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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 시편 1권을 묵상하며 살펴봤습니다. 처음 시편을 대할 때 시편은 150편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분량으로 1권으로 구성돼 있지 않고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본래 시편 150편은 5권으로 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모세 5경에 영향을 받아 시편도 5권으로 구성된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을 하고 있다고 말이죠.
그래서 지난 시간까지 시편 1권이 끝나고, 오늘부터는 시편 제 2권이 시작 됩니다. 제 2권은 시편 42편부터 72편까지입니다. 이중 열 여덟 편이 다윗의 쓴 시로 알려져 있고, 일곱 편은 고라자손의 시로, 또 한 편은 아삽의 시, 그리고 한 편은 솔로몬의 시, 나머지 네 편은 작자미상의 시로 총 31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 42편의 표제가 어떻게 돼 있습니까? “고라 자손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마스길’이란 뜻은 교훈입니다. ‘고라자손의 마스길’ 하면 ‘고라자손의 교훈’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고라자손이 어떤 자손입니까? 원래 고라라는 이름은 저주 받은 이름의 대명사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날 때였죠. 그때 지도자 모세에 대해서 반기를 들었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고라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고라와 그 동조자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을 삼키고 다시 닫아버렸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진노 중에서도 자비를 베푸셨는데 고라는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지만 그 아들들은 살아남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 속에서 고라의 후손들은 번성해 갔고, 훗날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일할 때 고라의 자손들은 다윗을 도와 함께 나라를 세웠으며, 그 공을 인정받아 다윗은 고라 자손에게 하나님의 전을 섬기는 사명을 주었습니다.
그렇듯 심판받아 그 이름이 영원히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었던 고라자손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성전까지 지키는 큰 사명을 받을 수 있었기에, 다른 가문의 교훈보다 고라 자손의 교훈은 특별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멸문지화를 당할 그 집안이 온 우주의 중심으로 여기는 하나님의 성전을 돌보는 집안이 되었으니, 가히 이스라엘 내에 귀한 교훈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죠.
본문 1절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이유는 목마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슴의 갈급함은 목마름에 대한 갈급함입니다.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은 죽음을 전제한 매우 위험한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동물은 약육강식의 세계이며, 시내는 힘 센 짐승이 약한 동물을 잡아먹기 위해 기다리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사슴에게 시내는 이처럼 위험한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마름에 갈급하면 온갖 위험을 무릎쓰고 시냇물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이 실은 그와 같습니다. 인생도 갈급함이 없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자신이 계획한대로 모든 일들이 척척 풀려 가면, 그 재미에 빠져 영혼의 갈급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모르핀을 맞으면 고통이 있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육신의 행복에 빠져 있으면, 모르핀에 중독된 것처럼, 영혼의 갈급함을 깨닫지 못하죠. 하지만 인생의 고난이 찾아오면, 모르핀의 중독에서 깨어난 영혼처럼 그 갈급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고난은 우리들의 영혼에 매우 유익이 됩니다.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본문 2절 말씀입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내 영혼이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실존을 경험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든 살아계신 분이시죠.
문제는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초신자 때에는 기도한대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기도 제목들이 응답될 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죠.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성장할수록 어떻게 됩니까? 내 기도의 제목이 응답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내 삶의 자리를 통해 이루어가는 것을 보고서 내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런 뜻에서 나는 초신자인가? 아니면 성숙한 신앙인인가?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됩니다. 바꿔 말해 내가 하나님의 실존을 언제 경험하고 있는지, 내가 언제 내 삶의 자리를 바르게 세워가고 있는지,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내가 하나님의 격려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우리는 되돌아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뜻이 내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실존을 경험하는 수준으로 올라서길 바랍니다.
본문 3절에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이 계시면 네가 왜 고난을 당하겠느냐며 비웃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난은 주님도 동일하게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보고 골고다 언덕에 있던 사람들이 이렇게 비웃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29-32절에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그렇듯 주님이 고난당하심의 본이 되셨기에,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자신이 고난당할 때마다 큰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면 고난당할 때 낙심하거나 불안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통은 동일하나 고통 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다. 똑같은 바람이 불어도 오물에서는 더러운 냄세가 나지만, 꽃에서는 향기가 풍긴다" 믿음은 고난당할 때 진가를 발휘한다는 뜻이죠. 내 믿음이 진짜냐 가쨔냐는 고난 중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인생의 고난 속에서 불안해하지 말고 그 소망을 하나님께 바라라는 조언입니다. 어떻게 이 조언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고라 자손들, 모세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멸문지화 당할 뻔한 그 고라 자손들이었기에, 그들이 죽었다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통해 살아났고, 그리고 그 이후에 하나님 중심으로 헌신해서 그들이 성전을 지키는 가문이 되었기에, 인생의 위기 앞에서도 하나님을 바라고 나가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맛볼 수 있다고 충분히 격려하고 권면할 수 있는 것이죠. 그들이 산 교훈의 증인들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이 5절 말씀의 고백을 본문 11절에서도 똑같이 한 번 더 읊조리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인생은 흐르고 변하기 마련이지만 우리 하나님은 변함없이 당신을 의지하는 자들을 도우시는 분이기 때문이죠. 실은 이 5절과 11절 말씀이 그래서 시편 42편의 주제가 되는 것이죠.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오늘 저주의 대명사였던 고라의 이름이 그 자손들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명자의 조상으로 바뀔 수 있었던 것, 그것은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영혼의 갈망함이 그들 속에 내재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삶의 자리 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모실 때 그들의 인생과 가문이 바뀐 것처럼, 저와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도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를 도우시는 그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온갖 낙심과 불안 속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볼 것이며, 그 분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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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인생의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갈급한 심령 가운데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길 원합니다. 형통할 때 경험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고난 가운데서 체험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기 보다는 고난의 뒤편에 계신 주님이 주실 은혜를 미리 보면서 감사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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