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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 안에서 바른 믿음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절망과 고통의 순간에 소망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넘치도록 소망을 부어 주심으로, 삶의 열매로 결실될 수 있죠. 그렇게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 되시기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소망의 하나님을 모시고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넘치는 소망 가운데 우리의 삶은 한 편의 로마서로 완성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오늘부터 상고할 14절부터 16장 마지막 절까지는 로마서의 부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도 바울과 복음의 개인적인 관계, 그의 개인적인 사연, 로마 교회에 보내는 문안 인사 등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도 로마서를 구별할 때, 교리, 윤리, 부록으로 나누지 않죠. 마지막으로 나오는 바울의 개인 사연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배워야 할 마음가짐과 삶의 자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4절은 바울이 “내 형제들아”하고 부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 13절에서부터 로마교회 교인들을 향해 “형제들”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냥 형제들이 아니라 ‘내 형제들’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사실 한 번도 로마에 간 적이 없습니다. 그곳의 성도들 얼굴도 전혀 모릅니다. 그런 미지의 교인들을 향해 로마서 1장 1절에서부터 계속해서 편지를 쓰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 편지를 쓰면서 복음이 무엇이고, 진리가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가운데, 로마 교인들을 향해 마음을 쏟아 붓다 보니, 그들을 향해 정말로 ‘나의 형제’로 여기게 된 것이죠.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아 붓는 것이 이토록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바울이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는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합니까? 본문 1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바울은 세 가지 사실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첫째 로마 교인들의 마음 속에 선함이 가득 차 있다는 것, 둘째 그들에게 모든 지식이 가득 차 있다는 것, 셋째 그들 서로가 능력 있게 권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정말로 성숙한 관계를 맺어 간다는 것은, 가득한 선함과 하나님에 대한 충만한 앎으로 서로를 권면해 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5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하는 말씀은 대충 썼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이 가득한 선함과 하나님에 대한 충만한 앎으로 서로 권면할 정도로 성숙한 믿음을 살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구태여 따로 할 말이 없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바울이 로마서를 쓴 것은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 하나님은 누구인지,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위태한지, 진리가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떻게 사는 게 바른 삶인지, 다시 성찰하고 잊지 말도록 하기 위해 이 로마서를 썼다는 뜻입니다. 물론 바울은 자기 능력으로 쓴 게 아니죠. 만약 자기 능력으로 썼다면 2천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로마서가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에게까지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썼다고 전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로마서는 바울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본문 16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주님께서 자기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신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 첫째 이유가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는 데” 있었죠.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는 목적을 알고 있었기에 바울은 엄청난 은혜를 받고서도 결코 교만치 않게 되었던 것이죠.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신 두 번째 이유는 16절 중반절에 밝혀줍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사.” 구약시대에는 제사장이 될 수 있는 혈통과 가문이 따로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 이후, 더 이상 짐승의 제사가 필요하지 않게 된 이후,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들에게 말씀을 전하도록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그 은총을 자신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모두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신 세 번째 이유는 16절 하반절에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 성령님 안에서 거룩하게 되는 것,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만한 제물이 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한 인간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성령님의 도구로 삼기 위해 내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의 씨를 뿌리면 성령님께서 그 결과를 책임져 주시리란 것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소망 가운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죠.
본문 17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바울의 자부심 곧 긍지가 드러나 있는 고백입니다. 복음을 전해들은 인생을 성령님께서 변화시키는 것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는데, 어찌 주님을 섬기는 것이 자랑스럽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18절에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루신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루신 일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말하겠다는 뜻입니다. 왜죠? 그 보다 더 기쁜 일, 영혼을 만족시키신 일은 없었기 때문이죠.
과연 그 일을 주님께서 어떻게 이루셨다고 고백합니까? 18절 하반절에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절 상반절에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19절 중반절은 “성령으로 능력으로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 성령님께서 그 모든 일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 충만한 기쁨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과연 어디까지 전하고자 했을까요? 19절 하반절에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일루리곤은 마게도냐 위쪽입니다. 지금의 유고슬라비아죠. 그 먼 거리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라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한 바울이었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하나님의 은총을 나누는 삶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기쁨으로 충만케 하는 일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물론 그렇게 복음을 전하면서도 확고한 하나의 원칙이 있었죠. 20절에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이미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복음은 충분히 전할 수 있는 법입니다. 다만 그것을 세력다툼이나 주도권 쟁탈을 하면서까지 복음을 전하지는 않겠다는, 뜻이죠. 중요한 것은 영혼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여 그 영혼 속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면 정말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지만 남이 닦아 놓은 터를 빼앗고,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복음을 도구로 삼는 것은 일체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단락을 21절에서 결론지어 줍니다.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것은 이사야 52장 15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복음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더 14절부터 16장 마지막 절까지는 로마서의 부록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재해석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오늘의 바울도, 오늘의 로마서도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바울을 안으시고 품어주셔서 로마의 성도들에게까지 이 편지를 쓰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친히 안으셔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의 편지가 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그런 은혜의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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