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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 에이미’, 즉 “나는-이다.”하는 그 표현을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을 통해 7번이나 사용하셨음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6:35, 48),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9:5), “나는 양의 문이다”(10:7), “나는 선한 목자다”(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그리고 “나는 참 포도나무다”(15:1) 하신 말씀 말이죠.
요한복음 6장에서는 주로 “나는 생명의 떡이다”하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산 떠이니, 누구든지 내 살과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8장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 세상의 어둠과 죄악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에게 진리와 생명의 빛을 깨닫게 해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온 빛이라고 말입니다. 그처럼 ‘나는 세상의 빛’이다 하신 그 말씀을 8장에 이어 9장으로까지 확대하면서 증언을 해 줍니다. 이른바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고쳐주시는 장면이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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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말씀도 “나는 세상의 빛이다”하신 그 말씀을 점점 더 강화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어둠에 붙잡힌 채 살아가는 사람들, 세상의 육신적인 먹을 것에만 허덕이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 세상의 율법주의자처럼 율법의 형식은 모두 취하면서도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정신은 놓쳐버린 채 사람에 대한 긍휼과 자비를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 더욱이 이 세상의 공중권세 잡은 자들 곧 사탄와 영적인 어둠의 세력에 사로잡힌 채 자기 영혼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빛되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본문 31-32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사람들 가운데 자신을 믿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곧 유대의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과 한 통속이 되어 주님을 체포하고 죽이려 드는 것 같았지만, 그 속에서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들에게 향한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할 것이다”하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거하다’는 헬라어 단어 ‘메노’(μένω)는 ‘머물다’(abide)는 뜻입니다. ‘기다린다’(wait one)는 뜻입니다. 이른바 주님 안에 들어와 주님의 뜻을 받들고 주님의 시선을 좇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함께 지향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것이 온전한 믿음인지, 이제 한 발을 담근 상태인지, 좀처럼 알 수 없습니다. 적어도 상호신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믿는다고 하면서 예배에 참석하지만 예배 중에 핸드폰을 하고 다른 생각을 집중한다면, 결코 주님 안에 거하는 모습이 아니겠죠. 회사나 직장에 출근했는데 수시로 개인적인 관심사 때문에 핸드폰을 만지고 있고, 다른 것에 신경을 쓴다면 회사 안에 거하는 게 아니듯이 말이죠.
그 까닭에 주님께서는 보다 적극적인 믿음의 상태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다시 말해 내 말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나 보내신 이를 온전히 신뢰하고, 나와 함께 모든 것을 공유하면서 살아가는 상태, 그것이 내 안에 거한다는 뜻입니다. 그때 비로소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고, 그 때 비로소 진리를 알고, 진리로 인해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숱한 과정과 시간들이 필요한 법이죠. 믿음은 한 순간에 점프해서 깊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좌절도, 유혹도, 그리고 자기 결심도, 숱하게 넘어지고 쓰러지고 좌절을 맛보고, 그러면서 믿음의 한 단계 한 단계 깊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말의 꼬투리를 잡는 듯이 말하죠. 본문 33절에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여전히 육신적인 상태만을 보고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죠. 날때부터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날 때부터 할례를 받은 우리이기에 우리는 누구의 종이 된 적이 없고, 그래서 본래부터 자유하다고 주장하는 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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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주님께서는 34절을 통해 영적인 그들의 실체를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예수님께서도 그들이 육신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고, 의의 기준으로 삼으려 하는 속성까지도 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하나님의 아들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그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이십니다. 그 차이를 궁극적으로 표현해 준 게 바로 37절 말씀이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다”하는 게 그것입니다. 왜죠? 아무리 그들이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칭해도, 본래부터 아담의 후손으로서 죄의 종에 매여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죄의 종이라는 것이죠.
그것을 구체적으로 더 확증해 주는 말씀이 바로 44절에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바로 이것이 사실 아닙니까? 그들이 아무리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도, 아무리 하나님의 선민으로 태어났다 해도, 그들이 난지 8일이 되면 외적인 할례의 의식을 아무리 거행한다 해도, 모든 인류는 아담의 후예들이기 때문에 본질적인 진노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귀에서 난 자식, 본질적으로 완전한 타락의 상태 속에 있는 인간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인정하게 되면, 어찌 진리와 생명이신 주님을 믿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자라면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씀하시는 내용이 48-59절에 담겨 있지 않습니까? 본래부터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는 그들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분이라는 것이죠. 왜죠?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태어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태어나셨기 때문이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태초 이전에 스스로 존재하는 분으로서 아브라함보다 훨씬 이전부터 계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네가 아직 50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봤다는 것이냐?”(57절)하고 이야기하면서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진리와 생명의 빛이신 주님의 본질을, 육신적인 어둠에 휩쌓여 있는 자들이 어찌 그 빛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있잖습니까? 그렇게 참 생명과 진리의 빛이신 주님을 몰라보는 자들이 비단 그 유대인들뿐이겠습니까? 우리도 주님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주님의 진리와 생명의 말씀의 빛 안에 거하지 않으면 수시로 유혹 앞에 넘어지고 쓰러질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들이죠. 그렇기에 오늘도 주님 안에 더 깊이 거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면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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