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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욥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욥22:1~30)

by 똑똑이채널 2022.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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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정의가 있습니다. 그 정의에 따라 타인을 정죄하기도 하며, 자신을 그 안에 가두기도 하죠. 한자로 정의는 정할 정()옳을 의()입니다. 그 말은 어떤 말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한다는 뜻이죠. 그런데 이 정의의 주체가 사람일 때에는 문제가 생겨납니다. 무엇인가를 판명하려는 개념의 기준을 자기 자신으로 삼기 때문이죠.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모든 대상을 판단하고 판정하는 것은 인간의 죄 된 습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 정의는 자신을 의로운 자리에 앉히는 경우가 많고, 그런 관점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게 되죠. 로마서 21절에서는 판단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사람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는 매우 관대하고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매우 인색하죠. 어쩌면 상대방에 대해 관대함을 바라기보다 잔인할 정도로 더욱 악하죠.

지금 욥은 죽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낳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로 극심한 고통 가운데 놓여 있는 욥이었죠. 자기 생일을 비통해하며, 너무나도 괴로워서 칠흑 같은 어둠에 힘없이 주저앉아 있다고 고백할 정도로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런 욥을 바라보는 친구들이 어떻게 대합니까? 욥이 괴로워하고 한탄하는 하소연을 들을 때, 그 친구들은 각자 자기 관점으로 욥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욥의 친구들 역시 자기 자신을 정의의 주체로 놓고서 욥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관점이었습니다. 로마서 21절의 그 말씀이 욥의 세 친구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라는 점입니다.

 

그와 같은 욥과 세 명의 친구 사이에 대화가 이어지는데 욥기서 4~27장까지 계속된다는 점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22~27장까지는 이 대화의 마지막 세 번째 사이클입니다. 첫 번째 대화는 4~14장까지 이어졌고, 두 번째 대화는 15~21장까지 이어졌고, 이제 마지막 대화가 진행되는 상황입니다.

오늘 읽은 22장 말씀은 그 세 번째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한 내용인데 이전처럼 가장 나이가 많고 인생의 연륜과 지혜가 있다고 생각한 엘리바스가 나서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엘리바스가 욥에게 이야기하는 마지막 발언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엘리바스는 첫 번째 나눈 발언을 통해 욥을 점잖은 타이르는 어조로 회개하도록 권면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권면을 욥이 받아들이지 않자 두 번째 발언을 할때는 강한 어조로 욥을 공박했습니다. 욥기서 1534~35절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경건하지 못한 무리는 자식을 낳지 못할 것이며 뇌물을 받는 자의 장막은 불탈 것이라 그들은 재난을 잉태하고 죄악을 낳으며 그들의 뱃속에 속임을 준비하느니라.” 경건하지 못한 자는 자식을 낳지 못하고, 뇌물을 받은 자는 집이 불탈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토록 강력하게 욥을 정죄하고 비난한 그의 발언입니다. 욥이 고통당한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렇게 욥을 평가하고 비난했던 엘리바스는 오늘 본문을 통해 세 번째로 욥에게 이야기합니다. 오늘 이야기한 내용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심판으로 욥을 공박하는 내용입니다. 본문 4~5절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세상의 정의는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일수록 그에 따른 형벌도 클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엘리바스는 자신의 의로움을 이야기하고자 하나님의 의를 대입해서 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만큼 욥의 당하는 고난이 크면 클수록, 그가 하나님 앞에 저지른 죄악도 매우 크다는 공식을 대입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문 6~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권세 있는 자는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는 거기에서 사는구나 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엘리바스는 욥이 짓지도 않는 죄악까지 들춰내면서 욥을 공박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엘리바스는 결국 무고한 욥을 크나큰 악행을 저지른 자로 만들고 있는 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욥은 이유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거나 헐벗은 자의 옷을 벗긴 일이 없었습니다. 목마른 자나 주린 자에게 인색하게 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욥의 부유함이 자신의 권세를 이용해 부당하게 취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엘리바스가 이야기한 대로 욥이 고아나 과부를 괴롭혔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엘리바스가 이처럼 욥을 행악자로 바라보고 있고, 급기야 욥을 향해 저주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본문 10~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올무들이 너를 둘러 있고 두려움이 갑자기 너를 엄습하며 어둠이 너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고 홍수가 너를 덮느니라.”

두려움이 너를 덮고 네가 앞을 보지 못해 홍수가 덮는다고 욥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욥이 죽음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붓는 꼴입니다.

 

왜 엘리바스가 이처럼 완악하게 돌변하는 것일까요? 처음 욥에게 말할 때만 해도 점잖은 어른이 어린 아이를 타이르듯이 말하는 어조였는데, 두 번째 대화에서는 강경한 어조로 욥을 정죄하고 비난하는가 싶더니, 오늘 세 번째 대화를 통해서는 아예 저주를 퍼붓고 죽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왜 이렇게 돌변한 것일까요? 그 모두가 자기 의에서 시작된 정의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자기 의, 자기 소신을 전혀 굽히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더 강경한 저주로 퍼붓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만큼 사람은 자기 의에 사로잡히면 이토록 무섭게 타인을 왜곡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비스가 가진 정의가 욥을 정죄하는 기준으로 삼을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신론을 갖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의 신론은 철저한 인과응보로 비치는 하나님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선인에게 상급을 베푸시고 악인에게 심판을 내리시는 분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것이죠. 수차례 이야기했듯이 그게 결코 틀린 게 아닙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뿌린 대로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불합리함과 부조리로 가득 차 있고, 하나님은 인간을 기계로 만들지 않고 자유의지를 주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든지 악한 자가 기세등등하여 잘 살 수 있고, 의로운 자가 더 큰 고난에 처할 수 있도 있는 세상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은 숨어 계시기 때문에 악한 자를 당장 벌하지 않는 것 같고, 의로운 자가 탄식하면서 외친다 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정하신 그날에 분명코 의인에게 상급을 베푸시고 악인에게 벌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숨어계신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모를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일의 결과만으로 가지고 매사에 판단하고 정죄하는 게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판단하고 정죄하고서도 자기 의에 갇힌 채 타인을 평가하는 게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엘리바스의 모습을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나의 모습은 그렇지 않는지 돌아보게 되는 것이죠. 누군가 고통당하고 있다면 처음엔 점잖은 어조로 타이르다가, 그가 듣지 않을 때 정죄하는가 싶더니, 그 후에는 더욱 강경한 어조로 저주를 퍼붓는 모습 말입니다. 내 의에 사로잡히면,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내 의를 꺾지 않으면, 그렇게 끝까지 가는 것이죠. 이것이 엘리바스의 모습이자 우리 자신의 모습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누군가 아픔 속에 있을 때 취해야 할 자세는 상대방의 티를 보려고 하기보다 나의 들보를 먼저 보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그래야 왜곡된 시선을 내려놓고 진리이신 주님의 눈으로 상대방을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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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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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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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엘리바스는 자신이 생각한 정의의 기준으로 욥의 마음을 날카롭게 찔러 댔습니다. 저희도 내 편견에 사로잡히면 그것을 정의로 여긴 채 누군가를 찌르는 비수가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렇기에 타인의 허물보다 나의 들보를 먼저 볼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갖고 살게 하시옵소서. 누군가 고통에 처할 때 나의 왜곡된 시선을 내려놓고 진리이신 주님의 마음으로 품을 수 있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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