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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크게 기뻐하니라(행16:29-34)

by 똑똑이채널 2021.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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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irocross.com/2013/12/09/the-philippian-jailers-belief/

 

(설교열기)(성화) 누가복음 8장에는 거라사인의 귀신들린 자를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사건이 나옵니다.

거라사인은 당시 갈릴리 호수 건너편에 위치한 곳으로 10개의 성읍 중 중심도시였습니다.

그곳이 돼지 떼를 키우는 곳으로 봐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주로 살고 있는 도시임을 알 수 있죠.

 

바로 그 성읍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날 예수님은 그야말로 지친 하루였습니다.

수 많은 병자들을 고쳐줬고 동시에 친인척들의 모함도 받았죠.

그런가 하면 제자들을 따로 모아 씨뿌리는 비유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거라사인 지방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타고 가는데 풍랑과 파도가 일어났죠.

그때 제자들은 곧장 죽어간다고 생각했는데, 배 위에서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깨워서 그것들을 잠잠케 해주셨죠.

 

크게 기뻐하니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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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피곤하고 지친 예수님 아니셨겠습니까?

그런데 그 배가 갈릴리 호수에서 50km 떨어진 곳을 향해 노를 저어 도척한 곳이 바로 그곳 거라사인 지역이었죠.

주님께서 왜 그곳에 가신 것이었습니까?

그곳에 귀신 들린 사람, 그것도 군대귀신 들린 사람을 건져주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때 귀신들린 그 사람의 귀신들이 예수님을 알아보면서, 무저갱으로 들어가지 말게 해 달라고 할 때 돼지떼에게 들어가도록 명령하셨죠.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 돼지떼 주인들은 졸지에 귀신들이 돼지떼에게 들려들어가 모두 몰사당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그 성읍에서 떠나도록 했죠.

더 이상 재산상의 손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한 처사였죠.

그때 예수님은 더 이상 그곳 거라사인의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고, 귀신에게 놓임받은 그 사람에게 예수님을 알리도록 하고 떠났죠.

 

(깨달음) 그렇다면 무슨 목적으로 하루 종일 수고하고 쉼도 얻지 못한 예수님께서 그곳 거라사인에 가신 것입니까?

갈릴리에서 파도와 풍랑의 위협을 무르씁고 거라사인까지 가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직 한 가지, 귀신들린 그 한 사람을 고쳐주시기 위함이었죠.

그 한 사람에게 귀신에게서 자유케 되는 그 기쁨, 영적인 기쁨, 구원의 기쁨을 만끽하도록 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복음 아니겠습니까?

복음이란 좋은 소식이요, 곧 영생을 얻는 기쁜 소식이니 말입니다.

바로 그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힘들고 피곤한 것들까지 다 뒤로하고 그곳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적용)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기쁨의 삶을 산다면 얼마나 주님께서 기뻐하실까요?

내가 자랑할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지만, 누군가에게 정말로 기쁨을 안겨주는 삶을 산다면 말입니다.

 

그런 삶이야말로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칭찬하실만한 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죠.

주님께서도 그런 일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우리도 그를 위해 주님의 자녀로 구원해 주신 것이니 말입니다.

주님을 믿는 삶이란 위로 주님을 위한 기쁨의 삶이자 아래로 누군가를 위한 기쁨의 삶을 사는 것이니 말이죠.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빌립보의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의 귀신을 내좇은 일로, 그 상전들이 달려와 바울과 실라를 시장 법정에 끌고갔죠.

그때 그 상전들은 바울과 실라가 유대인으로 로마법도 따르지 않고 로마법과 어긋나는 풍속을 퍼트린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고라의 최고 관리는 아랫 사람을 시켜 바울과 실라의 옷을 벗기고, 심한 매질을 가하도록 했죠.

 

물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죠.

바울과 실라는 곧바로 로마 지하 감옥에 감금시켰고, 손과 발에 차꼬가지 채웠죠.

그때 바울과 실라가 무엇을 했습니까?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하나님껫 찬양과 기도를 올려드렸죠.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양소리는 같은 감옥에 갇힌 다른 죄수들에게까지 전해졌죠.

그만큼 그 죄수들에게 진정한 소망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알도록 하라는 뜻이었죠.

그러면서 바울과 실라는 그 감옥속에서 영광받으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주어진 상황을 내어맡기며 기도를 했죠.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께서 일으킨 지진을 통해,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풀리는 역사가 일어났죠.

그때 다른 죄수들은 모두 다 도망을 친 상태였죠.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감옥을 빠져나가지 않고 그곳에 가만히 있었죠.

왜냐하면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도록 기도를 드렸으니,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음을 바라봤기 때문이죠.

 

그때 그 감옥문을 지킨 간수장은 죄수들이 다 빠져나간 줄 알고 자결하려고 했죠.

그러자 바울은 그 간수장을 향해 멈추시오. 우리가 여기에 있소.”하고 말했죠.

그러자 간수장은 불빛을 밝히며 뛰어들어갔죠.

그때 그 간수장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 자리에 꼼짝도 없이 앉아 있는 사람은 그들 두 사람뿐이라, 그 모습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죠.

 

그때 그가 어떻게 했습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하고 말했죠.

그러자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 집 사람들이 모두 구원을 받을 수 있어요하고 말했죠.

 

그러자 그 간수장은 바울과 실라는 데리고 자기 집으로 모셔서, 식사를 대접하고, 구원의 복음을 들었죠.

그리고 온 가족 식구들이 세례를 받았고, 빌립보교회의 2번째 신자 가족이 된 것이었습니다.

 

(본문)그때의 상황을 오늘 본문 33-34절이 이렇게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원해)여기에서 크게 기뻐하니라하는 말씀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쁨은 헬라어로 아갈리아오’(ἀγαλλιω)입니다.

이 기쁨은 이 땅에서 누리는 절대적인 기쁨 곧 최상의 기쁨을 말합니다.

 

이른바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을 때 기뻐하라’(5:12)할 때의 그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친족 엘리사벳을 만날 때비천한 자신을 통해 구세주를 낳는다는 그 기쁨(1:47)을 일컫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파송하신 70인지 놀라운 기적을 행할 때 성령으로 기뻐하신(10:21) 예수님의 심정을 가리킨 것입니다.

 

(깨달음)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간수장이 가족들의 기쁨이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 가족들의 기쁨은 이 세상에 돈을 번 것 때문에, 간수장 신분에서 상승한 것 때문에, 더 큰 권력을 얻은 것 때문에 누린 기쁨이 아닙니다.

그 가족의 기쁨은 이땅에서 줄 수 없는 영생을 받은 것 때문에 누리는 절대적인 기쁨이죠.

 

(적용)그렇다면 그 가족들의 기쁨은 어떻게 해서, 누구를 통해서, 얻게 된 것입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바울과 실라를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게 된 기쁨 아니겠습니까?

 

그를 위해 바울과 실라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애당초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성읍에 올 계획도 없었습니다.

그저 소아시아 지역의 에베소를 목적으로 둔 2차 전도여행이었죠.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그들에게 마게도냐 곧 유럽대륙의 사람들 환상을 보여주셨죠.

다음날 바울과 일행은 이성으로 그 환상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으로 받들였고, 배편을 알아보고자 동분서주했죠.

그래서 드로아 항구에서 네압볼리까지 250km 거리를 배타고 왔고, 네압볼리에서 빌립보까지 16km걸어서 왔죠.

 

어떻습니까?

이 모습이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격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군대귀신 들린 그 한 사람을 고쳐주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온 것처럼 말입니다.

바울과 실라도 바로 그와 같은 주님의 심정을 갖고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빌립보에 왔고, 지금은 주님의 이끄심 속에서 감옥에 갇힌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곳에서 간수장과 그 집 식구들에게 구원의 기쁨을 전하는 주님의 도구로 쓰임받고 있는 아닙니까?

 

(주문)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우리를 통해서도 누군가 한 사람의 기쁨을 위한 주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점이죠.

 

(주음성)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성령님의 음성으로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도 바울과 실라처럼, 아니 예수님처럼, 누군가에게 생명의 기쁨을 나누는 주님의 통로가 되지 않겠느냐?”

예수님께서 지친 몸을 이끌고 파도를 맞서 거라사인 지방에 가서 한 일이 그 한 영혼의 생명을 얻는 기쁨을 나누어주듯이 말이다.”

바울과 실라도 빌립보 감옥에서 그 간수장과 집 식구들, 그 한 영혼의 영생을 위한 기쁨을 전하고 있지 않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도 지금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하는 통로가 되지 않겠느냐?”

너와 함께 하는 동료들, 성도들, 그 누군가에게 진정한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구나.”

이를 위해 너를 구원하였으니, 너도 주님 사랑에 빚진 자로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찬양)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본문)정양식 목사의 설교집 서로 함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198289일은 일곱 살 난 소년 숀 버틀러(S. Butler)가 죽는 날이었습니다.

뇌암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혼자서 숨쉬기조차 불가능한 아이였죠.

 

그런 아들을 살려내기 위해 그 아이의 부모는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마침내 아들의 생명을 억지로 연장하고 있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기로 결심을 했죠.

 

그때 아버지에게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아들이 평소 만나고 싶어했던 야구 선수 데이브 스테플턴을 대면시켜줘야겠다는 생각이 그것이었죠.

아버지는 곧바로 보스턴 야구팀 레드삭스의 홈런타자 스테플턴을 찾아가 자기 아들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러자 스테플턴은 기꺼이 승낙했고, 숀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그순간 그가 나타났습니다.

그때 스테플턴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 내가 스테플턴이야

 

그 순간 아이는 눈을 번쩍 떴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때 스테플턴은 그렇게 말 했습니다.

, 내일 시합에서 홈런을 칠 테니 기다려.”

그렇게 말하면서 그 아이에게 싸인공 하나를 놓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소년은 그날 죽지를 않았습니다.

 

다음날 스테플턴은 약속대로 홈런을 쳤습니다.

그 아이는 그 홈런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굳게 믿었죠.

그리고 그것이 그 아이에게 힘이 되었던지, 그 힘으로 소년은 암과 피나는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로부터 5개월 뒤였습니다.

의사들은 소년의 뇌에서 단 하나의 암세포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깨달음)어떻습니까?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 것 아닙니까?

어떻게 그런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까?

작은 사랑이 그토록 놀라운 주님의 기적을 일으킨 것이죠.

 

(적용)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그런 사랑을 통해, 누군가에게 그런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내음성) 그렇기에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뻗받으실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이 작은 자를 통해서도 주님은 얼마든지 일하시고 역사하실 수 있음을 믿어요.”

나는 작고 약하지만 우리 주님은 크고 능력이 많으신 분인 줄 믿습니다.”

주님 암으로 죽어가는 그 아이에게 그 야구선수가 소망의 기쁨을 준 것처럼,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기쁨을 안겨주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내 가족식구들에게, 나의 성도들에게, 내 일터의 동료들에게 영생의 기쁨, 회복의 기쁨을 선사할 수 있는 주님의 도구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의 그 간수장 식구들에게 주님의 기쁨이 된 것처럼 저도 그런 기쁨이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그 한 사람을 위해 하늘의 기쁨을 전한 것처럼, 저도 그런 기쁨의 삶을 살게 해 주세요.”

 

(찬양)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설교닫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은 영생의 기쁨을 누리며 살도록 하신 것인 줄 믿습니다.

다만 나 혼자만의 기쁨으로 끝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기쁨, 주님께서 원하시는 기쁨을 누군가와 함께 누리도록 하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시고 그에게 영생의 기쁨을 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바울과 실라를 통해 주님께서 그 간수장과 식구들에게 영생의 기쁨을 부어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와 같은 절대적인 기쁨, 이 지상의 최고의 기쁨을,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 누군가에게 베풀고 나누도록 우리를 부르신 줄 믿습니다.

 

그와 같은 축복의 은혜, 그와 같은 생명의 기쁨이 충만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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