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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역대하

역대하 1-3장 말씀묵상 역대하1-3장 새벽묵상말씀

by 권또또 2021.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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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브온 산당으로 갔으니(대하1:1-17)

우리는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를 읽어나가면서 다윗의 인생을 10년 단위로 생각해 봤습니다. 이새의 아들 중 8번째 아들인 다윗은 형들과 배다른 아들이었죠. 그 속에서 양치기 일을 도맡았습니다. 다윗의 10대 시절은 유대 땅 베들레헴의 시골 촌뜨기로 살던 10대였죠. 그 속에서 자립정신을 키웠습니다. 19살의 10대 후반 곧 20대엔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는데 골리앗을 쓰러트린 후엔 사울의 사위가 되었다가 도리어 사울의 칼날을 피해 다녀야 하는 도망자 신세를 겪었죠. 그때 유다 광야를 중심으로 4(삼상21-26)간 도피행각을 벌였고 이후 34개월간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의 통제권역인 시글락 지역에서 은둔자의 삶을 살아야 했죠. 30대 시절엔 76개월간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는데, 그 중 2년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과 내전을 치렀고 나머지 56개월은 난공불락의 여부스 성읍을 점령하는 세월을 보냈죠. 그 성읍을 점령한 후에 다윗은 그 성읍을 예루살렘으로 칭했고 그곳으로 천도하여 명실상부한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 되었죠.

그렇게 30대 시절에 온 이스라엘 전역의 왕이 된 다윗은 40대가 되어 인생의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죠. 그래서 예루살렘에 자기 궁궐을 화려하게 짓고 자신이 세우고자 한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 곧 신정국가임을 알리기 위해 하나님의 법궤를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 집에서 모셔오려고 했죠. 그때 소를 동원해 법궤를 끌고 오는데, 수레를 끈 소들이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뛸 때 웃사가 법궤를 만지자 하나님께서 그를 치셨죠. 그 사건을 목격한 다윗은 자기 자신이 그 법궤를 자기 부적이나 자기 과시용으로 삼고자 한 사욕이 깃들지 않았는지 점검하게 되었죠. 그래서 3개월 동안 오벧에돔의 집에 그 법궤를 모셔두게 한 후에 다시금 그 법궤를 모셔오는데, 이번에는 수레로 끌고 오게 하는 게 아니라 모세의 율례와 법도를 좇아 레위인들을 동원해 법궤를 메고 오도록 했죠. 그 길목에서 비파와 수금과 제금과 나팔을 불고 찬양대를 구성해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왔죠. 그때 다윗은 너무나도 즐거워서 옷이 내려갈 정도로 기쁨의 찬양을 올려드렸죠. 그 후 다윗은 법궤를 모실만한 성전도 짓고 싶어했는데 하나님께서 제동을 거셨죠.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과 틀에 제한당하지 않는 무소부재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다윗 생각하기에 자신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에, 바로 그런 이유들로 인해 성전건축을 막으셨죠. 하지만 다윗의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만은 받으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언약을 베풀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승리할 것이다, ‘너의 나라와 후대를 영원토록 견고케 해 줄 것이다고 약속해주셨죠. 그 후 다윗은 어디를 가든지 승리했죠. 이스라엘의 서쪽 블레셋, 동쪽 모압과 에돔, 북쪽 다메섹과 아람까지도 모두 정복하여 조공을 바치게 했습니다. 그것이 다윗의 40대 시절이었죠.

이제 50대 안정기에 들어설 무렵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그 시절에 큰 죄악에 걸려 넘어졌고 연쇄적인 죄의 후유증들을 겪었죠.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해가 바뀌면 왕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병사들을 위로하고 격려해 줘야 할 책무가 있었죠. 하지만 다윗은 그 책무를 감당치 않고 왕궁에 머물렀는데, 그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고, 그 남편 우리아까지 최전방에 보내 적의 칼에 죽게 만들었죠. 그때 나단 선지자가 지적하자 다윗은 침상을 적실 정도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성령을 거두지 말라고 간절히 간구했죠.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의 회개를 받으셨지만 그 죄의 후유증들은 겪게 하셨죠. 공식적인 그의 19명 자녀들 가운데 첫째 아들 암논이 이복여동생 다말을 강간했고, 다말의 오빠이자 다윗의 셋째 아들인 압살롬이 2년간 음모를 꾸며 난을 일으켜 큰 형 암논을 죽였고, 이후 압살롬이 외조부의 나라 그술로 도망가 3년간 살다가 요압 장군의 중재에 의해 예루살렘 궁으로 돌아왔는데, 2년 만에 다윗의 얼굴을 보지만 그로부터 4년 동안 압살롬은 백성들의 송사를 맡아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았고, 급기야 헤브론에 올라가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왕이 되죠. 내친김에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예루살렘 궁으로 처들어 오는데, 그때 다윗은 피난길에 올라 요단강을 건너 저 멀리 마하나임까지 도망을 갔죠. 그러나 다윗의 군사와 압살롬이 진두지휘하는 전쟁을 통해 그 아들 압살롬은 죽었고, 다윗은 다시 요단강을 건너 예루살렘 궁으로 돌아왔죠. 그런 격랑의 사건들이 50대부터 60대 초반까지 있었던 일들입니다.

이제 60대 후반에 접어들어 무엇을 했습니까? 다윗은 그때 또다시 죄악을 범하는데,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그 군사력은 얼마나 되는지, 헤아린 것이었죠. 그렇게 해서 헤아린 숫자가 북이스라엘은 110, 남 유다는 47, 합계 157만 명이었죠.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600만 명이 넘었죠. 그것이 역대상 21장에 나온 내용인데 그 일로 하나님께서 7만명 곧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30만명을 치신 셈인데, 그때 다윗은 하나님 앞에 회개의 번제와 화목제물을 드렸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곳을 성전을 세울 터전으로 삼아주셨죠. 그래서 자신의 배다른 10번째 아들 곧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 온 문무백관들을 불러 성전을 짓도록 독려하는 것으로 자기 소임을 마치고 70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상이 다윗의 대략적인 인생입니다. 우리가 역대상 1-29장까지 살펴봤는데, 역대상 1-9장까지는 아담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후손들 그리고 베냐민 지파 출신 사울 왕을 살펴봤고, 역대상 10장부터 마지막 29장까지 다윗이 왕이 된 것과 성전건축에 관한 말씀을 헤아려봤습니다. 그중 역대상 10-20장까지가 다윗의 10, 20, 30, 40대를 압축한 말씀이고, 역대상 21-29장은 다윗의 60대 후반 곧 말년의 일입니다.

우리가 상고한 것처럼 역대기는 바벨론에 패망한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귀환하여 나라를 재건하고자 쓴 역사실록이죠. 그 초점은 가장 왕성한 다윗의 왕국에 포인트를 잡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성전건축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죠. 무너진 이스라엘을 재건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과 뜻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길이 성전건축에 달려 있기 때문이죠. 그런 마음으로 역대기를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역대기상을 기록하면서 29장에서 끝을 맺었는데, 그때 다윗은 인생 말년에 접어들어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지명하고 문부백관들을 불러 성전건축을 독려하면서 죽죠. 그리고 이제 역대기하로 넘어오게 되는 것이죠.

역대하는 1-9장까지 솔로몬의 성전건축과 통일왕국의 역사를, 10-3621절까지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뺀 유다왕국의 역사를, 마지막 3622-23절까지는 바벨론 제국의 뒤를 이은 바사 곧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대왕이 칙령을 내려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귀환토록 한 조치까지 담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역대하 1장은 솔로몬이 왕이 되어 맨 먼저 무엇을 했는지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도 아버지 다윗처럼 문무백관들을 데리고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죠.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통치하고자 한 나라가 아버지 다윗의 나라처럼 신정국가 곧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국가임을 알리고자 한 것이죠. 그런 뜻으로 그가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 제사를 드립니다. 이 내용은 열왕기상 3장에 나와 있는 말씀이기도 하죠. 솔로몬은 그곳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마리의 희생 제물 곧 일천 마리 번제물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것은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다윗의 배다른 10번째 아들 중에서 자기 자신을 왕으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기 위함이었죠.

 

그것이 1-6절의 말씀인데, 7절에 하나님께서 그 밤에 솔로몬에게 나타나 무엇을 줄꼬, 하십니다. 그러자 솔로몬은 9-10절을 통해 이렇게 고백하죠. 주께서 나를 땅의 티끌 같이 많은 백성의 왕으로 삼아주셨으니 이 백성들을 바르게 재판하고 다스릴 수 있도록 지혜와 지식을 주사

열왕기상 3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달라고 간구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백성들을 바르게 재판하고 다스릴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이나 장수도 구하지 아니한 솔로몬에게 그 모든 지혜와 지식은 물론이고 나머지 것들도 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죠. 그런 과정을 통해 13-17절까지 솔로몬이 왕궁으로 돌아와 나라를 다스린 모습으로 본문의 말씀을 끝을 맺습니다.

 

오늘 이상과 같은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다윗도 그랬지만 솔로몬도 그런 것처럼, 우리의 삶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고 살 것인지를 일깨워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삶의 방향과 목적과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죠. 다윗도 솔로몬도 그 당시 하나님의 성전에 모든 삶을 집약시킨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세우는데 우리의 삶을 집약시킬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과 기도

사랑하는 주님.

저희들이 어떤 환경과 배경 속에서 태어났던지,

저희들이 어떤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든지,

그 초점을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맞추며 살게 하시옵소서.

그런 저희들의 가정과 후손들을 하나님의 기업으로 세워주시길 원합니다.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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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용납하지 못하겠거든(대하2:1-18)

다윗이 죽으면서 솔로몬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때 솔로몬의 나이를 대략 20대 초반으로 성서학자들은 봅니다. 물론 솔로몬은 그 당시 왕이 될 자격조건이 안 되었죠. 다윗의 공식적인 아들들 19명 가운데 10번째 아들인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과 밧세바의 관계 속에서 태어난 두 번째 아들이죠. 그만큼 부정의 자식이라는 구설수에 올라 있겠죠. 그런 어린 시절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여디디아로 곧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삼하12:24-25)로 삼아주셨죠. 그래서 다윗의 첫째 아들 암논이 죽고, 셋째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을 쥐려다가 죽었고, 힘없는 늙은 다윗이 죽어갈 무렵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고 하는 상황이었죠. 바로 그런 상황속에서 솔로몬이 왕이 되었으니 어찌 그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제 살펴본 것처럼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 하나님께 일천 마리의 희생 제물을 드린 이유가 거기에 있었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네게 무엇을 줄고 내게 구하라고 하셨죠. 솔로몬은 부와 명예와 장수를 구하지 않고 어린 아이와 같이 출입할 줄 모르는 10대 후반이었으니, 무엇보다도 백성들을 바르게 이끌고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지식은 물론이요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명예와 장수까지도 주시겠다고 약속을 했죠. 실제로 전차, 기마병, 금과 은, 넉넉한 백향목까지 주셨죠.

무엇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습니까? 물질을 목적으로 삼으면 물질의 노예가 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삼으면 하늘의 은혜와 더불어 우리에게 필요한 물질까지도 채워주신다는 교훈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준비한 상황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1-10절은 두로 왕 후람에게 기술자와 재목을 요청하는 부분이 담겨 있고, 11-18절은 그 요청에 대해 두로 왕 후람이 친절하게 응답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큰 틀인데 먼저 1절을 보면 솔로몬이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자기 왕위를 위하여 궁궐 건축하기를 결심하니라.”

솔로몬이 성전과 궁궐을 짓고자 하는데 우선 순위가 무엇입니까? 열왕기상 6장을 보면 솔로몬은 왕이 된 지 4년이 지나 성전건축을 시작하는데 무려 76개월이 걸렸죠. 자기 궁궐을 짓는 데는 13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기록하죠. 성전과 자기 궁궐을 짓는 총 세월이 20년이 걸린 셈인데, 솔로몬이 왕으로 통치한 40년의 재위 중에 절반가량이 성전과 자기 궁궐 건축에 소요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그 두 가지 것 중에 솔로몬이 어디에 우선순위를 뒀냐는 점을 밝히고 있죠. 자기궁궐을 먼저 지을 수도 있는 솔로몬이었는데, 왕으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코자 성전건축을 먼저 앞세웠다는 점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의 나라에 둬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죠.

 

솔로몬이 성전건축에 필요한 인력과 재료를 어디서 뽑고 가져옵니까? 인력은 본문 2절 말씀처럼 짐꾼 7만명’ ‘석공 8만명’, ‘감독관 3600을 뽑았죠. 재료 곧 나무는 3절 말씀처럼 두로 왕 후람을 통해 백향목을 가져오게 하죠. 그래서 사신을 보내서 두로 왕에게 성전건축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그에 따른 건축기술을 지닌 재주 있는 사람과 백향목을 배로 실어 보내달라고 사신을 보내죠.

그러면서 솔로몬이 멋진 말을 하지 않습니까? 본문 5-6절입니다. 내가 건축하고자 하는 성전은 크니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들보다 크심이라.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이기에 어찌 능히 그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다.

무슨 말입니까? ‘두로 왕 히람이여. 내가 짓고자 하는 성전은 큰 성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보다 가장 크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찌 내가 그 하나님을 모실만한 성전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저 높고 큰 하늘과 하늘들, 또 그 위의 하늘이라도 결코 하나님을 모실 수 없을 진데, 온 우주의 주관자요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내가 어찌 내 손으로 건축한 이 전에 모실 수 있겠습니까?’, ‘다만 내가 성전을 짓고자 하는 것은 그 성전 앞에 나아가 분향하고자 하는 마음 뿐입니다’, 하면서 고백한 것이죠.

어떻게 솔로몬이 이토록 겸손한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미 우리가 역대하 23장과 역대상 28장을 통해 다윗이 솔로몬과 대신들에게 한 고백을 통해 알 수 있죠. 다윗이 솔로몬에게 이야기 하기를 나는 성전을 짓고 싶어 했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막으셨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님께서는 여태껏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신 분으로 결코 인간의 사고방식에 제한당하지 않는 무소부재한 하나님이셨다’, ‘그러니 혹여라도 성전을 짓고 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를 성전 안에 가두려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으니 아직은 때가 아니라 너는 성전을 짓지 말도록 하신 것이다’, ‘또 하나가 있다.’ ‘그것은 내가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다 하면서 성전건축을 제한하신 것이다하고 말이죠. 물론 그때의 피흘림이란 적을 칼로 죽이고 세운 하나님 나라의 피흘림도 있고, 자기 내부의 피흘림 곧 죄악의 피흘림도 없잖아 있는 것이죠. 그런 모습 속에서 솔로몬에게 말하기를 내 대에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다하고 말한 것이었죠. 다만 하나님께서 제한하실지라도 다윗은 성전건축에 관한 모든 재료를 준비해 놓았죠. 바로 두로 왕 히람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다윗이 솔로몬에게 이야기해줬기 때문에 오늘 본문을 통해 솔로몬도 두루 왕 히람에게 지원요청을 하면서 그와 똑같은 고백을 한 것이었죠.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님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놀라운 것은 오늘 본문의 고백을 솔로몬이 성전을 다 짓고 봉헌식을 할 때도 똑같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역대하 618절에 그 고백이 나와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선한 고백입니까? 우리가 본받아야 할 선한 마음과 자세죠.

 

솔로몬이 그렇게 지원요청을 하면서 사절단을 보냈을 때 두로 왕 히람이 어떻게 응답합니까? 본문 11절 이하를 보면 두로 왕 히람이 답장을 하죠. 솔로몬의 요청대로 성전건축 기술자들과 그에 따른 건축재료 곧 백향목을 보내주겠다고 말이죠.

물론 그것은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이 밀 이만 고르, 보리 이만 고르, 포도주 이만 밧, 기름 이만 밧을 주겠다고 약조한 상황에서 두로 왕 히람이 선뜻 그 모든 재원과 백향목을 보내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본문 17-18절입니다. 전에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 땅에 사는 이방 사람들을 조사하였더니 이제 솔로몬이 다시 조사하매 모두 십오만 삼천육백명이라. 그 중에서 칠만 명은 짐꾼이 되게 하였고, 팔만 명은 산에서 벌목하게 하였고 삼천육백 명은 감독으로 삼아 백성들에게 일을 시키게 하였더라.”

이 말씀은 본문 2절에 나온 짐꾼 7만 명, 석공 8만 명, 감독관 36백 명과 같은 인원입니다. 열왕기상 5장에서는 역군 3만 명, 짐꾼 7만 명, 석공 8만 명, 그리고 감독관 33백 명, 그래서 성전건축에 투입된 연인원이 총 183300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인원이 오늘 본문 17절에 기록된 이방인의 수, 곧 이방인들 가운데서 차출된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왜 솔로몬은 성전건축에 필요한 인원을 이방인들, 곧 이스라엘 땅에 흘러들어온 나그네와 노예로 살고있는 사람들을 뽑아서 성전건축을 감당토록 했을까요?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이나 노예로 삼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바로 그 말씀을 준행코자 함이었죠. 그것은 솔로몬만 그런 게 아니라 역대상 222절에서 이미 다윗도 그 율례와 법도를 준행한 바 있습니다. 다윗도 이방 사람을 불러 모아 석공의 일을 준비토록 한 바 있습니다. 솔로몬도 그 아버지 다윗처럼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에 따라 이방인들을 성전건축에 동원시킨 것이었죠.

물론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인이라는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구속사적인 관점에서는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성전건축에 동원된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은총이 이방인들에게 흘러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대역사가 이방 세계에까지 전파될 수 있다는 것이죠. 오늘날 교회당을 건축하거나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을 동원해서 하는 것과 같은 흐름이죠.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솔로몬의 겸손한 마음과 이방 세계에까지 하나님의 역사가 전파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오늘도 그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과 기도

사랑하는 주님.

솔로몬이 성전과 자기궁궐의 건축 중에 성전건축에 우선순위를 뒀고,

그 성전의 재료를 준비하면서 결코 자기과시나 자기허세에 빠지지 않는 겸손한 마음을 지녔습니다.

이방인들을 성전건축에 동원시켰는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이방세계에까지 전파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저희의 삶 속에서도 그런 겸손한 마음과 복음전파의 삶을 감당케 하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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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것은 야긴 왼쪽 것은 보아스(대하3:1-17)

20대 초반에 왕이 된 솔로몬은 먼저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 하나님께 일천 마리의 번제물을 드렸죠. 19명의 공식적인 다윗의 아들들 가운데 배다른 10번째 아들인 자신을 왕이 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었죠. 더 나아가 아버지 다윗처럼 신정국가임을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줄꼬 구하라고 할 때 솔로몬은 백성들을 재판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구했죠.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와 귀와 명예와 장수까지도 주셨습니다.

그 후 솔로몬은 자기 왕궁으로 돌아와 다윗의 정적들을 제거하고 나라를 평안한 체제로 만들어갔죠. 그로부터 4년이 되었을 때 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 그래서 두로 왕 히람에게 서신을 보내 성전을 건축하는데 필요한 기술자와 백향목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죠. 물론 그에 상응한 곡물들을 보내주겠다고 두로 왕 히람이 답을 답을 했죠. 그러면서 솔로몬은 내가 건축하려는 성전은 가장 크신 하나님을 모시는 전으로 큰 성전이요’, ‘다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님을 용납할 수 없듯이 이 성전안에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곧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이지만 이 성전을 짓고자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 분향코자 합임입니다.’ 하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두로 왕 히람도 그 뜻에 응대하며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금과 은과 동은 물론 청색 자색 홍색 실들을 잘 직조하며 나무까지 잘 조각하고 아로새길 수 있는 총 기술자로 두로 왕 히람과 이름이 비슷한 후람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죠. 놀랍게도 그 후람은 단 지역에 살던 납달리 지파의 여인의 소생(왕상7:14, 대하2:14)로 아버지만 두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성전건축에 필요한 인력들을 어떻게 준비했습니까?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 시대부터 이스라엘 땅에 들어와 살고 있는 이방인들의 수를 헤아리게 했죠. 그랬더니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이방인의 수가 153600명이었죠. 그중에서 역군 3만 명, 짐꾼 7만 명, 석공 8만 명, 그리고 감독관 33백 명을 뽑아 성전건축에 투입시켰죠. 연인원 183300명이었습니다. 총 관리감독자로 아도니람(왕상4:6)을 선정했죠. 그래서 이방인의 수가 153600명인데 성전건축에 동원된 연인원이 183300명이었다면, 이방인들만 성전건축에 투입한 게 아니라, 두로 왕히람이 보낸 기술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도 함께 참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방인들까지도 성전건축에 동원케 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속사의 은혜가 이방 세계에까지 흘러간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라는 것이었죠.

 

오늘 읽은 본문은 솔로몬의 통치 422일이 되었을 때 본격적으로 성전건축을 시작한 내용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본문 2절에 그 날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지 넷째 해 둘째 달 둘째 날 건축을 시작하였더라.”

솔로몬의 통치 422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지 480년이 걸린 해 곧 B.C.966년의 때의 일입니다. 그해에 성전건축을 시작했다는 말씀이죠. 그래서 76개월이 걸린 B.C.9598월에 성전건축을 완공한 것입니다.

 

본문 3-17절은 전체적인 성전의 규모에 대해 밝혀주고 있습니다. 성전의 지대는 3절에 길이 60규빗 약 30m, 너비 20규빗 약 10m, 높이는 열왕기상 6장에 30규빗 약15m정도로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4절에 보면 낭실 곧 현관이 나오는데 그 길이가 성전의 너비처럼 20규빗 곧 10m이고 높이가 120규빗으로 나오는데 그렇다면 600m가 되기 때문에 성전의 전체 높이인 10m를 훨씬 넘어서는 수치죠. 그래서 이 낭실의 높이는 필사자의 오류로 성경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본문 5-7절은 성소의 규모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5절 첫머리에 대전이 나오는데, 대전이란 말이 히브리어로 하바이트 하가돌’(הגדול הבית)인데 큰 집’(greater house)을 뜻하는 말입니다. 바로 성전의 외소(外所)인 성소(聖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오늘 본문에서는 밝혀주지 않지만 열왕기상 6장을 보면 지성소의 두 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8절에 지성소의 길이가 성전의 너비대로 20규빗 곧 10m이고, 너비도 20규빗 곧 10m였음을 밝혀주고 있는데, 성소는 그 길이가 지성소의 두 배이니까 40규빗 곧 20m이고, 너비는 20규빗으로 10m, 높이는 성전 전체의 높이인 130규빗 곧 15m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0-13절은 지성소 안에 두 그룹의 형상을 만들어 금으로 입혔다고 밝혀줍니다. 이 두 그룹이 무엇일까요? 천사 모양을 한 형상을 만들어 지성소 안에 안치한 법궤 두 편에 세워 놓은 걸 말합니다. 그 법궤를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천사를 통해 직접 주관하고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알려주는 것이죠.

그 두 그룹의 날개가 각각 5규빗 곧 3m정도 되고, 한쪽 날개는 성전벽에 닿도록 했고 한쪽 날개는 그 그룹의 날개에 각각 닿도록 했다고 하죠. 그러니까 왼쪽 손이 성전벽에 닿고 오른쪽 손은 다른 쪽 그룹의 날개에 닿게 하여 성전과 연합돼 있게 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면서도 법궤를 감싸는 모습을 하되 얼굴은 내전 곧 성전의 본관 모양을 하도록 했던 것이죠.

 

본문 14절 말씀은 휘장에 관한 내용입니다. 성소와 법궤가 있는 지성소를 구분하는 커튼과 같은 것이죠. 그것을 청색 자색 홍색실과 고운 베로 짜서 휘장문을 짓도록 했는데, 그 휘장에 그룹 곧 천사 모양의 형상을 수놓도록 했습니다.

 

본문 15-17절은 성전 밖 기둥 둘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교회 2016년 표어에 해당하는 야긴보아스라는 이름의 두 기둥이죠. 그 기둥의 높이가 각각 35규빗 곧 16m정도 되고, 꼭대기 머리가 5규빗 곧 3m가량 되는데, 그 기둥 머리에 석류 모양의 문양을 새겨 달아놓게 했죠. 그 기둥의 높이는 총 19m정도 되는 셈이죠. 19m터란 건물 규모로 보면 5층 높이에 해당하는 것이죠. 그런 놋기둥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햇빛이 내리쬐면 얼마나 웅장하고 화려한 빛이 났겠습니까?

그러나 그 기둥의 중요성은 5층 건물 높이의 높이나 웅장함과 화려함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름다운 장식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죠. 그 두 기둥의 중요성은 그 기둥의 이름 자체에 달려 있습니다. ‘야긴’(יָכִין)이란 그분이 세우신다’(He will establish), ‘보아스’(בֹּעַז)군함’(fleetness)를 뜻하는 말로 그분에게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솔로몬이 그 성전건축을 통해서 백성들의 심령 속에 심어주고자 했던 게 바로 그런 신앙고백이죠. 한 개인도, 한 가정도, 한 사회도 오직 하나님만 바로 세울 수 있고, 하나님에게만 그 능력이 있음을 믿으라는 것 말입니다. 성전기둥이 튼튼한 것처럼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하나님께서 굳게 세워주시고 견고케 세워주셔야 온전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상이 성전 입구의 두 기둥에서부터 낭실 곧 현관과 그 안쪽 성소, 그리고 그 안쪽 지성소에 관한 전체적인 규모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본문 1절에 그 성전의 터가 어디인가 하는 점이죠. 1절에 모리아 산이라고 나오지 않습니까?

이곳은 역대상 21장에 나오는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있는 곳입니다. 그때 다윗이 인생 말년에 하나님을 등지고 자기 과시와 자기 허세를 부리기 위해 인구수 곧 군사력의 수가 얼마인지 헤아리게 했죠. 바로 그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곳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이죠. 그곳을 하나님께서는 성전터전으로 삼게 해 주셨고요. 놀라운 것은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실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친 모리아 산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우리의 가슴에 새겨주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성전의 전체적인 규모가 그 당시 다른 어떤 신전보다 크고 월등하고, 성전 안팎을 금으로 붙여놔서 으리으리하다 해도, 결코 그 진성성을 놓치지 말라는 뜻이죠. 성전의 참된 의미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듯,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112절을 통해 너희가 내 마당만 밟을 뿐이냐.”하고 호통을 친 것이었죠. 진정한 마음이 없이 형식적인 제사만 드리고자 하느냐, 하는 뜻이죠.

그렇기에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시간, 나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탁하는 시간을 삼는 게 온전한 제사요 예배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이죠.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가 그런 예배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모습은 예배당 밖 삶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은총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과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솔로몬이 다윗의 성전설계도대로 통치 4년 만에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19m에 달하는 성전의 현관 문 앞의 두 놋기둥, 성전의 현관과 안쪽 성소,

그 안쪽의 지성소 그 전체 건물이 길이가 20m, 너비가 10m, 높이가 15m였습니다.

그 안팎을 금으로 붙여 참으로 웅장하고 으리으리하게 지었습니다.

76개월에 걸쳐 지은 그 성전을 보고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탄성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야긴과 보아스의 하나님을 잊지 말도록 했습니다.

성전이든 나라든 가정이든 일터든 하나님께서 세워주셔야 온전하게 세워질 수 있고,

하나님께 그 능력이 있음을 바르게 알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성전의 터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바친 모리아 산이었습니다.

저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야긴의 하나님 보아스의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도 나를 쳐서 주님께 복종시키고,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삶을 드리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예배당 안에서는 나를 드리는 예배자로 예배당 밖에서는 걸어다니는 성전으로 살게 하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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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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