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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로 형이하학적인 인간이죠. 짐승처럼 자기 본능에 이끌려 사는 사람이죠. 둘째는 형이상학적인 인간,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인간입니다. 셋째로 영적인 인간, 곧 신앙적인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1장18절 이하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짐승처럼 자기 본능대로 사는 형이하학적인 인간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는데, 완전 쓸어버리는 심판도 있고, 방치하는 심판도 있죠. 방치하시는 심판의 결과로, 우상숭배, 성적 타락, 그리고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 나타난다고 했죠. 타락한 이성 속에서 20가지 불의를 행하는데,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시기, 악독, 수군수군, 비방, 하나님께서 미워하심, 능욕, 교만, 자랑, 악행, 부모 거역, 우매, 배약, 무정, 무자비 등이 그것이죠.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 자신은 20가지로부터 완벽한가? 그렇지 않죠. 그런데도 우리를 의롭게 여기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때문이죠.
오늘 본문은 두 번째 부류 곧 형이상학적인 인간,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인간에 관한 말씀입니다. 실은 로마서 2장 전체가 그 부류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도덕적인 인간 중에도 두 부류가 나오는 1-5절은 그 첫 번째 부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이것이 바로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인간의 특징이라는 점입니다. ‘판단’은 헬라어로 ‘크리노’인데, ‘정죄’, ‘심판’을 뜻하는 말입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은 판단도, 정죄도 하지 않지만, 조금 아는 척 하는 이들이 그렇게 판단하고 정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인간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면서도 자기도 똑같이 그것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도적적인 인간 곧 철학적인 인간이 놓치고 있는 게 무엇입니까?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몫은 인간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죠.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고유 영역인데 말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면서 살 때 그릇된 도덕주의자들과 달리 영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것을 6절에서 밝혀줍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도덕주의자들, 철학주의자들 곧 형이상학적인 그런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행한대로 보응하신다는 것입니다.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면서 자기도 똑같이 그런 삶을 사는 자들을 말이죠. 여기에서 중요한 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고유 권한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각 사람”에게, 다시 말해 개별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가정 식구들이 함께 부름을 받았어도 각자각자 하나님 앞에서 평가를 받는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도덕주의 인간과 달리,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내가 어디를 맴도는가가, 또 누구와 함께 있는가가 중요하겠죠.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내가 누구와 함께 하든지,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게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본문 7-10절은 선과 악에 대해 대조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선과 악이 무엇입니까? 선은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않는 것 곧 영생을 귀결되는 것이죠. 반대로 악은 무엇입니까? 당을 짓는 것이라고 말하죠. ‘당’으로 기록된 헬라어 ‘에리데이아’는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기 위해 짝을 짓는 것’을 말합니다. 그 단어는 로마서 1장 29절의 ‘시기’와 같은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당을 짓고 불의를 좇는 악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만 남게 된다고 하죠. 그것은 유대인이든지 헬라인이든지 똑같다는 것이죠.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3장 6절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 그만큼 도덕적인 인간들처럼 남의 행위에 관심을 두고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썩어 없어질 것을 위해 살지 말라는 것이죠. 오직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살라는 것이죠.
본문 12-16절 말씀은 도덕주의 인간의 두 번째 유형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른바 ‘양심주의자'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인간의 양심으로 모든 의와 모든 선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양심이 선하고 아름답습니까? 성경은 인간의 양심을 철저하게 타락한 것으로 보고 있죠. 아담의 죄로 인해 모든 인간의 양심 자체가 오염되었기 때문이죠.
문제는 그런 양심주의자들 중에는 ‘하나님의 법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죠. 본문 12절 상반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하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법 없이 자기 양심만으로 의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이죠.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몰랐다고 해서 죄가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도록 인간을 지었는데, 인간 스스로 양심을 오염시켜 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12절 하반절은 양심주의자의 두 번째 부류에 관한 말씀입니다.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이 유형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없이 자기 양심만으로 하나님의 법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죠. 자기 힘, 자기 공로로,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룰 수 있다고 여기는 양심주의자들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도덕주의자들 곧 양심주의자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합니까? 본문 13절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그리고 14-16절입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이론적으로는 엄격한 양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가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죠. 로마서 3장 20절에서도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또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말씀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완전한 의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법이 주어졌고 그 이전에는 소위 양심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그 양심의 시대에 스스로의 힘이나 노력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없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만 구원받았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아브라함도,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을 때에 그 양심이 살아 움직일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을 때에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결단코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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