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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마가복음

너희 마음이 둔하냐(막8:1-26)

by 똑똑이채널 2024.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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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역을 다녀오시면서 사람들의 문제점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아이가 귀신들려 있을 때 그녀의 딸아이를 고쳐주셨고, 갈릴리로 돌아왔을 때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당신의 방법으로 고쳐주신 사건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를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신 은혜가 있었죠. 우리에게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을 때 주님은 우리의 심령을 가난하게 만드셔서 주님을 의지하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 우리가 귀먹고 벙어리 된 절박한 상황에서 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받고자 하지만, 그래서 주님을 컨트롤하려고 하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시도록 나를 내어 맡기는 믿음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그렇게 나의 힘을 빼게 하셔서 당신의 은혜를 부어주시길 원하시는 분이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갈릴리 바다 근처의 광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몰려든 상황이었고, 그 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본문 2절에 따르면 그들이 주님과 함께 있은 지 사흘이 지나 먹을 게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을 그냥 돌려보낸 다면 그들이 집으로 가는 길에 쓰러질 것을 주님은 내다보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주님께 말합니다. 어떻게 이 많은 무리를 배부르게 할 수 있겠냐고 말이죠. 본문 9절에 따르면 그 수가 무려 “4천명 곧 ‘남자의 수가 4천명이었고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1만 5천명이나 달하는 숫자였던 것이죠.

그때 주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본문 5절을 통해 제자들에게 떡이 몇 개가 있는지 물으셨죠. 그러자 일곱이로소이다”, ‘떡이 일곱 개가 있습니다.’하는 대답을 합니다. 그 떡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누가 가지고 있던 것인지, 본문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전의 마가복음 6장 38절에서도 남자 장정만 5천명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여 2만 명은 족히 되는 그 거대한 군중들이 기진맥진해 있을 때, 그때에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토막으로 그 모든 군중을 먹인 사건이 있었죠. 그런데 그때에도 마가복음을 쓴 마가는 그걸 누가 가지고 왔는지, 누가 내 놓은 것인지 밝히지를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토막에 대해서는 요한복음 6장 9절의 경우에 한 아이가 내놓은 것으로 밝혀주고 있는데 말입니다. 어쩌면 마가는 그것이 대수롭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그 사람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그랬을 수도 있었겠죠. 아니면 그걸 내 놓은 사람이 익명으로 처리해 주길 원했을 수도 있고요. 자기 공로는 지우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쓰이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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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욥기서 읽고 묵상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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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살펴볼 때 구약의 한 사건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시돈 지역의 사르밧 과부가 그 사람입니다. 당시에 북이스라엘 땅은 온통 우상숭배로 물들어 있었고, 아합 왕과 이세벨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먹이고 입히는 상황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굶주림에 처했었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에게 시돈 지역의 사르밧 과부에게 가서 먹을 것을 청하도록 하죠. 그때 엘리야가 그녀에게 떡 한 조각을 가져오도록 하죠. 그러자 그녀는 이제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이 조금 뿐이라고 말하면서, 나와 내 자식이 한 끼 식사로 해 먹고 죽으려고 한다고 대답을 하죠. 바꿔 말해 당신을 향해 대접할 게 없다고 말하는 상황입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뭐라고 말합니까?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왕상17:13-14) 사르밧 과부가 그때서야 엘리야 선지자의 말 대로 순종하죠. 그래서 자신과 자기 아들이 한 끼 식사 대용으로 해 먹고 죽으려고 한 것을 내려놓고, 먼저, 먼저 엘리야 선지자를 하나님을 섬기듯 그렇게 대접했는데, 그때 이후에 그 집의 밀가루 통과 기름통이 떨어지지 않는 은혜를 부어주셨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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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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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오늘 본문의 상황도 그와 똑같지 않겠습니까? 어린 아이든, 어른이든, 그 누군가 자기 먹을 것을 먼저, 먼저 주님을 위해, 먼저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내 놓았을 때, 주님께서 그 모두가 먹고 배부를 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신 것 말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 앞에 우리는 또다시 그 말씀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그렇게 주님께서는 그 군중들이 배부를 수 있도록 해 주신 다음에, 다 흩어보내시고, 이제 ‘달마누다’(Δαλμανουθά) 지방으로 가십니다. 그것이 본문 10절에 나온 상황인데, ‘달마누다’ ‘지역은 ‘낮은 화력발전소’란 뜻인데, 그곳은 갈릴리 바다 서쪽에 위치한 막달라 지역의 인근 도시입니다. 그대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님께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주님께서는 표적을 구하는 그들에게 표적을 보이지 않겠다고 하시는 게 아니라,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하시면서, 바리새인들만 그렇게 표적을 구하는 게 아니라 다들 그렇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벙어리되고 귀머거리도 고치고, 심지어 이방 땅에서조차 귀신들린 딸아이의 귀신을 내 좋아주신 표적들을 보여주셨는데, 그 표적만 원한 채 주님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않는, 인격적인 주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 표적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본문속의 사람들처럼 주님을 믿는 게 표적만 쫓는 신앙인이라면, 주님은 그런 나에게 표적을 보여주지 않는 것도 은혜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표적이 아니라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더 큰 은혜라는 사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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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시간표 | 권성권 | 유페이퍼- 교보ebook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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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본문은 14절 이하의 내용입니다. 그곳 달마누다 지역에서 이제 배를 타고 본래의 장소인 갈릴리로 가시는 상황인데, 그 배 위에서 일어난 모습입니다. 제자들이 배에 떡이 하나 밖에 없는 걸 생각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 그들의 어리석은 가르침과 거짓 교훈을 주의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것이 떡에 관한 것으로 여긴 제자들이었는데, 그런 그들에게 주님은 그들의 영적인 상태가 ‘둔하다’고 일깨워주셨습니다.

본문의 마지막 내용은 22절 이하의 말씀으로, 갈릴리의 벳새다에 이르렀을 때의 사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때 맹인 한 사람이 나와서 주님께서 안수해주기를 요구하시는데, 예수님께서는 이전의 8장 33절의 말씀처럼, 본문 23절에서도 그를 따로 데리고 나가서 그의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이제 안수하시면서 ‘무엇이 보이는지 물었고, 그러자 그가 뭔가 나무 같은 것이 보인다고 할 때, 다시금 안수하셔서 모든 것을 밝히 보게 해 주신 사건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 맹인을 고쳐주신 사건 역시 그는 주님께서 안수해 주실 줄 알았지만, 주님의 방법으로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 맹인의 눈을 고쳐주신 사건 앞에 나오는 부분이 제자들의 무지몽매, 곧 떡이 없는 것, 육신의 문제에 대해 골몰하는 그들의 둔한 영적 상태를 밝혀주고 있다는 점이죠. 그것은 곧 너희들의 육신의 눈이 아무리 밝다 할지라도, 그 심령이 둔하면,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과 무슨 차이가 있냐는 그런 뜻이죠.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들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쳐올 때 주님은 우리의 상황을 먼저 아시고 채워주실 원하시는 분이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먼저 그의 나라를 위해 내어드릴 때 차고 넘치는 은혜를 부어주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다만 눈에 보이는 표적만 좇는 자에게는 그 어떤 표적도 보여주지 않는 것,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원하시는 주님이심을 알게 하시고, 맹인과 같은 육적인 것에만 집착해 있는 어둡고 둔한 심령을 주님께서 깨워주시길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오늘 하루도 그런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충만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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