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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시85:1-13)

by 똑똑이채널 2022.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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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5편의 표제는 어제 읽은 시편 84편의 표제와 같습니다. ‘고라자손의 시’로서 그 시를 노래로 불렀다는 점 말입니다. 어제도 살펴봤지만, 고라 자손은 조상 고라가 르우벤 지파의 지도자인 다단과 아비람과 함께 모세를 반역하자, 하나님께서 지진을 일으켜서 그들 모두가 죽임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하나님께서는 고라의 자손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들이 그 죽음의 장소에서 살아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죠. 그 은혜에 감읍한 그들은 이후에 더더욱 하나님 중심으로 헌신하게 되었고, 다윗이 그런 그들에게 성전 직무를 맡겼는데, 다윗이 쿠데타를 일으킨 압살롬에 의해 피난 길에 오를 때 그 자손들도 다윗과 함께 피난 길에 올랐다고 했죠. 그러면서 성소에서 섬기던 일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또 감격스러웠는지 생각해 보면서, 84편의 시를 써서 노래로 불렀다고 했죠. 그만큼 사람은 하찮은 것 같아도,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그것을 잃고서, 그 사람을 잃고서, 왜 그때 좀더 아껴주지 못했는가? 왜 그때 좀더 최선을 다하지 못했는가? 안타까워할 때가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고라 자손도 다윗과 함께 피난 길에 오르면서, 충분히 자신들의 직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겠죠. 그렇기에 오늘 내게 부여된 세상에서의 직무를 하나님의 나라와 연관시켜 더욱더 신실하게 감당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 읽은 85편은 1-3절까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찬양을 하고 있고, 4-7절까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만큼 과거에 은혜를 베푸셨던 그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리면서, 현재 처한 자신들의 처지를 하나님께 굽어 살펴주실 것을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1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이른바 포로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다, 백성의 죄악을 사하셨다, 또 죄를 덮으셨다, 하는 내용들이 무엇을 고백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과는 동떨어지게 산 까닭에 그들을 심판하여 이방 나라에 포로가 되게 하셨는데, 그런 백성들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금 용서해주시고, 그들을 향한 분노를 거두셨다는 것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내용이죠.

 

고라 자손들이 왜 이와 같은 시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는 것일까요? 지금 다윗과 함께 피난 길에 오르면서, 과거에 베푸셨던 그 은혜를 떠올리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꿔 말해 지금 피난 길에 있는 자신들에게도 그런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호소하는 격이죠.

그것은 마치 과거에 자신들의 선조이 고라가 모세를 향해 반역할 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들에게 지진을 일으켜서 250명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는데, 그런 때에도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고라의 후손들이 살아나게 해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진노 가운데 있는 이 피난 길에서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7절에 이렇게 읊조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그래서 그런 구원의 은총, 긍휼의 은총을 간구하면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기를 호소하고 있는데, 8절에서는 이렇게 다짐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여기에서 ‘내가’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고라 자손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고, 또 시편을 읽은 당사자를 가리키는 것이고, 오늘 우리 자신을 칭하는 말이기도 하죠. 그래서 나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데도, 말씀을 떠나 살았기에 ‘어리석은 데로’ 갔었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데로’ 갔다는 것은 곧 범죄를 의미하죠.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자는 ‘어리석은 데로’ 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어리석음은 말씀을 듣지 않고 말씀을 품지 않고 살아갈 때 발생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시111:10, 잠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경청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품은 자이기 때문이죠. 그만큼 이 8절 말씀을 통해 역설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말씀을 떠나서 죄를 범하며 살았지만,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심판을 받았지만, 그런 당신의 백성에게 긍휼과 은총을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도록 해 주신다면, 이제부터는 말씀의 법에서 떠나지 않고 신실하게 살겠습니다, 하는 다짐의 고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9절에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하고 주님의 구원을 경외와 연결시켜 고백하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죠.

 

오늘 시편 85편을 통해 우리는 죄로 인한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보며 기도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되 단지 ‘이 고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기 보다는 오늘 시편 85편의 기자처럼 ‘과거에 은혜를 베푸셨던 그 하나님께서 현재에도 다시금 은혜를 베푸소서’하고 기도하는 것이 좋죠.

그런데 그런 간구의 모습을 인간적인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이나 양심 없는 자처럼 뻔뻔하게 과거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은혜 베푸심을 운운하면서, 한 번 더 은혜를 베풀어달라는 것이 기도일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 말이죠. 그것이 기도냐고 생각할지 몰라도 시편 85편 기자처럼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옳은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85편의 기도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비록 자신의 죄는 아니지만 공동체의 죄를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의 기도는 과거에도 인자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도 변함없이 인자하실 것임을 믿고 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1절에서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라고 고백하는 것이고, 7절에서처럼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하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께로만 오기에 죄를 범한 인간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법이죠. 오직 하나님께 죄 사함을 간구해야 하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도, 어떤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지라도 나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움직이실 때 하나님께서 사람을 움직이시고 환경을 움직이셔서 내가 처해 있는 장소가 변하여 그 곳에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 곳에 긍휼과 진리가 임할 것입니다. 그곳에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는 은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10절)

그리고 진리와 의가 하늘과 땅에 충만하는 임하는 은총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좋은 것을 주실 것이며 땅이 산물을 내듯 풍성함도 주실 것입니다.

 

 

[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www.aladin.co.kr

오늘 이 시간 시편 85편처럼 기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의 은총, 고난에서 벗어나는 환경의 변화, 그리고 풍성함의 은총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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