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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BookReview

"나는 오래전부터 아주 오래전부터 네 속에 있었다."

by 똑똑이채널 2021.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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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영 목사의  〈 호모 크리스챠니쿠스 〉

 

최윤영 목사의  〈 호모 크리스챠니쿠스 〉는 주님에게 길들여지는 자신의 인생을 고백한 책이다.

엄마의 죽음과 함께 힘들 그에게 찾아와 주신 주님,

신학교 4학년 졸업반이 됐을때 그때 찾아와 격려해주신 주님.

그 주님은 유아기때부터 이 사람 저 사람 곧 수많은 깍두기들을 통해 그를 다듬어주신 분임을 알게 한다.

우리가 쓰는 볼펜의 볼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여기 볼펜 볼의 원자재가 될 큰 철 덩어리가 있다.

이 철덩어리는 볼펜 볼의 크기에 맞게 깍둑썰기를 당한다.

그 후 깍두기들을 대형 원심기에 넣고 초고속으로 돌린다.

그때 원심기 안에서 깍두기들은 서로 부딪히고 깎여 볼펜에 들어갈 만큼의 동그란 모양이 된단다.

크리스천도 그렇게 수많은 깍두기들을 통해 부대끼고 다듬어지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진다는 거다.

최윤영 목사도 그렇게 다듬어진 수많은 깍두기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이 책에 나온 그의 고백 중에 나에게 가장 감명깊에 다가온 핵심 줄거리만 요약한다.

 

1.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부산의 망미동으로 이사를 갔다.

그곳으로 전학을 간 그는 아이들의 텃새에 시달렸다.

골목대장과 결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의 위세에 끌려가 뱀의 꼬리까지 잡는 일도 벌였다.

또래 아이들과 친구의 무화과를 따먹는 도둑질도 해야 했지만, 그는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떠올리며 죽어도 그 짓만은 못하겠다고 했다.

그 일로 친구들에게 두들겨 맞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교회 체육대회가 열린 날에 자기가 달리기 선수였는데, 그 자리를 목사님 아들에게 빼앗긴 일도 있었다.

더 가슴 아픈 일은 그의 엄마가 암이 걸린 것이었다.

그때 그의 어머니는 너무 힘겨워 했고, 기도원에 들어가 20, 40일 금식기도를 했다.

어쩌다 몸이 좋아지면 더 힘든 어른들을 섬긴 그의 어머니였다.

 

2. 그 와중에 그의 가족들은 울산으로 이사를 갔다.

울산에 있는 교회는 이전의 교회와는 달리 나무로 골격을 짜고 파란 색 천막을 두른, 크지 않지만 정이 넘치는 교회였다.

그 교회에 나가 엄마와 함께 예배를 드린 중학생이 될 그 당시 그는 엄마와 떨어져 앉고 싶어했다.

냄새나는 엄마가 싫었고, 무엇보다도 엄마가 창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큰 대로변으로 엄마를 데리고 길을 걷는 게 아니라 깊은 산길로 피해 다녔다.

본격적인 투병생활 1년을 채우던 10월 그해, 그의 엄마는 거동조차 못했다.

어느날 부산체육고등학교 기숙사 생활하던 누나도 와 있었다.

일종의 유언을 하려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그의 엄마는 그날 가슴에 담고 있던 말을 쏟아냈다.

그에게는 절대로 교회를 떠나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그리고 중학교에 다니는 그에게 가족을 당부한다는 부탁도 했다.

괜찮으시냐는 그의 물음에 그의 엄마는 숨을 몰아쉬며 그렇게 대답을 했다.

괜찮다.... 예수님 땜에 괜찮다.”

115, 그날 저녁 그의 엄마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교회에서는 엄마의 치료와 병원비로 몽땅 재산을 날린 그의 형편을 알고 장례를 치러줬다.

그 후에 그의 뒤통수에 따라 붙는 말이 가시지 않았다.

재는 엄마도 없는 애가 저러고 놀고 있네.”

재는 엄마도 없는 애가 저러고 웃고 있네.”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고, 모든 게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는 그였다.

그러니 교회와 학교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졌고, 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가만히 있어야 했다.

 

3.그러다 중학교 2학년 여름, 전혀 새로운 일이 벌어졌다.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에, 아버지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참석했는데, 그곳에서 놀라운 경험을 한 것이다.

집회 첫날 설교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싸구려 질그긋에 값진 보석이 담겨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속으로 그래서 어쩌라구하며 시큰둥했다.

그에게 길고 지루한 설교가 끝나고 기도회가 이어졌다.

그런데 그 자리에 모여 있는 형들과 누나들이 가슴을 치고 울음을 펑펑 터트리면서 울부짖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가 좋아하던 착하고 예쁜 수빈이 누나머저 깍지를 낀 채 슬픈 얼굴로 기도하고 있었다.

누나,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아무리 질그릇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도 예수님이라는 보화가 담겨 있다면 괜찮대요. 예수님 때문에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마음 속으로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그의 심령에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넌 왜 안 괜찮니? 나 때문에 괜찮다면서 넌 왜 안 괜찮니?”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나는 왜 괜찮지가 않지?”라는 서글픈 마음이 복받쳐 왔다.

그때 그도 제발 내게도 보배가 담겨지게 해 달라고,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이 괜찮아지고 싶다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때 조용한 속삭임이 감지됐다.

“나는 오래전부터 아주 오래전부터 네 속에 있었다.”

그 음성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내 안에 담겨진 보배, 그 예수님이라는 것을.

그리고 눈을 떠 보니 다들 숙소로 돌아갔고, 예배당에 두 세 사람만 남아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다리가 너무 저렸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 괜찮다....”,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불쌍한 그의 집도, 억울해 하던 그도, 변한 것은 없었지만, 모든 게 한꺼번에 괜찮아졌다.

왜 그랬을까?

그가 느끼는 한 가지, 그의 보배이신 주님이 함께 하신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믿을 수 없는 기적이었다.

 

4. 그 후 고등학교 2학년 대 희망대학을 신학대학교로 기입했다.

아버지는 그때 저 자식은 사지 멀쩡해서 신학교 가려 한다면서 등록금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더욱 그를 괴롭혔던 것은 하나님이었다.

그가 기도할때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응답해주시는 것 같았다.

나는 네가 필요 없으니 네 갈 길이나 가라.”

한 두 번도 아니고 장래에 대해 기도할때마다 가슴에 남는 응답이라 괴로웠다.

1991학년도 대학입시에 신학대학교를 합격하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그를 꾸짖을지라도 등록금은 주실 줄 알았지만 정말로 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공사판을 돌아다니며 1년간 돈을 모았다.

이듬해 성결신학대학 야간학부에 들어갔다.

그렇게 모아서 등록금을 냈는데, 이제 10만원 밖에 남지 않았다.

그때 그는 그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일주일, 저 같은 놈이 단 일주일만이라도 신학생으로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그것만으로 감사합니다.”

그렇게 딱 1주일만 다니겠다고 생각한 3일째 돈이 다 떨어질 때였다.

같은 독서실에 사는 선배 하나가 그 3일째 동기생 곧 그의 선배 방에 그를 넣어줬다.

물론 낮에는 그 선배를 따라 일도 하고, 공사판에 다녔다.

그렇게 4년간 이를 악물고 신학대학 수업을 들었고, 그 중간에 어느 감리교회에서 주일학교 담당 전도사로 섬겼다.

그 중간에 학교 독서실에서 졸도하여 쓰러지기도 했다.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성결대학교 도서관을 올라가던 4학년 봄철이었다.

그날 토요일 오전, 개나리 꽃망울 하나 하나가 용광로에서 뿜어 나오는 불꽃처럼 보였다.

그 불꽃들이 꼭 그를 보고 자기에게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바람에 흔들리는 그 불꽃 아래서 하나님의 또렷한 음성이 들려왔다.

“환영한다. 환영한다. 환영한다.”

그때 그의 가슴 속에 울음이 터져나왔다.

중생관 건물 앞에 다다랐을 때는 눈물이 범벅이 되었다.

어렵게 들어온 학교였고, 힘겹게 버텨 낸 시간이었는데.

입학할 때 그에게 허락된 시간이 단 일주일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라도 감사히 다니겠다고 했는데.

잠깐이나마 신학생 신분을 소유하게 된 것에 만족하겠다며 기도한 그였는데.

어느덧 4학년 졸업반이 되어 있었다니.

그 사실 앞에 감정이 복받쳐 울었던 것이다.

그때 들고 있던 책을 떨어뜨렸는데, 그 책을 주워 펼칠 때 눈에 들어 온 소제목에 전율을 느꼈다.

하나님의 시간표

그때서야 깨달았다.

하나님은 자신의 시간표 속에서 여태껏 그를 만들어가고 계셨다는 것을.

유아 시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당신의 시간표 안에서 멈추지 않고 이끌어 오셨던 것이다.

하나님 덕분에 그는 더 좋은 호모 크리스챠니쿠스를 꿈꿀 수 있게 된 것이다.

 

 

 

 

호모 크리스챠니쿠스

호모 크리스챠니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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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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