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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시76:1-12)

by 똑똑이채널 2022.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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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시편76편은 그 옛날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남왕국 유다를 침략해 온 사건을 배경으로 한 시입니다. 주전 722년 앗수르의 산헤립 왕은 북이스라엘 왕국을 완전히 점령해버렸죠. 그래서 포로로 끌고 가서 다른 나라에 들어가 혼인해 살게 하거나, 이방 사람들을 북이스라엘의 수도사마리아 땅에 이주해 살게 만드는 혼혈정책을 펼쳤죠. 자국민 의식을 완전히 망가뜨리기 위함이죠.

북이스라엘을 접수한 앗수르의 산헤립 대왕은 이제 18만5천명을 동원해 남유다까지 공격하게 만듭니다. 그 때 남유다 왕국의 통치자 히스기야는 쩔쩔 매게 되었죠. 그런데 그때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지의 권면을 받고,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그 일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당시 세계 제국이던 앗수르의 대군을 그 어떤 나라도 감당치 못했는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들을 살피사, 그 날 밤 18만 5천명의 앗수르 대군이 송장이 되었고, 산헤립 대왕도 패하여 본국에 돌아갔을 때 암살 당하는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런 역사는 우리나라의 1592년 선조 때에도 있었습니다. 7년간 임진왜란을 겪던 그 시절의 사건을 서해 유성룡이 징비록을 통해 어록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그가 그 어록을 남기면서 많이 한 말이 ‘천행이로다’, ‘천찬이로다’하는 말이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장수를 뽑을 때, 그 밑에 장수 두 명이 있었는데, 하나는 포악하기 그지 없는 이였고, 다른 하나는 천주교도로서 그나마 온화한 장수였다고 하죠. 놀랍게도 히데요시는 그 두 번째 장수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우리나라에 파견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한달만에 한양까지 진격해왔고, 그로 인해 선조는 의주까지 피난해 명나라로 도피치려고 했는데, 그때 마침 남쪽에서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자, 그 장군은 일본에서 가져오는 보급로가 끊어질 것을 염려하여 군대의 머리를 돌려 남쪽으로 남하하게 되었죠.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도, 전투에 임할 때 그 전날 꿈에 나타난 현자가 이런 병법을 사용하도록 일러줬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300여 척이 넘는 외적의 수군에 맞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12척으로 승리하게 된 것 역시 ‘천행이자 천찬이로다’ 아니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더욱더 크신 하나님의 은혜가 뭘까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제 모두가 패한 일본 수군이 본국으로 돌아간다면, 히데요시는 더욱더 진노하여 남아 있는 전 병력을 이끌고 우리나라를 쳐들어왔을텐데, 그때 히데요시가 통치권을 잃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몸이 아파 죽었던지, 내란에 휩싸여 실권을 했던지, 그 시대는 끝이 나 버린 것이었죠. 그 역시 앗수르 대군의 산헤립 대왕이 하루 아침에 칼에 맞아 죽게 된 것과 똑같은 사건이 일본 내에서 일어나게 된 일입니다. 그 역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습니다. 유성룡의 말을 빌리자면 ‘천행이로다, 천찬이로다’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 76편에는 그런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는 것을 일러줍니다. 한 부류의 사람은 5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마음이 강한 자’, 즉 ‘장사들’입니다. 그들은 가진 것이 많고 도움을 줄 손들도 많죠. 전쟁에 필요한 모든 물자와 무기를 다 갖춘 이들이죠. 병거와 말도 많고, 화살과 창과 방패도 많이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하고, 전쟁에 나설지라도 굳이 하나님의 도움의 손을 구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자기들 힘이면 충분하다고 말이죠.

그런데 가진 게 많다는 게 복일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도리어 화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넉넉한 돈이 있으면 의식주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아는 게 많으면 선생이 되려 하거나 비평하기를 좋아하지, 겸손하게 배우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자신이 죄인임도 인정하지 않죠. 거느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람을 조종하거나 상황을 조작해 하나님 노릇을 하려는 유혹에 빠지죠. 그래서 가진 게 많고 의지할 게 많은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마음이 강한 자’와 반대되는 또 한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9절에 나오는 ‘땅의 모든 온유한 자’가 그들이죠. 여기에서 ‘온유하다’는 말은 ‘초라하다', ‘낮아지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가진 게 별로 없고, 도움을 줄 손도 없기 때문에, 이 세상으로부터 억눌리고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 바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살아가게 되죠. 이 세상에서는 그렇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크고 작은 대립과 전쟁을 벌이며 살아갑니다. 무기가 많은 자가 무기가 없는 자를 침략하고 지배합니다. 스펙이 많은 자가 스펙이 없는 자를 밑에 두고 부립니다. 인맥이 튼튼한 사람이 아무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보다 더 높은 권력을 누립니다. 많은 지식을 획득한 사람이 더 많은 재물을 보장받습니다.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이기고, 없을수록 자주 지게 되는 것이 불공평하지만, 현실은 부인할 수 없는 형편이죠.

그런 문제는 그 옛날 앗수르의 대군과 대치 정국을 벌인 남유다의 상황만 그런 게 아니죠. 오늘날에도 그런 모습들이 똑같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면 큰 저택에 사는 사람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지만,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침수 때문에 불안에 휩싸이게 되죠. 나라 경제가 흔들리면 도울 손이 많은 사람은 망해도 재기가 가능하지만, 힘없는 사람들은 당장 먹고 살 것과 자녀 교육 때문에 걱정을 해야 합니다. 돈이 있으면 외모도 고치고 직장도 잘 들어가고 시집 장가도 잘 가지만, 돈이 없으면 이성에게도 주목 받지 못하는, 그런 형편에 처하게 됩니다.

 

그렇듯 역사 이래로 이 세상에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억누르는 불공평한 일이 계속 이어져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불공평한 세상을 전복시키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본문 6절에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이 잠들었나이다." 가장 힘없는 노예계층인 히브리인들이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던 이집트 대군을 굴복시킨 출애굽 사건도 그렇고, 소 모는 막대기 하나로 블레셋의 600명을 물리친 사사 삼갈으 이야기도 그렇고, 300명의 용사로 1만2천명의 미디안군대를 물리친 기드온의 이야기, 블레셋의 육척장신 골리앗을 맞서 물맷돌 하나로 그를 쓰러뜨린 다윗의 이야기, 그리고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홀로 맞장을 뜬 엘리야의 이야기 등이 그렇습니다. 모두 질 수밖에 없는 불리한 조건 속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승리하게 된 사건들입니다.

그래서 9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심판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 비록 가진 게 없고 도움을 구할 손길이 없어도, 힘도 스펙도 부실해도,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 어떤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우리 지방회는 전국대회에 나가면 한 번도 16강에 든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하체 팀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 지방회 선수에 박지성이나 이영표 선수 같은 사람이 2-3세 명만 들어오면, 레벨이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전세는 금방 역전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방회 내 부교역자는 축구 1순위로 뽑으라고 하죠.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 크고 작은 인생전투에서 임마누엘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주시면, 아무리 상대가 강할지라도, 피조물과는 전혀 레벨이 다른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어 주시면, 모든 인생전투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앗수르의 대군에 위협받고 있는 예루살렘 성, 곧 시온성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군대와 레벨이 다른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기 때문에 그 성이 무너지지 않음을 본문 2-3절에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장막은 살렘에 있음이여 그의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거기에서 그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없이하셨도다.”

 

 

[전자책] 야긴과 보아스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BR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BR 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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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요한 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더 이상 사람이 세운 도성을 거처로 삼지 않는다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은 성령님과 함께 부활의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는 성도를 당신의 거처로 삼아 성도 안에 거주하십니다. 오늘도 우리 인간들과 레벨이 전혀 다른 그 하나님을 모시고 인생의 전투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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