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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역대하

역대하 34장에서 36장까지 성경연구 새벽묵상말씀

by 똑똑이채널 2021.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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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아가 열여덟째 해에 성전을 정결하게 하기를(대하34:1-33)

 

남왕국 유다의 20명의 왕들 가운데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선한 행동을 보인 왕은 8명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8명의 왕들이 모두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던 산당까지 제거한 건 아니었죠. 그 8명 중에 2명만 진정한 개혁, 다시 말해 근본적인 개혁,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며 민간신앙을 주도했던 그 산당까지 제거한 왕은 제13대 왕 히스기야와 더불어 오늘 살펴 볼 16대 왕 요시야뿐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어떻게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까? 25세에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다윗이 행한 것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고, 백성들이 우상 숭배하던 산당까지 제거했고, 그들이 세운 신상조차 허물어 뜨렸고, 아세라 목상까지 찍어버렸고, 심지어 모세가 만든 놋뱀 근 800년 동안 신주단지처럼 섬겨오던 그 구리뱀까지도 완전히 부쉈고, 더 나아가 모세에게 명한 율례와 법도, 곧 하나님의 계명까지 철저하게 지키게 했던 왕이었죠.

 

 

그렇다면 요시야는 어떻게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그가 단행한 종교개혁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그는 8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것은 7살에 왕위에 올랐던 제8대 왕 요아스 보다 한 살 더 많은 나이에 왕이 된 것입니다. 그런 요시야가 예루살렘에서 31년간 통치했다고 밝혀주는데, 그가 순차적으로 어떻게 하나님 앞에 바른 종교개혁을 단행하는지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3절입니다. 왕위에 있는지 8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요시야가 8살에 왕위에 올라 8년을 지낸 16살 때의 모습이죠. 그때 하나님을 비로소 찾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때 비로소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죠.

3절 중반절입니다. 제십이 년에 유다와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여 그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리매 무리가 왕 앞에서 바알의 제단들을 헐었으며 왕이 또 그 제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리고 제사장들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였으며 또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사면 황폐한 성읍들에도 그렇게 행하여 제단들을 허물며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며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그의 통치 12년, 다시 말해 그의 나이 20살 때의 모습입니다. 그때 그는 온갖 우상들을 다 제거했고, 바알과 아세라 제단들을 제거했고, 그 신전을 섬기는 제사장들까지 다 처단하여 뼈를 불살라 버렸고, 북쪽의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모든 도시의 우상들까지 제거했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또 본문 8절을 보십시오. 요시야가 왕위에 있은 지 열여덟째 해에 그 땅과 성전을 정결하게 하기를 마치고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려 하여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시장 마아세야와 서기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를 보낸지라.”

그의 통치 18년의 해, 다시 말해 26살의 나이에 행한 개혁의 모습입니다. 이른바 16살의 나이에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시작했고, 20살의 나이에 남왕국 유다는 물론 북쪽의 여러 지역에 산재해 있는 우상과 각종 신전들을 다 무너뜨렸고, 그리고 26살의 나이에 성전을 수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만큼 외적의 침략으로 무너진 부분들, 또 아버지 암몬의 시대에 쌓아 올렸던 우상의 제단들을 말끔히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를 위해 필요한 경비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린 헌금을 통해 감당토록 했는데, 그 모든 지시사항을 대제사장 힐기야로 하여금 책임자를 맡겨 감당토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책임을 맡은 자들, 곧 대제사장 힐기야와 그에 따른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동원돼서 그 성전을 수리하는데, 본문 14절을 보면 그들이 그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율법책을 대제사장 힐기야는 서기관 사반에게, 서기관 사반은 요시야 왕에게 주죠. 그러면서 요시야 왕 앞에서 그 율법책을 읽는데 19절을 보면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고 밝혀줍니다. 왕이 그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뜻입니다.

그때 요시야 왕은 본문 20-28절을 통해 그 백성의 지도자급에 속한 자들, 그리고 여호와의 율법에 능통한 자들에게 자문을 구하죠. 과연 이 율법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말입니다. 이 율법책 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올바르게 시행해야 하는지 말이죠.

그러자 22절에 나오는 힐기야라는 여선지자가 나서서 정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재앙을 받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이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걸 왕의 사신들에게 전달하자 그 사신들이 왕에게 가서 알려주고, 이제 요시야 왕은 본문 29-33절을 통해 모든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불러 모으죠. 그렇게 불러모은 다음에 어떻게 합니까? 본문 30절입니다.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든 백성이 노소를 막론하고 다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려 주고 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하고 예루살렘과 베냐민에 있는 자들이 다 여기에 참여하게 하매 예루살렘 주민이 하나님 곧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의 언약을 따르니라.”

왕이 먼저 율법의 말씀을 듣고 옷을 찢으며 참회했고, 온 백성들과 방백들 곧 지도자들을 불러모아 하나님의 전 앞에 나아가 그 말씀을 읽어 줄 때 온 백성들도 함께 회개하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그 말씀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이죠. 그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이것이 그의 통치 18년의 해 곧 26살이 시행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제 나머지 15년 통치를 남겨둔 셈인데,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하는지 내일 살펴보고자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요시야 왕이 순차적으로 종교개혁을 단행한 모습입니다. 히스기야는 25살에 왕이 되어 29년을 통치한 왕이었죠. 당시의 나이 기준으로 25살은 왕성한 나이요, 사리분별이 바르고, 뭔가 뜻을 모으면 얼마든지 주도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나이의 때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종교개혁을 불도저처럼 밀고 나갈 수 있었죠. 하지만 요시야 왕은 8살에 왕이 되었기 때문에 아직은 여리디여린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의 종교개혁을 순차적으로 지혜롭게 펼쳐 나갔던 것이죠.

 

 

오늘 본문 말씀을 토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무언가를 개혁코자 하느냐, 그렇다면 주변 상황도 점검하고, 순차적으로 지혜롭게 행해야 한다는 것이죠. 뭔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시간을 갖고 서서히 개혁을 해야 아름답게 펼쳐 나갈 수 있다는 점이죠. 물론 요시야가 8살에 왕이 되어서 순차적으로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과 7살에 왕이 되어 그때부터 종교개혁을 주도한 요아스 왕도 있었죠. 그러나 그 차이는 요아스는 7살에 왕이 되었어도 그 뒤에서 모든 것들을 봐주고 지도해 주고 버팀목이 되어줄 제사장 여호야다가 있었지만 요시야 왕에게는 그런 뒷받침을 해 줄 만한 인물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홀로 그 일을 주도적으로 해 나가야 했기 때문에 시간을 갖고 함께 할 사람들을 찾아나선 것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아무리 아름다운 일도, 아무리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도, 무턱대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면 화가 될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기에 지혜롭게 순차적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죠. 이것은 우리의 가정과 일터의 모습 속에서도 본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성령님께서는 그 모든 상황에 화평을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죠.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그런 은총이 충만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과 기도

 

사랑하시는 주님.

오늘 8살에 왕이 되어 왕이 된 남왕국 유다의 16번째 왕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8살에 왕이 되고 8년을 지난 16살 때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고,

20살 때에 모든 우상 신전들을 부수었고,

26살 때에 성전을 수리하는 개혁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뭐든지 한꺼번에 행한 게 아니라 시간을 갖고 지혜롭게 개혁해 나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저희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도 정말로 이런 모습처럼 화평을 도모하게 하시옵소서.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나갈 때 모든 삶이 평안케 하시고 순조롭게 진행되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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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대하35:1-27)

8살 때 왕위에 오른 남왕국 유다의 제 16대 왕 요시야는 8년이 지나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8살에 왕이 되어 8년이 지난 해, 다시 말해 16살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았던 것이죠. 비로소 하나님을 찾았다는 말씀이 창세기 4장 26절에서도 쓰인 바가 있죠.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하는 말과 ‘비로소 여호와를 찾고’(대하34:3) 하는 말은 같은 뜻이죠. 왜 에노스를 낳고 사람들이 비로소 하나님을 의탁하기 시작했습니까? 그때 비로소 연약한 인간의 실체 곧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함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기 시작한 것이죠. 마찬가지입니다. 8살에 왕이 된 요시야가 8년 동안 나라를 자기 힘과 방법대로 또 원로대신들의 뜻에 맞춰 나라를 이끌어봤지만 그게 제 뜻대로 안 된다는 한계를 깨달았기에 역대 선조들의 실록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끌어야 온 백성들이 행복하고 나라가 평안할지 생각하게 된 것이죠. 그것이 곧 그의 선조 다윗 왕이 행한 역사 곧 하나님을 올곧게 섬기는 길만이 나라가 안정되고 평안하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죠. 그만큼 자기 힘과 능력의 한계를 알고서 그때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처럼 16살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요시야는 20살의 나이에는 남왕국 유다 지역은 물론이고 북쪽 이스라엘 땅의 여러 지역에 산재해 있는 각종 우상들과 신전들을 무너뜨리도록 했죠.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6살에는 드디어 성전을 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외적의 침략으로 무너진 곳들을 다시금 재정비했던 것이죠. 그 모든 책임을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위임하여 레위인들이 그 일을 주도적으로 감당케 했는데, 그때 힐기야는 성전을 수리하는 가운데 율법책을 발견하게 되었죠. 그것을 서기관 사반에게 줘서 왕에게 읽어드릴 때 요시야가 옷을 찢고 회개하는 자세를 갖췄고, 그 이후 온 백성들과 문부백관들을 불러 모아 예루살렘 성전 앞에서 그 율법책을 낭독케 했고, 온 백성들이 다시금 언약백성으로 살겠다는 언약식을 거행했죠.

그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이와 같은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마치 히스기야의 종교개혁과 거의 흡사만 모습입니다. 그래서 남왕국 유다의 20명의 왕들 가운데 선한 왕은 8명이었고, 그 중 2명만 진정한 종교개혁자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 두 사람이 바로 히스기야와 요시야였죠. 그들이야말로 민간신앙을 주도한 백성들의 산당까지도 완전히 척결한 왕이었고,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좇게 만들었고,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여 가르칠 수 있도록 그들의 식량까지 백성들의 십일조와 헌물을 통해 감당토록 한 왕이었죠.

그런데 그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25살에 왕이 되었지만 요시야는 8살에 왕이 되었다는 점이죠. 히스기야는 그 종교개혁을 젊음의 나이에 자기 주도적으로 급속하게 밀어부칠 수 있었지만 요시야는 8살의 나이였기에 때문에 그 모든 종교개혁을 서서히 밟아 갔다는 점이죠.

 

 

오늘 말씀은 유월절을 지킨 요시야와 그의 죽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미 우리가 읽은 열왕기하 23장에 나온 말씀이죠. 그때의 상황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지금 역대기의 기록은 이스라엘이 멸망당해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을 마치고 포로에서 귀환하여 나라를 세워나가는 과정 속에서 쓴 역사 실록이라는 점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요시야가 예루살렘에서 여호와께 유월절을 지켜 첫째 달 열넷째 날에 유월절 어린 양을 잡으니라.”

요시야는 8살 때 왕이 되어 8년이 지난 16살의 나이에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고, 20살의 나이에 온갖 우상과 백성들의 산당까지도 제거했고, 그리고 26살의 나이에 성전을 수리했는데, 그 속에서 발견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온 백성들에게 읽어주면서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자 언약식을 체결했죠. 그리고 연이어 시행한 것이 바로 유월절을 지킨 모습이죠.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기념하며 지킨 이스라엘의 큰 절기로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지킨 절기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통해 역대기 기자가 강조하고자 한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바벨론에게 멸망 당한 것, 또 포로 70년 기간을 거쳐 다시금 포로에서 귀환하여 본국으로 돌아왔으니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언약백성답게 살아야 할 것으로 그 첫 번째 요건으로 유월절을 꼽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요시야 왕이 시행한 것처럼 왕을 중심으로 온 백성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그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기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 어린양이죠. 그분의 대속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값없이 베풀어 주신 것이죠. 그렇다면 그 은혜를 망각치 않는 삶, 그 은혜를 평생토록 각인시켜 살아야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죠. 그럴 때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망각하고, 그 은혜에서 떠나 자기 교만과 자기 과시에 빠지면 급속하게 타락하고 그 심령이 망가지게 되는 것이죠. 지금 요시야가 다시 시행하고 있는 이 유월절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는 바가 그것입니다.

 

 

요시야는 그 유월절을 위해 제사장들에게 직무를 맡깁니다. 그것이 2-6절에 나온 말씀입니다. 제사장들에게는 성전의 일과 제사를 담당케 하죠. 중요한 것은 4절과 6절 말씀입니다. 스스로 준비하고, 스스로 성결하게 하라

성전의 일을 하는 제사장들은 스스로 준비하고 스스로 성결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신전의식’ 곧 ‘코람데오’의 의식이죠. 우리가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늘 신전의식 곧 코람데오 의식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때에만 남이 보든 보지 않든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좇아 살 수 있기 때문이죠.

 

 

이제 본격적으로 유월절 제물을 잡아 드립니다. 본문 7-9절은 요시야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자기 양과 소를 유월절 제물로 내놓은 모습이죠. 그러자 이스라엘의 방백들 곧 지도자들도 자기 소유를 백성들에게 내놓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히스기야 왕도 그렇게 했고 히스기야 왕이 그렇게 모범을 보이자 그 시대의 지도자들도 자기들 것을 백성들에게 내놓아 유월절을 지킨 모습과 같은 격이죠.

그렇게 해서 7일에 걸쳐 유월절 제사를 직접 시행합니다. 그것이 본문 10-19절에 나온 말씀입니다. 이 제사를 드리면서 왕과 방백들 곧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이 제사는 세상의 굿판과는 달리 진정으로 구별된 거룩한 제사였죠. 그 거룩한 제사를 백성들과 함께 새롭게 지켜나가는 모습입니다.

 

본문 19절은 이 유월절을 지킨 때가 요시야의 통치 18년의 때라고 밝혀줍니다. 그의 나이 26살 때의 일이죠. 역대하 34장 1절에서 요시야는 8살에 왕이 되어 31년간 통치했다고 밝혀줍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임기는 13년이 되죠. 그의 남은 임기 13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전에 무슨 일을 겪었을까요? 본문 20-27절의 내용이 그것입니다.

그때 애굽 왕 느고가 갈그미스 곧 앗수르를 치려고 올라왔습니다. 애굽 왕 느고는 요시야에게 맞서지 말라고, 너희들을 치러 온 게 아니라고, 그러니 길을 비켜주라고 이야기를 하죠.

그런데 본문 22절입니다.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요시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나이 26살을 넘어선 때로서, 그는 자기 과시에 빠져들고 말았다는 것이죠. 그 나이 때라면 히스기야가 왕위에 올라 주도권을 잡고 개혁을 일으켰던 때보다 훨씬 더 나이든 때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완숙함보다는 조급함이 앞서서 자기 교만으로 인해 느고를 맞서다가 패하여 죽게 된 것이었죠.

 

 

그렇기에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상황속에서도 신전의식 곧 코람데오의 의식을 갖고 살면 연약할 때든지 잘 될 때든지 교만치 않게 된다는 점이죠. 그 마음과 자세를 끝까지 견지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과 기도

 

사랑하시는 주님.

언제 어디서나 코람데오의 자세 곧 하나님의 신전의식 속에 살게 하시옵소서.

나이에 맞게 또 시대와 상황에 맞게 점진적으로 개혁했던 요시야였는데,

그런 신전의식 곧 하나님 앞에 신실한 그 모습이 뭔가 안정이 되고 주도권을 잡게 될 때 교만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저희들은 언제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면전앞에서 산다는 그 의식을 겸비하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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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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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백성에게 보내어(대하36:1-23)

 

처음 역대기를 접할 때 말씀드린 게 있었습니다. 역대기의 내용과 열왕기의 내용이 비슷하지만 그 시대는 다르다고 말이죠. 열왕기서가 남북분열 왕국의 시점에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그 상황을 그려주고 있었다면, 역대기서는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을 살고 이제 포로에서 귀환하여 어떻게 나라를 세워갈 것인지 하는 관점으로 역대기를 기록했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과거 역사를 거울삼아 보다 바른 나라를 세워가고자 온 이스라엘이 한마음과 한뜻을 이뤄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는 민족이 되자는 뜻으로 역대기를 써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이제 <역대기>라는 대하드라마가 끝맺고 있는 상황입니다. 본문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이스라엘의 남은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살아남은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7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고, 그 끝날에 다시금 고국으로 돌아온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망국은 참으로 끔찍한 역사입니다. 나라를 잃는 것만큼 가슴 아프고도 서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망국의 비통함을 겪었던 분들이 여전히 생존해 계십니다. 그 뿐만 아니라 과거 일본제국이 일으킨 침략전쟁과 그들의 만행으로 인한 상처와 고통에서 우리 민족은 아직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오늘날에도 침략적 망상에 사로잡힌 채 역사 왜곡과 날조를 일삼고 있는 일본의 일부 극우파들의 오만한 태도는 한일관계와 동북아 평화의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죠. 35년간 일제 치하에 있었던 우리 민족의 역사가 이토록 힘겨울진대 그 두 배 기간인 70년 동안 이방인의 땅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민족의 고통은 오죽이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본문에는 이러한 고통의 역사가 놀라울 정도로 간략하게, 그리고 건조한 문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35장에 나오는 요시야의 개혁에 대한 상세한 기술과 달리 36장은 세 왕의 시대를 단 10절로 정리해주고 있다는 사실이죠.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왕위에 오른 지 석 달 만에 애굽 왕 느고에 의해 폐위당하고, 그 동생 엘리야김이 왕위에 오릅니다. 애굽 왕 느고는 그 여호아하스의 이름을 ‘여호야김’이라고 고치고 볼모로 잡아가죠. 그 여호야김이 그 뒤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포로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그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 역시 왕위에 오른 뒤 ‘석 달 만’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를 겪죠.

그렇게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그 왕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5절과 9절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천지의 주재시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시고 세우신 나라가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은 암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역대기 기자는 멸망으로 치닫는 유다 왕국의 그 절망적인 상황을 상세하게 기술하지 않습니다. 다른 해설이나 해석도 달지 않습니다. 오직 한 문장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바로 그 한 문장으로 그 시대와 상황을 정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뒤에 나오는 시드기야 왕에 대한 기록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러도 그 앞에서 겸손하지 아니하였으며.”

시드기야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이었습니다. 이전에 악한 길을 걸었던 선대 왕들과 결코 다르지 않는 길을 걸어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역대기 기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본문 14-16절이 바로 그 관점입니다. 모든 제사장들의 우두머리들과 백성도 크게 범죄하여 이방 모든 가증한 일을 따라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두신 그의 전을 더럽게 하였으며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의 사신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모든 제사장들의 우두머리와 백성들도 크게 범죄하여 이방 나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따라 행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이 사신 하나님을 비웃고 그 말씀을 멸시했고 그 선지자들을 욕했다는 점입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들을 경멸하리라”(삼상2:30b) 한 말씀을 온 백성들이 자행했다는 뜻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까? 왜 이런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까? 역대기 기자는 망국의 책임이 왕에게만 있는 게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사장들에게만 그리고 방백들 곧 지도자들에게만 있었다는 게 아니죠. 그 나라를 이루고 있는 백성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제사장들은 유다 왕국의 종교지도자들이고, 방백들 곧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이끌 책임이 있는 자들이죠. 그만큼 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 구별된 삶을 살도록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왕도 타락하고, 제사장들도 타락하고, 지도자들도 타락한 책임이 크지만, 그 나라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백성들의 책임도 만만치 않다는 뜻입니다. 그 백성들 역시 이방의 모든 가증한 일들을 일삼았고,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비웃고 멸시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 나라가 패망하게 되었다는 것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자 교훈입니다.

 

 

성경의 역사서는 ‘왕’에게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사무엘서와 열왕기서, 그리고 역대기서에 이르기까지 실은 왕들의 이야기와 다름 없습니다. 그 역사서의 기자들은 그 시대를 통치했던 왕들의 리더십이 어떠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던 왕들이 있었는가, 아니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왕들이었는가 하는 점 말입니다. 그 시대의 흥망성쇠의 열쇠는 왕에게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서와 열왕기서, 그리고 역대기서에 이르는 역사의 광대한 파노라마의 끝부분에서 역대기서 기자는 그 시대의 책임은 왕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포로기에 사역했던 에스겔 선지자는 백성들도 “포악하고 강탈을 일삼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하였다”(겔 22:29)하고 지적해 줍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요소 중 한 가지가 뭔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 나라를 이루는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역대기의 마지막 관점은 파괴된 성전의 재건축을 명령하는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의 조서로 끝나고 있죠. 고레스 왕이 내린 조서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본문23절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고레스 대왕의 조서가 의미하고 있듯이 역대기서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회복을 암시하면서 막을 내린다는 사실입니다. 그 새로운 이스라엘 회복의 주역은 왕도 고관도 종교인도 아닌 하늘의 신 여호와의 ‘백성’된 자들임을 천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 역대기서를 읽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격려의 메시지입니다. 꿈에도 그리던 예루살렘의 고토로 돌아왔지만 이미 불에 타고 폐허가 된, 그래서 전쟁과 망국의 상처만 남아있던 땅에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여러분들이야 말로 새로운 이스라엘 재건의 주역입니다”하고 용기를 북돋는 말씀이죠.

 

 

그렇다면 오늘 역대기서의 마지막 본문을 통해 성령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사는 이 나라도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권이 임하는 나라라는 사실이죠.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저 천국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 말씀을 받드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이죠. 다만 현실 세계의 정치와 경제는 백성들의 뜻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을 통해 반영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대의 리더십은 늘 바뀌기 마련이죠. 때론 보수 정권의 리더십이 세워지기도 하고 진보정권의 리더십이 세워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더 중요한 것은 그 시대의 근간을 이루는 백성들의 마음과 자세죠. 리더십이 지혜롭게 권력을 행사하는 데 중요하다면, 한 시대를 이루는 성숙한 백성들의 몫은 더없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 역사의 주권자이심을 믿는다면 하늘의 신 여호와의 백성인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를 새롭게 세우는 주역들이 돼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산 사람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 때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저와 여러분 개개인이 말씀의 주체로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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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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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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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기도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황폐해진 땅에 안식을 주시길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죄악과 폭력으로 얼룩진 이 땅 가운데 우리를 아버지의 백성으로 불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우리는 세워진 리더들을 비판하고 손가락질하는 일에는 많이 능숙해 있었습니다.

때론 올바른 비판도 필요하지만 그러한 비판보다 무너진 곳에 벽돌 한 장을 쌓는 저희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무성해진 잡초를 먼저 뽑아내고 치울 수 있는 성숙한 백성의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나라는 저 영원한 천국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통치가 임하는 이 땅 이곳에 임하는 나라인 줄 믿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아버지의 백성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는 이 시대가 매일매일 새로워지는 한 날이 되게 하시옵소서.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장기간 동안 역대기서를 한 장 한 장 살피며 깨닫게 하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말씀을 주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드도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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