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부랴부랴 하당에 있는 삼성디지털프라자 3층을 찾았다. 새벽녘에 사용하고 있던 CD플레이어가 고장이 난 까닭이다. 한 달 전에도 고장이 나서 그곳에 들렀는데, 이번에 또다시 작동이 멈춘 것이었다.
“잘 되는데요?”
“오늘 새벽에도 중간에 멈춰버렸는데. 괜찮을까요?”
“네 잘 돼요. 앞으로 헤더나 트랙이 고장 날 수도 있긴 해요.”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죠?”
“새 걸로 교체하는 수밖에 없죠.”
“왜 중간에 멈춰선 걸까요?”
“글쎄요. 처음부터 헤더에 손상이 안 가야 하고, 트랙도 잘 사용해야죠.”
“CD도 깨끗한 걸로 써야 겠네요.”
“당연하죠.”
수리를 맡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자가 곧바로 한 말이다. 그분의 말을 들을 때 내게 밀려오는 생각이 있었다. CD플레이어를 처음 구입했을 때는 새로운 CD를 틀어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래야 헤더나 트랙이 손상되지 않고 오래도록 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 CD플레이어만 해당되는 일이겠는가? 제품도 건축물도 사람도 그 초석을 어떻게 세우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아사와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디르사에서 모든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십사 년 동안 다스리니라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왕상15:32-34)
남 왕국 유다의 아사 왕과 북 왕국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에 대한 모습을 비춰주는 말씀이다. 사울 왕의 40년 통치, 다윗 왕의 40년 통치, 솔로몬 왕의 40년 통치, 통일왕국 이스라엘은 120년을 끝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그 후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로 분열했다. B.C.931년의 일이다. 그때 유다와 베냐민 지파로 구성된 남 왕국 유다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통치했고, 북쪽 10개 지파로 구성된 북 왕국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신하였던 여로보암이 다스렸다.
하지만 새로 왕이 된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명령과 달리 북 왕국 이스라엘의 최남단 벧엘과 최북단 단에 금송아지 신상을 세웠고 제사장들도 일반 사람으로 채웠고 절기도 제멋대로 정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았지만 속으로는 온통 자기 욕망의 숭배자였다. 그가 세운 우상숭배 토대는 그의 통치 22년과 그 아들 나답의 2년(왕상15:25), 모반 정권 바아사의 24년(왕상15:33)과 그 아들 엘라의 2년(왕상16:8), 모반 정권 시므리의 7일(왕상16:15), 모반 정권으로 북이스라엘의 사마리아를 세운 오므리의 통치 12년(왕상16:23)과 그 아들 아합의 22년(왕상16:29)도 똑같았다.
그만큼 모든 왕들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놓은 초석을 따라 간 것이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19명 왕들 모두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의 길을 좇은 모습이 그것이다. 선조가 신앙의 초석을 어떻게 놓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다.
그렇다면 남 왕국 유다는 어땠을까? 솔로몬의 아들이자 암몬 족속 나마아가 낳은 르호보암이 17년간(왕상14:21) 다스릴 때 백성에게 산당에서 제사토록 했고 우상을 숭배케 했다. 그 일로 애굽 왕 시삭이 쳐들어와 솔로몬 성전의 금방패를 모두 가져갔다. 그 아들 아비얌의 3년도(대하13:2) 동일했다. 하지만 아비얌의 아들 아사는 다윗의 길을 좇아 41년간(대하16:13) 다스렸다. 그는 동성애자를 좇아냈고 우상을 찍어냈고 어머니의 태후도 폐위시켰다. 다만 말년에 북 왕국 이스라엘의 바아사와 내전(內戰)을 치를 때 북쪽 다메섹의 왕 벤하닷에게 원조를 청했다. 그 일로 발에 통풍이 걸려(왕상15:23, 대하16:12) 죽었다.1)
그렇듯 선조가 그릇된 신앙 토대를 세웠어도 후대가 바로 잡을 수 있는 길을 보여준 것이다. 암몬 족속인 르호보암의 어머니가 우상숭배에 빠져있을 때 그 아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길을 아들도 똑같이 따라 걸었다. 하지만 그 손자는 다윗의 길을 좇아 하나님을 올곧게 섬긴 것이다. 물론 그의 8회말 인생까지는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9회 말에서 살짝 헛발을 내딛은 꼴이다. 그래도 그 얼마나 멋진 신앙의 초석인가?
사실 CD플레이어는 7년 전에 구입한 것이다. 그때는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대용으로 구입해 주님께 드렸다. 그 무렵 누군가는 빔 프로젝를 주님께 드렸고, 나는 노트북을 드렸다. 그 후 봉고차와 십자가 네온을 봉헌한 분도 있다. 또한 온몸을 다해 예배당 청소로 봉헌한 분도 있고, 십일조와 감사와 주일예물로 묵묵히 봉헌하는 분들도 있다. 모두가 신앙의 아름다운 초석을 놓는 분들이다.
그러나 그 마음을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선한 신앙의 초석을 놓았어도 이물질이 끼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7년 전 새로 구입한 CD플레이어도 지금은 이물질이 잔뜩 끼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8회 말 인생의 토대를 잘 쌓아 왔다면 남은 9회 말 인생도 헛발을 내딛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9회말 인생은, 아사처럼, 어느 날 예고없이 별안간 찾아오는 순간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1)https://www.sefaria.org/I_Kings.15.23?lang=bi&with=Ein%20Yaakov%20(Glick%20Edition)&lang2=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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