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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요한복음을 살펴보게 됩니다. 요한복음은 세배대의 아들이었다가 나중에 사도가 된 요한이 A.D.90년 경 에베소에서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행전 19장에 나와 있죠. 그 당시에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에 잠깐 들렀고, 본격적으로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것은 3차 전도여행 때였죠. 바울은 아데미 신전이 있는 에베소에서 3개월가량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도 있었고, 성령으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한 사람들이 있었죠. 하지만 주님의 도에 순종하지 않은 이들이 더 많았죠. 그래서 바울은 두란노 서원이라는 건물을 빌려 따로 복음을 전했죠. 그 삶이 2년이 넘어갔습니다. 그때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갖다 대도 성령께서 병자들을 치유하셨고, 귀신들린 사람도 좇아내게 하셨고, 책으로 마술을 펼치던 사람도 자기 책들을 모두 불태워버리는 일도 있었죠. 하지만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색이 에베소의 상징인 아데미의 신상모형을 만들어 장사하던 자였는데, 바울이 그 일에 방해꾼이라면서 선동을 일으켰고, 급기야 바울은 그곳을 떠나야만 했죠.
그 후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왔지만 체포를 당해 가이사랴 법정에 끌려갔죠. 그리고 로마로 압송당했는데, 그곳 로마에서 2년 동안 가택연금상태로 갇히죠. 그 뒤 바울은 자유의 몸이 되는데, 그때 성격이 울그락불그락한 디도에게 ‘크레타섬’의 담임목사로 섬기게 했고, 젊지만 성격이 유순한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는 에베소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게 했죠. 바울 자신은 다시금 선교지를 누비고 다녔는데, 그 무렵 A.D64년 경의 로마에 대화제가 발생했는데, 제 5대 황제인 네로는 그 화제를 기독교인들에게 돌려서 수많은 크리스천들을 화형에 처해 죽게 했죠. 그 무렵 바울도 선교지를 누비다가 다시 체포되었고, 이듬해인 A.D. 67년에 로마의 지하 ‘메마르틴’ 감옥에서 참수형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베드로 사도도 그 네로의 핍박 속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를 당하게 되죠.
그 뒤 네로는 자살하고,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사이의 내전을 거쳐 ‘베스파시아누스(Titus Flavius Vespasianus)가 제9대 황제에 오르죠. 그가 바로 그 유명한 로마의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을 건축했고, 그 아들 티투스가 콜로세움을 완성하게 되죠. 그런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치세 전 곧 ‘갈바 황제’의 치세 때인 A.D.66년에 유대인들이 독립혁명을 일으키죠. 그때 베스피아누스의 아들인 티투스 장군이 유대인들을 진압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쳐들어왔는데, 그 유명한 ‘맛사다’전투가 그때 일어났죠. 그러나 A.D.70년에 예루살렘 성읍과 성전은 완전히 정복당하고 무너지죠. 예수님께서 살아생전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막13:2)는 말씀대로 성취된 거죠.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그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24:19-20)하셨죠. 바로 그 환란의 날 때 많은 크리스천들이 예루살렘을 빠져나갔는데, 사도 요한도 그때 예루살렘을 빠져나가 에베소로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에베소에 갔을 때는 이미 디모데가 순교를 당한 뒤였습니다. 젊은 디모데는 에베소의 상징인 ‘아데미 축제’ 때 그 열광하는 군중을 향해 복음을 선포하다가 군중이 던진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즈음에 사도 요한이 에베소에 오게 된 것이고, 자연스럽게 에베소교회의 감독이 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될 게 있습니다. 그렇게 긴박하게 돌아가는 그 순간에도 사도 요한은예수님의 당부를 잘 받들었다는 점입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19:27)하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예루살렘을 빠져나가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되었을 때에도,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예수님의 어머니를 자기 어머니처럼 봉양했다는 것이죠.
과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언제까지 살았을까요? 그 당시 유대 여자들은 20대에 결혼하는 추세였다고 하죠. 예수님께서 33살까지 사셨다면 어머니 마리아는 50세가 되었겠죠. 전승에 의하면 마리아는 90세까지 장수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렇다면 적어도 40년 동안 사도 요한은 마리아를 봉양한 셈이 되는 것이죠. 그 40년 동안 밥 짓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면서 주님을 섬기듯 최선을 다해 자기 어머니처럼 봉양했던 사도 요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통해 사도 요한이 직접 주님을 모셨던 그 일들,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로부터 직접 들은 모습들을 떠올리면서 요한복음과 요한1,2,3서를 쓰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때가 바로 A.D.90년 경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그 삶으로 끝이었을까요? 아니죠. 티투스 황제에 이어 도미티아누스((Titus Flavius Domitianus)가 제 11대 로마 황제에 올랐는데, 그 치세 때인 A.D.95년 경 사도 요한은 밧모섬으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밧모섬은 에베소에서 서남쪽으로 70km떨어진 섬인데, 그곳에서 18개월가량 유배의 삶을 산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성령의 환상가운데 그림언어로 된 새 하늘과 새 땅의 비밀을 보지 않습니까? 그 이듬해인 A.D.96년 경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당하고, 제 12대 네르바(Marcus Cocceius Nerva)가 12대 황제에 즉위하자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풀려나 에베소로 돌아오는데, 바로 그때 그 그림언어로 본 환상들을 글로 썼고, 그것이 오늘날 요한계시록으로 전해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토록 순탄치만은 않았던 사도 요한, 그렇다고 다른 사도들처럼 마지막에 순교를 당하지 않았던 사도 요한은 그 후 얼마를 더 살다가 A.D.100년경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늘 요한복음 서두를 살펴보면서 왜 사도 요한의 삶을 조명하는 것이겠습니까? 그와 같은 사도 요한의 삶이 있었기에 요한복음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핍박과 환란 속에서 교회의 감독직을 성실히 수행하면서도 마리아를 자기 어머니처럼 봉양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요한복음을 쓸 수 있는 은혜를 덧입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은혜의 산물은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죠.
오늘 읽은 요한복음 1장1-18절까지는 요한복음의 서론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 빛을 오신 분, 그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주셨는데, 그 분을 영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이 1장1-1절까지의 ‘키아즘’, 교차대구의 핵심이죠. 1장19-12장50절까지는 예수님의 공적인 사역, 13-17장까지는 예수님의 개인적인 사역, 18-20장까지는 수난의 사역, 마지막 21장은 부활하신 후 갈릴리의 제자들에게 나타나 당부하신 모습으로 끝맺고 있죠.
오늘 서론뿐만 아니라 요한복음 전체를 통해 강조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 말이죠. 그를 위해 ‘에고 에이미’ 즉 ‘나는∼이다’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6:35,41,48,50,51,58), ‘나는 세상의 빛이니’(8:12,9:5,12:46), ‘나는 양의 문이라’(10:7,9), ‘나는 선한 목자라’(10:11,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11:25),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14:6), ‘내가 참 포도나무요’(15:1,5),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18:37) 하는 말씀이 그것이죠.
그리고 요한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7가지 기적을 소개하죠.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요2:1-12), 그것은 질을 초월하는 능력이죠. 또 왕의 신하가 앓고 있는 병을 직접 가지 않고 원격으로 고친 능력(요4:46-54), 그것은 공간도 초월하시는 능력입니다. 셋째로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고친 기적(요5:1-9), 그것은 시간을 초월하시는 능력입니다. 넷째로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인 기적(요6:1-14), 양을 초월케 하시는 능력이죠. 다섯째로 물 위로 걸어간 기적(요6:16-21), 이것은 자연법칙을 초월하는 능력입니다. 여섯째로 소경을 고친 기적(요9:1-7), 타고난 운명까지도 바꿔주시는 능력이죠. 마지막 일곱번째는 죽은 지 나흘이 돼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나사로를 살려내신 능력(요11:1-44), 죽음까지도 초월하시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그처럼 사물의 질도, 양도, 공간도, 시간도, 자연법칙도, 타고난 운명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초월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왜 7가지 독특한 요한복음만의 기적을 담아냈겠습니까? 그 기적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당시 영지주의자들이 예수님을 현자나 선지자 중의 하나로 보는 관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더욱더 변증하고자 했던 것이죠.
아무쪼록 오늘부터 요한복음을 읽어나가는 동안,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더 깊이 알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릴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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