습니다.
한참을 가다보니 비포장도로가 꼬불꼬불 언덕으로 이어졌습니다.
더는 올라갈 수 없어서 그는 차에서 내려 2킬로쯤 눈보라 속을 걸어 올라가 오두막집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에는 그 부인과 어린이들 외엔 그 어떤 차도 수레도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금 차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후진으로 그 언덕을 밀어 올라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건가요?”
그런데 트럭에 눈이 달린 듯 했습니다.
낡은 트럭이 그 좁고 꼬불거리는 길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오두막집 끝까지 잘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현관 앞에는 그가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행복한 4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는 상자들을 내려놓고 석탄을 부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허름한 옷을 입은 아이들이 가냘픈 몸으로 상자를 나르고 운전수를 오두막 안으로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운전수는 어두운 길을 다시 내려갔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이 트럭을 몰고 저 산 위를 후진으로 올라가다니! 이 눈 속에.”
“과연 어디서 도움이 왔단 말인가?”
그때 그는 하나님을 경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주님께서 이 험한 세상에 오셔서 자신에게 생명의 선물을 주신 걸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어려움에 처한 이들, 흑암에 갇힌 듯한 이에게, 다가서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나도 지친 상태요 내가 마주한 일들이 어둠이요 흑암 속에 있는 일이라면 더더욱 꺼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대하고 그 일을 대하는 게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면 어떻겠습니까?
그 일이 힘들고 그 사람을 대하는 게 어려워도 주님의 뜻에 순종한다면 주님께서 분명 기뻐하실 것입니다.
어둠과 흑암으로 둘러싸인 그 길에 순종할 때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생명의 빛을 다시금 감사하는 마음으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기도)그래서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어둠과 흑암에 갇힌 저에게 생명의 빛을 부어주셔서 영생의 자녀로 삼아주심을 감사드려요.”
“주님은 내게 생명의 빛을 공급하시려 3시간에 걸친 어둠과 흑암 속에 갇히셨네요.”
“주님은 내게 영생의 빛을 공급해주시려 3일간의 어둠과 흑암의 사망 속에 사셨어요.”
“하지만 그 길은 영생의 부활을 위한 단계요 만 왕의 왕으로 부활승천하는 단계의 모습이어셨어요.”
“지금 내 곁에 누군가 어둠과 흑암에 갇혀 있다면 기꺼이 찾아가 주님의 빛을 전할 수 있돌고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나 혼자만의 의지와 결단으로 부족하오니 성령님께서 힘과 능력을 부어주셔서 기꺼이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리하여 그 눈보라를 뚫고 후진으로 산 위의 집까지 올라가 선물과 석탄을 그 집에 내려놨을 때 모두가 기뻐했던 그 빛으 주인공으로 살게 해 주세요.”
(찬양)빛이 없어도 환하게 다가오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음성이 없어도 똑똑히 들려주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당신이 계심으로 나는 있고 당신의 노래가 머묾으로
나는 부를 수 있어요 주여 꽃처럼 향기나는
나의 생활이 아니어도 나는 주님이 좋을 수 밖에 없어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나는 없어도 당신이 곁에 계시면 나는 언제나 있습니다
나는 있어도 당신이 곁에 없으면 나는 언제나 없습니다
당신이 계심으로 나는 있고 당신의 노래가 머묾으로
나는 부를 수 있어요 주여 꽃처럼 향기나는
나의 생활이 아니어도 나는 주님이 좋을 수 밖에 없어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곱창김을 만들어내고 있는 33살의 김현우는 지금도 자기 영혼을 그 검은김에 갈아넣고 있지 않겠습니까?
주어진 환경이 답답할지라도 온통 어둠과 흑암으로 가득차 있어도 자기 영혼을 갈아넣는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온통 어둠과 흑암이 지배하는 그곳에 잠식당한 것 같지만 그를 통해 부활의 새 역사를 쓴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지금 죽는 것이 사는 것이요 지금 희생하고 헌신하는 길이 찬란한 빛으로 부활하신다는 걸 말입니다.
시골 산동네에 눈보라치는 그 집에 석탄과 선물 상자를 전달하는 것이 고통스런 일이지만 그 일을 감당했을 때 그 집 4식구들이 기뻐했음은 물론이고 그를 바라보는 주님께서도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주님께서 지금 우리 각자를 어둠과 흑암의 코너로 몰아넣으셨다면 주님의 깊으신 부활의 섭리가 있음을 믿고 기쁨으로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것이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시는 음성인 줄 믿습니다.
[전자책]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BR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BR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BR 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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