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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전 내내 주님 앞에 엎드렸다. 간절히 기도할 제목이 있어서 그랬다. 딱히 내가 도와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더더욱 그랬다. 모든 주권이 주님께 있음을 고백했다. 당신의 자녀를 향한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영적 부모의 심정으로 간구했다.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굽어 살피듯 그를 향해서도 굽어 살펴주시도록 간절히 아뢰었다.
3시간 가량 기도하면서 말씀을 읽고 눈을 떴을 때 평안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결혼식장에 가려고 준비하면서 눈 주위를 씻었다. 2주일전 한빛안과 의사가 일러준 대로 한 것이다. 봄철 알레르기성 결막염이 찾아올 때면 눈 주위를 비눗물로 씻으라는 지침 말이다. 여태껏 가렵고 뻑뻑하고 눈꼽이 낀 것 같으면 그렇게 해 왔다. 그랬더니 오늘은 그 증상이 완전히 사라진 느낌이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시36:5-9)
다윗이 쓴 시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자 메시아를 예표하는 인물이다. 시편 150편의 시들 중에서 70편 이상을 다윗이 썼다.1) 시편 36편의 표제를 통해서 다윗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종임을 밝히고 있고, 악인의 죄악과 속임에 대해서(1-4절),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에 대해서(5-9절), 그리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확신에 대해서(10-12절) 각각 고백하고 있다.2)
그런데 다윗이 쓴 여러 시편과 달리 시편 36편과 시편 18편은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다. 그 이유가 뭘까? 그것은 그가 처한 환경과 무관치가 않다. 그 주위에 사울이나 블레셋과 같은 수많은 원수와 대적이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시고 자신의 길을 열어주실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음을 바라본 것이다. 그만큼 그 모든 상황을 주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자세였다.
‘종’(servant)은 히브리어로 ‘에베드’(עֶבֶד)다. 이 단어는 ‘예배하다’(serve), ‘시중들다’(to work)는 뜻의 ‘아바드’(עָבַד)에서 파생된 단어다. 중요한 것은 종에 대한 모든 주권은 주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종이 기분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은 하나도 없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나 하기 싫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철저히 주인의 결정과 처분만 따를 뿐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대해 그렇게 산 것이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늘 기억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러니 자기 인생에 악인과 대적들이 위협할지라도 하나님의 주권으로 지켜주시고 그 길을 인도해주실 것을 신뢰하며 나아갔던 것이다.
1996년 5월 13일자 타임(TIME)지 커버스토리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그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이 장식했다. 그 제목은 ‘더 프러디걸 선’(The Prodigal Son)이었다. ‘돌아온 탕자’라는 뜻이다. 타임지는 왜 그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다뤘을까?
사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그 사모는 훌륭한 분들이다. 그런데 큰아들 프랭클린은 열두 살부터 스물두 살 때까지 안 해본 짓이 없었다. 독한 위스키를 마시고 총 쏘는 걸 좋아하고 오토바이 폭주에다 별 것들을 다 했다. 그러니 그의 부모 가슴이 얼마나 찢어졌겠는가?
프랭클린이 22살 무렵이었을때 어느 날 아버지는 그를 앉혀 놓고 말했다. “너 예수님을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해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거니?’ 그러자 그는 “아빠, 그 지겨운 얘기 이제 그만하세요.”하며 귀찮아했다. 그리고는 비행기를 타고 여기저기 여행을 하다가 예루살렘의 한 호텔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호텔 방에 있을때 그런 생각이 밀려들었다. “내가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아버지의 말을 거절하고 뛰쳐나왔지만 이렇게 살아 서는 안 돼.” 그러다가 그 호텔에 있는 기드온 성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성경을 펼치는데 로마서 8장 1절 말씀이 다가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 말씀이 한눈에 다가오면서 그의 심령을 흔들기 시작했다. “아,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도 용서하시는구나.” 그러면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고, 자기 죄를 회개했고,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인으로 모셔들였다. 성령님의 주권적인 역사였다. 그 후 그는 아버지처럼 주의 종이 되었고, 아버지와 똑같은 제스쳐와 목소리로 전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됐다.
무슨 일이든 열심을 다해 준비하고 기도하는 것은 중요하다.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님을 깨닫는다. 그 너머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호하시과 인도하심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걸 말이다. 다윗과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그 사실을 알았기에 자신의 주권과 자식의 주권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며 종으로 고백하며 산 것이다.
그대와 내 인생은 물론이요 자식의 인생까지도 주님 앞에 종으로 내어 맡기며 살도록 하자. 지금은 답답해 보이고, 때로는 망나니 같아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앞에서는 홍해와 같은 거대한 난관도 손쉽게 열어주시고 탕자와 같은 아들도 아버지 품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1)https://929.org.il/lang/en/page/603/post/82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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