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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요일 오후 3시부터 삼학초등학교 앞에서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주소망교회 장신순 목사와 함께 하고 있죠. 평일 오후엔 아파트와 빌라를 돌며 주보를 전하지만 그날은 뻥튀기를 가지고 아이들을 만납니다. 오늘 오후엔 지난 주에 나오기로 한 김태산과 동생 태양이를 찾아갔습니다. 그들의 할머니에게 콜롬방제과점에서 산 빵을 전달해줬습니다. 내일 주일예배에 나오기로 했는데 한 길 사람 속을 모르니 어찌 예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문밖에서 두드리는 주님의 음성처럼 문화상품권과 선물을 준비해 놓고 기다릴 생각입니다.
창세기 12장은 아브라함의 소명장입니다. 실패와 좌절 속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와주신 장면이 거기 나오죠. 바울의 소명장은 사도행전 9장입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그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신 장면이 거기에 담겨 있죠. 이사야 6장은 이사야의 소명장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임재와 천사들을 본 이사야는 죽는 줄로 생각하며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했습니다. 그것은 야곱도 기브온도 삼손의 부모도 마찬가지였죠. 빛되신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있는 인간은 한 사람도 없어서 다들 엎드린 것이죠. 실은 그런 실존의 과정을 통과해야 주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법이죠. 나에게도 그런 과정이 있었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 제1차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면서 가버나움에 가서 베드로 장모의 열병과 많은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소문이 가버나움의 오른쪽 고라신과 벳세다와 가버나움의 왼쪽 게네사렛과 막달라까지 퍼져나갔죠.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 오셨을 때 많은 무리가 몰려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물을 씻고 있는 베드로의 배에 올라 무리에게 말씀을 전했고 베드로에게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죠. 그러자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해 그물을 던졌는데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아 두 배에 가득 채우게 됐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눅5:8)
밤새 피라미 한 마리도 잡지 못하다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엄청난 고기를 잡자 베드로가 예수님께 엎드린 것이죠. ‘엎드리다’는 ‘프로스핍토’(προσπίπτω)는 ‘경배하다’는 뜻입니다. 귀신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알아보고 엎드린 것(막3:11)도, 수로보니게 여인이 귀신 들린 자기 딸을 고쳐달라며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린 것(막7:25)도 마찬가지죠.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이사야가 벌벌 떤 것과 같은 격이죠. 더욱이 5절에서는 ‘선생님’(ἐπιστάτης)하던 베드로가 8절에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와 소유권을 지닌 ‘주님’(κύριος)으로 고백합니다. 빛되신 주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없는 죄인이니 자신을 떠나 달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찾아오셨을 때 이런 죄인의 실체를 주님 앞에 고백한 적이 언제 있었나요?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요 목회자였던 에드워즈 목사가 목회하던 교구에 주정뱅요 도박꾼인 타락한 신자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그가 파랗게 질려 에드워즈 목사에게 간밤에 꾼 꿈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너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내년 오늘 너를 불러가겠다”하고 하나님께서 찾아와 말씀하셨다고 말이죠. 그날부터 그는 술을 끊고 도박도 끊고 교회 생활에 충실했는데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걸음이 뜸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술도 조금씩 마시고 도박도 손대기 시작했습니다. 에드워즈 목사는 그를 권면하고자 그가 본 꿈의 환상을 상기시켜줬습니다. 그러자 “글쎄요 글쎄요”하면서 그는 신앙생활에서 멀어졌습니다. 그 뒤로는 이전 상태로 완전히 돌아섰고 에드워즈 목사에게 반항적인 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무얼요. 그런 개꿈을 가지고 그걸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지 않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밤 어떤 바에서 술에 만취가 되어 계단을 내려오다가 떨어져 목이 꺾이며 급사하고 말았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에드워즈 목사는 일기책을 찾아봤는데 1년 전 하나님께서 그의 꿈에 찾아와 말씀하셨던 바로 그 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핏값으로 산 하나님의 자녀들을 결코 포기치 않는 분이십니다. 끊임없이 그 심령의 문을 두드리며 생명의 길로 돌아서길 바라고 계십니다. 이사야를 찾아와 만나주신 것도 베드로를 찾아와 죄인임을 고백케 하신 이유도 그 때문이죠.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길을 좇아 살도록 하기 위함 말입니다. 에드워즈 목사에게 자신의 꿈속에 찾아온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그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는 걸 누구보다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도 삶의 목적을 거기에 두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태산이와 태양이 그리고 그 할머니를 놓고 기도하며 문을 두드리고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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