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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고린도전서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고전10:14-22)

by 똑똑이채널 2024.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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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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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일도 구직도 안 하는 대졸자가 400만명이라고 합니다.

그 전에 취업했다가 너무 힘든 상황에 직면해서 퇴직한 이후에 자연스럽게 쉬게 된 청년도 많다고 하죠.

또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쉰다는 청년도 있고, 부모의 그늘에 있는 게 편해서 쉬는 청년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청년의 시기는 자립인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자립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자립인이 되는 게 중요합니다.

일을 하면서 수입이 적든 많든 그 상황에 감사하며 자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의식의 자립인도 필요합니다.

남들 다 하는 데로 따라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허례허식하지 않고 분수를 알고 사는 사람이죠.결혼식을 해도 남들처럼 초호화예식장에서 하는 게 아니라 검소하게 하는 사람이죠.

 

그리고 또 하나 영적인 자립인이 돼야 합니다.

영적인 자립인이 되지 못하면 무슨 일만 생기면 목사님이나기도 많이 하는 권사님을 찾아가 묻죠.

마트를 운영하는 사람은 그 분야의 전문가인데 왜 기도많이 한다는 권사님을 찾아가는 것입니까?

그만큼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깨닫고 사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적용)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경제적인 자립인 의식의 자립인 영적인 자립인인지 점검해봐야 하죠.

그것은 자기를 쳐 주님께 복종시킬 때,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 때, 그게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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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묵상하기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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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바울은 날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켰습니다.

친다는 것은 ‘휘포피아조’(ὑπωπιάζω)로 피멍이 들게 치는 걸(to beat black and blue) 말합니다.

복종시키다는 ‘둘라고고게오’(δουλαγωγέω)는 ‘노예로 삼는다’(to make a slave)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을 진리의 노예 곧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로 세워 가기 위해서 엄격한 자기 절제와 훈련을 반복한 것이었습니다.

 

과연 그렇게 자기를 쳐서 복종시킨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남에게 복음을 전한 뒤에 자기 자신은 버림이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구원에서 버림받는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상급에서 버림받는 걸 말합니다.

말하자면 바울은 상주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었던 사람이죠.

 

그래서 고린도전서 10장 1-13절을 통해 이스라엘 선조가 홍해에서 세례를 받는 은총을 입었음에도 자신들을 쳐서 복종시키지 못해 결국 가나안이라는 상급을 얻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고 했죠.

더욱이 바울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감당하지 못할 유혹은 없다고 했습니다.

어떤 유혹이 임한다 할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 유혹 앞에서 피할 길을 준다고 했습니다.

 

(깨달음)우리도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볼 때 이 세상의 어떤 유혹도 능히 이겨내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것보다 더욱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바울과 같은 진면교사의 삶을 좇아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본문)바로 그 연장 선상에서 바울은 오늘 본문 14절에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깨달음)여기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하고 말합니다.

바울은 사랑하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말한다고 일깨워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질책할 수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진실을 말해 줄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사랑한다면 말하고 싶어도 덮어 줄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적용)바울은 사랑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 권고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8장 1절부터 이야기하는 주제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었죠.

그런데 그것으로부터 시작한 바울은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시내산에서 진을 치고 있을 때였죠.

그들의 눈에 하나님처럼 보이던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금붙이를 빼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춤을 추며 금송아지를 향해 엘로힘이라면서 섬겼죠.

그들은 금송아지라는 우상이라고 생각지 않고 그걸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섬긴 것이었죠.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상숭배로 끝나 버린 것이었습니다.

 

또 모압 땅을 지날 때는 모압 여자들과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알 브올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내 욕정을 참지 못하고 한 번 음행을 저질렀는데 그 음행을 합법화해주는 바알 브올까지 섬긴 것입니다.

 

(본문2)바울은 본문 15절을 통해 우상숭배에 관한 부분을 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깨달음)여기에 바울이 강조하는 말은 ‘스스로 판단하라’하는 말입니다.

그만큼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영적인 자립인이 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스스로 영적인 자립인이 되지 못하면 누군가에게 계속 예속된 사람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뭘 하든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서 답을 구하게 되고 문제가 생기면 또 찾아가게 되죠.

그것은 내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주위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스스로 판단하라’ 곧 영적인 자립인이 되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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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욥기서 읽고 묵상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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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3)본문 16절을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원해)여기에서 잔과 떡, 그리스도의 피와 살은 성찬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성찬식 때 잔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는 것이죠.

성찬식 때 떡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것이고요.

 

‘참여’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입니다.

성찬식에 참예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joint participation)하는 걸 의미합니다.

그만큼 잔과 떡을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성찬식을 생각해 보면 로마 가톨릭은 화체설로 설명을 합니다.

화체설(化體設)은 화할 화 자에 몸 체자 영어로는 Transubstantiation입니다.

떡과 잔이 있는데, 이 떡과 잔을 신부님이 들고 기도를 합니다.

기도하는 순간에 그 떡과 포도주는 더이상 떡과 포도주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톨릭교회에서 성찬식 때 교인들에게 포도주를 안 줍니다.

옛날 로마 가톨릭교는 각 개개인이 모여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영주가 믿으면 전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었죠.

그래서 미사를 드리며 잔을 나눠주는데 농노들이 잔을 자꾸 쏟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실체로 바뀐 그 피를 쏟게 된다면 누군가 핥아야 하는데 사제가 핥았습니다.

그때부터 교인들에게는 아예 잔을 주지 말자고 하면서 사제만 해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517년에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합니다.

그가 주장한 것은 공재설(共在設 Consubstantiation)입니다.

이것은 떡과 잔이 있는데 사제가 기도를 해도 그것은 떡이고 포도주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 떡과 포도주 안에 예수님의 몸도 같이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에 무소부재하시기 때문에 그 떡과 잔에 함께 하신다는 것이죠.

 

쯔빙글리는 마르틴 루터와는 다른 논리를 폈습니다.

이른바 상징설이자 기념설(Symbolic Memorialism)입니다.

누가복음 22장 19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떡을 주면서 그렇게 말씀하셨죠.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예수님께서 화체나 공재가 아니라 단순히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으로 승천하셨는데 어떻게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되느냐, 하는 것이죠.

그것은 단순히 기념할 대상일 뿐이다,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실제로 계시지 않지만 성찬식 현장에서는 예수님이 계신 것처럼 떡과 잔을 대하는 것입니다.

 

1529년 독일 마르 부르크에서 마르틴 루터의 세력과 쯔빙글 측이 화해와 합력을 도모해 만났습니다.

거기에 총 15개의 의제가 올라왔습니다.

14개는 합치가 됐는데 마지막 성찬식에서 결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만약에 그때 합치됐다면 우리 개신교가 두고두고 분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회의가 결별되고 난 뒤에 12년이 지나서 존 칼빈이 독자적인 성찬식을 주장합니다.

바로 영적 임재설(Spiritual Presence)이 그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하늘에 계시지만 우리가 성찬식을 행할 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인 연합을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 떡과 잔이 예수님의 몸체로 바뀌는 게 아니라 성령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예식이 바로 성찬식이라고 본 것입니다.

 

(적용)그렇기에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성찬식 때 하는 떡과 포도주는 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만일 떡과 포도주가 아니라 다른 걸로 기념토록 하셨다면 그것으로 성찬식 때 사용했겠죠.

중요한 것은 그 예식이 참예하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연합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도 잔과 떡을 대할 때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성찬식에 참여해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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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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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8-21절입니다.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깨달음)‘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이란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의 조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들은 거듭난 것 같지만 육적인 소욕을 좇아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해 가나안이라는 상급을 얻지 못한 채 죽고 말았죠.

바울이 그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영적인 이스라엘이지 않느냐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제사장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 그 제물을 먹게 됩니다.

그 제물을 받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인간이 먹는 것이었죠.

따라서 제물을 바친 자가 제단에 참예하는 자가 아니냐 하는 뜻이 무엇입니까?

그 제물이 바친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우상의 제물도 마찬가지죠.

우상은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우상의 제물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바울도 우상의 제물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나로 인해 실족한다면 평생 먹지 않겠다고 했죠.

마찬가지로 성찬식 때 나누는 떡과 포도주도 실은 단순한 떡과 포도주일 뿐입니다.

하지만 성찬식 때 떡과 잔이 공재설이든 기념설이든 뭐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떡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20절에서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고 귀신과 교제하는 자라고 말하죠.

내가 신앙의 자유인이라고 하면서 이방 신전의 종교축제에 참여해 먹고 마신다면 어떻겠습니까?

비록 우상 자체는 돌맹이에 불과하지만 종교축제에 참여하는 것이 실은 우상자체와 연합하는 꼴이 되는 것이죠.

바울이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적용)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성찬식에 참여하고 주님과 연합된 자라면 어떻겠습니까?

그런 내가 우상의 신전에 들어가 우상의 축제에 참여하고 우상 제물을 먹는 것 자체가 귀신과 연합하는 모습이 된다는 것입니다.

 

(원성)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 14-16절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적용)그만큼 신실한 크리스천이라면 주님과 연합하여 사는 자라면 주님을 노여워하게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모신 성전된 자가 어찌 우상의 축제에 참여하여 귀신과 연합한 자로 살 수 있겠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우상을 섬기는 꼴을 한다면 그것은 주님을 잡신 수준으로 끌어 내리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우상을 그리스도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꼴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 자체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임을 기억하고 이 세상에서 우상숭배자가 되지 않도록 영적인 자립인이 되라고 바울이 권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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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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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영적인 자립인이 되어 주님과 연합하는 자가 되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겁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경제적인 자립인 의식의 자립인 영적인 자립인으로 살고 있느냐?”

특별히 영적인 자립인이 돼야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누군가의 인생을 살지도 않고 너의 인생을 살 수 않겠느냐?”

바울이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의 상급을 누리지 못한 채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의 조상을 이야기한 것도 영적인 자립이 되지 못한 이유라는 걸 일깨워준 것 아니더냐?”

영적인 자립인이라야 자신을 쳐 주님께 복종시킬 수 있고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며 살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영적인 자립인이 되지 못하면 우상의 신전과 그 축제에 참여하여 하나님을 우상의 수준으로 끌어내리지 않겠느냐?”

영적인 자립인이 되지 못하면 성찬식의 여러 교리에도 휘둘리고 급기야 떡과 잔 자체를 우상시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네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하나님 앞에 영적인 자립인이라면 우상의 신전과 제물 앞에 거리낌 없이 구별된 자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영적인 자립인으로 살 때 너에게 닥친 문제를 놓고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기도해달라고 할게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의 응답을 구할 수 있지 않겠느냐?”

네가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스스로 판단하는 영적인 자립인이 될 때 네 주변의 연약한 자도 너의 자녀들도 참된 믿음으로 이끌 수 있지 않겠느냐?”

 

(찬양)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하나님 나의 마음 만져 주소서 하나님 나의 영혼 새롭게 하소서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찬식의 떡과 잔이 공재설이든 기념설이든 뭐든지 간에 성찬식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의 관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주님과 연합한 자가 이방인이 제사하는 신전과 음식물을 먹고 마시는 연합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주님과 연합한 영적인 자립인으로 살 때 모든 기준에서 믿음의 기준으로 이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영적인 자립인이 돼야 모든 문제 앞에 누군가에게 의존치 않고 스스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자 더 깊이 주님과 연합할 수 있는 것이죠.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들도 경제적인 자립인 의식의 자립인 영적인 자립인이 되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성전으로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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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역대기서 읽고 묵상하기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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