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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일찍 목자재단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는 조일래 목사가 찾아왔다. 몇 달 전 교회 예배당 리모델링 부분에 대해 신청서를 보낸 적이 있는데 그걸 살피고자 온 것이다. 실무를 맡은 장로에게 예배당 안팎의 곳곳을 보여줬고 외벽의 균열 부분도 보여줬다. 외벽 전체에 발수를 뿌려줬으면 하는 뜻이었다. 시스템 에어컨을 설치했는데 냉온열기가 빠져나가는 지점에 미닫이문을 설치해 줄 것도 요청했다.
“교회 예배당이 이렇게나 큰데 부자교회인데요?”
“아, 그런가요? 그렇지만 교우들은 많지 않아서요.”
“우리 목자재단은 작은 교회들만 필요한 부분을 리모델링해주거든요.”
“우리도 건물은 크지만 교우들이 많지 않아서 도움을 요청하게 됐어요.”
그 분을 떠나 보낸 뒤에 잠시 예배당에 앉아 기도하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교우들이 많고 재정적인 여건이 뒷받침된다면 무엇이든 못할까 싶어서였다. 강단과 실내 벽과 음향시설과 외부 균열 부분도 마찬가지다. 마음 같아서는 예배당을 허물고 새롭게 짓고 싶었다. 1993년 11월 24일에 준공된 예배당 건물 3층에 누워 있으면 누구든 알 수 있다. 큰 차들이 지나가면 휘청거리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 말이다. 그러니 여건만 된다면 뭐든 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 불편한 마음이 들다가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감사의 찬양이 터져 나왔다. 여태껏 내가 세운 계획보다 하나님께서는 더 선한 길로 인도해 주셨기 때문이다. 교회 차량을 구입코자 할 때도, 태풍에 옥상 십자가가 떨어져 새로 설치할 때도, 외부 화장실을 없애고 1층에 식당과 사무실과 화장실을 넣을 때도, 이번에 시스템 에어컨을 설치할 때도 그랬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실 때 물질적으로 헌신하는 교우들을 볼 때면 더없이 감사한 마음 뿐이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103:1∼5)
다윗이 쓴 찬송시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이 시를 썼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다윗은 자신의 인생과 이스라엘 민족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에 대해 송축한다. 물론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고백은 모세가 읊조린 것과 흡사하다(출34:6)
그런데 이 시편에 반복되는 고백이 나온다. ‘송축하다’가 그것이다. ‘송축하다’는 히브리어 ‘바라크’(בָּרַךְ)는 ‘무릎을 꿇다’(to kneel) ‘복을 주다’(to bless)는 뜻이 있다.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증거다. 자신의 죄인이라는 것과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는 사람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기 때문이다.
다윗은 밧세바와 저지른 죄악을 용서해 주신 하나님, 죄로 인한 심판의 질병에서 고쳐주신 하나님, 죽어버린 양심을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 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한다. 더욱이 다윗은 자기 민족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도 송축한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까지 40년간 광야를 돌며 온갖 불평을 쏟아 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긍휼을 품어주신 분이라고 말이다.
궁극적으로 다윗은 먼지와 같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창조적인 형상을 불어 넣어주심에 대해 송축한다. 사실 인간은 그날이 풀과 같고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이 유한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유한한 인간에게 영혼을 불어넣어 주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사는 자들에게 영생의 복을 주셨다.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것이다. 그러니 어찌 다윗이 하나님을 송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목자재단 이사장 조일래 목사와 나눈 대화를 통해 잠시 내 머리가 무거웠다. 하지만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 도리어 평강과 감사가 쏟아졌다. 나의 연약함을 알기에 주님을 더욱 붙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껏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욱 선한 것으로 인도해 오셨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감동주시는 일에 물질적으로 헌신하는 교우들을 보면 너무나도 감사할 따름이다.
내일은 2022년 전반기 감사의 절기인 ‘맥추감사주일’로 지킨다. 2022년 전반기의 삶 속에서 머리 아픈 일들이 얼마나 많았으랴? 코로나19는 멈출 줄 모르고 있고, 러시아의 침략과 우크라이나의 대응으로 기름값이 폭등하고 있다. 세계 경제도 휘청거리고 있다. 그 속에서 풀어가야 할 일들도 쌓여만 간다. 그로 인해 머리가 아플 때도 많았지만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자.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렇듯 가장 선하신 것으로 이끄시기 때문이다. 그런 하나님을 바라볼 때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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