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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고린도후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선악 간에(고후5:4-10)

by 똑똑이채널 2025.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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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사도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대적자로 살던 자신이 그런 직무를 감당케 된 것은 전적인 주님의 긍휼하신 은총이라고 말이죠. 그긍휼하신 은혜 속에 있을 때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쌓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치 않고 거꾸러트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질그릇처럼 깨어지기 쉬운 자기 자신 안에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아주셨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세상의 환란이라는 것도 그것이 아무리 크게 보여도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실은 보잘 것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이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주목하며 살기 때문이라고 했죠. 그것은 우리 자신의 육체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텐트와 같이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닳아지고 소모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지만 보배이신 주님을 모시고 사는 자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집, 곧 죄 짓기 이전의 아담과 같은 영원한 텐트의 그 아름다운 육체로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신다고 했죠. 그래서 그 날을 손꼽아 탄식하면서 기다리며 사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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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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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장선상에서 4절입니다.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서 ‘짐진다’는 ‘바레오’(βαρέω)란 단어는 정말로 좋아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burden)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입혀주실 그 영원한 몸, 그 신령한 몸에 대해 부담감을 가진 것처럼, 탄식하면서 사모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바울이 그런 갈망, 그런 소망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해골이 되었다가 한 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몸으로 승화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한다’고 고백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나의 유한한 육체의 존재를 하나님의 생명으로 삼켜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전혀 새로운 의미의 육체로 승화되는 것이죠.

이와 같은 부활에 대해 바울은 이미 고린도전서 15장 53절을 통해 밝혀준 바 있습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 육체 덩어리가 어떻게 썩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생명이 사망을 삼키기 때문이죠.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죠. 내 노력으로, 내 열심히, 내 수고로, 그와 같은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한다면 과연 누가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한다면 얼마나 그 인생이 고달프겠습니까? 그런데 나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삼켜주신다는 것이죠. 그때 영원한 생명을 덧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다’, 이것 또한 놀라운 표현입니다. 보증금을 누가 냅니까? 은행에서 돈을 빌린 사람, 또 건물의 세입자가 월세를 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명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덧입게 해 주셨다면 실은 우리가 보증금을 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증을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보증이 성령님이시라고 하죠.

이 말씀은 5장 1절의 말씀과 연결이 돼 있습니다.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사도 바울은 내 육체가 죽고 나면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는 무너지지 아니할 영원한 생명이 주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미래적으로 말하거나 추측성으로 말한 게 아닙니다. 오직 현재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이 지금 있다는 거죠.

바울은 이것을 고린도후서 4장 5-6절에서 밝혀주었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 빛의 보배이신 성령님 안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는 영원한 생명 속에 지금 거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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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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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왜 담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성령님의 보증이 함께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몸으로 있을 때는 ‘주와 따로 있다’는 말은 내가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에는 육체의 눈으로는 주님을 볼 수가 없다는 뜻이죠. 그러나 이 육체를 벗어날 때 영이신 하나님의 얼굴을 진정으로 맞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7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이 말씀은 고린도후서 4장 18절 말씀 곧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하는 말씀의 주석이 되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잠깐인 것은 우리의 육체로 보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란 뜻입니다. 우주 같이 큰 것은 못 보지만, 믿음으로 보면 홍해가 갈라지고 만나와 메추라기가 떨어지는 걸 볼 수 있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 피흘리는 것도 보이죠. 구원하신 게 보이죠.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 유한한 육체를 지니고 있을 때에도 믿음으로 그 사건들을 보기 때문에 믿음으로 행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8절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성령님이 보증으로 함께 하기에 때문에 ‘담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이 낡아 없어지는 텐트를 하루라도 빨리 벗어버리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 그 영원한 몸을 입고 사는 것이죠. 그게 솔직히 원하는 바라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목적도 거기에 있죠.

 

9절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바울은 이 텐트와 같은 육체를 벗어버리고 영원한 나라에 사는 것이지만, 그 때가 안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직 여기에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 살던, 거기에 살든, 그 궁극적인 목적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이 땅의 삶도 궁극적으로 주님의 기쁨을 위함이라는 거죠.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바울이 이 땅에 살면서 주님의 기쁨을 위해 힘쓰는 삶의 이유를 밝혀줍니다. 그것은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이 있다는 것이죠. 물론 믿는 자의 심판대는 하나님의 시상대가 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의 심판대는 죽음의 심판대가 될 것이고요. 그런데 그 시상대의 원칙이 무엇입니까?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죠.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받으려 함이라’고 말이죠.

사도 바울은 그만큼 하나님의 상급을 이야기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고전3장 8절, 고전4장 14절, 고전9장 18절, 고전9장 24절에서, 그리고 오늘 고후5장 10절에서 이야기하고 있죠. 그런데 그 상급은. 예수님께서도 누누이 말씀하셨고, 히브리서기자도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나는 상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사람은 정말로 교만한 사람이죠. 우리가 겸손한 사람이라면, 뿌린 대로 거두게 하시는 그분의 심판대 앞에서 받을 상급을 위해 우리 삶을 던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죠. 그 분의 상급은 이 세상의 대통령이 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상급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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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듯 바울은 4장 1절부터 오늘 5장 10절까지 자신의 사도직을 수행하는 자세를 밝혔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위해 모든 걸 던질 수 있었던 확고한 이유는 그것이었죠. 첫째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풀어주신 그 긍휼하심 때문이었다. 둘째 삼위일체 하나님 그 보배를 질그릇인 자기 속에 담아주심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이미 주셨고 그 보증으로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넷째 뿌린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상급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육체가 낡아지는 걸 조금도 게의치 않고 날마다 속사람이 새로워지면서 진리를 뿌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갔던 것이죠.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상급의 심판대 앞에서 뿌린 대로 거두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렇기에 낡아서 없어질 육체만을 위한 삶을 목적보다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삶, 매일매일 진리를 뿌리는 주님의 사도들로 살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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