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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새벽에 에스겔서를 묵상하고 있죠.
에스겔은 바벨론의 2차 공격 때 포로로 끌려간 1만명 중 한 사람이었죠.
그때 남왕국 유다의 19대 왕 여호야긴도 포로로 끌려갔죠.
그 포로민들이 바벨론의 그발 강가 텔아빔에 거주했는데 5년째때 에스겔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죠.
그때 유대 땅 예루살렘에서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남은 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와우, 우리는 포로로 끌려가지 않았으니 좀더 의롭게 살아서 하나님께서 봐 주신 걸까?’
‘하나님께 선택받은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을 거야.’
2차 바벨론 공격 때 1만명이 포로로 끌려갔는데 그 중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지 않은 이들이 있었죠.
그들은 자신들이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보다 의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선민이라 망하지 않을거라 생각할 수 있었겠죠.
그런데 어떻습니까?
오늘 새벽에 읽은 에스겔 4장을 보면 유대 땅에 남아 있는 자들도 결코 안심할 수 없었죠.
왜냐하면 바벨론 땅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에스겔에서 주어진 말씀이 그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 땅에 남아 있는 자들도 곧 멸망당할 것이란 말씀이었죠.
그런데도 그 남은 백성이 어떻게 합니까?
2차 바벨론 공격 앞에 유대 땅 예루살렘에서 활약한 선지자가 있었죠.
바로 예레미야였죠.
예레미야는 2차 바벨론 공격을 보고서 3차 공격이 있을 것을 예언했죠.
그러니 하루속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애굽과 손을 잡은 것을 끊어버리라고 선포하죠.
‘우리가 살 길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길 밖에 없으며 애굽과 손을 잡은 걸 끊어내야 합니다’하고 선포했죠.
그런데 어떻습니까?
2차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에스겔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유대 땅에 남아 있는 자들의 멸망을 보여주셨죠.
그로부터 7년 뒤에 정확히 바벨론 제국이 다시금 유대 땅을 공격해서 예루살렘 성읍과 성전을 불태워버렸죠.
그때가 B.C.586년의 때였죠.
(깨달음)그렇다면 무엇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애굽과 손을 잡는 그걸 끊어내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바벨론에게 항복하라고 말씀하시면 그렇게 따라야 하는 거죠.
그것이 유다 백성이 살 길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도 유다의 마지막 20대 왕 시드기야와 그 백성들은 애굽과 손을 잡은 걸 끊어내지 못했다는 거죠.
애굽의 군사력과 애굽의 힘이면 바벨론도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애굽을 의지한다는 것은 애굽의 군사력뿐만 아니라 애굽의 잡신들을 다 끌어드리는 일이죠.
성경에 애굽은 죄악의 소굴이요 영적으로 사탄의 세력이 주도하는 나라를 말하는 것이죠.
그런 나라와 손을 잡는 것은 철저히 끊어내야 할 일인데, 유다 왕도 백성들도 그렇지 못하다가 결국 바벨론 제국의 공격을 받고 불타 버린 것이었죠.
(적용)그런 뜻에서 볼 때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끊어내야 할 게 있다고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세상에 의지하는 돈과 명예와 권력이 될 수도 있겠죠?
그것이 정치적인 힘을 의지하는 것도 될 수 있겠죠?
그것이 세상이 미신과 우상과 같은 것들이 될 수도 있겠죠?
중요한 것은 그것을 끊어내는 길만이 진정한 평강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끊어내는 길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길이요, 그 길이 영원한 생명의 길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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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알렉산드리아 배에 오른 사람들은 유라굴로 광풍으로 14일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죠.
살 수 있는 소망마저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었죠.
그야말로 절망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는 그들이었습니다.
그때 바울이 일어서서 그들 앞에서 선포했죠.
하나님께서 분명코 살려주실 것이라고 말이죠.
그것은 바울의 객기 때문이 아니라 어젯밤에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를 말씀해주셨기 때문이었죠.
하나님께서는 그 사자를 통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반드시 로마 황제에게 설 거라고, 그 배에 탄 사람들 목숨을 바울에게 맡겼다’고 했죠.
그래서 바울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선포한 것이었죠.
내가 속한 하나님,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한 섬에 걸리게 하실 것이라고, 나는 그걸 선포한 것이었죠.
그러자 모두가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했죠.
그런데 정말로 그 다음날 밤 선원들은 뭍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섬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 소리의 반향을 통해 그 선원들은 뭍이 점점 가까워짐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두 번이나 물 길을 재봤죠.
그리고는 점점 수면이 얕아지자 배 뒤쪽의 닻을 네 개나 내렸죠.
더 이상 떠밀려가지 않도록 하고자 한 것이었죠.
그런데 그 이후에 그 선원들이 어떻게 합니까?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서 거룻배 곧 구명보트를 내렸죠.
왜 그렇게 한 것입니까?
그 배에 있다가는 살 소망이 없다는 걸 생각하고 자기들 목숨이라도 건지고자 달아나려 했던 것이죠.
그때 바울이 그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말했죠.
‘저 선원들이 이 배에 함께 하지 않으면 우리는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하고 말이죠.
그만큼 그 배를 수선할 수 있는 사람도, 그 배를 안전하게 항해해서 그 승객들이 무사히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사람도 그 선원들이었죠.
(깨달음)그래서 지난 시간에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몰래 도망가려다가 들킨 선원들은 바울 때문에 도망치지 못했다고, 바울 때문에 살 수 있는 길이 막혔다고 바울을 비난했을지 모르죠.
하지만 정작 비난 받을 사람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바로 그 선원들이라고 했죠.
왜죠? 그 배에 탄 승객들은 모두가 선박을 주고 그 배에 몸을 맡긴 것이죠.
그 선원들은 그 승객들의 비용을 받고 그 배의 항해를 책임져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들만 살겠다고 도망치려고 했으니 그들이야말로 비난받을 사람들이라고 했죠.
(적용)그래서 참된 믿음의 사람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일터를 그리스도의 선원으로 여기며 성실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했죠.
자신에게 선박비를 낸 고객이나 의뢰자가 있을 때 그를 위해 모든 책임을 마다하지 않고 성실하게 응대해주는 그리스도인 말이죠.
실은 그런 그리스도인이 주일날 말씀드린 코리텐 붐의 아버지와 같은 그리스도인 아니겠습니까?
시계방을 운영하는 아버지에게 어느 손님이 고급 시계가 고장나서 다른 시계를 사려고 했죠.
그걸 사면 몇 달간 돈 걱정 없이 목고 살 수 있는 그런 시계를 그 손님이 선택한 것이었죠.
그런데 그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버지는 그 손님의 시계를 봐보자고 했죠.
그런데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시계를 고쳐줬고, 이미 산 시계도 돌려받고 그 돈을 내주는 것이었죠.
왜죠?
코리의 아버지는 자기 유익 자기 기쁨보다 하나님의 기쁨을 좇아 순종한 것이었죠.
시계방을 운영하는 코리의 아버지는 그리스도의 선원처럼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감당한 분이었죠.
그렇게 성실할 때 고가의 시계를 찬 그 손님이 더 많은 손님에게 소개할 것은 당연한 일이죠.
(본문)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상황을 전해주는데 본문 3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다.
“이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바울의 말을 들은 백부장은 곧장 자기 수하의 군인들에게 명령한 것이죠.
그 거룻배를 타고 도망가려던 그 거룻배의 굴을 끊어 떼어 버리라고 말이죠.
(원해)여기에 거룻줄을 끊어 떼 버리다는 헬라어는 세 개의 동사로 기록돼 있습니다.
‘끊다’로 변역된 헬라어 동사 ‘아포콥토’(ἀποκόπτω)는 ‘끊다’(to cut off) ‘절단하다’(amputate)는 뜻이죠.
‘떼다’는 헬라어 동사 ‘에크핍토’(ἐκπίπτω)는 ‘떨어지다’(to fall off) ‘잃어버리다’(to lose it)이죠.
그리고 우리말 ‘버리다’로 번역된 ‘에아오’(ἐάω)는 ‘홀로 두다’(let alone) ‘떠나다’(leave)는 말입니다.
그냥 거룻줄을 끊어 버리다 하면 됐을 텐데 굳이 세 가지 동사를 각각 써서 기록한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 누구도 그 거룻줄에 더이상 미련을 갖지 못하돌고 했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함이죠.
오직 그 배 안에 함께 있어야만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말이죠.
그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지 않으면 다시 또 그것을 기웃거릴 수 있으니 말이죠.
그 거룻줄을 끊어서 떼어 버려야만 그 배에 탄 276명이 공동의 목표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이와 같은 사실이 우리에게 깨닫게 하는 게 무엇입니까?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2차 바벨론 공격을 받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1만명의 사람이 있었고 그중에 에스겔도 있었죠.
그런데 2차 포로로 끌려가지 않는 이들은 자신들이 의롭다고 생각해서, 자신들이 선민이라고 생각해서 화를 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유예 기간을 두신 것이었죠.
마지막 3차 공격을 당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의지하며 애굽과 손을 잡은 것을 끊어 떼어 버리라고 말이죠.
그런데도 그 남은 자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마지막 20대 왕 시드기야를 비롯해 대신들과 백성들이 모두 애굽과 손을 잡은 채 하나님의 말씀을 헌신짝처럼 떼어 내 버렸죠.
그로 인해 그 남은 자들도 3차 바벨론 공격을 받고 완전히 성읍과 성전이 불타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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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그렇기에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저와 여러분들이 애굽과 같은 우상과 손을 잡고 살아가는 것들을 끊어 떼어 내버리는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시는 거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면서도 네가 우상단지처럼 의지하는 것들을 끊어 떼어 내 버릴 게 없겠느냐?”
“바벨론의 2차 공격앞에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남은 자들이 안전하다고 망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하나님보다 애굽을 더 의지했는데 너도 그런 부분이 없느냐?”
“이 세상의 돈과 명예와 권력과 정치적인 힘을 우상처럼 붙들고 사는 모습은 없느냐?”
“그 선원들이 타고 몰래 도망치려던 그 거룻배의 거룻줄을 끊어버린 것도 그런 모습임을 깨닫게 하는 것 아니더냐?”
“네가 참으로 의지해야 할 분은 네 인생의 주관자요 전능자요 네 인생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하나님 아버지라는 사실 말이다.”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때로 하나님께서 너의 영혼을 사랑하셔서 네가 의지하는 이 세상의 거룻줄을 끊어버릴 때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구나.”
“그것이 네가 의지하는 부모도 사람도 동료도 그리고 이 세상의 힘과 권력과 건강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
“유대 땅에 남은 자들이 하나님을 더 의지하면 좋았으련만 애굽이라는 우상의 힘을 의지하려다가 바벨론에 완전 불타 버린 것 아니더냐?”
“그 선원들이 도망치려던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도록 한 것도 바로 그런 사실을 너에게 일깨워주고자 한 것 아니더냐?”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네 인생의 참 생명줄임을 네가 잊지 않도록 은혜로 너를 감싸주시지 않겠느냐?”
(찬양)내가 주인삼은 모든것 내려 놓고 내 주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것 내려 놓고 주님만 사랑해
내가 주인삼은 모든것 내려 놓고 내 주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것 내려 놓고 주님만 사랑해
주 사랑 거친 풍랑에도 깊은 바다처럼 나를 잠잠케해
주 사랑 내 영혼의 반석 그 사랑위에 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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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6-23절을 통해 육체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를 다음과 같이 비교해 줍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육체의 열매와 반대되는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라고 말씀하죠.
그렇다면 ‘열매’를 가리키는 헬라어 명사 ‘카르포스’(καρπός)는 복수가 아니라 단수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각각 다른 아홉 가지 열매들이 아니라 단 하나의 열매지만 그 열매가 각각 다른 아홉 가지 모양으로 나타나나는 걸 말하죠.
성령의 열매가 때론 사랑의 모양으로 때론 희락의 모양으로 때론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열매의 마지막 모습이 ‘절제’죠.
절제란 ‘정도에 넘지 않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하는 것’을 말합니다.
술독에 빠져 술을 끊지 못하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술을 좀 절제하라고 한다면 적당하게 마시라는 말이죠.
하지만 우리말 ‘절제’라고 번역된 헬라어 명사 ‘엥크라테이아’(ἐγκράτεια)는 ‘자기 통제’(self-control)를 말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조금 조절하여 적당하게 하는 게 아니라 아예 ‘끊어 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적당하게 불의와 타협하고, 적당하게 거짓말 하고, 적당하게 불륜을 저지르고, 근무시간을 적당하게 때우는 그런 것을 절제라고 말하지 않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끊어 떼어내는 것이 절제입니다.
오늘 본문의 표현처럼 잘라내야 할 거룻줄을 완전히 끊어서 떼어 내 버리는 것이죠.
그렇게 절제하며 살 때, 그렇게 끊어내며 살 때, 그 회사도, 그 가정도, 그 나라도, 그가 속한 공동체가 견고할 수 있는 것이죠.
(예화)어떤 성도의 아들이 국가가 주관하는 분야의 경연대회에 나갔다가 최종 4명 중에 들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 경연대회 관계자가 그 아들의 부모에게 이렇게 제안을 했다고 하죠.
심사위원들에게 얼마의 금액을 전해주면 대상을 받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말이죠.
그 경연대회는 단순한 수상과 경력을 쌓는 게 아니라 남자가 대상을 수상할 경우 군면제 특전이 주어지는 대상이었습니다.
그 제안을 받은 그 성도님은 그 돈을 지불할 경제력을 지녔습니다.
그런데 남편과 상의한 후에 그 제안을 거절하기록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때 그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아들. 네가 네 실력으로 대상을 받으면 축하할 일이야.
하지만 대상 실력이 되지 않는데도 돈으로 수상하고 군을 면제받는다면 그건 비굴한 일인 것 같아.
지금 비굴하게 처신하면 평생 그렇게 살지도 몰라.
그러니 네 실력으로 대상을 받으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혹시 떨어져도 다른 집 아들들처럼 당당하게 국방의 의무를 다했으면 해.”
그 아들이 그때 어떻게 했을까요?
그 아들도 그 부모님의 뜻에 동의했다고 하죠.
그 이후에 그런 유혹이 들어올지라도 그 아들은 기꺼이 그 유혹들을 끊어서 떼어내 버리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 속에 살게 될 줄 믿습니다.
(내기도)그렇기에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제가 속한 회사와 직장과 나라와 가정이 튼튼하려면 내가 끊어서 떼어내야 할 것을 잘 끊어 떼어내며 살게 해 주세요.”
“절제란 적당하게 조절하는 게 아니라 아예 나 자신을 철저하게 말씀으로 통제하며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인 줄 믿어요.”
“그 선원들만 살겠다고 도망치려했던 거룻줄을 완전히 끊어 떼어 내 버리겠던 그 뜻을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며 살겠습니다.”
“오늘 제게 어떤 유혹이 들어와도 그것들이 애굽의 우상과 같은 것들이라면 기꺼이 끊어 떼어내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그 아들이 그 대상의 길목에서 유혹하는 것을 과감히 끊어 떼어냈기에 앞으로도 그런 유혹 앞에 끊어 떼어낼 줄 믿어요.”
“오늘 저도 그런 절제의 길,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진리와 생명의 길을 걷을 수 있도록 붙잡아 주시옵소서.”
(찬양)내가 주인삼은 모든것 내려 놓고 내 주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것 내려 놓고 주님만 사랑해
내가 주인삼은 모든것 내려 놓고 내 주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것 내려 놓고 주님만 사랑해
주 사랑 거친 풍랑에도 깊은 바다처럼 나를 잠잠케해
주 사랑 내 영혼의 반석 그 사랑위에 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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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모시고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내 마음에서 떼어낸 채 세상의 것들을 우상으로 섬긴다면 어찌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겠습니까?
유라굴로 광풍 앞에 하나님을 의지했던 그 선원들도 언제 그랬냐 싶게 거룻배를 타고 도망치려 했던 그들입니다.
그들로 인해 276명의 목숨은 위태하게 되고 그야말로 더 큰 혼란에 휩쌓이고 말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맡은 자리를 그리스도의 선원의 자리로 알고 거룻줄과 같이 나를 유혹하는 것들을 끊어서 때어 낼 수 있는 은혜를 주님 앞에 구하도록 하십니다.
그런 거룻줄을 끊어서 떼어 내는 것이 생명의 길이요 그 길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갈릴리 삶의 현장이 될 줄 믿습니다.
그런 은혜 속에 살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께 고백의 기도, 다짐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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