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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시24:1-10)

by 똑똑이채널 2022.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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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예배당에 들어설 때 어떤 느낌을 갖게 되십니까? 경건함, 거룩함, 엄숙함, 그리고 평안함, 그런 특별한 느낌을 가질 수 있겠죠. 또 교회당마다 독특한 분위기의 예배당을 연출하는 곳도 있죠. 저는 어디선가 삶의 자리로부터 모여드는 교우들이 예배당에 모여 온 목소리로 높여 찬양을 부르는 그 소리를 들을 때 큰 기쁨이 일기도 하고, 모두가 빠져나가고 혼자 텅 비어 있는 예배당에 앉아 가만히 기도할 때 말로 할 수 없는 평안함과 고요함을 느낍니다.

왜 우리가 예배당을 찾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구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예배당을 찾는 이유죠. 솔로몬이 한 고백처럼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인간이 건축한 건축물에 계시겠습니까마는,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자 또한 기도를 드리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더 강하게 역사하심을 느끼곤 하죠.

 

오늘 읽은 시편 24편에는 아무런 표제가 없이 그냥 다윗의 시라고만 돼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지은 시인지 분명치가 않다는 점이죠. 그런데 많은 학자들은 이 시가 다윗이 오벧에돔의 집에 두었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의 다윗성으로 모시고 올 때 불렀던 노래이지 않냐, 하고 생각들을 합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기 전까지 하나님의 언약궤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과 아론의 싹 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가 든 항아리가 있었죠.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막을 만든 후에 지성소와 성소를 마련하고 안쪽에 있는 지성소에 언약궤를 놓아두었죠.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구름으로 성막을 덮어 주시면서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리라”(25:22)하고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 시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 전투를 벌일 때, 그 언약궤를 빼앗겨 버렸죠. 그 언약궤를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을 상징하는 것인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언약궤를 부적으로 여긴 까닭에, 그들이 전투에서 패할 뿐만 아니라 그 언약궤도 블레셋 군대에게 빼앗겨버렸습니다. 그 후에 블레셋 군대는 그 언약궤를 자기들이 섬기는 다곤 신전 옆에 두었는데, 다음날 그 다곤의 목이 부러져버렸죠. 우연히 일어난 일이겠지, 했지만 그 일들이 계속되었고, 주민들이 역병에 걸리게 되었죠. 결코 그 일이 우연한 일이 아님을 확증하고자 그 언약궤를 이웃 지역으로 옮겨가게 했는데, 그곳에서도 똑같은 재앙이 일어나게 되었죠. 그때 비로소 블레셋 사람들은 그 언약궤를 다시금 이스라엘 땅의 벧세메스로 보낼 것을 결의하고, 젖나는 암송아지 둘을 새 수레에 매게 해서 보냈는데, 그때 만약 그 젖소 두 마리가 새끼들을 보고자 뒤를 돌아보고 벧세메스로 가지 않는다면 그 재앙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요, 만약 그 젖나는 암소 두 마리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벧세메스로 간다면 그 일은 분명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일로 받아들이기로 했죠. 그런데 정말로 그 젖나는 암소 두 마리가 새끼가 음메 하고 울어대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길로 가는 것을 보자, 모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죠. 그만큼 하나님의 법궤, 곧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부적 정도로 삼을 때에는 그 전투에서 패하고 언약궤마저 빼앗겼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당신의 살아계심을 만천하에 드러내주셨던 것이죠. 그만큼 하나님의 법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테스트하는 부적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지켜야 할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 법궤가 이스라엘 땅 벧세메스에 왔을 때 그들은 인근 기럇여아림 사람들을 불러 아비나답의 집에 안치할 수 있도록 했죠. 그때부터 법궤 곧 언약궤는 20년 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 그는 그 언약궤를 방치하고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는데, 다윗이 왕이 된 후에는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생각하며, 그 언약궤를 자신의 예루살렘 곧 다윗성에 모시고자 했죠. 처음에는 그 언약궤 곧 법궤를 새 수레에 끌고 오고자 했는데, 그때 소들이 뛰자 웃사와 아효가 거드름을 피운 일로 그 자리에서 죽는 사고가 발행했죠. 그래서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간 보관하도록 했고, 석달이 지나자 다시금 다윗이 레위인들을 불러 그 법궤를 어깨에 매고 오도록 했죠. 그랬더니 이 번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다윗은 모든 레위인들로 구성된 뮤지션들, 이른바 찬양대원들로 하여금 찬양을 울러 퍼지게 했고, 다윗 자신은 너무나도 기뻐서 날뛰며 찬양하면서 그 법궤를 다윗 성으로 모셔올 수 있었죠. 이것이 사무엘하 6장에 기록돼 있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모신다는 것, 법궤를 모신다는 것, 그것은 하나님을 모시는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24편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선 예배자의 노래라고 칭할 수 있겠죠. 다윗은 3절에서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자가 누구인가?” 이를 통해 참된 예배자가 어떤 자인지 알 수 있죠.

 

참된 예배자는 첫째로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임을 인정하는 사람이죠. 본문 1-2절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죠. 우리는 창조주의 청지기에 불과할 뿐이죠. 그 사실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자가 하나님의 임재를 모실 수 있는 것이죠. 자신의 집도, 재산도, 자식들도, 직장도, 사업장도, 그 모든 게 하나님의 허락하심 하에 맡긴 자들이 선한 청지기입니다. 그런 자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수 있죠.

 

두 번째로 참된 예배자는 거룩한 곳에 서고자 바른 삶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3-5절에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온전한 예배자는 마음이 청결하며 허탄한 데에 두지 않는 자, 거짓 맹세치 않는 자, 그런 자가 온전한 예배자로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것은 도덕적인 삶을 요구하는 게 아니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를 말합니다. 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언어나 구호에 있는 게 아니라 삶에 있기 때문이죠.

 

세 번째로 참된 예배자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자입니다. 7-10절에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백성들 앞에 지나가면 백성들이 그 길을 활짝 벌려 주었겠죠. 그만큼 다윗이 백성들에게 왕이었다면, 다윗에게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는 문을 활짝 열어 자기 인생 속에, 자신의 거처 속에, 자신의 가정 속에, 자신의 나라 속에 하나님을 온전히 모시고자 했습니다. 그만큼 다윗은 자신이 살아가는 모든 장소에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며 살았던 자죠. 그것이 곧 온전한 예배자요, 그런 자에게 주님께서 충만하게 임하시는 법이죠.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주님의 임재를 모셔 들이고, 주님과 동행하는 신실한 예배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드려진 삶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이 아름답고 능력 있는 하루의 삶, 예배자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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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이 세상이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 영광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 저희 모두가 참된 예배자로 서게 해 주시옵소서. 예배가 삶을 지배하지 못하면 삶이 예배를 지배하게 되고, 예배로 삶의 질을 바꾸지 않으면 삶이 예배의 질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그렇기에 어느 곳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지 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자로 살아가게 하시고, 그 속에 임재하는 주님을 온전히 모시며 살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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