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묵상DewSermon/시편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시72:1-20)

by 똑똑이채널 2022. 6. 2.
728x90
반응형
SMALL

오늘 읽은 시편 72편은 ‘솔로몬의 시’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 시입니다. 솔로몬은 다윗에 이어 이스라엘의 세 번째 왕이었습니다. 사실 다윗의 공식적인 아들들만 해도 19명의 아들이 있었고 그 중에 솔로몬은 10번째 배다른 아들이었죠. 이른바 다윗과 밧세바의 관계를 통해 태어난 두 번째 아들이 솔로몬이었죠. 그런 부정직한 관계를 통해 태어난 솔로몬이었으니, 왕실 주변 사람들의 입방아에 솔로몬이 오르내리지 않았겠습니까? 그만큼 솔로몬은 19명의 형제들 틈바구니 속에서 눈치를 보며 어린 시절을 보내온 것이죠.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솔로몬에게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삼하12:24-25)라는 의미의 별칭인 ‘여디디야’로 부르게 해 주셨죠. 비록 세상에서는 서글프고 떳떳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너를 감싸주시고 사랑으로 품어주실 것이란 뜻이죠. 그러니 솔로몬이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욱더 의지하며 살았을 것은 당연한 일이죠. 바로 그런 믿음과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그리고 그 나라를 다스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와 부를 자랑하는 이스라엘 나라가 되게 해 주셨죠. 문제는 그 후에 타락하게 되어, 그의 사후에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고 말았지만, 어찌됐든 오늘 말씀은 왕을 위한 시편입니다. 다시 말해 왕으로서 어떤 품위와 인격을 지녀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말씀으로, 어쩌면 솔로몬의 왕정 초기에 쓴 시이지 않나 싶기도 하죠. 그런데 마지막 20절을 보면 표제와는 다른 내용이 기록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나니라하고 말이죠. 표제는 솔로몬의 시이지만 끝마무리는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로 나와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시편 72편은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을 위해 쓴 시이지 않나 추정하기도 하죠. 왕 위에 오를 자식을 바라보면서 아비의 심정으로 쓴 시 말입니다. 그래서 왕은 어떠해야 하며, 왕의 태도가 가져오는 결과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시편 72편을 기점으로 첫 번째 시편에 이어 두 번째 시편이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처음 시편을 읽어나갈 때 시편은 모세오경처럼 다섯 권으로 분류된다고 했는데, 제1권은 1-41편까지, 제2권은 시편 42편부터 오늘 읽은 72편까지, 그리고 내일부터 살펴볼 시편 73편이 제3권이 ㅣ작되는 시편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다윗이 왕위에 오르는 아들 솔로몬을 위해, 왕이 되면 무엇이 필요한지 일깨워주는 부분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주의 판단력과 주의 공의입니다. 왕은 한 나라의 최고의 통치자이지 않습니까? 그 최고의 통치자, 최고의 리더에게는 갖추어야 할 것들, 필요한 덕목들이 참 많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손꼽고 있는데, 그게 바로 주의 판단력과 주의 공의라는 것입니다. 주의 판단력과 주의 공의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하나님의 판단력과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왜 그것들이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의 판단력과 하나님의 공의가 실은 이스라엘 나라를 바르고 아름답게 통치할 수 있는 근간이 되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이 세상의 모든 통치자들과 리더들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하나님의 온전한 판단력과 공의를 구하며 살아야 하는 법이죠.

그런데 예전에 우리나라를 이끌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 속에서 그런 하나님의 판단력과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고 있습니까? 언론사의 분석에 따르면 그 분의 지지도가 계속 추락하고 있는 면들을 보여주고 있죠. 그만큼 남과 북이라든지, 남남의 동서든지, 사회지도층의 모습과 농민을 비롯한 연약한 자들을 대하는 그 태도 속에서 하나님의 판단력과 공의를 드러내기에는 미미할 뿐이라는 견해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비판한 하는 것은 또 능사가 아니겠죠. 비판을 위한 비판보다는 바른 길을 위한 비판이 필요한 법이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의 통치자를 위해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죠. 하나님께서 그의 눈과 판단력을 바르게 열어 주시도록 말이죠. 그것이 곧 개인과 국가에 선하고 복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말입니다.

 

본문 2절 이하에서는 구체적인 하나님의 판단력과 공의가 무엇인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판단력과 공의를 따라 행할 때 결코 자기 이익을 쫓는 그런 사사로운 모습과는 다른 길을 걷는 것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3절에 공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왕이 하나님의 판단력과 공의로 행하면, 먼저 산들과 작은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산들과 작은 산들이 평강을 준다는 것은 땅이 평강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그 나라의 영토가 나라가 평강하고 평화롭게 된다는 뜻입니다. 왕이 하나님의 판단력과 공의로 나라를 다스릴 때, 하나님께서 그런 나라에 평강을 주신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시면, 전쟁이나 기근이나 걱정이나 근심이나 다툼이나 불안이 없는 상태 속에 거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실 평강, 다시 말해 평화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가장 큰 복 중의 복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평강이 없다면, 나라에 평화가 없다면 소유나 건강이나 권력이 모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분쟁이나 내전 중이거나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라들은 그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습니다. 평강은 그만큼 행복의 바로미터 곧 행복의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왕이 하나님의 판단력과 공의로 나라를 다스리면 하나님께서 그런 평강의 나라를 이끌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판단력과 공의로 나라를 이끌면 하나님께서 그 나라에 평강을 주시되, 어느 한 때만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까? 7절에서는 대대로 그런 은총을 베풀어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이 부분을 공동번역에서는 그렇게 옮기고 있습니다. 정의가 꽃피는 그의 날에 저 달이 다 닳도록 평화 넘치리라.” 그의 날, 곧 그 나라의 날이 다하도록 평화가 넘치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8절에서는 그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가까와 강에서부터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하고 세계 모든 나라와 백성들에게 존경과 높임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게 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 그런 왕이 있을 수 있냐는 것이죠. 다윗이 자기 아들을 향해 너만은 하나님의 판단력과 공의로 통치하기를 바랐지만, 과연 솔로몬이 일평생을 그런 마음과 자세로 통치했습니까? 못했죠. 그렇다면 그렇게 교훈하고 있는 다윗은 그렇게 통치했습니까? 결코 온전히 못했죠. 그에게도 실수와 허물이 있었죠. 그렇다면 사울 왕이, 아니면 북왕국의 19명의 왕들이, 혹은 남 왕국의 20명의 왕들이 그렇게 온전히 통치했습니까? 아닙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판단력과 공의로 통치한 완벽한 왕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명의 왕을 찾을 수는 있습니다. 만 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 분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판단력과 공의로 이 나라와 세상을 다스리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든 인간은 왕 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그 분의 통치를 받는단 말입니까? 성령 안에서 말씀과 기도를 통해 그 분의 다스리심, 그 분의 이끄심을 받는 게 그것이죠.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던 삶의 모습처럼,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향한 사랑과 긍휼을 베푸는 것이 곧 주님의 판단력과 공의로움을 펼치는 삶입니다. 그런 자들을 향한 삶을 살 때, 어찌 우리들의 심령 속에 주님의 평강이 임하지 않겠습니까?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8679122 

 

[전자책] 야긴과 보아스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BR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BR 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

www.aladin.co.kr

오늘 본문의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에게 그런 통치자가 되기를 바라며 썼지만, 궁극적으로 그런 통치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분은 배고픈 자, 의지할 곳 없는 자, 외로운 자, 슬픈 자, 두려움에 얽매인 자, 병든 자, 영육 간에 돌봄이 필요한 자, 그런 자들을 위해 사셨고, 또 그렇게 살고자 하는 자들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만 왕의 왕이신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판단력과 공의로움을 이 세상에 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 우리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평강이 영원토록 임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