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열기)(예화)코로나19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주일날 나눈 말씀처럼 지적장애아들이 연극을 발표할 때, 하나님 역할을 맡은 이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때 그 아이에게 주어진 대본이 무엇이었습니까?
“너희들은 내게 질문할 것이 있느냐?”였죠.
그때 아무도 질문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한 학부모 아저씨가 질문하고 나섰죠.
“하나님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면서, 왜 우리들에게 아픔과 고통을 주시는 것입니까?”하고 말이죠.
그러자 그 어떤 대답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왜냐하면 그런 질문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그런 질문에 대답할 말도 준비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아이가 뭐라고 대답을 했습니까?
“나는 하늘을 만들었다. 파랗고 예쁜 하늘을 만들었지.”
“나는 나의 일을 할 것이다. 그러니 내 일에 간섭하지 말고, 너희들은 너희들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 됀다.”
(깨달음)지적장애아들을 둔 학부모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겠습니까?
그 고충과 괴로움을 하나님께 탄식하며 울부짖고 싶었던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역의 일을 하신다는 것이었죠.
그러니, 너희들은, 너희들에게 주어진 영역에 최선을 다해 살도록 해라, 하는 뜻이었죠.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하나님의 돌보심속에서 훗날 천국에 가면 확연하게 깨닫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죠.
(예화2) 그것은 코로나19 상황도 마찬가지죠. 비행기를 타도 똑같습니다.
예전에 비행기를 탄 적이 있는데,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을 때는 날씨가 너무나도 화창하고 좋았습니다.
그야말로 하늘 위는 하얀 뭉개구름에다 푸른 창공만 보였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제 인천공항에 이륙하려고 서서히 내려오는데, 그때부터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게 보였습니다.
놀랍게도 인천공항 아래에는 비바람이 불어치고 있었던 것이죠.
(깨달음)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내 삶의 환경이 꽁꽁 얼어붙어 있고 비바람이 몰아친다 해도, 하나님은 태양처럼 여전히 함께하는 분이라는 것이죠.
내 삶의 환경은 카멜레온처럼 바뀌고 좋았다가 힘들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늘 하나님의 자리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적용)그러니 내 인생에 비바람과 눈보라와 같은 상황이 펼쳐질 때 어디를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까?
내 인생에 이해할 수 없는 칠흙같은 어둠이 덮쳤을 때 누구를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까?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격려하시는 주님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코로나19속에서, 인생의 비바람 속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비로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바울은 일행과 함께 빌립보 성읍의 첫 그리스도인이 된 루디아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도하던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바울 일행의 길목을 방해하는 이가 있었죠.
그 성읍에 귀신들린 여종이었죠.
그녀는 여러 상전들에게 고용된 여종이었습니다.
그 상전들은 자신들이 거느리는 그 여종의 귀신을 통해, 점을 봤고, 그것으로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상전들은 그 여종이 오래도록 그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일행이 가는 길목을 방행하자, 바울은 그녀에게 들어 있던 귀신을 내쫓아버렸죠.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자신들의 돈벌이가 떨어진 걸 안 상전들이 모여서 바울 일행을 시장이자 공개재판소격인 아고라로 데려갔죠.
그들은 그 아고라의 관리들에게 바울과 실라를 넘기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이 자들은 유대인들로서, 이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는 자들이오”
“우리는 로마 사람으로 로마 법을 잘 따르는데, 이 자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상한 풍속을 퍼트리는 자들이오.”
그러나 바울 일행이 이상한 법을 퍼트리는 일을 했습니까?
아니죠.
오히려 귀신들린 여종의 귀신을 내좇아줬습니다.
그러니 귀신들린 여종을 부리고 있는 그 상전들을 대신해 바울 일행에게 상을 내려줘야 할 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바울을 싸잡아 비난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죠.
자신들의 돈벌이 수단이 끊긴 것 때문이었죠.
그래서 그들이 바울과 실라를 싸잡아 비난하면서, 로마 법을 훼손한다고 할 때, 아고라의 상관들이 나섰죠.
그 상관들은 관리들에게 명령하면서, 바울과 실라의 옷을 벗기고, 매로 치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왜 옷을 벗기고, 매로 치라는 것일까요?
구약성경에 보면 유대인들은 40에 하나 감안 매를 때리도록 돼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법을 적용시키는 이곳에서는 39대가 아니라, 오직 상관의 맘대로 관리들에게 때리도록 했겠죠.
다만 한 가지, 옷을 벗기도록 한 것은, 그만큼의 고통을 가중시키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바울과 실라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겠죠.
더 나아가 지금 바울과 실라처럼 매질을 당하지는 않지만, 디모데와 누가도 괴롭고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뭔가 꽉 막힌 상황에 처해 버렸으니 말입니다.
(본문)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이후의 상황을 전해주는 말씀입니다.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23-25)
(원해) 여기에 감옥에 가둔 곳이 ‘깊은 옥’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깊은 감옥’이란 일반적인 로마제국의 감옥 속에 창에 없는 안쪽 내옥을 가리키는 곳입니다.
로마제국의 감옥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바깥쪽으로 창이 있는 외옥과 안쪽으로 창이 없는 내옥이 있고, 그리고 지하 감방으로 이루어져 있죠.
지금 바울과 실라가 깊은 옥에 갇혔다는 것은 외부와 완전 단절된 지하 감방에 갇혔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입니까?
아니죠.
그 내옥을 지키는 간수는 바울과 실라의 발에 차꼬까지 채워놓고 있죠.
로마제국의 차꼬는 보통 벽에 박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만큼 문으로 손도 못대게 하는 것이고, 그 안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 모습입니다.
(깨달음)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지금 바울과 실라는 너무나도 답답하고 힘들지 않겠냐는 것이죠.
저 하늘의 창공은 하얀 뭉게구름이 가득 차 있는데, 인천공항에는 태풍과 비바람이 치는 그런 상황 아닐까요?
지적 장애아들을 둔 그 학부모들이, 하나님 왜 이런 상황에 저희 가족을 몰아넣는 것이냐고, 그렇게 항의할 것 같은 상황 아닙니까?
그야말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픈 그런 상황, 문 하나 없는 온통 암흑 천지인 그런 감옥에 갇힌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니죠.
하나님은 그런 암흑과 같은 상황속에서도, 한 밤중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바울과 실라가 있는 그 현장을 통해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앞으로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주문)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우리에게 암흑과 같은 환경으로 몰고가실 때도 있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는 사실이죠.
(주음성)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바울과 실라처럼 암흑과도 같은 감옥의 상황에 너를 몰아넣는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다니엘의 세 친구가 믿음을 지켰다는 이유로 풀무불에 던져졌는데, 너는 그럴 때 어떻게 하겠느냐?”
“지적장애아를 둔 부모들도 모두가 원망과 불평을 하나님께 쏟아부었는데, 너는 그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래도 나는 그 속에서 내 일을 하지 않겠느냐?”
“바울과 실라가 갇혀 있는 그 암흑의 지하 감옥에서도 그들을 버려두지 않고 복음이 전파되도록 준비하는 그 일 말이다.”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상황이 먹구름 같고, 비바람이 몰아친다고 해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아라.”
“눈 앞에 보이는 상황은 그래도 저 먹구름 위에, 비행기가 떠오른 창공 위는, 흰 뭉게구름이 가득하듯이 말이다.”
“바울과 실라가 답답한 환경에 처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돌보시며 복음전파를 위해 일하고 계시지 않았더냐.”
“너를 향한 환경과 상황이 아무리 암담하고 답답해도, 주님은 너를 돌보시고 너를 통해 하실 일을 하고 계시다는 걸 잊지 말도록 해라.”
(찬양)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 만이 내 삶에 도움이시니주의 얼굴보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되기 원합니다
(전개)그렇다면 바울과 실라는 이런 암담한 상황, 절망적인 상황, 그 고난의 상황에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나요?
바울과 실라는 그 한 밤 중에, 하나님께 찬양과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죄수들이 들을 정도로 찬양과 기도를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같은 입장에 처한 이들에게 절망이 아닌 소망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알도록 하기 위함 아니었겠습니까?
그 감옥 속에 있는 죄수들은 언제 어떤 상황속에서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만큼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절망으로 뒤범벅이 된 죄수들이죠.
바울은 그 감옥 속에 있는 사람들의 처지를 알기에, 오직 그들이 의지할 분은 하나님밖에 없음을 알리고자 찬양과 기도를 한 것이었죠.
(깨달음) 어떻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취할 자세가 그것 아닙니까?
내 삶에 절망과 고난의 역경이 찾아올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하 내옥에 갇혔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바로 찬양과 기도드리는 것 말입니다.
그렇다고 바울과 실라가 그 감옥 문을 빠져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겠습니까?
아니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이곳에 넣으셨다면, 또 다른 뜻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겠죠.
그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기도이니까 말입니다.
(예화) ‘새빛 이야기’라는 책에 손원석 성도님의 간증이 나옵니다.
그분은 25세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27살 때 갑자기 눈이 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는데 망막 박리였습니다.
망막과 시신경이 분리가 되면서 점점 실명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술을 하기 위해 2년간 전국의 유명 병원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는 기도원도 다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병은 더 악화되었고 결국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이제 친구 몇 사람의 도움을 받아 경기도에 있는 기도원에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억울하고 원통했습니다.
자기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청년 시절에 남들은 별짓을 다했지만 자기 자신은 똑바로 걸어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별짓 다 한 사람들은 멀쩡한데 왜 자기는 그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너무나 분통이 터졌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일도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 몸부림치면서 고쳐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몸부림쳐도 대답이 없자, 어느날부터는 안 고쳐주셔도 되니까 이유만 가르쳐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기도 중에 환상을 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기도원의 산 위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창에 찔리는 장면을 봤습니다.
그때 그의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때 그는 통곡을 했습니다.
물론 그 전과는 다른 통곡이었습니다.
그전에는 자신의 병을 고쳐주지 않는 원망과 불평의 눈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난 후의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주님 앞에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고통을 본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제는 정말로 괜찮습니다.”
(내음성)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께 기도를 들릴 때 어떤 기도를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저도 손원석 성도님처럼 그런 믿음의 기도를 드릴 수 있게 해 주세요.”
“바울과 실라처럼 감옥에 갇히는 상황에 처할지라도, 오직 주님께서 일하실 일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아가게 해 주세요.”
“내 삶에 눈이 안보일지라도,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못 박혀 죽으신 주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는 영안의 눈을 열어주세요.”
“주님, 주님은 내 상황이 답답하고 막혀 있어도 그 속에서도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시는 분임을 온 믿음으로 믿고 따를 수 있게 해 주세요.”
(찬양)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 만이 내 삶에 도움이시니주의 얼굴보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되기 원합니다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는 태풍이 불어닥치고 눈보라가 몰아쳐도 저 하늘에는 흰 뭉게구름이 떠 있는 게 하늘의 이치입니다.
지금 내 앞에 지하 감옥과도 같은 암흑이 닥쳐왔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내 곁에서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바울과 실라도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혔다면 그 속에 일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찬양과 기도를 드렸습니다.
손원석 성도님도 망막 박리로 인해 너무나도 괴로워서 하나님을 향해 통곡했지만 후에는 감사의 눈물로 바뀌지 않았습니까?
왜냐하면 앞을 보지 못하는 자신을 위해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여전히 그 속에서도 자신을 돌보시고 일하시는 주님을 봤기 때문이죠.
저와 여러분들의 삶가운데도 그렇게 일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어떤 환란과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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