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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욥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욥3:1-26)

by 똑똑이채널 2022.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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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 욥기서의 서론을 살펴봤습니다. 족장시대의 인물인 욥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과 사해바다 사이에 있는 동방 땅 우스에 살고 있었고, 아들 7, 3, 양이 7천마리, 낙타가 3천마리, 소가 5백겨리 곧 천마리, 당나귀가 500마리, 그리고 많은 짐승 떼를 돌볼 종들도 많았죠. 그렇게 창대와 번영을 누리고 있던 욥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 ‘올곧은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그리고 악한 행동을 거절하고 멀리하는 사람이었죠. 한 마디로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더욱이 잔칫날이 되면 혹시라도 자기 자식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이름에 누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까, 그런 것까지 살피면서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렸던, 부지중에라도 범했을지 모르는 속죄제까지 드렸던 인물로서, 그의 행위가 항상 그랬을 정도로, 흠잡을 데 없는 의인 중의 의인이었죠.

 

그런 욥을 향해 사탄이 하나님께 고소하죠. 이유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게 아니라고 말이죠. 까닭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게 아니라고 말입니다. 엄청난 소유와 재물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소유물을 쳐도 그는 나를 경외할 것이라고 확신하죠. 그래서 사단이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칩니다. 심지어 그의 자식들까지 다 압사당하는 일을 겪게 하죠. 그때 욥이 어떻게 합니까?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나이다.”(1:21)하고 흔들리지 않았죠. 그러자 두 번째 사탄이 하나님께 나아와 이야기하죠. 그의 몸을 치면 이제는 하나님을 욕하고 저주하며 죽을 것이라고 말이죠. 그때 두 번째 시험을 그에게 하도록 허락해주셨죠. 그러자 욥의 몸에 악창이 들끓어 질그릇 조각으로 욥이 몸을 긁게 되었죠. 그때 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유혹했죠. 하지만 욥은 그때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2:10)하고 말이죠.

그 무렵 욥의 세 친구들이 찾아왔죠. 서로 다른 지역에 살고 있던 세 사람이었습니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이 한 날 한 시에 서로 뜻을 정해 욥을 위로코자 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흉측해진 몰골을 향해 그들 세 명의 친구들은 욥이 입을 뗄 때까지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죠. 그렇게 7일간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는 형국이었습니다.

 

이것이 욥기서 1-2장에 나온 서론의 내용이었습니다. 욥은 7가지 시험 곧 7가지 시련을 당한 모습이었죠. 첫째는 소와 나귀와 종들이 약탈당한 시련이었죠. 둘째는 양과 종들을 잃은 시련이었죠. 셋째는 낙타와 종들을 잃는 시련이었죠. 넷째는 자녀들의 죽음에 처한 시련이었죠. 다섯째는 그의 건강마저 잃게 된 시련이었죠. 여섯째는 그의 아내마저 함께 뜻을 모으지 못하는 상태의 시련이었죠. 그리고 일곱째는 그의 친구들이 위로하기 위해 찾아왔는데, 이후에 보면 알겠지만 그들은 욥을 위로하러 온 게 아니라 실은 욥을 정죄하고 비판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죠. 그런 7가지 시련을 겪은 욥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맞이하면 제 아무리 의롭고 완벽하고 흠잡을 데 없는 욥이라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겠습니까? 겉으로는 흔들리지 않을지라도 그의 자존감에 상처가 날 것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던 감수성도 날카로워질 것이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대해서도 회의감이 들지 않겠습니까?

 

이런 상황에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 것일까요?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히브리서 218절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 것이죠.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 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 고난을 계속해서 묵상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필요한 법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그 시험과 고난을 겪고 승리하셨기 때문이죠. 그래서 시험 당하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는 것이죠.

우리에게도 그런 고통과 고난이 계속해서 밀려들 때 오직 십자가 고난을 짊어진 주님을 바라보고 묵상하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로마서 818절의 말씀으로 위로를 얻고 소망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면서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욥도 그래서 그 고난의 상황을 수용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 임재하셔서 그 고난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욥을 일깨워주셨죠. 그 후에 갑절의 복을 내려주셨고요.

 

이제 오늘부터 읽어가는 욥기서 31절부터 426절까지는 욥기서의 본론입니다. 우선 3장에는 욥의 개인적인 고난 즉 태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 태어날 때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바람, 그리고 지금 죽었으면 하는 바람 등이 기록돼 있습니다. 4-14장까지는 욥과 세 명의 친구들에 대한 첫 번째 대화가 나오고, 15-21장까지는 욥과 세 명의 친구들 간에 나눈 두 번째 대화, 22-27장까지는 욥과 세 명의 친구들 간에 나눈 세 번째 대화, 32-37장까지는 엘리후의 네 가지 발언, 그리고 381-426절까지는 욥과 하나님에 대한 대화가 나옵니다.

 

오늘 읽은 3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로 자기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저주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1-10절까지 계속 반복되는 말씀이 있죠.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이 바로 그것이죠.

특별히 7절에 그 밤에 자식을 배지 못하였더라면, 그 밤에 즐거운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자기 부모가 한 몸이 되는 첫 날밤을 갖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고백이죠.

둘째로 11-19절은 그의 출생 자체를 저주하는 상황입니다. 12-13절입니다.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차리리 어머니가 자신을 받아주지 않았다면, 젖을 빨지 않았다면, 평안히 죽었을 것이란 고백이죠.

그래서 16절에 이렇게 고백하죠. 낙태되어 땅에 묻힌 아이처럼 나는 존재하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을 것이라.”

차라리 빛을 보지 못한 채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죽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고백입니다.

 

본문 20-26절은 성인이 된 지금의 상태를 저주하는 상황입니다. 22절입니다.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보다 차라리 인생의 과정 없이 죽는 게 훨씬 더 낫겠다는 뜻이죠.

23절에서는 마지막 속마음을 최종적으로 내놓습니다.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이 부분에 대해 유진 피터슨의 메세지 성경은 이렇게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미래가 없이 비탄에 빠져 일생을 살아갈 자에게 왜 생명을 주셨는가?” 미래가 없는 자기 상황을 한탄하는 욥이죠.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고통이 계속되자 그 상태 속에서 인생이 마무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 욥이죠. 그런 고통 속에서 욥이 인간적인 무기력 상태에 빠져든 모습을 고백한 것이죠. 그만큼 인간은 고통 앞에 자신의 연약한 한계를 알고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욥의 이런 고백, 자기 태, 자기 생일, 자기 현실을 저주하는 것 같은 이런 고백들은 너무나도 절박한 인간의 연약한 본 모습입니다. 그렇기에 정직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역설적인 고백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과 고통에 처해도 욥처럼 정직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나 우리 구원받은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십자가는 모든 고난의 총체적인 모습입니다. 그 고통 속에서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고 진솔한 고백하셨던 주님을 바라봅니다. 욥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 자기 태와 자기 생일과 현재의 모습을 한탄하는 것도 역설적인 고백임을 깨닫습니다. 그만큼 정직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욥의 모습입니다. 오늘을 사는 저희도 고난과 고통 앞에 정직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살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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