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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요한복음

나는 쇠하여야겠다(요3:22-36)

by 똑똑이채널 2024.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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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관원으로서 유대의 지도층에 속한 한 사람이 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 이른바 물로 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과 병자들을 고치신 기적들을 보고 들었기 때문이죠. 그런 일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나 랍비 곧 스승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좀 더 깊이 알고자 그 밤 중에 주님을 찾은 것이었죠.

그때 주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중생 곧 거듭남에 대해 말씀해 주셨고, 그것은 어머니의 배 속에 다시 들어가 태어나는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어지는 영생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그런 거듭남의 변화는 바람이 어디서 부는지 알지 못하지만 바람에 따라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성령 안에서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을 통해 그가 구원받은 자인지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세례 요한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시금 전해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앞선 요한복음 1장 후반부에서 세례 요한의 제자 둘이 예수님을 따라나선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안드레였고, 또 한 사람은 익명으로 처리돼 있었지만 그가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임을 알 수 있다고 했죠.

왜 그들 두 사람이 세례 요한의 품을 떠나 예수님께로 나아간 것입니까? 세례 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을 했고, “나는 그 분의 신발끈 묶는 것조차 감당치 못할 자다.” “나는 광양의 외치는 자의 소리다”하고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밝혀주었기 때문이죠. 나는 그 분의 길을 예비하는 자밖에 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했기에, 안드레와 세배대의 아들 요한이 예수님을 따라 나섰던 것이죠.

 

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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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그 연장선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예수님께로 몰려들어 세례를 받고자 하는 모습입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례 요한은 빈들, 광야에서 자랐고 광야에서 사역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제사장 사가랴의 반열을 따르면 얼마든지 안정과 존경받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삶을 버리고 광야로 나갔던 것이죠. 요즘말로 중앙무대가 아닌 재야에 묻힌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광야란 어떤 곳입니까? 오직 하나님만 소망할 수밖에 없는 곳이죠. 그곳에서 성장기를 거치면서 그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유대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메시지를 선포한 것이었죠. 그 사역에 대해 마태는 그렇게 증언했습니다.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마 3:5-6) 수많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왔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수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물밀 듯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우리가 살펴봤듯이 ‘당신이 메시야’냐 하고 물어봤던 것이죠.

그쯤 된다면 세례 요한은 성공한 사람 아니었겠습니까? 요즘 용어로 통용되는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죠. 그의 교세가 양적으로 엄청났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 세례 요한이 그런 성공주의 목회관에 물들어 있는 자였다면 굳이 광야를 택했겠습니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예루살렘 한복판으로 나아갔겠죠. 그만큼 그의 초점은 세속적인 성공에 두고 있던 게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의 초점은 하나님의 나라를 모시기 위해 ‘회개하도록 하는데’ 그 초점을 맞추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은 그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대도시에서, 사방에서, 그곳 광야로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요한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살 것을 설교했고,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의 수가 얼마나 많이 몰려들었는지 이제는 요한이 홀로 감당할 수 없어서 제자들까지 둬서 그들을 관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런 요한을 제쳐두고 요한의 제자들 중에 두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 나서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들 두 사람만이 아니었죠. 안드레의 형제인 시몬 곧 예수님으로부터 게바 반석이란 이름으로 불린 베드로도 따라나섰고, 그리고 빌립의 동료였던 나다나엘 곧 바돌로매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나다나엘도 주님을 따라나섰죠. 그야말로 사람들의 관심과 초점이 세례 요한에게서 예수님께로 점차 이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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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더 놀라운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22절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22) 이때는 24절의 말씀처럼 세례 요한이 헤롯왕에게 체포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도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고 있는 삶을 살고 있었는데,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세례를 베풀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본문 26절입니다.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26) 아직 세례 요한에게 남아 있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활동에 대해서 보고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전에 선생님을 따랐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예수님이란 분에게 가서 세례를 받는다고 말입니다. 그만큼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적잖이 당황한 모습 속에서 자기 스승에게 보고한 것이었습니다. 자기들의 스승인 세례 요한이 제일 잘 나가는 영적인 지도자였는데, 이제는 그 방향이 서서히 예수님에게 향하고 있으니까 경계를 하는 모습이죠. 그래서 무슨 조치라도 취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뜻에서, 지금 그런 보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전혀 뜻밖의 대답을 내놓습니다. 본문 27-28절입니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례 요한은 여전히 자기 정체성에 흔들림이 없는 모습입니다. 내 인기가 식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당연하다는 것이죠. 그 분은 그리스도시고, 그 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광안에 있으니, 아무도 막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게 무엇입니까? 세례 요한은 결코 자기 우상화에 속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기가 치솟고 주가가 솟아오르면 자신의 우상화에 매몰돼 버리죠. 오직 자기 자신이 메시야 노릇을 하려는 게 그것입니다. 그때부터 자신의 목적을 놓쳐 버립니다. 초심을 잃기 시작하죠. 그리고 누릴 것, 관리할 것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세상의 욕망의 방법으로 그것을 다스리고 권리하려고 하죠. 그것이 곧 초심을 잃는 모습이고, 좁은 길이 아닌 넓은 길을 택하는 모습이 되죠. 세례 요한도 얼마든지 그런 위치에 있을 수 있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정체성,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을 잃지 않았습니다. 나는 메시야가 아니라 그 분이 오시는 길을 닦는 자라는 것 말입니다.

더욱이 본문 29-30절에 이렇게 밝혀줍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나는 주인공도 아니라고, 나는 쇠할지라도 주인공이신 그리스도는 흥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도 이런 자기 소명, 자기 정체성, 초심을 더 깊이 각인시켜 나가는 그런 은혜가 충만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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