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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읽은 사도행전 11장 후반부의 말씀은 이방인선교의 거점인 수리아 안디옥교회가 태동되고 부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교회는 예루살렘교회에 비하면 이방인교회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를 통해 세계선교, 이방인선교사역의 거점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들과 제자들이 성령의 권능을 받았지만 예루살렘을 빠져나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예루살렘 안에서만 주의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월 뿐이었죠. 그것이 사도행전 1-6장 전반부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스데반 집사의 순교와 더불어 교회의 박해가 일어나게 했고, 그 일로 빌립 집사와 같은 이들이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죠. 특별히 ‘가사’에까지 내려가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재무장관인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고, 곧장 지중해 해안가 가이샤라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9장에서는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이는데 주모자 역할을 하고, 교회를 잔멸하는데 선봉장역할을 한 사울을 주님께서 만나주시고 그를 당신의 택한 그릇으로 변화시킨 일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을 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주님의 복음이 전파된 일이었습니다.
이제 ‘땅끝’을 향해 나아가 복음을 사명이 남아 있는 셈입니다. 바로 그것을 보여주는 말씀이 사도행전 9장 후반부에서부터 어제 읽은 11장 후반부까지 내용입니다. 사도행전 9장 후반부에는 바울이 주님을 만나 변화되는 동안 베드로가 어떤 일을 했는지를 조명해주었습니다. 다른 사도들이 예루살렘을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을 그 때에 베드로는 성령에 이끌려 룻다에 들어가 중풍병으로 누운지 8년 된 애니아를 고쳐주었고, 욥바 곧 지중해 해변가의 ‘욥바’의 주님의 제자 다비다가 죽었을 때 그녀를 주님의 능력으로 살려내는 일이 있었죠. 그리고 사도행전 10장에서는 빌립 집사가 들어간 가이사랴를 조명해주는데, 그곳에 로마장교 고넬료가 주둔해 있었고, 그가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여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은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11장에서는 그런 베드로를 헐뜯고 비방하는 이들이 있었죠. 왜 이방인에게까지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세례까지 베풀고 함께 음식을 먹느냐, 하는 것이었죠. 그때 베드로는 성령께서 그에게 가라고 하셨고, 또 성령께서 우리에게 내리시듯이 그들에게 내리시는데 어찌 내가 막을 수 있겠느냐면서 세례를 베풀었고 함께 음식을 먹은 것이라고 차분하게 설명했죠. 그것이 11장 전반부의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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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1장 후반부는, 어제 읽은 것처럼, 이방인 선교사역의 거점역할을 하게 될 수리아 안디옥교회가 세워진 장면을 보여주었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 교회의 박해가 시작되었는데, 그때 빌립 집사는 예루살렘을 빠져나가 지중해 해안 최남단의 ‘가사’와 그 위에 ‘가이샤라’로 들어가 복음을 전했다고 했죠. 그런데 그때 다른 제자들이 그 ‘가사’에서부터 위쪽의 ‘욥바’, 그리고 그 위쪽의 ‘가이샤라’를 지나 그 윗쪽의 두로와 시돈을 거쳐 ‘베니게’까지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보다 더 위쪽의 사마리와 다메섹을 넘어 ‘시리아의 안디옥’에까지 들어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배타고 동북부에 떨어져 있는 섬 구브로에까지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이죠. 물론 초창기에는 같은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는데, 성령님께서는 그 후에 구브로와 구레네에서 복음을 전해 들은 자들이 배를 타고 건너와 수리아 안디옥에 사는 ‘이방인’들 곧 헬라인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했고, 그때 그곳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졌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곧 이방인선교의 거점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교회가 초대 예루살렘교회처럼 급작스럽게 부흥하자,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바나바’를 파송해 담임목회자가 되게 합니다. 그리고 더 부흥하게 되자, 바나바가 고향 땅 다소에 가 있는 사울에게 직접 가서 그를 초청해 공동담임목회자가 되어 그들을 가르치죠. 그런데 그때 비로소 처음으로 그 교회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함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되게 따르는 자들이란 의미죠. 진정으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자들이란 뜻입니다.
그렇듯 주님의 복음은 예루살렘을 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전파되었고, 이제 땅끝을 향해 더 나아갈 그 초석이자 거점인 시리아 안디옥교회까지 세워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어제 읽은 11장 후반부의 모습이고, 얼마나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이었겠습니까? 모든 초대예루살렘의 사도들과 교인들, 그리고 수리아안디옥교회 바나바와 사울 그 교인들도 정말로 기뻐했겠죠.
그런데 오늘 읽은 말씀은 예루살렘교회에 또 다시 핍박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모습입니다. 마치 주님의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전파되고 흥황하게 되는데, 찬물을 끼얹는 모습과도 같은 격입니다. 이른바 헤롯이 교회를 핍박하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기독교인 중에 야고보 사도를 참수시키고 베드로까지 처형하려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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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절입니다.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여기에 나오는 헤롯은 헤롯 대왕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그 헤롯 대왕은 아기 예수의 탄생 때 2살 박이 아래의 아이들을 다 죽이게 했던 대왕입니다. 본문의 헤롯은 그 해롯 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를 칭하는 사람입니다. 그 역시 헤롯 대왕처럼 정치적인 야욕이 너무나도 컸던 사람이고, 어떻게 하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살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 본문에서도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기독교인들을 탄압하고 핍박한 일을 벌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인 것이었습니다. 본문 2절에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이른바 초대교회의 첫 순교자는 베드로도 아니었고, 바울도 아니었습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 사도가 첫 순교의 제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야고보 사도만 죽이는 것으로 그칩니까? 아닙니다. 본문 3절에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헤롯은 야고보에 이어 베드로 사도까지 내친 김에 처형시키려고 잡아들인 것입니다. 왜죠? 베드로 사도야 말로 예수님의 수제자요, 초대교회의 수장과도 같은 인물로 여긴 까닭이었죠. 그래서 베드로까지 처형시키면 기독교의 조직이 와해되고, 그렇게 되면 유대인들로부터 더욱더 지지와 찬사를 받을 것으로 헤롯이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금 베드로까지 잡아들였는데, ‘무교절 기간’이라, 다시 말해 유월절 기간이라, 그 기간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무교절 기간만 지나면, 다시 말해 유월절 기간이 끝나기만 하면 야고보 사도처럼 베드로 사도도 처형시키려고 하는 참입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교회는 어떻게 합니까? 본문 5절에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야고보 사도가 순교당한 것을 알고, 이제는 베드로 사도 차례구나, 하면서 간절히 기도했던 것이죠. 그런데 그 기도의 응답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하나님의 뜻이 있었는지, 본문 7-10절을 보면 베드로 사도는 주님의 사자 곧 천사가 가서 베드로 사도를 이끌고 감옥에서 나오게 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그런 질문이 제기되지 않습니까? 왜 베드로 사도는 살려주고, 왜 야고보 사도는 죽도록 내버려두셨는가? 하는 점 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의문 앞에 하나님 앞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일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야고보 사도를 통해서 영광받으신 하나님의 일이 있고, 또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영광받으실 일이 따로 있다는 것외에 우리로서는 달리 생각할 부분이 없다는 점입니다. 마치 나사렛 촌뜨기에 불과한 마리아를 왜 하나님께서 선택하여서 아기 예수를 낳는 영광을 덧입게 해 주셨는지 우리로서는 이해불가한 일과 같은 격입니다.
아무쪼록 우리의 삶 가운데도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부흥하고 이방인 지역까지 더 많이 더 넓게 주의 복음이 전파되는데, 찬물을 끼얹기라도 하듯이 핍박이 일어나는 일들 말입니다. 이때에도 주님의 깊으신 섭리를 내다보고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순종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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