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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6절을 통해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헬라어 원문은 ‘알지 못하느뇨?’가 맨 먼저 나옵니다. 무엇을 알지 못하느냐,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말합니다. 지금 고린도 교회는 분열이 일어났고, 대립하여 싸움이 일어난 상태죠. 그런데 바울은 그들을 향해, ‘너희들이 하나님의 성진인 것을 알지 못하느뇨?’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걸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신학성경에서 ‘성전’이란 헬라어 단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히에론’(ἱερόν 마21:12)이란 단어입니다. 성전 지역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나오스’(ναός)인데 그것은 큰 성전 지역 내에 가장 적은 지성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기에 사도 바울이 사용한 것이 ‘나오스’입니다.
본래 예루살렘 성전은 3천 년 전에 솔로몬이 7년에 걸쳐 지었습니다. 그때는 별로 크지 않았습니다. 그 성전은 주전 586년에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이 침공했을 때 다 훼파됐죠. 그리고 예루살렘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는데,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이 다시 풀어줬죠. 그때 돌아 온 사람들이 옛 성전을 복원했습니다. 그러다가 헤롯 대왕 곧 에돔의 후예인 이두매 사람 헤롯 대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을 증축했죠. 무려 46년에 걸쳐서 말입니다. 그 길이가 가로 500m 세로 300m죠. 그 성소의 본체 길이가 가로 180m, 세로 120m입니다. 성소 높이는 45.6m, 길이는 18m입니다. 휘장의 길이가 9m죠.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들어가는 곳인데, 바로 그 지성소가 ‘나오스’입니다. 성전의 큰 뜰과 여인의 뜰, 성전 벽들까지 합해서 ‘히에론’이라 부르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부분들이 모두 ‘히에론’일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뭘까요? 지성소 곧 ‘나오스’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라오스’라는 동사는 ‘라이스’의 명사형에서 온 말입니다. ‘라이스’는 거주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성소에 거주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나머지도 다 거룩하다고 여기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거기에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성전은 일반 성곽의 건물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건물인 것이죠.
바울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뇨?’할 때 ‘나오스’를 썼습니다. 그 말은 곧 ‘너희 자신이 지성소인 것을 알지 못하느뇨?’하는 말입니다. 지성소라는 것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믿는 것이죠. 그렇기에 너희들이 ‘나오스’라고 한 것은 성령님께서 바로 너희와 함께 거하신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신다’ 할 때, ‘너희 안에’란 말은 헬라어로 ‘엔 휘민’(ἐν ὑμῖν)입니다. 그 뜻은 두 가지가 있죠. ‘너희 모두 가운데’, 또 ‘너희 각자 안에’입니다. 너희 모두 가운데에 성령이 거하시기 때문에 조화를 이뤄야 한다, 또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으로 일궈야 한다는 뜻입니다.
본문 17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그것은 곧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레위기 15장 31절의 표준새번역이 이렇습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이 부정을 타지 않도록 하라. 그들 가운데 있는 나의 성막을 부정하게 하였다가는, 그것 때문에 그들이 죽음을 면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면 반드시 죽는다, 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민수기 19장 20절에 “부정을 탄 사람이 그 부정을 씻어 내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총회에서 재명되어야 한다.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의 위에 뿌리지 아니하여 그 더러움을 씻지 못하면, 주의 성소를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이다.”하고 말씀하죠. 이스라엘 사회에서 출교명령은 사형보다 더 무서운 형벌입니다. 사형은 한 번 끝나면 되지만, 출교를 당하면 모든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성소를 더럽히면 그렇게 처리하겠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땅에는 예루살렘의 황금사원이 있습니다. ‘알 아크사 사원’으로 불리는 것이죠. ‘가장 오래된 사원’이란 뜻입니다. 회교도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해서 715년에 완공시킨 사원이죠. 거기에 ‘바위사원’이 있습니다. 이슬람교를 만든 마호메트가 그 바위에서 승천했다고 해서 세운 거죠. 그런 점에서 이슬람교도들에게는 그 사원이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 그 사원의 자리에는 본래 헤롯 대왕이 46년간 세운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그 성전은 주후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어쏙, 그 자리에 알 아크 사원이 세워진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왜 내버려두셨겠습니까? 참된 성전은 벽돌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너희 자신임을 잊지 말도록 하기 위해 실물로 보여준 것이죠. 지금도 유대인들은 그곳에서 통곡하며 기도하는데, 그들도 진정으로 거듭나야 하죠. 그런데 17절 마지막 부분에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여기에서 바울은 ‘너희도 그러하니라.’하고 강조하죠.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한데, 그 성전이 바로 너희 자신들이다, 하고 말하는 것이죠. 너희 자신을 그렇게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16절에서 “너희들은 알지 못하느냐”하고 시작했는데, 이 구절에서도 그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은 하나님의 지혜와 사람의 지혜를 대비해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바로 1장에서도 하나님의 지혜를 설명해 준 바 있습니다. 그런데 1장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설명한 것이고, 오늘 본문은 너희가 성전이라는 데 대한 전제 조건에서 설명하는 것이죠. 그래서 18절에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여기에서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하고 말합니다. 왜죠? 내 밑바닥 생각이 세상에서 크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속이는 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 심령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지혜를 담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그래서 이 세상의 자기 지혜를 뽐내거나 믿지 말고, 도리어 어리석은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왜죠? 그때라야 우리 속에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입니다.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하나님께’라는 말은 ‘하나님의 관점’이란 뜻입니다. 내 속에 하나님의 영이 계십니다. 그런데 나의 지혜가 온 천하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웃기는 일이죠. 시편 2편 4절에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심이로다.” 내가 내 지혜로 다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보다 웃기는 게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그것보다 더 웃기는 사람이 과연 어디에 있겠느냐는 것이죠. 그런 자들을 향해 20절에서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여기에서 지혜 있다고 하는 ‘생각’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는 ‘숙고’입니다. ‘헛것’이라는 말은 ‘텅 비어있다’는 뜻입니다. 자기 지혜만을 모든 것으로 생각하는 자는 아무리 숙고하고 또 숙고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텅 비어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왜죠? 그 속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없는 것들은 실은 텅 비어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21-23절에서 바울은 위대한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이것을 끝에서 읽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고, 너희 곧 고린도 교회는 그리스도의 것이고, 게바나 바울이나 아볼로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있는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 것이다, 하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다 너희 것이다’하는 말은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그 모든 자들이 너희들 곧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절대시하지 말라고, 또 너희들 스스로 지혜 있다고 대립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바로 그것을 너희들이 알지 못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 자들이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를 통로 삼고 계신 하나님이시죠.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줄 깨닫고 세상을 향해 등불을 하나씩 품고 오늘을 살아간다면 이 캄캄한 세상에 하나님의 불씨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런 진리의 불을 밝힌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참된 성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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