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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역대하

역대하29장-31장 새벽설교 역대하29장-31장 말씀묵상연구

by 똑똑이채널 2022.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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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대하29:20-36)

 

남왕국 유다의 13번째 왕 히스기야는 25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요아스와 요시야가 각각 왕으로 등극할 때 나이가 7살과 8살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히스기야는 비교적 왕성한 열정과 힘을 가진 나이에 왕위에 오른 것이죠. 그만큼 히스기야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젊은이의 열정이란 밤잠을 자지 않고 자기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죠. 그것이 젊음의 열정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 젊음의 나이에 왕으로 등극한 히스기야도 자신의 피 끓는 청춘을 남왕국 유다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바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약소국에 해당하는 남왕국 유다가 마주한 국제정서는 결코 호락호락한 상황이 아니었죠. 당시에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당한 후였고, 열강의 대국들이 남왕국 유다마저 집어 삼키려고 하던 때였죠. 그러니 그 당시의 약소국 왕들은 모두가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했고, 외교나 국방이나 정치와 경제에 기틀에 잡는데 주안점을 둬야 했죠. 한 마디로 자기 젊음의 힘을 온 국력을 키우는데 주안점을 둬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런 주안점은 뒤로 한 채 오로지 하나님의 성전 제사를 다시금 회복시키는데 모든 총력을 기울였죠. 이것이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한 모습이요, 그 모습을 일컬어 다윗을 닮았다고 평가한 성경의 근거였죠.

 

 

오늘 읽은 말씀은 어제 읽었던 내용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왕이 되어 대대적인 성전 정화작업을 벌였고, 성전제사가 멈춰진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해 8일 동안 정결례를 시행했습니다. 그 모든 우상들을 말씀히 정리하고 청소해서 이제 제사드릴 준비를 갖춘 상태였죠.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 20절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일찍이 일어나 성읍의 귀인들을 모아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성전 정화작업을 시행한 이후에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마치 소풍을 가는 아이가 밤새 잠을 못 이루는 것처럼, 셋방살이하던 부부가 손수 장만한 집에서 잠을 자는데 너무나도 기뻐서 잠을 못 이루는 것처럼, 새롭게 단장되고 정리된 그 성전에서 제사드릴 것을 생각한 채 잠을 못 잔 상태였죠. 아니면 일찍 설레는 마음으로 일어난 그런 상태를 보여주는 마음이죠.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향해 아침 일찍부터 ‘귀인들’ 곧 문무백관들을 대동해서 제사드리고자 올라갑니다. 마치 여러분들처럼 차가운 새벽공기를 가르며, 그 으스름한 새벽 시간에 하나님의 성전을 찾아 올라가는 모습이죠. 그때 그들의 심장이 어땠을까요? 오랫동안 멈춰 있던 시계바늘을 움직이는 것처럼, 뭔가 요동치는 느낌이지 않았을까요?

본문 21-24절은 히스기야 왕이 제사장들에게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드리게 하는 모습입니다.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장면이죠. 여기에서 수송아지 일곱 마리, 또 숫양 일곱 마리, 어린 양 일곱 마리, 숫염소 일곱 마리로 속죄제물을 삼았다고 합니다. 그 7마리는 단순히 7마리를 칭하는 게 아니라 완전수를 가리키는 것이죠. 그만큼 여태 멈추었던 번제와 속죄제를 이제는 온전히 드리겠다는 그런 뜻이죠. 영적인 암흑과 우상숭배의 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유다 땅에 새로운 희망이 싹터 오르는 장면이죠. 온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25-28절은 성전에서 제사할 때 찬양을 담당했던 레위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히스기야는 다윗이 조직하고 개편했던 그 찬양대원들까지도 다시금 복원하는 모습입니다. 멈춰 있던 제사를 복원하는 마음, 그래서 제사를 드리면서 용서받은 그 기쁨을 누리는 그 마음, 그런 마음과 자세를 담아 지금 찬양대원 레위인들이 하나님께 기쁨과 감격의 찬송시를 읊조리며 찬양하는 모습이죠. 그 얼마나 감격스런 모습이겠습니까?

 

 

그 제사가 무르익을 무렵 히스기야는 은혜와 감격의 여운에 젖이 있는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 31절입니다. “이에 히스기야가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제 스스로 몸을 깨끗하게 하여 여호와께 드렸으니 마땅히 나아와 제물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전으로 가져오라 하니 회중이 제물과 감사제물을 가져오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또한 번제물도 가져오니”

자신이 주도했던 제사 외에 백성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감사의 제사를 드리도록 하라는 권면입니다. 우상에 사로잡혀 있던 백성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지 못했던 백성들, 그들이 이제는 주도적으로 나아가서 하나님과 끊어진 관계를 복원하고 회복하는데 주력하라는 지침이죠. 그때 그들이 자발적으로 각자의 손에 하나님을 향한 제물을 가지고 나왔다는 말씀입니다.

그 제물의 양이 실로 엄청났는데, 본문 32-33절에 따르면 수소 70마리, 숫양 100마리, 어린양 200마리, 소 600마리, 양 3000마리를 제물로 드렸다고 밝혀줍니다. 이토록 많은 제물을 잡기 위해 제사장이 부족한 상태였죠. 그래서 성결한 레위인들이 거들만큼 다 거들었고, 그런데도 제사가 쉬임없이 계속된 상태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이 고압적인 분위기로 행한 것이거나 집단적인 최면상태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죠. 오직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행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36절 상반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

그야말로 왕이 하나님 앞에 중심어린 마음과 자세를 갖추자 그 동안 매여 있던 백성들의 마음도 빗장 풀리듯 완전히 풀린 상태로 모두가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드린 것이었죠. 그래서 그 일이 갑자기 되었다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그렇게 엄청난 제물을 들고 오고, 또 제사장들의 인원도 부족해서 레위인들의 손을 빌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모두들 힘들고 어렵다는 아우성이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거기에는 아우성치는 소리가 아니라 기쁨의 소리, 즐거움의 소리, 곧 온 마음과 뜻을 모아 하나님을 향해 즐겁게 찬양하는 소리만 울러퍼진 것이었죠. 그 일이 갑자기 된 일이긴 했지만 그만큼 자발적인 즐거움에 동참한 일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초대교회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들에게는 어떤 현대적인 시스템이나 건물이 있었던 게 아니었죠. 그저 각 가정에서 돌아가며 예배하고, 많이 모이면 회당에서 모여 예배를 드리던 초대교회 성도들이었죠. 그런데 그 초대교회에 베드로가 설교할 때 하루 3천명이 교회로 유입되는 상황에 모두가 힘들다고 아우성치거나 길이 막혔다고 고함치는 모습은 없었죠. 더 나아가 그들은 자신들의 전답도 팔아 교회에 가져왔는데, 그렇게 많은 것들이 벅차다고 또 힘들다고 소리치는 이들도 없이 모두가 즐거움으로 동참했죠. 예기치 못한 그 일들을 아주 은혜 가운데 자연스럽게 진행했던 것입니다.

 

 

과연 예기치 못한 그 일들을 은혜롭게 헤치고 나갈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본문 31절입니다. “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으므로 히스기야가 백성과 더불어 기뻐하였더라”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예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진리요 문제 해결의 실마리죠. 국제정서 속에서 약소국가에 해당하는 남왕국 유다의 히스기야 왕이 다른 인간적인 방법보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생각에 자기 젊음을 바치며 불을 지필 때, 그것이 유다 백성들의 심장에 붙을 붙이게 된 것이고, 그때 모든 백성들이 함께 제물을 가지고 와서 번제와 속죄제물로 드렸고, 그렇게 갑작스레 몰려든 그 많은 제물이었어도 모두가 힘을 모아 감당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새겨주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세상 속에 풀어가야 할 일들이 많지만 인간적인 방법을 앞세우기보다 먼저 하나님 중심으로 행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때 예기치 못한 풍성한 은혜를 맛보게 해 주실 것이고, 거기에 참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와 같은 은혜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과 기도

 

사랑하시는 주님.

나라의 위기 앞에 히스기야는 근심과 불안에 매몰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을 향한 자세를 갖췄습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드리리는 열정을 불태울 때 온 백성들에게 그 마음이 전달되어 예기치 않는 은총도 덧입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저희들의 우선순위도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두게 하시옵소서.

그 열정이 다른 이에게도 전이되게 하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덧입는 저희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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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대로 준행하게 하셨더라(대하30:1-27)

남왕국 유다의 13번째 왕 히스기야는 25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 젊은 패기의 나이에 그는 국제정서의 외교력에 집중한 게 아니었죠. 그 열정과 패기를 하나님께 쏟아 부어드렸죠. 이른바 아버지 시대에 닫았던 성전 문을 열었고, 무너진 성전 제사를 회복시키는 열정이 그것이었죠. 그것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한 모습이요, 그 모습을 일컬어 다윗을 닮았다고 역대기 기자는 평가했죠.

사실 그 당시 열강의 구도는 앗수르가 북왕국 이스라엘을 침략해 수도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점차 북왕국 이스라엘을 쓸어버린 상황이었죠. 이른바 북이스라엘의 멸망 직전에 히스기야가 남왕국 유다의 왕으로 오른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왕이 되었든지 간에 신흥강대국인 앗수르 제국에게 잘 보이고자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 옛날의 조선조 왕들도 누구든지 왕이 되면 중국의 황제에게 알현했던 것처럼 유다 왕 히스기야도 그 앗수르 제국의 대왕 살만에셀에게 잘 보여야 하는 입장이었죠.

하지만 25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그 열정과 패기를 하나님께 쏟아부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지 않았겠습니까? “나를 존중하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b) 한 말씀을 받든 히스기야였으니 말이죠. 그런 열정과 패기로 히슥야는 닫힌 성전의 문을 열었고 우상의 제단들도 다 정리한 것이었죠.

그렇게 기본적인 성전의 세팅을 한 후에 무엇을 했습니까? 이제는 하나님을 향해 제사를 드렸죠. 그를 위해 수송아지 일곱 마리, 또 숫양 일곱 마리, 어린 양 일곱 마리, 숫염소 일곱 마리로 속죄제물로 바쳤고, 그것들을 바쳐 드릴 때 찬양대를 꾸려서 감격과 기쁨의 찬송을 주님께 올려드렸죠. 히스기야가 왕으로서 그 제사의 모범을 보일 때 일반 백성들도 이제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을 잡아서 드렸죠. 수소 70마리, 숫양 100마리, 어린양 200마리, 소 600마리, 양 3000마리였는데, 갑자기 그렇게 많아지는 양 앞에 제사장이 부족한 상황이었죠. 그렇지만 그 일들을 능히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제사장도 그렇고 일반 백성들도 그렇고, 왕과 모든 백성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그 일들을 감당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거기에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오늘 읽은 본문은 히스기야 왕이 무너진 성전도 수축하고 제단도 정화하여 속죄제를 드린 이후에 온 백성들까지 자원하는 마음으로 제사에 참여한 이후의 일입니다. 이제 유월절을 지킨 모습을 보여줍니다.

유월절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큰 절기이지 않습니까?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 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바르게 하셔서, 그들에게 죽음의 심판을 넘어간 사건이죠. 그 사건을 기억하면서 오랫동안 지키지 못한 유월절을 히스기야가 다시금 복원하여 하나님 앞에 지키고자 한 것이었죠.

본문 5절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명령을 내립니다.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른바 남쪽에서부터 북쪽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포합니다. 그만큼 남쪽과 북쪽의 온 이스라엘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하나님의 절기 곧 유월절을 지키자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보발꾼들이 그 통보문을 남쪽과 북쪽의 각 성읍을 돌며 알리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이죠. 그것이 앗수르 제국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요 진정으로 살 길이라고 알린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조상이나 선조같이 엉뚱하게 우상을 숭배할 게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셨던 유월절을 다시금 철저하게 지키자고 한 것이죠.

 

 

그 보발꾼들이 각 성읍을 돌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이야기하는데 각 성읍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합니까? 본문 10-12절입니다. “보발꾼이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방 각 성읍으로 두루 다녀서 스불론까지 이르렀으나 사람들이 그들을 조롱하며 비웃었더라 그러나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 중에서 몇 사람이 스스로 겸손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이르렀고 하나님의 손이 또한 유다 사람들을 감동시키사 그들에게 왕과 방백들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한 명령을 한 마음으로 준행하게 하셨더라.”

그 중에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방의 사람들, 그리고 스불론 지역의 북쪽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그 보발꾼들을 조롱하고 비웃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헛소리 하지 말라는 것이죠. 이미 나라가 망했는데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한들 무슨 소망이 있냐는 뜻이죠.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들 중에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 중에서 어떤 이들은 겸손한 마음으로 예루살렘 나온 이들이 있었다고 증언해줍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다는 뜻이죠.

바로 이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NO 할지라도 그 속에서 Yes하는 사람이 있는 것, 모두가 Yes해도 그 속에서 당당하게 No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그만큼 하나님 앞에 소신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 공동체는 무너지지 않고, 회생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를 통해 남왕국 유다를 중심으로 다시금 하나님의 나라 온 이스라엘을 세우도록 하자는 역대기 기자의 바람인 것입니다.

 

 

본문 13-17절을 보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북쪽에서 함께 모여든 사람들이 제단 중심으로 성결하게 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그런데 18절을 보면 그 중에서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잇사갈과 스불론의 무리들이 깨끗하게 하지 않았다고 밝혀주죠. 유월절 양을 먹을 때 기록한 규례를 어겼다는 뜻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때부터 지켜 온 우상숭배 때문에 하나님의 절기를 어떻게 지켜왔는지 잃어버렸기 때문이죠. 그래서 유월절 양의 제물을 먹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실 앞에 히스기야가 어떻게 합니까? 호통치고 분노합니까? 18절 마지막 부분과 19절을 보면 오히려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죠. 마치 예수님의 마음처럼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그들이 그 결례를 범한 것은 그들의 조상들을 닮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그들의 죄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20-23절을 통해 히스기야의 그 기도를 들으셨고 그 백성들을 고치셨다고 밝혀줍니다. 바로 그 후에 본격적으로 유월절을 지키는 모습이죠.

본문 21-27절까지는 온 백성들이 하나님의 유월절을 7일간 지킨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때 찬양대원들도 힘껏 감격과 축제의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렸죠. 더욱 은혜로운 것은 24-27절의 말씀입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가 수송아지 천 마리와 양 칠천 마리를 회중에게 주었고 방백들은 수송아지 천 마리와 양 만 마리를 회중에게 주었으며 자신들을 성결하게 한 제사장들도 많았더라 유다 온 회중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이스라엘에서 온 모든 회중과 이스라엘 땅에서 나온 나그네들과 유다에 사는 나그네들이 다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에 큰 기쁨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기쁨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 그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하늘에 들리고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이르렀더라.”

그 축제의 절기 곧 유월절을 7일간 지킨 이후의 모습입니다. 히스기야도 그렇고 방백들 곧 백성의 지도자들도 자기들의 수송아지와 양들을 일반 백성에게 내어 줬다는 뜻입니다. 자기 소유물을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무엇을 깨닫게 해 주시는 말씀입니까? 진정한 예배자는 그만큼 나눔의 삶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아끼는 자여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그런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주역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과 기도

 

사랑하는 주님.

젊음의 열정과 패기의 때에 히스기야처럼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무너진 제단도 제사도 다시금 회복하는 열정을 회복하게 하시옵소서.

유월절도 다시금 지키려는 히스기야의 모습입니다.

그때 비웃는 이들도 있었지만, 소신껏 지키는 이들이 있었고,

그를 통해 그 공동체가 다시금 기사회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희들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소신껏 마음과 뜻을 다해 그 일을 감당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사는 저희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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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더미들을 나눠주며(대하31:1-21)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천지창조’ 벽화가 그려져 있죠. ‘하늘이 내린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그림입니다. 그는 또 3대 조각상으로 유명하죠. 피에타상, 다비드상, 그리고 모세상이 그것이죠. 그런 조각상을 본 어떤 이가 “당신은 어떻게 그런 재주가 가능한가?”하고 물었다죠.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단지 돌 속에 들어 있는 형상을 끄집어 낼 뿐”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마틴 루터를 필두로 종교개혁이 일어나는데 보통 Re-Formation이라고 칭하죠. 그것은 ‘반복’을 뜻하는 ‘Re’라는 접두어와 ‘생성’을 뜻하는 ‘Formation’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개혁이란 본질을 추구하기 위해 생성된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깎고 다듬는 과정이라는 뜻이죠. 그것은 마치 미켈란젤로가 형상을 끄집어내는 예술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지난 세 시간에 걸쳐 우리가 살펴본 히스기야의 종교개혁도 같습니다. 25살에 왕이 되어 맨 먼저 정치력이나 외교력을 다진 게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한 그의 종교개혁도 실은 외적인 형상을 갈고 다듬은 게 아니라 그 동안 잠재돼 있던 유다 백성들의 마음을 끄집어 낸 것이었죠.

그래서 29장에서 성전을 청소하고, 하나님보다 앞세웠던 우상들을 철거했고, 레위인 찬양대를 꾸려서 하나님 앞에 찬양을 드리며, 각 개인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희생제사를 드렸죠.

30장에서 우리가 주목했던 것은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절기, 곧 유월절을 지켰다는 것이죠. 유월절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셔서 그 피를 보시고 심판을 넘어가셨고, 그때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자유케 된 날이었죠. 그 은혜를 기억하여 영원토록 지키게 한 날이 곧 유월절인데, 세례 요한은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보고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하고 고백했죠. 예수님께서는 구약시대의 어린양의 속죄제를 담당하신 분이셨죠. 그 유월절을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보발꾼을 뛰워 지키도록 했는데, 그중에는 무시하고 비웃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걸 지키고자 한 이들이 있었죠.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그 율례를 어떻게 지키는지 모르는 이들 때문에 어려움을 당했지만, 그런 그들까지 히스기야가 품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나갈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셨죠. 그리고 히스기야와 지도자들이 나서서 자기 물질과 재산을 나눠 백성들에게 베푸는 아름다운 일도 행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31장에서도 히스기야가 또 하나의 개혁을 단행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이 모든 일이 끝나매 거기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들을 깨드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으며 유다와 베냐민 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여 없애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각각 자기들의 본성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이 모습은 어제 읽은 30장에 따라붙은 말씀이죠. 유월절 축제를 지키고 온 백성들에게 왕과 지도자들이 음식을 나눠 먹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백성들이 나서서 그 동안 하나님 보다 앞세웠던 우상들을 자발적으로 깨뜨리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히스기야 본격적으로 시행케 된 종교개혁의 세 번째 모습이죠. 첫 번째 종교개혁은 성전의 문을 열고 제단을 청결하게 하고 레위인들을 성결하게 하여 제사를 준비하는 종교개혁이었고, 둘째는 레위인들 가운데 찬양대를 꾸려 찬양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속죄제를 드리는 종교개혁 그러면서 유월절까지 모두가 전심을 다해 지켰고, 이제 세 번째로 히스기야가 단행한 종교개혁이 무엇인지 본문 2-4절에 나와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반열을 정하고 그들의 반열에 따라 각각 그들의 직임을 행하게 하되 곧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여호와의 휘장 문에서 섬기며 감사하며 찬송하게 하고 또 왕의 재산 중에서 얼마를 정하여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번제 곧 아침과 저녁의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의 번제에 쓰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을 명령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몫의 음식을 주어 그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힘쓰게 하라 하니라.”

이전에는 성전 문도 닫아서 번제와 각종 제사를 드리지 못해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살아갈 길이 막막했는데, 이제는 그 모든 제사를 복원하고 다시금 새롭게 행하도록 했으니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더 성실하게 그 직무를 수행토록 할 수 있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그를 위해 온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음식물을 담당토록 요청한 것이었죠. 이게 바로 히스기야가 공포한 세 번째 종교개혁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어떻게 응답합니까? 본문 5-10절을 보면, 백성들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첫 열매들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고, 소와 양의 십일조는 물론이고, 성물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는데, 그렇게 가져 온 것이 7절에 보면 셋째 달에서 일곱째 달까지 그걸 드렸다고 밝혀주죠. 그만큼 그동안 드리지 못한 십일조의 소산물, 또 성물의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리기 시작했다는 말씀이죠. 그만큼 하나님 백성의 증표이자, 이 땅의 모든 소유물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선한 청지기적인 자세로, 백성들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여태껏 지키지 못했는데 히스기야 시대에 비로소 백성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10절에 보니까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그 십일조를 통해 먹고 먹어도 남게 되었다고 밝혀줍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복을 베풀어 주셨다는 말씀이죠.

 

 

그렇다면 그 십일조를 어떻게 사용했습니까? 본문 11-19절을 보면, 그 십일조를 성전의 창고에 들여 저장하게 했고 그것들을 차례대로 제사를 담당하는 레위인들 곧 찬양대를 담당하는 레위인들 또 성전의 문제기를 담당하는 레위인들 그리고 성전 밖에서 백성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쳤던 레위인들에게 그 몫을 정해서 나눠줬다고 밝혀줍니다.

물론 구약의 율법에는 성전에서 봉사하고 섬기는 레위인들에게만 그 십일조를 나눠주라고 돼 있지 않습니다. 3년에 한 번씩은 그 십일조를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에게 구제용으로 그 십일조를 나눠주라는 말씀이 있죠.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14:28-29)

그렇다면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까? 교회는 선교헌금 봉투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죠. 주님의 자녀들이 온전한 십일조만 드려도, 그것으로 교회 유지와 교역자 사례비와 선교비로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제작년에는 얼마 되지 않지만 우리 교회도 두 곳의 교회에 선교비를 보냈고, 작년에는 인도에 있는 선교사에게도 보낸 적이 있죠. 그야말로 아주 적은 액수였지만 주님의 뜻을 실천코자 함이었습니다. 물론 전 성도들이 모두가 십일조에 동참한다면 더 많은 일들을 감당할 수 있지만 그런 여력이 안 돼서 적게나마 행한 선교였습니다.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히스기야가 우상숭배로 인해 닫힌 성전의 문을 열어제쳤다는 것이죠. 속죄제와 절기를 지켰다는 것이죠. 그리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본연의 직무를 감당토록 온 백성들로 하여금 십일조를 바치도록 할 때 모든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십일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반차대로 섬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했다는 뜻이죠.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그런 일에 전심을 다해 동참하고 있다면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길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들을 사용하는 물질의 청지기들 아닙니까? 주님 앞에 선한 청지기 답게 주님께서 주신 것들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주님 앞에 온전한 자녀의 모습입니다. 그와 같은 십일조를 통해 교회의 유지비와 목회자의 생활비와 선교비로 나눈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주님의 교회로 삼아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성도들의 삶에 하나님께서 복을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은혜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과 기도

 

사랑하시는 주님.

히스기야갸 그동안의 우상숭배 때문에 닫힌 성전 문도 열어 제쳤습니다.

그리하여 제단도 정화하고 속죄제를 드리고 유월절 절기까지 지켰습니다.

그로 인해 온 백성들이 각자 자기 성읍의 우상들을 다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십일조를 바치도록 하여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성전에서 일하며 살도록 했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돕도록 했습니다.

그와 같은 십일조 생활에 온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드렸습니다.

히스기야의 그런 종교개혁이 오늘 저희들의 심령 속에 깊이 각인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주님 앞에 선한 청지기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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