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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는데, 안식일에 그런 일을 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박해하고 죽이려는 유대인들이 나타났죠. 그때 예수님께서는 자기 뜻대로 하는 일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일하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반론을 펴셨죠. 그렇기에 나를 믿는 것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를 믿는 것이요, 내 말을 믿는 것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을 믿는 것과 같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만큼 주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자이심을 천명한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심을 증언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 31-32절입니다.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이 구원자임을 증언하면 그 증언이 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자기 자신을 증언하는 이가 따로 있다는 것이죠. 그래야만 그 증언이 참된다는 것이죠.
과연 누가 예수님의 구세주이심을 증언한다는 것입니까? 그 첫 번째 증언자에 대해 말씀합니다. 본문 33-36절의 세례 요한이 그 첫 번째 증언자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무슨 말씀입니까? 너희들이 알고 있는 세례 요한이 진리에 대해 증언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미 읽어보지 않았습니까? 그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 공개적으로 증언한 바가 있었죠. 예수님을 향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하는 그 증언 말입니다. 더욱이 요한복음 1장에서도 그 요한은 세상에 빛을 비추는 빛 자체가 아니라 그 빛에 대해 증거하는 자라고 말입니다. 곧 진리와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비추는 등불과 같은 존재라고 말입니다. 그만큼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요, 진리이신 예수님의 안내자요 증언자라는 것이죠.
지금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증거를 통해 말씀하신 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구원자라고 나 스스로 증언하면 우습지만 세례 요한이 먼저 나를 구원자라고 증언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구원자라는 게 참되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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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그 증거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가 그 증거자라는 것입니다. 본문 37-40절입니다.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구원자요 구세주임을 증언하는 분이 또 한 분 계시는데, 이번에는 세례 요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해 증언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증언하는 방식이 이미 구약의 말씀속에 증언돼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경이란 유대인들이 성경으로 받아들이는 구약성경을 가리킨 것 아닙니까? 그 당시에는 아직 신약성경이 없던 시절이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구약에 이미 영생을 얻을 길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고, 그 성경 말씀이 “내게 대해 증언하는 것”이라고, 다시 말해 구약성경이 모두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라는 뜻이죠. 그런데도 너희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 내게로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구약의 성경말씀을 주셨고, 그 구약의 모든 초점이 구원자이신 아들 예수님에게로 맞춰져 있는데도 너희들은 나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46절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모세를 믿는다고 했는데, 모세는 구약의 율법을 대표하는 선지자 아닙니까? 그 율법이란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 또 그 죄의 결과가 사망이라고 하는 것을 밝히 드러내는 역할을 하죠. 그래서 율법은 죄를 지은 인간을 정죄하고 고발을 합니다. 율법과 성경은 그런 죄와 심판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데, 그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죄의 삯을 치러야만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아나 영생 곧 구원을 얻게 된다는 증언입니다. 그래서 그 구원의 복음을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곳에 있던 백성들과 유대인들, 예수님을 향해 대적하고 핍박하던 그 유대인들이 어떻게 한다는 것입니까? 아직도 주님의 말씀과 구원의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죠.
그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본문 말씀 가운데 5군데 되는 곳에서 아직도 그렇게 구원의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해 안타까워하시고 한탄하시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8절에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또 40절에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도다.” 42절에서도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4절에서도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그리고 47절에서도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우리가 이미 요한복음의 서두에서 읽어봤듯이 세례 요한의 증언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생명의 빛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생명과 은혜의 주님이셨습니다. 그 많은 유대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메시아로 구원자로 떠받들려고 할 때에도 세례 요한은 나는 아니라고, 나는 소리에 불과할 뿐이라고, 오히려 내 뒤에 오는 그 분이 참된 구원의 주님이라고 증언했죠.
그리고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구약의 성경말씀을 통해 하신 증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그곳에 있는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향해 신성모독죄를 들먹이며 예수님을 핍박하고 으르렁 거리는 것이었겠습니까? 이 땅에서 풍족한 생활을 누리기만 하면 그 뿐이라고 생각하는 현세주의적인 생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죠. 이 땅에 부와 번영만을 추구하는 삶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죠.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과 지옥의 삶이 있다는 것, 그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사도들이 전한 예수님의 증언과 가르침을 담고 있는 신약성경을 비롯해, 예수님을 구원과 생명의 주님으로 증언하고 있는 구약성경을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죠. 왜냐하면 오늘 요한복음 5장 39절의 말씀 때문입니다.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오늘도 그분을 구원의 주님으로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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