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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시107:1-43)

by 똑똑이채널 2022.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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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시편 107편 말씀은 시편을 모세오경처럼 다섯 권으로 나눴을 경우, 마지막 제 5권이 시작되는 시편입니다. 제 1권은 1—41편까지, 제2권은 42—72편까지, 제3권은 73—89편까지, 그리고 제4편은 90-106편까지였습니다. 그리고 제 5권이 오늘부터 읽어나가는 107편부터 마지막 150편까지입니다. 제1권과 2권과 3권은 포로기 이전의 시편이고, 제 4권은 포로기의 시편, 그리고 제 5권은 포로기 이후의 시편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읽은 시편 107편은 감사의 시편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하고 감사하도록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감사나 찬양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그것입니다. 이른바 ‘고통’과 ‘부르짖음’이라는 단어가 그것이죠. 4절에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5절에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10절에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18절에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하는 표현도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본문을 기록한 시편 기자의 상황은 고통 속에서 울부짖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그 길 위에서 새로운 구원을 나타내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 6절에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13절에 이에 그들이 그 환란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19절에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28절에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라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시편 기자의 상황, 더 나아가 고난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의 상황, 그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후렴구처럼 네 번씩이나 반복해서 따라 붙는 구절이 있습니다. 8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이 표현이 15절, 21절, 그리고 31절에도 똑같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만큼 죽을 수밖에 없는 절망의 상황, 낙담과 좌절의 돌문에 갇혀 버린 심령의 상태 속에서, 오직 하나님께서 베푸신 능력과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송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 삶을 통해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 가나안 땅에 정착한 뒤 이방 세력들에게 패배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사들을 통해 그 세력들을 물리치게 하신 능력, 바벨론에게 패배하여 포로로 끌려갔다가 70년만에 다시금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이기도 하죠. 그와 같은 절망과 좌절 속에서 하나님께 의탁하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방법으로 역사하여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음과 좌절의 절망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어 구원을 받았다 해도, 그것이 그들의 능력이나 그들의 간구가 대단한 능력을 지녀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라는 점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들이 우리의 바람과 소원대로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소원을 성취하도록 해 주시는 게 아니라는 점이죠.

이를 테면 내게 지금 고통이 닥쳐왔습니다.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고 또 환란을 당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소원을 이뤄주셨습니다. 이렇게 내 현실과 상황을 극적으로 변화시켜주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정말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만을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시거나, 곧바로 대단한 능력으로 구원해 주시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더 어려움에 직면케 하는 경우도 훨씬 많습니다. 내 바람과 내 뜻대로, 내가 계획하고 작정한 일보다, 그렇게 되지 않는 일이 더 많다는 거죠.

 

그렇다면 왜 그렇게 응답이 되지 않고, 즉각적으로 구원을 베풀어주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내가 기도를 안 했기 때문입니까? 내가 믿음이 없는 까닭입니까? 본문 38-39절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또 복을 주사 그들이 크게 번성하게 하시고 그의 가축이 감소하지 아니하게 하실지라도 다시 압박과 재난과 우환을 통하여 그들의 수를 줄이시며 낮추시는도다.”

바로 이것을 온전히 믿는 게 참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크게 번성하게도 하시고, 또한 재난과 우환을 통해 그 가축의 수를 줄이시며 낮추시게도 하신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그렇게 크게 번성케 하시는 것인지, 하나님께서 언제 재난과 우환으로 그 수를 줄이시고 낮추시는 것이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정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의인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시고, 악인에게 화를 주시는 분이라고, 인과응보의 논리로 인간들을 다루시는 분이라면, 지금껏 살아 남을 인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 심판받아 죽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 안에서 오늘도 일하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오늘도 내 삶이 때로는 탄탄대로가 되게 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강이 변하여 메마른 광야와 같은 삶이 되게 하신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나의 모든 상황을 아시는 주님께서 내게 필요한 대로 이끌어 가신다는 점입니다. 그것을 33-35절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그 주민의 악으로 말미암아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 되게 하시며 또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시고.” 그만큼 인생이 우리의 원대로, 바람대로 되는 게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 자체가 기적이요 기이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감사하라’는 대 명령은 우리의 환경이 좋게 변해서, 혹은 내가 바라는 대로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에 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때로 우리를 위해 일하시기 때문에 감사하라는 것이죠. 다 이해할 수 없고, 다 눈으로 볼 수 없어 답답하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당신의 뜻을 펼쳐나가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따라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이 믿음이 큰 것 같지만 실은 각자의 한계나 결핍을 만나면 도리어 신음하고 괴로워하고 울부짖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믿음 없는 자세가 아니라, 솔직한 모습이자 실제적인 실존의 모습입니다. 그런 모습은 우리가 쭉 읽어왔던 다윗의 고백만 봐도 환히 알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괴로우면 괴롭다고 울부짖고, 원수들이 위협하면 그것 때문에 괴롭다고, 한탄했던 다윗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인생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더 심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윗은 그렇게 탄식하는 것으로 울부짖는 것으로만 끝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갔습니다. 그 절망의 한계 상황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엮어 나가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마치 자식이 잘 안되거나, 뒤틀리거나, 괴로워할 때 그 부모가 그 심정을 다 헤아리고 있듯이, 다윗의 그 절망과 낙담의 상황을 하나님께서 다 헤아리고 계신다는 그 자세로까지 나아갔던 것이죠. 

 

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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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눈에 보이는 능력이나 가시적 변화에만 한정짓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당신 자신을 나타내 보이실 때도 있지만, 때로는 침묵으로 당신의 일을 펼쳐나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부분까지 들여다본다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 앞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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