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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로마서

이 신비를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롬11:25-32)

by 똑똑이채널 2024.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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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이스라엘의 꺾어짐이 없었다면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접붙임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스라엘의 꺾어짐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듯 우리가 오늘 존재하기까지 부모님과 주님 안에서 접붙여짐은 물론이고, 실은 많은 사람들의 꺾어짐 곧 희생을 통해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이제는 나도 그 누군가를 위한 접붙임의 통로, 곧 희생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사는 책임이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본문 25절에서는 그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또 하나의 사실을 발견하게 해 줍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이방인인 우리가 구원받게 된 것은 이스라엘이 우둔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러는’하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부분적으로’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볼 때 일부 사람들을 뜻할 수도 있고, 한 사람을 두고 볼 때는 그 사람의 한 면을 두고 하는 말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의 표현이든지 이 표현은 실로 놀라운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바울을 만났던 사람들 중 개인적이든 대부분이든, 다들 바울을 돌로 쳐 죽이려 했던 ‘완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의 완악함이 지극히 작은 부분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들의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공간을 훨씬 더 많이 열어놓고 있는 바울입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바울이 처한 상황에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저들은 도저히 가망이 없는 사람들이다, 하고 표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도 바울은 그들의 가능성이라는 공간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신비로운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신비로운 능력을 믿을 때 부정적인 면은 작게 보이고, 신비로운 능력이 역사할 공간은 크게 보이는 법이라는 것이죠. 본문 26-27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완악하다 할지라도 그들을 매도할 수 없는 이유는, 바울 자신을 구원해 주신 신비로운 능력이 저들도 구원해 주리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신비로운 은혜가 저들에게 임하면 저들도 돌이킬 것이고, 저들의 죄도 사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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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의 신비스런 능력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 위에 서 있을 때 가능하죠.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믿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용했습니다. 본문 28절에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복음의 관점으로 볼 때 저들은 원수 된 사람들이지만, 택하심의 관점에서 보면 조상들로 인해 사랑을 입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저들의 뿌리는 믿음의 조상이고, 저들은 믿음의 조상에서 나온 열매들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만큼 자신이 믿는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용하고자 했던 것이죠. 그래서 저들을 사랑하고 포용한 것입니다.

 

본문 29절입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후회하심이 없다는 말은 철회하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부르셨다고 하면 절대 철회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아브라함 개인만 부르신 것이 아니죠. 아브라함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을 통해 민족 전체를 불러 주신 것이죠. 아브라함이라는 뿌리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나오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어찌 이스라엘에 대한 부르심을 철회하실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결코 철회할 수 없다고 바울은 확신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과 나 자신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으면 저 사람은 근본이 틀렸다고 단정해 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근본이 틀려 완악할지라도 ‘뿌리가 좋다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만큼 가능성을 더 크게 열어놓고 품는 바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닮아야 할 모습이죠.

 

본문 30-31절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과거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던 우리가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되었는데, 그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순종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도 결국에는 주님의 긍휼을 입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본문 32절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기 위해 그들을 불순종의 상태에 가두어 두셨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통찰입니다. 내 주위에 주님을 믿지 않고 내 속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내가 미워만 할 수 있는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주님을 바라보게 된다면 그 또한 감사한 일이라는 것이죠. 내 속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되어 그 까닭에 주님 앞에 나아가게 된다면, 그 또한 은총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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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 바울은 본문 33-36절을 통해 로마서 11장의 결론에 해당하는 찬양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 부분은 로마서 11장의 결론 부분이자 실은 로마서 전반부의 결론 부분이기도 합니다.

로마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고 했죠. 1-11장까지 구원의 교리적인 부분에 해당하고, 12-16장까지는 구원받은 자의 실천편에 해당한다고 말이죠. 그와 같은 교리 부분의 끝부분을 지금 하나님께 찬양의 고백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왜죠? 구원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교회를 향해 이 편지를 쓰고 있지만, 실은 로마교회 안에 유대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구원의 갈등이 있었던 것이죠. 유대인들은 유대인들대로 선민의식에 빠져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있었고, 이방인은 이방인들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안에 있었지만 유대인들을 무시했던 것 말입니다.

그래서 1-8장을 통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가 죄 아래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했고, 9-11장까지는 유대 동족들조차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았으면 좋겠다고 바울이 강조하는데, 11장에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줬죠. 이방인들이 구원받게 된 것은 아브라함의 뿌리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가지가 떨어져 나갔기에 그 자리를 대신해 이방인들이 접붙임 받아 구원받은 것이라고 말이죠. 그렇기에 이방인인 너희들은 주님의 그 신비로운 방법 앞에 결코 자랑하거나 유대인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결론부분에서 뭐라고 밝혀줍니까? 모든 만물은 주님에게서 나온 것이고, 또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처럼 구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신비로운 주님의 구원 앞에 자랑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인도, 이방인도 똑같기 때문에,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라는 것 말이죠.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인 주님의 신비로운 방법을 통해서 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의 구원을 자랑하거나 구원받지 못한 이들을 무시하는 그런 삶이 아니라, 늘 겸손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구원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사는 몫이 남아 있는 것이죠. 오늘도 주님 앞에서 겸손하게 영광돌리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주님. 이방인들이 구원받게 된 것은 유대인들이 잘려나간 그 자리에 접붙임받은 까닭이라고 바울이 고백합니다. 그렇기에 이방인이 구원받은 것은 그들의 능력이나 자랑거리가 아니라 전적인 주님의 은혜이니 스스로 자랑할 게 아무 것도 없음을 압니다. 오늘 저희들이 구원받은 것은 누군가 구원의 접붙임을 받아야 할 그 자리에 저희들을 대신 붙여주신 줄 믿습니다. 저희들의 구원도 자랑할 일이 아니요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믿고 오늘 하루도 구원밖에 있는 자들에게 긍휼의 마음을 품고 살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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