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설교SundaySermon

그에게난자를사랑하느니라(요일5:1-4)_20230611성령강림후두번째주일 설교동영상

by 똑똑이채널 2023. 6. 11.
728x90
반응형
SMALL

요한일서는 사도 요한이 A.D.90년 경에 에베소에 머물 때 그 지역의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요한은 본래 야고보와 친형제로서,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처럼,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 잡는 어부였죠.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너희로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막1:17)고 할 때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죠.

어떻게 그 형제들이 즉각적으로 예수님을 따라 나설 수 있었을까요?

그 전에도 베드로를 만날 때 그의 이름을 시몬에서 베드로로 고쳐부른 적이 있는데, 그때도 긴가민가 했었죠.

그런데 그 날은 밤새 그물을 내렸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상황에서 깊은 데 그물을 내려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죠.

그러자 그날은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엄청난 고기를 잡았는데, 그때 비로소 베드로가 “나는 죄인입니다”하고 고백을 했죠.

그때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할 것이다”할 때 즉각적으로 주님을 따라나선 것이죠.

그 분의 부르심은 불가항력적인 부르심이이요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절대권능이 있음을 그들이 알았기 때문에 말이죠.

물론 그분의 부르심 앞에 즉각적으로 따란 나선 요한에게나 야보고에게 그리고 베드로의 형제에게 숨은 뜻이 없었습니까?

3년 동안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나섰지만 요한과 그 동료들은 이 세상의 권세를 부여잡고자 하는 숨은 목적이 있었죠.

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 곧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지만 그때까지도 정치적인 메시아로만 생각할 뿐이었죠.

그랬던 그들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당하고 골고다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죽임당할 때 다 끝난 줄 알았죠.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을 때, 갈릴리 바닷가에 찾아와 사랑을 확인시켜주실 때, 비로소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생겼죠.

그때부터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사람 낚는 어부로 그 인생을 살기 시작한 것이었죠.

그때부터 그들은 주님의 생명과 사랑을 이 세상에 흘러보내는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삶을 살게 된 것이었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19797

 

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

product.kyobobook.co.kr

그런데 사도 요한에게는 주님께서 특별한 삶을 부여하지 않았습니까?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 “요한아. 네 어머니다”하시면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봉양토록 말이죠.

이 세상에 누가 자기 친어머니도 아닌데 자기 친어머니처럼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를 하며 봉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도 요한은 그것 또한 이 세상에 주님의 생명과 사랑을 흘러보내는 일임을 알았기에 묵묵히 섬겼던 것이죠.

그런데 A.D.60년 중반 ‘마사다’ 항전에 이어 A.D.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완전히 초토화시킨 일이 일어났죠.

그 전인 A.D.65년 바울은 지하감옥에서 순교당했고,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디모데도 ‘5월 아데미 축제’때 군중의 돌에 맞아 순교당했죠.

바로 그 무렵에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로 가서 집을 지어 살면서 에베소교회 목회자로 섬긴 거죠.

그리고 A.D.90년 경에 요한복음과 요한일이삼서를 남겼고 밧모섬에 유배를 다녀온 뒤에 요한계시록을 남기고 자연사했죠.

그렇다면 사도 요한은 왜 요한일서를 쓴 것입니까?

그 당시 로마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황제숭배사상’이 만연했죠.

그러니 그 당시에 기독교인들이라 할지라도 황제를 신으로 섬기면서 절을 해야만 시장에 나가 물건을 사고팔 수 있었죠.

사도 요한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이상 이 세상에 그 어떤 황제도 신이 될 수 없음을 알기에 황제숭배상에 물들지 않도록 요한일서를 써 보낸 것이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0899457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교보문고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

product.kyobobook.co.kr

아울러 그 당시에 영지주의라는 이단과 사이비 사상들이 교회 안에 파고 들었습니다.

영지주의란 기독교의 한 분파로서 영은 거룩하지만 육은 더럽고 추한 것으로 여긴 채 영의 구원을 주장한 분파였죠.

오늘날로 치면 영혼만 구원받으면 육체로는 부도덕한 일을 일삼아도 전혀 죄가 되지 않는다는 JMS나 구원파의 논리와 같죠.

그러나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은 영혼만의 구원이 아니라 영혼육의 전인적인 구원임을 강조한 것이었죠.

우리가 죽으면 육체는 땅에 묻히고 영혼은 천국가지만 예수님 재림할 때 그 육체도 부활체의 몸으로 다시 하나가 되는 거죠.

사도 요한은 바로 그와 같은 영지주의자들의 유혹을 분별하도록 요한일서를 써 보낸 것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은 황제숭배사상에 물들지 않았습니까?

요즘에 누가 황제를 신으로 숭배한다고 생각하겠습니까?

하지만 오늘날의 황제란 맘모니즘 곧 돈과 권력을 황제처럼 숭배하며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면서 돈을 황제처럼 숭배하며 섬기는 이들 말이죠.

돈으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돈으로 값비싼 집을 살 수 있어도 참된 가정은 살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돈으로 고급 침대는 살 수 있어도 단잠은 살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돈으로 의사는 살 수 있어도 건강한 살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돈으로 사람과의 관계는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참된 사랑은 살 수 없죠?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경험이 있는 분들은 더더욱 돈으로 살 수 없는 생명과 사랑 때문에 더더욱 흘러보내며 사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들이 황제숭배사상 맘모니즘사상에 물들 게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과 사랑에 물든 자로 살아야 하는 이유죠.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들은 영지주의에 물들지 않았습니까?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내 영혼만 구원받으면 됐지 내 육체로 방탕한 삶을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그런 구원의 자녀만 원했다면 그분의 율례와 법도 곧 그 분의 십계명을 실천하라고 하지 않으셨겠죠.

그러니 사도 요한도 당시의 영지주의자들을 배격하도록 한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영혼육의 전인적인 구원을 완성해가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그렇지 않았던들 사도 요한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라고 권면하진 않았겠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19796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product.kyobobook.co.kr

오늘 본문 1절은 그런 그리스도인들만 원하는 게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원한다는 거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이 부분에 대한 현대인의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의 자녀들도 사랑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의 메시아임을 믿는 자를 말하죠.

사도 요한이 3년간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이심에 눈을 뜬 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였듯이 말이죠.

그런 예수님을 생명의 구원자로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 1장 12-13절을 통해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예수님을 생명의 메시아로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혈통이나 사람으로 뜻으로 난 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난 자들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라는 것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난 자들은 그분의 자녀들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받은 자녀는 또 다른 자녀들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에 빚진 자의 삶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16043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저주인가 | 권성권 - 교보문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저주인가 | 성경을 읽을 때마다 깨닫는 것이 있었습니다. 7가지 패턴이 있다는 게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먼저 찾아와 주시고, 그 인간과 관계를 맺어 진리

product.kyobobook.co.kr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