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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애굽을 빠져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 다다랐습니다.
뒤에는 애굽의 최정예부대가 진격해 옵니다.
앞에는 홍해바다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모세를 향해 지팡이를 바다로 내 밀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홍해바다가 마른 땅처럼 갈라졌고 여자와 아이들까지 포함해 250만명은 족히 될 그들이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겪은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그 어떤 인간의 힘이나 능력이나 방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모든 세계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일으킨 대 역사였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바다를 마른 땅처럼 통과한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다.
좌우에 벽이 되어 있던 물이 하나로 합쳐졌고 애굽의 최정예부대는 순식간에 바다의 소용돌이에 빠져 죽고 말았죠.
그 모습을 바라본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했습니까?
출애굽기 15장을 보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그 위대하신 역사를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미리암과 수많은 여인들이 화답이라도 하듯이 소고를 치고 춤을 추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나섰죠.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출15:21)
(깨달음)성서학자들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찬양했던 노래보다 실은 미리암이 여인들과 화답한 그 노래가 더 원형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를테면 미리암의 찬가가 홍해 바다를 건넌 후 최초로 부른 찬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불렀던 찬양보다 훨씬 짧고 간결하고 핵심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미리암의 그 찬가가 후에 한나에게로 그리고 아기 예수를 낳은 마리아에게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아기를 낳지 못해 가슴에 한이 서렸던 한나는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며 울면서 통곡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긍휼로 품어주셨고 아이를 잉태한 후에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 앞에 이렇게 찬양하죠.
그 찬양의 노래가 사무엘상 2장 1-10절에 나오는데 마리아가 화답한 찬양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7-8절)
그런데 미리암이 소고치고 춤추며 불렀던 노래는 한나만 부른 게 아니었습니다.
그 후에 마리아의 노래와 연결이 됩니다.
마리아는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갈릴리의 나사렛 촌동네에 살고 있었죠.
강자들의 폭력에 의해 그 당시 약자들은 모두 고통에 처했기에 현실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기란 쉬운 게 아니었죠.
하지만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아기 예수를 잉태하게 될 거란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는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사촌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비로소 그녀는 복받처 오른 심정으로 그런 찬사를 하나님 앞에서 올려불렀죠.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눅1:51-55)
(적용)그처럼 미리암과 한나와 마리아가 부른 노래는 모두가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연약한 처지에 있는 이들의 살 권리를 회복시켜주시기 위해 개입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바로의 병거와 기병이 아무리 강력해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무용지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태의 문이 닫힌 것과 같은 절박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권력의 횡포에 속절없이 당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는 전능자라는 사실입니다.
그와 같은 찬양은 그녀들의 입술에서 나온 찬양이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그녀들의 입술에 넣어준 고백 아니겠습니까?
그녀들의 입술에 넣어준 그 찬양의 고백이 동일해 보여도 그 역사를 체험한 당사자들의 찬양은 언제나 새로운 찬양입니다.
(나예)2003년도엔가 제가 충북 충주에서 부목사 사역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청년찬양단도 맡고 있었고 주일학교도 맡았고 그리고 새벽이면 차량운행을 하느라 무척 바쁘고 또 피곤했습니다.
그러던 터에 새로운 부목사님이 오셨는데 그 분은 담임목사님의 처남이었죠.
그러니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생각이 밀려들어 더욱더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충주시 기독교 연합집회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교회 성도님들을 태우고자 한 바퀴 차를 몰고 돌았고, 그 때 언덕빼기에 있는 교회를 향해 차를 몰고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에 저도 모르게 제 입에서 그 찬송이 터져나오면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찬송가 285장의 노래였습니다.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참 기쁘고 복 되도다
이 기쁜 맘 못 이겨서 온 세상에 전하노라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늘 깨어서 기도하고 늘 기쁘게 살아가리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깨달음)그 노래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입술에서 터져나왔고 눈물은 주루륵 흘러냈습니다.
그때 그 노래는 그 전에도 부른 노래였지만 그날은 성령님께서 제 입술에 친히 넣어주신 노래였습니다.
그 찬양을 통해 주님께서는 제게 새 힘을 불어넣어 주시고자 그 사역들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를 부어주시고자 제 심령과 입술에 그 찬양을 불어넣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적용)어떻습니까?
여러분들도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앞뒤좌우 꽉 막힌 상황에 처할 때 하나님께서 입술에 찬송을 불어 넣어주셔서 그 난관을 뚫고 나가도록 하신 때가 있지 않았습니까?
한나처럼 왠지 모를 설움과 한이 서려 있어서 괴로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심령과 입술에 찬양을 불어넣어주셔서 위로와 새 힘을 얻게 하신 때 말입니다.
마리아처럼 강자들의 폭력에 지친 삶을 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입술에 찬양을 불어넣어주셔서 새 희망을 품게 하신 때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시편의 히브리어 성경 이름은 ‘테힐림’(Tehillim)입니다.
‘찬양의 노래들’이란 뜻이죠.
150편의 시편 가운데에는 모세가 쓴 씨, 시편이 쓴 시, 다윗 시대의 찬양단장으로 활동한 아삽이 쓴 시도 있죠.
물론 솔로몬이 쓴 시도 있고 그 시대에 찬양대원으로 활약한 에단이 쓴 시편도 있습니다.
그와 같은 150편의 시편은 모세오경처럼 다섯권으로 분류한다고 했는데, 그 중 제 1권은 개인적인 야훼의 경험을 담고 있다고 했죠.
우리가 3주째 살펴보고 있는 본문의 시편 40편도 제1권에 속한 시편으로 다윗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한 가운데 쓴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윗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이 시편을 썼다고 했습니까?
많은 성경학자들은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킨 때라고 추정을 하죠.
그때 다윗의 나이는 60대 무렵이었습니다.
50대 초반에 모든 게 안정되고 평안하던 그때 한 여인을 범하고 그 남편을 죽게 만들고 버젓이 안식일에 제사를 드렸죠.
그래도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한 것은 나단 선지자가 그 죄를 지적할 때 ‘제가 그 죄인입니다.’하고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회개하는 모습이었죠.
하나님께서는 눈물로 침상을 적실정도로 회개한 다윗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죄의 후유증을 겪게 하셔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죄의 후유증이 어떤 것인지를 바르게 일깨워주고자 하셨죠.
그때 이복 오빠가 이복 여동생을 범했고 그 이복 여동생의 오빠 압살롬이 이복 형을 죽여버렸습니다.
그 일로 압살롬이 2년간 외가로 도망쳤다가 2년만에 다시 다윗 곁에 왔지만 얼굴도 보지 않았죠.
그로부터 4년간 압살롬은 모든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기 시작했고 급기야 4년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쿠데타를 벌인 것이었죠.
그때 다윗은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예루살렘 왕궁을 빠져나가야 했습니다.
그때 사울 왕가의 족속 중에 ‘시므이’라는 자는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도망치는 다윗을 향해 그렇게 비웃고 조롱하기도 했죠.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잘 가거라”
무슨 뜻으로 조롱한 것이었습니까?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 왕권을 검어쥔 주제에 네가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이제 도망 칠 수 있다면 잘 도망쳐 봐라.’
그렇게 티끌과 먼지를 날리며 다윗을 조롱할 때 다윗 곁에 있던 장수들이 당장이라도 가서 죽여버리겠습니다, 했죠.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의 입술에 그 말을 주셔서 나를 꺾으시는 말씀이니 내가 달게 받아야 되지 않겠느냐, 하고 대답했죠.
그만큼 다윗이 도망치는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다윗은 본문 1절의 고백처럼 ‘나는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릴 뿐입니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하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이었죠.
본문은 이미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받고 고백한 노래라 ‘들으셨도다’하고 고백하지만, 다윗이 실제로 도망칠 때 얼마나 목이 타들어갔겠습니까?
물론 기다린다는 것은 기다리는 대상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기다리지를 못하는 법이죠.
어린 시절부터 겪고 체험한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다윗이 하나님을 기다린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누군가 신뢰하는 대상이 있어야 온 의지를 다해 기다릴 수 있는 법이죠.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있는 신앙인들, 그 응답의 역사를 받아 본 신앙인들도 절망의 때에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이죠.
그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해주셨다고 다윗이 고백합니까?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고 고백을 하죠.
한 마디로 말해 진흙구덩이 같은 함정과 늪지대 같은 수렁의 상황에 빠진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건져주시고 견고하게 세워주셨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건져주시고 세워주셨습니까?
압살롬이 백성들의 계략을 듣고 다음날 날이 밝자 군사를 일으켜 전투에 참여했죠.
그때 다윗의 군사들이 나서서 싸웠는데 긴 머리를 자랑하던 압살롬의 머리카락이 나뭇가지에 걸려 그만 적의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그 일로 압살롬의 쿠데타는 끝나버렸고 진흙구덩이에 빠진 다윗은 다시금 왕궁에 복귀하게 된 것이었죠.
그만큼 다윗 스스로 헤어나올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하나님께서 내 발을 끌어올려주셨고 반석 위에 세워주셨다고 다윗이 고백한 것입니다.
(본문)오늘 본문은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체험한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 3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원해)여기에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다’는 히브리어 원어 ‘나탄’(נָתַן)은 ‘셋팅하다’ ‘주다’는 뜻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를 그의 입술로 찬양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 심령과 입술에 찬얄을 불어넣어주셨다는 거죠.
(깨달음)물론 새 노래란 이전에 없던 전혀 다른 노래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새 노래란 과거에 홍해 앞에서 하나님의 대 역사를 찬양한 미리암이 불렀던 노래도 새 노래요, 한나와 마리아가 불렀던 그 찬가도 하나님앞에서 부른 새 노래 새 찬양입니다.
하나님께 올려드린 새 노래의 찬양이란 이전에 없던 찬양이 아니라 이전에 있던 찬양이라 할지라도 새롭게 체험한 이후에 부른 모든 노래들은 주님 안에서 새로운 노래가 되는 법입니다.
제가 힘들고 곤고하던 그 시기에 하나님께서 제 영과 입술에 불어넣어주셔서 부르게 하셨던 그 찬양도 마찬가지죠.
“주의 말씀 받은 그날 참 기쁘고 복되도다 이 기쁜 맘 못 이겨서 온 세상에 전하노라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늘 깨어서 기도하고 늘 기쁘게 살아가리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적용)다윗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앞에서 얼마나 많은 찬양을 불러올렸겠습니까?
시편 제1편의 모든 노래들은 모두가 개인적인 체험의 바탕 위에서 쓴 시편들입니다.
그 모든 고백의 내용이 반복되고 중첩된 고백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분의 능력을 체험한 이들의 노래는 모두가 주님 안에서 새로운 노래가 되는 것이죠.
우리도 새로운 찬양이 나오면 곧장 배워서 따라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70년대 80년대 나온 찬양이라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의 능력과 살아계심을 체험하고서 부른 노래들은 모두 새로운 노래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세상의 죄와 사망의 늪에 빠져 살다가 주님의 사랑을 덧입어 주님 앞에 나와서 부르는 찬양이 있다면 그것이 설령 옛날 찬양이라 할지라도 주님안에서 새로운 찬양의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찬양을 부를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그 영과 입술의 그 찬양을 불어넣어주셨기에 고백할 수 있는 찬양인 것입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께서는 곤고한 상황에 처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케 하여 우리 입술에 찬양을 불어넣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거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입술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네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 있을 때 네 입술에 찬양을 불어넣어 너에게 이길 힘과 능력을 준 적이 있지 않더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뒤 애굽 병사가 물에 빠져 죽는 모습 앞에 미리암이 소고 치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그 입술에 찬양을 불어넣어주신 것처럼 말이다.”
“한나가 자식을 낳지 못해 온갖 설움속에서 한탄할 때 하나님께서 그 입술에 찬양을 불어넣어 하나님을 더욱신뢰할 수 있도록 한 것처럼 말이다.”
“마리아가 달동네 나사렛에서 비천한 가운데 살아갈 때에도 성령님께서 그 입술에 찬양을 불어넣어 그 삶을 이길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다윗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졌을 때 그 입술에 찬양을 불어넣어 하나님을 신뢰하며 갈망하도록 한 거처럼 너에게도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지 않겠느냐?”
“네가 인생의 수렁과 진흙탕에 빠져 있을 때 오직 너는 하나님께서 네 입술에 불어넣어 주신 찬양을 부르며 하나님을 신뢰했으면 좋겠구나.”
“그 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요 그 분은 당신의 자녀를 한 없이 사랑하시는 분 아니더냐?”
“그 분은 언제나 연약한 처지에 있는 자녀들에게 살 권리를 회복시켜주시기 위해 개입하시는 분이지 않더냐?”
“그 분은 태의 문이 닫힌 것과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도, 권력의 횡포에 속절없이 당하는 상황에서도, 그 입술에 찬양을 불어넣어 그 모든 상황을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전능하신 아버지이지 않더냐?”
“그러니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네 삶의 곤고 속에 성령님께서 네 입술에 찬양을 불어넣으실 때 기쁨으로 찬양을 올려드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때 다윗의 인생의 수렁과 진흙탕 속에서 건져 견고하게 세워주신 은혜를 베푸신 것처럼 너에게도 그런 은혜를 베풀지 않겠느냐?”
(찬양)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기도하면 귀를 기울이고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네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주시고 나의 발을 반석위에 세우시사 나를 튼튼히 하셨네
새 노래로 부르자 랄라라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새 노래로 부르자 하나님 사랑을
주를 의지하고 교만하지 않으면 거짓의 치우치지 아니하면 복이 있으리라
여호와 나의 주는 크신 권능의 구주라 주의 크신 권능으로 우리들을 사랑하여 주시네
새 노래로 부르자 랄라라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새 노래로 부르자 하나님 사랑을
(예화)다니엘기도회 2일차 때 강사로 나선 분이 서울대학교와 KAIST교수를 역임한 김인강 교수님이셨죠.
그 분은 1966년생으로 충남 논산의 한 농촌 마을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게 되었고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 장애가 생겼습니다.
혼자 힘으로 설 수 없어 기어 다녔는데 사람들은 그를 보고 나중에 크면 거지가 될 거야, 혀를 찼죠.
아버지조차 농사일에 지쳐 술을 마신 날이면 “저런 쓸모없는 놈 제발 좀 갖다 버려”하며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둘렀죠.
그 와중에 어머니는 1시간 걸리는 초등학교에 보내려고 데리고 갔는데 ‘장애자는 받지 않습니다.’하며 거절당했죠.
그래도 돌아오는 길에 아들을 등에 업고 꽁꽁 언 발을 당신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아가야 춥지?”했는데 평생 잊혀지지 않는 주님의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제 11살이 되던 해에 군대 같은 재활원에 들어가 목발을 짚고 홀로 서는 법을 배웠습니다.
13살 때에는 비로소 목발을 짚고 일어서는 데 기적적으로 성공을 하죠.
그 후에 공부를 해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서울대 수학과에 입학한 후에 졸업해서 미국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죠.
그 후 KAIST와 서울대 교수를 거쳐 현재 고등과학원 석좌 교수로 재직을 하고 있는 분입니다.
그분이 그날 밤에 간증한 내용에는 없지만 〈기쁨 공식〉이란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죠.
그 분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때가 대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그해 가을 어느 날, 구세주 같은 여인이 그분에게 나타났습니다.
여느 때처럼 강의를 마치고 힘겹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왔습니다.
갑자기 연한 화장품 냄새가 나는 듯했고 대학원생인 누나가 그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었죠.
그때 그는 대학원생 그 누나에게 “저는 이미 젖었으니 혼자 쓰고 가시지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그 누나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학교정문을 나설 때쯤 참았던 한마디를 했습니다.
“혹시, 당신은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그러자 그는 용수철 같이 “수백번, 아니 수천번 더 생각했을 겁니다.”하고 답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누나는 신림동 단칸방까지 그를 바래다주었고 헤어질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대학인회(ESF)라는 선교 동아리가 있어요. 그룹 성경공부가 있으니 참석해 보세요.”
그 후에 그는 ESF사람들과 인문대 빈 강의실에서 요한복음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요한복음을 통해 빛으로 오신 예수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세상에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고 미소지어주면 나는 평생 이렇게 살 수 있어요.”
이 세상에 아무도 그를 지켜봐주는 사람이 없어도, 이 세상에 내가 살아 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도, 그에게 조용히 미소지어주는 한 분이 계신다는 걸 처음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분에게 인생의 수렁과 진흙구덩이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학교 3학년 초에 목발을 짚고 무거운 가방을 멘 체 너무 많이 걷다 보니 갈비뼈와 폐가 부딪쳐 폐에 큰 구멍이 났습니다.
의사는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죠.
그때 그는 기도원 한구석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왜 나한테만 이렇게 가혹하신가요? 항상 아프기만 하고. 아무 쓸모없는 나를 데려가 주세요.”
그런데 그때 등 뒤에서 찬송 소리가 들려오는 걸 느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그의 심령과 입술에 그 찬송의 고백을 넣어주신 것이었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 주소서.”
찬송가 214장의 찬양 고백이었습니다.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 하시사 날 받아주소서
내 모습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큰 죄에 빠져 영 죽을 날 위해 피 흘리셨으니 주 형상대로 빚으사 날 받아주소서
내 모습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아멘
그의 입술에서 그 찬양이 터져 나오는 순간, 그의 교만한 자아가 하나님 앞에서 꺾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는 욥처럼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권을 인정하게 되었죠.
그때부터 아파서 누워있는 동안 ‘기도하는 법’과 ‘성경 읽는 법’을 배웠고 찬양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질그릇이 된다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깨달음)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만난 감격이 있어도,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어도, 때로는 더 심각한 인생의 수렁과 진흙구덩이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연약함 중에, 그 자아를 꺾고 하나님만 붙들도록 하기 위해, 그 영과 입술에 찬양의 고백을 불어넣어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 주소서.”
(내기도)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저도 실은 김인강 교수님보다도 더욱더 연약하고 더욱더 완고한 죄인이예요.”
“주님께서 저를 만나주셨고 제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걸 믿고 있으면서도 내 자아를 꺾지 못한 교만한 자예요.”
“인생에 수렁에 빠질 때 인생의 진흙구덩이에 빠져 있을 때 그분처럼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예요.”
“그러나 주님. 다윗의 인생 수렁과 진흙구덩이 속에서도 찬송을 입에 넣어주신 것처럼, 김인강 교수의 완고함 속에서도 찬양의 노래를 그 심령에 불어넣어주신 것처럼, 저에게도 찬양의 노래를 불어넣어주세요.”
“그리하여 주님의 은혜를 더 깊이 깨닫게 하시고, 그 찬양을 통해 이 세상을 이길 힘과 능력을 덧입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어떤 어려움과 절망속에 빠질지라도 그 찬양의 고백을 통해 승리할 수 있도록 기적의 주님을 만나 견고하게 해 주시옵소서.”
(찬양)나 주의 도움 받고자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 하시사 날 받아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큰 죄에 빠져 영 죽을 날 위해 피 흘리셨으니 주 형상대로 빚으사 날 받아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아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내 주님 서신 발 앞에 나 꿇어 엎드렸으니 그 크신 역사 이루게 날 받아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많은 노래와 유행가들은 내 울적한 마음을 잠시 위로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내영과 내 입술에 불어넣는 찬양의 노래는 이 세상을 이길 힘과 능력을 불어넣으시는 줄 믿습니다.
다윗이 인생의 수렁과 진흙구덩이에 빠졌을 때, 김인강 교수가 주님을 만난 이후에 또 다른 좌절감과 절망감에 사로잡혔을 때, 주님께서는 그 심령과 입술에 찬양의 고백을 불어넣어 그 삶을 돌파할 힘과 능력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가르신 분이요 그 하나님께서는 닫힌 태의 문을 여신 분이요 그 하나님께서는 죄악으로 물든 이세상을 구원하고자 아기 예수를 친히 이 세상에 보내신 아바 아버지이십니다.
자기 아들을 세상에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 세상의 수렁과 진흙구덩에 빠진 당신의 자녀들의 입술에 찬양을 불어넣어 이 세상을 이길 힘과 능력을 부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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