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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은 주님의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전파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죠. 1장부터 7장 초반부까지는 주님의 복음이 예루살렘에 국한되어 전파된 것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직계 제자들 곧 12사도를 중심으로 성령께서 역사한 모습을 보여줬죠.
이제 7장후반부부터는 예루살렘을 벗어나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향해 복음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12사도가 아닌 해외에서 온 헬라파 집사들, 스데반과 빌립 집사와 같은 이들이 핍박과 박해를 피해 그 땅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한 모습이었죠.
그것이 사도행전 7장과 8장의 내용이었고, 오늘 읽은 사도행전 9장은 전혀 다른 주님의 제자, 곧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일 때 증인으로 있던 이, 또한 교회를 잔멸할 때 그 선봉장에 선 인물, 바로 사울이라는 자가 주님을 만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말하면 그토록 강퍅한 사울도 주님께서 만나 주시면 변화된다는 점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사람이라도, 주님을 진정으로 만나면 변화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이라는 자가 대제사장에게 가서 공문을 청한 모습입니다. 어떤 공문을 청한 것입니까? 다메섹 곧 사마리아 북쪽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따르는 자들을 색출해서 예루살렘으로 잡아올 수 있는 그 공문을 요청한 것이죠. 그만큼 사울이라는 청년은 교회를 박해하는데 앞장선 사람이었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이 그의 신념이요, 종교적인 열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뜻에서 열심은 마땅히 존중받아야할 소중한 인간의 태도입니다. 열심에서 모든 일은 뼈대를 이루고 성취됩니다. 그처럼 일을 성취하는 동력이 열심입니다. 그런데 그 열심의 방향은 더없이 중요하죠. 단지 열심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게 옳은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죠. 하나님께서 옳다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우리의 열심의 방향을 날마다 하나님께로 조정해갈 때, 우리의 열심을 생명을 죽이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는 동력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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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절입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예루살렘에서 다메섹까지의 거리는 240Km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걸어서 6일 정도 걸리는 거리죠. 그런데 한 참 그 길을 가는데, 그 길목으로 가서 예수의 도를 따르는 자들을 체포해 오려고 하는데, 그때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췄던 것이죠.
과연 그 ‘빛’이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26장 13절에는 이 때 사울이 보게 된 빛에 대해, 아그립바 왕에게 밝혀주는 바울의 진술이 나옵니다.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이때 사울이 본 빛은 정오의 태양빛이 아니었습니다. 그 빛은 해보다 더 밝은 빛이었습니다. 이른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생명의 빛이었던 것이죠.
그 빛에 의해 거꾸러진 사울은 소리를 듣게 되죠. 본문 4절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그러자 사울은 주여 뉘시나이까? 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때 부활하신 주님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왜 주님은 사울이 자신을 박해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사실 사울은 주님을 직접적으로 박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 주님의 제자들이 모여 있는 교회를 박해했죠. 그러나 바로 그런 이들이 곧 주님께 대해 박해한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있잖습니까? 그 빛을 본 사람도 그 음성을 들은 사람도 오직 사울 한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체포조들을 데리고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지만,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과 진리의 빛을 만난 것, 또 그 분의 음성을 들은 것은 오직 사울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복음은 그만큼 개별적으로 역사하사는 복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왜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사울을 택하셨는지, 왜 그 많은 나의 친구들 중에 나를 먼저 부르셨는지, 왜 그 많은 집안의 사람들 중에 나를 먼저 부르셨는지,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주님은 그렇게 각자를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먼저 부른 자들을 통해 주님의 복음을 증언하는 당신의 도구로 삼으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사울이 어떻게 합니까? 9절에 보면 사흘 동안 아무 것도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처지였죠. 두 눈은 떴으나 앞을 보지 못하는 눈뜬 장님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런 사울을 위해 한 사람의 제자를 보내십니다. 본문 10절에 다메섹에 사는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그 사람이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기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라.”
사울은 3일 동안 앞을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른바 금식하면 기도하는 중이었죠. 그런데 아나니아는 주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그 말씀에 토를 달죠. 왜냐하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포악한지 알기 때문이죠. 지금 이 다메섹에 온 것도, 주님의 도를 좇는 자들을 색출해 체포해 가려고 한다는 것을 아니니아가 알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13절의 말씀처럼 주님 앞에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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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주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본문 15절에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왜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가라고 하시는지 이제는 알 수 있죠. 그 사울은 주님의 복음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기 위한 주님의 ‘택한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해 고난을 받을 것이다, 하고 이야기해 줍니다.
그때 아니니아가 사울에게 가죠. 그러면서 뭐라고 말합니까? 본문 17절입니다.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아나니아는 사울을 향해 ‘형제 사울아’하고 부릅니다. ‘아델포스’ 곧 한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난 이를 향한 호칭입니다. 그만큼 주님의 십자가 보혈 안에서 형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우리 사이에 거리낄게 없다는 뜻입니다.
그때 아나니아가 안수할 때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죠. 그 비늘을 보통 물고기 비늘이라고 칭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태껏 자기 성공과 출세를 바라보는 그런 헛된 욕망의 비늘이 아니었겠습니까? 그것이 벗겨졌을 때 비로소 눈을 뜨고 보게 되죠. 진리와 생명을 향해 눈을 뜨게 된 사울이었습니다.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은 무엇입니까? 가장 포악한 사울도 주님을 만나 변화되었다면, 이 땅에 우리가 아는 그 포악한 자들도 주님 안에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우리 안에도 사울처럼 주님의 진리와 생명의 빛이 늘 감싸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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