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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행16:11-15)

by 똑똑이채널 2021.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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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논지) 기도란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자식이 부모와 대화를 통해 부모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뜻도 밝히듯이, 기도도 그런 것이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듣고, 기도를 통해 내 뜻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죠.

 

하지만 크리스천의 기도는 불교 신자나 무당이 굿을 하듯이 비나이다 비나이다하는 것과 같은 기도가 아니죠.

크리스천은 기도를 통해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시간이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보고, 모든 만사를 하나님께 내어맡기는 것이죠.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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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주일날 나눈 이랜드 그룹 박성수 회장의 간증도 그랬었죠?

근육무기력증에서 회복되었지만, 대학 4학년 때 학원과외금지조치가 내려져 일을 할 수가 없었죠.

그때 하나님께 간구하며 기도한 게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 저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 저에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저는 사업자금이 없습니다.”

하나님, 저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사업의 길을 열어주세요.”

 

그렇게 하나님께 간구하며 기도한 그였죠.

 

(깨달음)그때 그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어떤 기도였겠습니까?

자신의 무능함, 자신의 연약함을 철저히 고백하며 하나님을 의탁하는 기도였죠.

서울대학교 공대를 나왔어도, 아무런 돈이 없는 자신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고백하며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한 기도였죠.

 

그렇게 간구하며 하나님께 내어맡길 때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통해 각각 500만원씩을 지원해주셨죠.

그를 통해 이화여대 앞에 2평짜리 가게를 낼 수 있었고, 그것이 잉글랜드의 출발점이자 이랜드의 출발점이었죠.

 

(적용) 오늘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기도에도 하나님과의 대화가 담겨 있습니까?

우리의 기도에도 나의 연약함과 나의 무능함과 나의 부족함을 아뢰며 하나님께 의탁하는 기도가 담겨 있습니까?

 

그런 기도를 진정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도 친히 응답해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 바울이 자기 일행과 함께 드로아 항구에서 잠을 잘 때 꿈에 환상을 봤죠.

어떤 환상이었습니까?

마게도냐 사람들이 자신들을 도와달라는 손짓을 하는 환상이었죠.

그 환상은 잠깐 보였다가 사라진 환상이 아니라, 성경원문을 보면, 오래도록 보였던 환상이었죠.

 

그때 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자신과 함께 선교대열에 나선 실라, 디모데, 그리고 의사 누가에게까지 동의를 구했죠.

왜냐하면 그 꿈에 환상가운데 나타난 그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일인지, 아닌지 분별하고자 함이었죠.

 

그러자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각자의 이성으로 판단을 했죠.

그들의 이성을 초월한 환상이었지만, 그 환상이 하나님께서 주신 환상인지, 그들의 이성으로 생각하고 분별한 것이죠.

 

왜냐하면 그 전에 부르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가고자 할 때도 막혔죠.

뿐만 아니라 무시아 앞에서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는데도 갈 수가 없었죠.

왜냐하면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막으셨고,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으신다는 것을, 그 일행이 깨달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의 꿈속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 사람들이 와서 도와달라고하는데, 그걸 이성으로 분별한 것이죠.

그랬더니 그 환상이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길인줄 깨닫게 되었고, 그를 위해 기꺼이 순종하고자 한 그들이죠.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드로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에 있는 네압볼리, 유럽 대륙의 첫 관문인 네압볼리로 가고자 했죠.

그런데 곧장 그곳으로 갔던 게 아니라 사모드라게에 들렀다가 배를 갈아타고 이튿날 네압볼리로 간 것이죠.

그리고 그곳 네압볼리에서 곧장 빌립보로 향했는데, 그곳 빌립보는 로마의 식미지라라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깨달음) 그렇다면 그 거리가 얼마나 될까요? 며칠동안 간 것일까요?

드로아 항구에서 네압볼리까지는 250km가 되는 거리입니다.

당시에 배편으로 갈 때 5일 정도 걸리는 거리죠.

더욱이 직항이 없고 사모드라게에 들렀다가 배를 갈아타고 간 상황이고, 또 네압볼리에서 빌립보까지 16km걸립니다.

 

무엇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까?

아무리 환상을 보고 이성으로 판단을 해서 그 길목을 나섰다고 할지라도, 온 의지를 다하지 않으면 결코 갈 수 없는 곳이란 점입니다.

 

(적용)그렇기에 믿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믿음이란 우리 이성으로 분별해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그때는 우리의 온 의지를 다해 순종하는 게 참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우리의 이성으로 깨달은 바를 그냥 생각 속에 품고 있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참된 믿음은 힘들고 어려워도 온 의지를 다해 순종함으로 증명된다는 사실입니다.

 

(성화)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율법교사도 그런 격이죠.

그는 예수님을 골탕먹이려고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죠.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 청년에게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돼 있는지 반문하셨죠.

 

그때 그는 레위기 1918절과 신명기 65절 말씀을 인용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10:2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율법교사의 대답이 옳다면서, 그렇게 행하여 살라고 말씀하셨죠.

그때 그 율법교사는 자기 의로움을 드러내 보이려고, 누가 내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죠.

그러자 예수님께서 강도 만난 자를 치료해주고 돌봐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죠.

어떤 사람이 길가다가 강도를 만나 피투성이가 됐는데, 유대인인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냥 지나쳐버렸죠.

하지만 유대인들이 짐승취급하던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데리고 여관방에서 치료해주고, 의원도 불러돌보게 해줬죠.

 

그런 이야기를 하신 예수님께서, 그 율법교사에게,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냐?”하고 물었죠.

그러자 그는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하고 대답을 했죠.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10:37)하고 말씀하셨죠.

 

(깨달음) 무엇을 깨닫는 말씀입니까?

믿음은 이성으로 깨닫는 바를 생각으로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참된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적용) 본문에 비춘다면, 바울 일행이 그 환상을 하나님이 주신 비전임을 이성으로 분별했다면, 그게 끝이 아닌 셈이죠.

그 일행이 이성으로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된 후에, 온 의지를 다해 순종하며, 배를 타고 떠난 것입니다.

 

그것은 청년 박성수도 마찬가지 아니었겠습니까?

근육무기력증을 앓을 때 온갖 책을 읽으면서 사업구상을 했고, 회복돼서 하나님께 사업의 길을 열어달라고 간구했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통해 500만원을 보내주셨는데, 그것이 너무 적다고 불평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결코 이랜드의 출발은 요원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주문) 그렇기에 본문의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 주님은 우리의 이성으로 깨달은 바가 있다면 온 의지를 다해 순종하는 은혜를 베풀어주시길 원하신다는 거죠.

 

(주음성) 그래서 이 시간에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에게도 바울과 같은 환상을 보여준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에게도 박성수에게 보여준 비전을 보여준다면 어는 어떻게 하겠느냐?”

바울 일행이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 복음을 전하는 그 환상이 하나님의 뜻임을 이성으로 분별했을 때 온 의지를 다해 순종하지 않았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믿음은 순종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율법교사에게 주님께서 진리의 믿음을 깨우쳐주셨을 때, 그는 이성으로만 생각한 채 순종하지 않았다.”

하지만 믿음은 이성으로 깨달은 바를 전적으로 순종하는 게 참된 믿음의 완성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지금 바울 일행이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를 거쳐 5일이 넘도록 배를 타고 네압볼리에 당도하지 않았더냐?”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네압볼리에서 또 16km를 걸어 빌립보에 당도하지 않았더냐?”

믿은은 순종이라는 것을 너도 기억하고 하나님의 뜻을 너의 이성으로 깨달았다면 온전히 순종하며 살기를 원한다.”

 

 

(찬양)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믿음 흔들리고 사람들 주를 떠나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쇠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본문)바울 일행은 네압볼리에 당도해서 내륙길을 따라 빌립보까지 16km를 걸어간 셈이었습니다.

그 길은 목포에서 무안 터미널까지의 거리와 맞먹는 거리입니다.

그 당시에는 로마가 군사목적으로 길을 낸 아피아가도를 따라 바울 일행이 빌립보까지 간 것이죠.

 

그런데 빌립보에 당도했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본문 12-13절을 같이 읽어보실까요?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원해)바울 일행은 그곳 빌립보에서 당도했는데, 수일간 머물렀죠.

그 수일 동안 무엇을 했을까요?

 

바울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 회당을 찾아 복음을 전했기에, 그곳 빌립보 성읍에도 유대인 회당이 있을까 찾아봤겠죠.

하지만 빌립보에는 아무리 찾아도 유대인 회당이 없었던 것이죠.

 

본래 유대인들은 어느 곳에서나 성인 남자 10명만 모이면 유대인 회당을 마련해 모일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 빌립보에는 그 정도로 유대인들이 많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수일 동안 허탕을 쳤던 것이고, 그때 어떻게 합니까?

안식일이 돌아오자,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고 성읍 바깥의 강가로 나갔다는 것입니다.

바꿔말하면 기도할 곳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할 곳으로 번역된 헬라어 프로슈케’(προσευχή)기도하기에 적당한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죠.

유대인 회당이 없었으니, 별도로 함께 모여 하나님께 기도할 장소를 물색했던 것이죠.

 

(깨달음) 그렇다면 그들이 기도할 장소를 찾았다는 것은 단순히 장소만을 찾았다는 뜻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죠.

그만큼 절박한 그들의 심정을 하나님께 아뢰고자 한 것 아니겠습니까?

 

어떤 심정이요?

지금 그들은 당시의 아시아 곧 터키 대륙을 벗어나 배를 타고 전혀 낯선 곳,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유럽대륙에 온 거죠.

그리고 그곳은 로마의 식민지였고, 당시의 빌립보는 로마 황제를 위한 도시로서, 으리으리한 곳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제가 고등학교 때 63빌딩에 올라가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본 광경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그때 그 영화관에서 원주민이 화살을 던지는데, 어떤 아이가 자기에게 날아오는 줄 알고 아앙하고 울어버렸죠.

저도 그때 63빌딩 자체에 올라가는 것이, 시골 촌놈인 제가, 얼마나 으리으리할 일이었겠습니까?

 

지금 바울 일행은 그곳 빌립보에서 그런 으리으리한 광경 앞에, 기가 죽을 정도였다는 점입니다.

그런 그곳에서 기도할 곳을 찾았다는 것은, 단순한 기도 장소가 아니라, 자신들의 연약함, 무능함을 하나님께 아뢰고자 한 심정이죠.

 

(적용)기도란 바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나의 연약함, 나의 무능함, 그 모든 부족함을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모든 것의 모든 것 되신 하나님께 아뢰고 의탁하는 것 말입니다.

 

그것은 교회 예배당에서 드리는 그 기도를 나의 삶 속에도 가져가는 것이죠.

집에서도, 방에서도, 일터에서도, 나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순간순간 주님께 아뢰면서 기도하는 것 말입니다.

 

(내음성) 그러니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 받으실지 알 수 있지 않나요?

그래요, 주님. 저도 이 세상을 헤쳐나가기에 너무나도 부족하고 연약한 자예요.”

바울 일행이 생전 처음 그 낯선 유럽대륙에 배를 타고 온 의지를 다해 건너갔어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자신들의 두려움, 자신들의 연약함, 자신들의 무능함을 하나님께 아뢰고자 기도처소를 찾은 그들이었네요.”

주님, 저도 세상에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매 순간순간, 전능하신 하나님께 아뢰며 주님을 의지하게 해 주세요.”

그런 저의 기도가 부족해도, 제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주실 줄 믿습니다.”

 

 

(찬양) 기도 할 수 있는데 왜 걱정 하십니까 기도 하면서 왜 염려 하십니까

기도 할 수 있는데 왜 실망 하십니까 기도 하면서 왜 방황 하십니까

주님앞에 무릎꿇고 간구해 보세요 마음을 정결하게 뜻을 다하여

기도 할 수 있는데 왜 걱정 하십니까 기도 하면서 왜 염려 하십니까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란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이요, 하나님의 뜻을 듣고 내 뜻을 하나님께 아뢰는 시간입니다.

무작정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비나이다 비나이다하는 게 참된 기도가 아닙니다.

 

오직 그 기도 시간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나의 연약함, 나의 무능함, 나의 부족함을 철저히 아뢰는 시간이죠.

그를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맡기고 의탁하며,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좇아 살도록 새 힘을 공급받는 시간이죠.

 

바울 일행이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그렇게 그들은 매 순간순간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그렇게 기도하며 살 때, 하나님께서 더욱 선한 인생의 길을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와 같은 은혜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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