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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로마서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롬14:1-12)

by 똑똑이채널 2024.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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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다양한 갈등을 겪습니다. 그 갈등의 원인은 대부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과 다른 사람을 보는 관점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면, 때때로 갈등을 넘어 분쟁까지 일으키게 되죠. 그래서 그 유명한 어거스틴, 어제 말씀드린 4세기의 신학자 어거스틴은 그런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그리고 모든 것에는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면, 주님의 안아주심 속에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대해 그렇게 이해하면서 살라는 것이죠.

 

그런데 로마 교회 안에서도 자신의 신앙생활이 뭔가 기준이 되어, 남을 불편하게 한 일들이 생겼던 것입니다. 특별히 어떤 종류의 음식을 먹는 일이나 특별한 날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서로의 견해차가 생겼습니다. 그로 인해 서로의 다름에 대해 정죄하는 일이 생겼고, 급기야 그 일로 인해 교회 안에 분열과 갈등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의 교우들에게 그런 문제에 대해 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권면한 내용이 1절부터 12절까지 기록돼 있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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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2절 말씀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이것은 음식에 관한 내용입니다. 당시 로마 사회는 이방신에게 제사를 지낸 음식들을 시장에 내다 파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우상의 제물로 제사를 드린 고기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먹기에 꺼림직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전통으로 지켜오던 유대교 법에는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이 구분돼 있었죠. 그래서 부정한 음식은 먹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지켜져 온 규율이기 때문에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아직도 율법을 지키며 부정하고 불결한 음식을 먹지 않지 않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문제는 그런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도가 지나쳐서 자신도 먹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그런 음식들을 먹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했던 것이죠.

그런데 그와는 다른 신앙인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신앙인들은 음식이 사람을 더럽히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처럼 속에서 나온 생각들이 더러운 것들이라면서, 우상 앞에 제물로 바친 음식이나 유대교에서 부정하다고 여긴 음식들을 아무런 거리낌 업이 먹는 신앙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은 음식 자체를 부정하게 여기면서 먹지 못하는 이들을 율법에 얽매여 있는 자들이요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라고 하면서 멸시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음식을 자유롭게 먹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를 구분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와 연약한 자로 말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어떤 입장에 있든지,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성도들을 업신여기거나 비판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 모두를 당신의 품으로 안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그들 모두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자들이기 때문에 말이죠. 하나님께서 받으신 자들을 너희의 편견과 판단 때문에 서로를 비난하고 무시하고 정죄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그만큼 그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본문 3절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죠.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바울은 교회 안의 성도들은 주님께서 구원하신 자들이고, 또 그 분께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서로가 다르다고 비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서로가 자기 판단과 자기 주관으로 비난하면 그것은 곧 주님을 향한 비난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4절입니다.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주님은 당신에게 속한 종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그들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세워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자신도 종이면서, 누가 남의 하인을 그 주인 앞에서 비난하며 멸시할 수 있겠냐고 말하는 것이죠. 그만큼 나 자신이 주님의 종임을 아는 사람들은 함부로 남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티끌이요 재와 같은 존재임을 아는 자는 누구 앞에서도 감나라 배 놔라 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 마음과 자세로 서로를 수용하고 품으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5-9절 말씀은 본문의 두 번째에 해당하는 ‘날’에 관한 말씀입니다. 어떤 구별된 날을 중히 여기는 것, 이른바 절기나 특별한 날을 지키는 문제로 로마교회 성도들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이었죠. 그래서 5절에 그렇게 말씀합니까?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초대교회 당시에 구약의 안식일에 대한 규정과 이방인들이 지켰던 성스러운 날들에 대한 의무가 그리스도 안에서 무효가 되었다고 느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른바 헬라파 그리스도인들, 유대계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방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생각을 했겠죠. 하지만 그 점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절기를 지키는 방법이나 날짜를 정하는 문제, 또 그런 날에 대해 행사의 범위 등으로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었죠. 이른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곧 유대교를 신봉하다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생활을 하는 이들이 그랬죠. 그로 인해 로마교회 안에 의견 차이가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불편한 마음을 갖고, 서로의 입장차를 따라 비난하거나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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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그런 분열 움직임에 대해 지금 권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비록 견해가 다르고 행동이 다르다 할지라도, 그 동기가 ‘하나님을 위해 한 것이고,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한 것’이라면,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6절에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든, 그것은 주님을 위해서 하라는 말씀입니다. 갈등과 분열의 상황이 생기더라도, 그 동기가 주님을 위한 것이고 주님의 영광을 위한 의도가 같다면, 교회 안의 성도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주님 안에서 품고 안아주라는 것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본문 11-12절입니다.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사도 바울은 음식의 문제이든지, 날과 절기의 문제이든지, 그에 대한 판단과 행위를 최종적으로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결코 우리 자신이 판단할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 세부적인 것까지 나서서 비판하고 정죄하려고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나 자신의 행동과 믿음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을 것을 늘 기억하며 살라는 것이죠. 그런 마음 곧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 가짐으로 늘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 앞에 설 때 흠없이 설 수 있고, 한 영혼이라도 더 품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말한 어거스틴의 말을 깊이 가슴 속에 새기며 살아야 합니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그리고 모든 것에는 사랑을.” 광야교회와 같은 믿음의 삶을 사는 우리가 취해야 할 믿음의 자세가 바로 그것입니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보이고, 비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자유롭게 받아주고, 그 안에 사랑이 깊어지도록 말입니다. 오늘 하루도 그렇게 주님께서 안아주시고 품어주시는 그런 은혜의 삶으로 내 곁의 사람들을 품고 이해하며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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