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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누가복음 8장을 보면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사는 회당장 야이로가 나옵니다.
야이로는 유대인 회당장이었고 12살된 외동딸이 있었는데 원인 모를 중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죠.
그 당시 회당장의 파워는 상당했습니다.
열 명의 관리책임자가 있고 그중 세 명이 대표 격으로 예배절차와 재판절차를 담당했죠.
그 중 야이로는 수석 회당장이었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지위와 권세와 파워가 막강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야이로도 자기 딸의 죽음으로 인해 실패와 두려움과 좌절을 겪게 된 것이죠.
그래서 야이로는 예수님께서 그 동네에 지나가시는 걸 알고 예수님께서 무릎을 꿇고 간청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전부터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자기 딸도 살려낼 것을 믿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죽어가는 자기 딸을 살리고자 예수님께 나아와 무릎을 꿇고 간청한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 8장 54절을 보면 그때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 죽은 딸의 손을 잡고 일으키셨죠.
“아이야 일어나라”(달리다쿰)하면서 말이죠.
그러자 그 아이의 영이 돌아왔고 살아 움직이며 먹을 것을 먹자 모두가 놀란 표정이었죠.
(깨달음)아무리 지위가 높고 세상 파워가 있어도 죽음과 실패를 겪으면 두려움과 좌절이 밀려듭니다.
하지만 바로 그 자리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시면 두려움과 좌절이 떠나고 소망과 기쁨이 일어나는 것이죠.
그래서 나의 좌절과 실패의 때가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할 때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 절망과 낙심의 때가 주님께서 만자시고 역사하실 때라는 것 말입니다.
왜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역사를 베풀어주십니까?
내 능력과 내 경험, 내 자아의 힘을 빼고 오직 주님께 붙들린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세상 성공을 좇고 내 자아를 좇는 것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도록 말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곳은 갈릴리 바다 곧 갈릴리 호수입니다.
보통 갈릴리 호수는 아프리카 대륙을 닮았다고 하죠.
갈릴리는 동서가 13km 남북의 길이가 21km요 수심이 얕은 곳이 20m지만 깊은 곳은 43km입니다.
보통 갈릴리바다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해수나 염수가 아니라 담수여서 호수라는 말이 정확하죠.
갈릴리 호수 남북을 펼치면 북쪽 맨중앙 왼쪽이 가버나움 지역이고 그 오른쪽이 고라신 그 오른쪽이 오병이어 기적을 베푼 벳세다 지역이죠.
가버나움에서 왼쪽으로 조금 더 내려오면 게네사렛 지역입니다.
보통 게네사렛 호수라고 칭하는데 호수를 끼고 있는 동네라 게네사렛 호수라 부르는 곳이죠.
그 게네사렛에서 왼쪽으로 더 내려오면 막달라 마리아의 고향인 막달라라는 지역입니다.
그 막달라에서 갈릴리 호수를 가로지른 서쪽 맞으편이 예수님께서 군대귀신을 쫓은 거라사 지역이죠.
그 막달라에서 왼쪽으로 더 내려오면 디베랴 지역입니다.
보통 디베랴 호수라고 부르는 동네인데 그곳도 호수와 인접한 동네라 그렇게 부르는 것이죠.
디베랴에서 왼쪽으로 가면 물로 포도주를 만든 가나 지역이 나오고 그 아래쪽으로 가면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이 나오죠.
그 나사렛에서 아래쪽으로 가면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려낸 나인이란 지역이 나옵니다.
이 전체가 바로 갈릴리 지역이고 모두 갈릴리 호수를 끼고 있는 동네입니다.
물론 갈릴리 주변에 높은 산들이 둘려 있어서 가끔씩 돌풍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 갈릴리 호수에는 다양한 물고기가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주변에는 어부들이 많이 살고 있죠.
이곳에서 잡힌 물고기는 예루살렘으로 또 로마제국으로 수출됐기 때문에 어부들이 풍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갈릴리를 중심으로 공생애 3년을 사셨습니다.
갈릴리 가나 동네에서 혼인잔치 때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고 왕의 신하의 아들도 고쳐주셨죠.
갈릴리 나사렛 고향에 오셨을 땐 예수님을 낭떠러지에서 죽이려하자 가버나움으로 중심지를 옮겼죠.
가버나움 동네에서 12제자를 부르셨고 그 무렵 베드로 장모의 열병도 고치고 각종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셨죠.
이후 유월절을 맞이해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을 청결케 하셨고 손 마른 자의 병도 고쳐주셨습니다.
이제 2차 갈릴리 사역을 위해 예수님께서 밤새 기도하신 후 12제자를 세우셨습니다.
가버나움 위쪽 팔복산에 올라가 산상수훈을 가르쳤고 나인성에 와서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셨죠.
제자들과 따로 있을 때 천국비유를 일깨워주셨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 거라사지역의 군대귀신 들린자의 귀신을 쫓아내셨죠.
그 후 가버나움으로 올라가면서 12년간 혈루증 앓는 여인을 고쳐주셨고 가버나움에 도착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뒤 나사렛에 왔지만 다시 배척받았고 그때 12제자를 파송하면서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권세를 주셨죠.
그 후 세례요한이 죽자 3차 갈릴리 사역을 시작했고 벳새다 벌판에서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셨죠.
그 후 갈릴리 호수 위를 걸으셨고 게네사렛에서 병자를 고친 뒤 가버나움으로 가셔서 두로와 시돈과 데가볼리 지역 곧 이방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 후 헬몬산에 올라가 예수님은 영체로 변화되셨고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는 고백을 들었죠.
이제 갈릴리를 떠나 수전절을 지키고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는데, 3번째 유월절 맞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죠.
이것이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의 모습이자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한 사역의 모습이었습니다.
(본문)오늘 본문은 그 중에서도 1차 갈릴리 사역 때의 일입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본문은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데 많은 무리가 예수님께 나온 상황이죠.
왜 그 무리가 예수님께 나온 것입니까?
이미 갈릴리 가나라는 동네에서 혼인잔치 때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소식을 들었고 왕의 신하의 아들도 고쳐주셨고 많은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죠.
예수님을 통해 어떤 기적이라도 어떤 병이라도 어떤 귀신이라도 고침받고자 나온 것이죠.
그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많은 무리들이 게네사렛 호수 해변가로 몰려들자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고자 두리번거리셨습니다.
때마침 배 두 척이 보였고 그 어부들이 그물 씻는 것을 보셨죠.
그 중에 베드로의 배에 타고서 그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신 것이었습니다.
왜 하필 배에 올라가서 무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신 것이었을까요?
갈릴리 호수 주변의 산들 때문에 종종 돌풍이 일어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날도 해변가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배에 올라가 말씀을 전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신 것 같죠.
바다를 등지고 배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게 훨씬 잘 전달될 거라고 보신 것이죠.
(원해)그런데 본문의 1절과 2절을 보면 대비되는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한 부류는 예수님께 몰려드는 사람들이고 다른 부류는 어부로서 자기 일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이죠.
한 부류는 예수님께 나아가고자 만사를 제쳐 놓은 사람들이고 다른 부류는 고기잡이에 열중입니다.
어부들은 오직 자기 목적, 자기 성공, 자기 성취감에 몰입한 상태죠.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어떤 형국입니까?
오늘 본문 2절 말씀을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그물을 ‘씻다’는 ‘아포폴뤼노’(ἀποπλύνω)는 옷이나 그물을 ‘씻는다’(to wash off)는 표현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마음의 죄를 씻어낸다고 할 때 이 단어를 사용(렘2:22, 렘4:14, 겔16:9)했습니다.
(깨달음)그런데 오늘 본문에 사용된 이 단어는 단지 그물을 씻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까?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날이 밝아오니까 고기를 잡을 수 없어서 그물을 씻는 모습이죠.
그만큼 실패와 좌절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빈 그물을 씻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해변에서 그리고 집에서 기다릴 사람들을 때문에 씁쓸한 표정을 엿보게 되죠.
(적용)놀라운 것은 그물을 씻고 집으로 가려는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에 오르셨다는 것입니다.
밤새껏 그물질했는데 아무것도 잡지 못해 그물을 씻고 돌아가려는 그 찰나에 말입니다.
그러니 베드로의 배에 예수님께서 오르신 것은 단순히 배에 오르신 게 아니라 베드로의 심령에 찾아오신 것이었죠.
실패와 좌절을 겪고 풀이 죽어 있는 베드로의 그 심령 속에 말입니다.
바로 그때부터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실패와 좌절의 한 복판에 소망과 기쁨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죠.
예수님이 없는 곳에는 자기 실력 자기 능력 자기 경험으로 허탕을 쳤지만 예수님 계신 곳에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가득 채우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실력과 자기 경험과 능력만을 좇던 베드로가 진정으로 좇아야 할 게 무엇인지 일깨워주신 역사였습니다.
(주문)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은혜)내 인생의 실패와 좌절속에 주님은 찾아오셔서 놀라운 역사를 베푸시는 은혜를 체험케 하신다는 거죠.
(주음성)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게네사렛 동네에 나타난 예수님을 찾아 그 해변가에 모인 무리의 모습이냐?”
“아니면 예수님이 오시든 말든 상관없이 자기 성공 자기 업적 자기 성취에 몰입돼 있는 배 두 척의 어부들의 모습이냐?”
“게네사렛 동네 사람들도 실은 예수님을 통해 자기 문제를 해결받고자 한 사람들이지 않더냐?”
“예수님은 그런 자들일지라도 긍휼히 여겨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겠느냐?”
“그런데 그 예수님과 무관하게 자기 일에만 매달리고 자기 성공 자기 성취에만 몰입된 어부들의 심령에 주님께 함께 하시겠느냐?”
“가버나움의 백부장도 높은 지위와 명성과 권세가 있었지만 딸이 죽을 병에 걸리는 결핍을 겪을 때 예수님께 무릎 꿇지 않았더냐?”
“게네사렛의 그 어부들도 밤새 그물질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실패와 좌절을 겪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찾아가 기적을 베풀지 않았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지금 절망과 실패와 좌절을 겪고 있는 어부들의 상황이라면 그때가 바로 예수님께서 너에게 찾아가실 때이지 않더냐?”
“밤새도록 아무 것도 잡지 못해 그물을 씻고 돌아가려던 그때가 바로 예수님께서 찾아와 베드로는 만나주신 것처럼 너를 만나주실 때이지 않더냐?”
“그러니 실패와 좌절이 끝이 아니라 바로 그때가 예수님을 모시고 다시금 시작할 때이지 않더냐”
“지금 네가 너의 능력 너의 경험 너의 업적만을 맹신하고 있다면 주님께서 그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의지하게 하실 때 기꺼이 순종해야 하지 않겠느냐?”
“주님께서는 그런 너를 새롭게 빚으사 네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임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도록 너를 만나고자 하시는 것 아니겠느냐?”
(찬양)나 약해 있을 때에도 주님이 함께 계시고
나 소망 잃을 때에도 주님은 내게 오시네
나 시험 당할 때에도 주님이 지켜 주시고
나 실망 당할 때에도 주님이 위로 하시네
주님만이 내 힘이시며 오 주님만이 날 도우시네
오 나의 주님 내 아버지여 오 나의 주님 내 사랑이여
주님만이 내 힘이시며 오 주님만이 날 도우시네
오 나의 주님 내 아버지여 오 나의 주님 내 사랑이여
오 나의 주님 내 사랑이여
(발췌)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작가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 분이 쓴 〈우리 동네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라는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도 닳고 젖은 빈 그물이 있는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고 하기 전에 그물을 접고 집으로 향하기 전에 묻고 싶다.
당신의 배를 예수님께 드린 적이 있는가?
상한 마음과 사면초가의 상황을 정말 그분께 맡긴 적이 있는가?
하나님이자 인간이신 예수님은 지친 어부들을 알아보신다.
자상하게 그들의 배에 오르신다.
무리의 칭송을 뒷전으로 하고 한 친구의 좌절을 해결해주신다.
우리의 이웃으로 오신 구주는 빈 그물의 주인에게 이렇게 속삭이신다.
‘다시 한번 해보자. 이번에는 내가 배에 함께 타겠다!’”
(깨달음)사람이 자기 힘으로 열심을 다해도 예수님을 모시지 않으면 빈 배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인생의 문제 해결은 예수님께서 찾아오시는 길 밖에, 예수님을 만나는 길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내 배의 주신으로,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실 때, 새로운 기적의 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찾아와주시고 왜 그런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까?
내 능력 내 경험 내 자랑 내 힘들을 빼고 오직 주님께 붙들린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발췌)다니엘 기도회 8일차 강사는 미국 달라스의 세미한 교회 담임목사인 이은상 목사님이었죠.
그분의 지금 모습은 꽤 건장한 체구지만 신생아 때 4일만에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1주일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죠.
그때 그의 부모님은 식물인간이 돼도 좋으니 살려만 달라고 하면서 연명치료에 동의하고 각서를 썼습니다.
그래도 담당의사는 소망이 없으니 마지막으로 가족을 불러 인사를 시키도록 했죠.
그때까지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집안이 무속집안이라 인큐베이터에 붙여놓은 수많은 부적을 뗄 수가 없었죠.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할머니 몰래 등록하고 가끔 다니던 수원의 한 교회 목사님에게 기도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목사님이 미국집회차 비행기를 타러 가는 중이라 집회가 끝나면 돌아와서 꼭 기도해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비행기는 취소가 되었죠.
목사님이 병원에 와서 인규베이터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데 할머니가 쫓아와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쟁이들 썩 물러가라”
그 바람에 목사님과 어머니는 쫓겨나게 됐죠.
그런데 그 목사님이 “아이를 살려주면 주의 종으로 바치겠습니까?”하고 어머니에게 물었죠.
어머니는 그 목사님의 말대로 아이를 살려주면 주님의 종으로 바치겠다고 서원을 했죠.
놀랍게도 이틀 후에 퇴원을 했고 그토록 반대하던 할머니도 어머니가 교회에 나가는 걸 막지 않았죠.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서원기도에 따라 목회자가 되겠다고 했는데, 이왕 할 바에는 선교사가 되겠다고 하면서 열심히 영어공부를 했죠.
그래서 수원에서 하는 영어경시대회 영어 말하기 대회 영어웅변대회에서 1등을 휩쓸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서울 대원외국어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반에서 37등 하는 바람에 너무나 쪽팔렸죠.
그때부터 더 공부했는데 그의 꿈은 강남에 집사고 자기 자식들은 자기 전철을 밟지 않게 하는 게 목표요 꿈이 돼버렸죠
그 후 자기 성공을 위해 미국의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고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4대금융기업에, 외국계 증권사로 스카우트돼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때 2008년에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증권사와 한국정부와 은행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리먼 브라더스’를 인수하려고 했죠.
그를 위해 10조원을 준비했고 만약 성공하면 그를 포함해 5-7명의 사람들이 성공보수 1%를 갖게 되는 프로젝트였죠.
그 일이 성공하면 강남 아파트가 몇 채 생기는 일이었는데, 결국 그건 불발되고 대학원석사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죠.
그런데 며칠 뒤에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당했는 소식을 접했는데 그때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진 때였죠.
그때 뉴옥 오피스에 있던 그에게 하나님께서 망치로 뒤통수를 치시면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봤지? 네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돈의 산’money mountain도 무너진다”
그러자 어렸을 때 인큐베이터에서 어머니가 서원한 모습이 자기 모습으로 체화되면서 고백을 하게 되죠.
“주님. 제가 주의 종이 되겠습니다. 제가 될게요. 제가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의 산’을 타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결단하고 신학교에 가겠다고 했는데 또 흔들렸습니다.
정치외교학과 쪽에서 석사를 한 마당이니 이 세상에서 정치력으로 영향력을 펼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노무현 대통령이 죽는 걸 보고 자신이 꿈꾸던 ‘파워 마운틴’power mountain도 내려놓게 되죠.
그 후에 신학교에 들어갔고 지역교회의 부름을 받아 교육전도사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봉급이 예전 수입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500불이었습니다.
그러자 낮에는 신학생으로 공부하고 밤에는 예전에 하던 한국주식을 사고팔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다시금 찾아와 아주 정확한 음성을 들려주시더라는 것이죠.
“너는 여기까지 와서도 너를 믿고 있느냐?”
그 음성을 듣자 하나님을 무서워해서 다음날 모든 주식을 팔아치웠다는 것이죠.
그때가 바로 ‘Me mountaion’(내 자아의 산)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깨달음)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강남에 아파트 사고 자식들 좋은 대학 보내고 멋지게 사는 ‘머니 마운틴’(Money mountain)의 꿈을 무너뜨린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정치외교학과 석사를 통해 세상의 정치력을 행사하려던 ‘파워 마운틴’(power mountain)도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자기 자아를 내려놓지 못한 그의 ‘Me mountain’까지도 무너뜨린 하나님이셨습니다.
물론 그 목사님도 고백하는 것이지만 자기 자아의 산이 무너지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말하죠.
자기 자아를 무너뜨리면 금방 금방 세워지더라고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를 만져주시듯 우리를 만져주시는 Never Ending Story가 우리 삶에 진행중이라고 말을 하죠.
(적용)왜 어린 시절 주의 종으로 결단한 그에게 주님께서 매번 찾아와 만나주시는 것입니까?
자기 능력 자기 경험 자기 자랑의 힘들을 빼고 주님께 붙들린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죠.
세상의 성공을 좇고 세상의 자기 파워 자기 자아를 좇는 것들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도록 말이죠.
평생 어부로 자기 능력 자기 경험 자기 성공만을 좇던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찾아와 그 주인이 되고자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에 진정한 주인이 되고자 우리의 실패와 좌절 속에 친히 찾아와 만나주시고 놀라운 일을 베푸시는 분 아니겠습니까?
(내기도)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께 기도할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저도 베드로처럼 이은상 목사님처럼 살때가 많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 오직 세상 능력 세상 힘 세상 성공만을 좇은 채 주님과 무관한 자로 살았습니다.”
“이은상 목사님처럼 주님을 만났지만 세상의 머니 마운트, 파워 마운트, 미 마운트, 돈과 힘과 내 자아를 내려놓지 못한 채 주님을 좇을 때도 많았어요.”
“주님. 제가 인생의 실패와 좌절을 겪고 있다면 그 또한 주님께서 뭔가 온전히 내려놓길 원하시는 싸인인 줄 믿습니다.”
“베드로에게 베푸신 그 사랑과 그 능력을 체험케 하시고, 이은상 목사님처럼 더 철저하게 주님께 붙들린 삶을 살게 해 주세요.”
(찬양)주님것을 내 것이라고 고집하며 살아왔네
금은보화 자녀들까지 주님것을 내 것 이라고
아버지여 철 없는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맡긴 사명 맡긴 재물을 주를 위해 쓰렵니다
천한 이 몸 내것이라고 주의 일을 멀리 했네
주신 이도 주님이시요 쓰신이도 주님이라
아버지여 불충한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상 유혹 다 멀리하고 주의 일만 하렵니다
주님 사랑 받기만 하고 감사할줄 몰랐었네
주님 말씀 듣기만하고 실행하지 못했었네
아버지여 연약한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명령 순종하면서 주를 위해 살렵니다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의 베드로 인생처럼 고생고생했지만 실패와 좌절 속에서 허탕을 친 채 그물을 씻고 있는 모습입니까?
그때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그의 경험과 능력과 자아를 깨트려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니 베드로가 겪은 실패와 좌절의 때가 바로 주님께서 찾아와 역사하시고 일하신 때였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도 원하던 머니 마운틴을 꺾으실 때도 있고 파워 마운틴도 그리고 내 자아만을 높이세우는 미 마운틴도 꺾으실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를 위해서도 실패와 좌절을 겪게 하실 때가 있지만 바로 그때가 하나님께서 다시금 역사하시고 일하실 때인 줄 믿습니다.
주님, 나에게도 그런 은혜를 베푸시사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하고 이 시간 같이 다짐의 기도를 드렸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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