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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SundaySermon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눅2:8-14)_2022년 대림절 첫번째주일설교

by 똑똑이채널 2022.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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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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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나예) 최근에 어떤 분이 제게 책을 선물해줬습니다.

그분이 출판사 한 곳에 한달 선교비 5만원을 보내면 그 출판에서 찍어내는 새 책 2-3권 보내주는 것이죠.

그 책들 중에는 평소에 읽고 싶어한 폴틸리히의 〈조직신학2〉도 들어 있어서 더 기뻤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종이책이 안라 핸드폰으로 읽을 수 있는 PDF책을 선물해줬습니다.

개척교회 사모님이 쓴 〈마음에 길을 내는 하루〉라는 책인데, 아주 감동깊은 책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있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기도와 말씀과 전도에 성실을 다했습니다.

하루에 3명 이상은 만나서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세요.”하기로 말이죠.

지난주엔 아는 형님과 하당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 길에서도 주보를 전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새벽기도회 말씀을 전하고 6시 60분까지 기도를 한 후에 닭밥을 주고, 7시 30분까지 말씀을 읽고 8시 무렵에 카톡을 보내죠.

점심을 먹고 예배당에 앉아 기도를 하고 성도들 개개인의 삶에 천군천사로 함께 하길 중보하죠.

그 후 전도하고 일도 보는데, 저녁 무렵엔 다음날 새벽기도회 말씀을 정리하고 블로그에 올립니다.

 

그런 모습을 기뻐하셨는지 엊그제 새벽기도가 끝나고 사무실에서 잠깐 졸 때 주님이 환상으로 찾아왔죠.

주님께서 배에 불을 넣어주시면서 안수해주셨는데 주님의 목소리는 지방회 선배 목사의 음성이었죠.

곧장 사무실 밖에 인자한 권사님이 찾아왔는데 제게 책을 선물한 집사님과 함께 꽃 화분을 수없이 많이 싣고 온 모습이었습니다.

 

(깨달음)그때 제가 무엇을 느꼈을까요?

지금 기도와 말씀과 전도하는 그 삶을 더 성실하게 하라는 주님의 싸인이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주님을 사모하는 자에게 만족함을 주시고(딤후4:8)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 가까이 계실 때 그 분을 찾고자 하는 자에게(사55:6) 만나주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적용)그만큼 신앙생활은 뜬구름 잡는 삶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느 기도원 산속에 들어가서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임하는 분이 아니죠.

주님께서는 현실의 삶을 내팽개친 이들을 특별하게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주어진 일에 성실을 다하며 살아가는 그 현장에 임하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성화)1992년 10월 예수님이 재림해서 종말이 도래한다는 ‘다미선교회’의 모습을 볼 때도 그렇죠.

이장림 목사를 비롯한 몇 명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특별계시를 보여줬다면서 날짜까지 말했죠.

 

당시 다미선교회의 가르침에 미혹된 이들은 대부분 직장과 일터를 팽개치며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죠.

하얀 세마포 옷을 입고 하늘나라로 들림받을 준비를 한다면서 말이죠.

그러니 가족이나 사회나 직장에서 환영받지 못한 채 곱지 않는 시선을 받았지만 그들 나름대로는 자신만만하며 그들 바깥의 사람들을 불쌍한 눈초리로 바라봤죠.

 

(깨달음)그러나 그렇게도 확신에 찬 그날 그들은 들림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24:36)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은 천사들도, 아들 성자 하나님인 예수님도 모르고, 오직 성부 하나님만 아신다는 거죠.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에게 직접 계시해줬다면서 성경보다 더 위에 서려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었죠.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과 더불어 놓치지 말아야 할 하나의 말씀이 또 하나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을 통해 과연 주님께서 어떤 곳에 오시는지 말입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24:40-42)

 

(적용)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어떤 곳에 임하신다는 뜻입니까?

다미선교회처럼 그들이 정한 특정한 교회 예배당이나 특정한 기도원에 임하신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두 사람이 밭을 가는 현장, 두 사람이 맷돌질하는 그 현장에 주님께서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주님께서 임할지 모르기 때문에, 늘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죠.

 

그만큼 주님께서는 재림하시는 때와 시기는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곳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특정 예배당이나 기도원에 임하시는 게 아니라 주어진 일터의 현장에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현장에 임하시기 때문에 성실을 다하며 임무를 수행하되, 늘 깨어 있는 마음으로 주님을 사모하며 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실때는 달랐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성탄의 주인으로 오시는 그때도 결코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우리가 지금 새벽에 살펴보고 있는 말씀은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66장 말씀은 전반부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후반부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고 있죠.

이사야 선지자는 주전 8세기, 예수님께서 태어나기 800년 전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때 이사야 선지자는 남왕국 유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그렇게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떠나 이방신을 좇고 이방 권력을 의지하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게 멸망하지 않았더냐?

그러니 남왕국 유다 백성들아, 너희들은 이방신을 좇고 세상 권력을 의지하는데서 돌아서야 하지 않겠느냐?

위로 하나님을 진실되게 경외하고, 아래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고 긍휼히 여기라고 말이죠.

너희들이 돌아서지 않고 천천만만의 제물을 바치고 기도한다 한들, 심지어 금식하며 기도한다 한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겠느냐?

그만큼 성전에 나와 하나님께 드리는 그 마음과 자세를 성전 밖에서도 펼쳐보이는 삶을 살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남왕국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보낸 이사야 선지자의 그 메시지를 우습게 여기고 말았죠.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와 함께 동시대 미가 선지자도 보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죠.

결국 남왕국 유다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게 멸망한 것처럼 바벨론을 통해 멸망하고 말았죠.

다만 북왕국 이스라엘은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한 후 70년만에 포로에서 돌아오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사야서의 말씀 속에도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신다는 언약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죠.

더 중요한 것은 이사야서의 말씀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까지도 언약으로 담겨 있다는 점입니다.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7:14)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9:6)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11:1-2)

 

(깨달음)어떻습니까? 주전 800년 전부터 이미 아기 예수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전 800년 시대에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아를 보내시겠다는 확고부동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었습니다.

 

(본문)오늘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800년이 흐른 시점에 천사 가브리엘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과연 천사 가브리엘이 누구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을 알려주고 있습니까?

본문 8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원해)여기에 나오는 ‘목자’란 헬라어로 ‘포이멘’(ποιμήν)입니다.

목동(a herdsman) 양치기(a shepherd) 혹은 목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의 목동이나 목자는 어땠을까요?

예수님 시대의 목자들은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최하층민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www.voiceofprophecy.com/articles/blog/why-shepherds)

그 당시 목자들은 세금징수원이나 청소부처럼 누구 하나 부러워할 만한 지위가 아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그 이전에 흘러내려온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로 있을 때 아버지 야곱이 70명의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에 도착했죠.

그때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애굽의 왕 파라오를 만나면 그런 청을 넣으라고 알려줬죠.

애굽의 중심부 땅이 아닌 변방 고센 땅에 자신들이 살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말이죠.

 

왜 그랬습니까?

야곱과 그 가족들은 그 당시 양을 치는 목자들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나일강 덕에 풍족한 농사를 짓고 있었지만, 야곱과 그 가족들은 양을 치면서 냄새나는 삶을 살았던 것이죠.

그러니 애굽 사람들은 짐승의 냄새나는 그들을 추하고 더럽다고 여기며 함께 하려고 하지 않았죠.

바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요셉이 아버지 야곱에게 애굽의 파라오에게 그 청을 넣도록 한 것이었죠.

 

물론 요셉이 아버지를 통해 원했던 것은 단순히 애굽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그들이 떨어져 살게 된 애굽의 고센 땅은 가나안 땅과 제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언약을 바라보며 살도록 애굽의 변방 고센 땅을 원했다는 점이죠.

우리도 이 땅에 살지만 주님께서 언제 어느때라도 부르시면 천국에 입성할 것을 바라보며 사는 자들이죠.

 

(깨달음)그런데 구약성경을 해석한 유대인의 전승 ‘미쉬나’에선 목자들을 부정한 직업으로 분류합니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냄새나는 삶을 살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 당시 목자들은 안식일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 당시 목자들은 안식일에 쉬는 사람들과 달리 안식일에도 양을 데리고 들판에 나가야 했죠.

안식일이라고 이리떼나 사나운 짐승들이 물어뜯지 않는 법은 없었기에 더 철저하게 지키고 돌봤죠.

그 때문에 유대인들은 세리나 창기처럼 신약시대의 목자들을 부정한 자로 취급했던 것입니다.

 

물론 또 다른 이유도 있었죠.

신약시대의 양을 치는 목자들은 삯을 받고 남의 양떼를 기르는 고용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죠.

돈을 받고 고용된 목자들이기에 그 당시 계약서까지 작성했습니다.

그들이 키우는 양이 풀을 뜯어 먹는 광야다 보니 늑대나 여우나 하이에나가 득실거리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보면 목자들은 양을 지키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하는 경우도 생기게 마련이었죠.

하지만 동물보다는 사람의 생명이 우선이기 계약할 때 최소한의 양과 염소는 잃어도 좋다는 계약을 하게 되는 것이죠.

 

문제는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는 경우였습니다.

그때 삯을 받고 고용된 목자들은 무사히 돌아왔을 때도 계약서를 생각하면서 한 두 마리 마리 양을 빼돌리는 것이었죠.

더욱이 1월에는 양들이 많이 출산하는 때인데 삯을 받고 고용된 목자들은 더 많은 양을 빼돌릴 유혹을 받는 것이죠.

그때 주인들은 양이 몇 마리나 출산하는지 알고 있지만 고용된 목자들이 많이 빼돌려도 그려려니 한다는 것이죠.

 

바로 그런 관행때문에 신약시대에 삯을 받고 고용된 목자들을 세리와 창녀처럼 죄인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적용)그렇다면 가브리엘 천사가 주님의 탄생을 알려주는 본문 속의 목자들은 어떤 목자들인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밤늦게까지 양떼를 돌보고 있었다면 가난한 형편 때문에 품삯을 받고 생명을 담보로 양을 치는 삯군 목자들이었다는 것이죠.

 

우리 주님께서는 그렇게 죄인취급받고 가난한 그들을 상관치 않고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을 알려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하심이지만 그들에게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죠.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생명을 담보로 일하는 그 현장을 지키며 최선을 다했다는 거죠.그들은 밤에 들판에서 양치는 이들이기에 늑대나 여우로부터 양떼의 생명은 물론 자기 목숨까지도 내놓으며 지켜내야 했던 이들입니다.

바로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을 전하도록 하는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는 거죠.

 

(주문)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주어진 삶에 신실하게 책임을 다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탄생을 알기고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의 은혜를 맞이하게 하신다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도 너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며 살고 있느냐?”

본문에 등장하는 목자들이 품삯을 받고 일하는 목자들인지 알 수 없지만 한밤 중에도 생명을 다하는 자들 아니더냐?”

그들이 얼마나 가난한지, 얼마나 냄새나는 자들인지, 알 길이 없지만 자기 목숨을 다하는 자들 아니더냐?”

그들을 택하여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려주는 것은 전적인 주님의 선택이지만 그들은 자기 일에 성실을 다하고 있지 않더냐?”

예수님의 탄생이 언제 어느 시에 임할지 그들도 알지 못했지만 그들은 주어진 현장에 최선을 다하는 자들이지 않았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날짜나 기간에 연연할 게 아니라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성실을 다하며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자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아기 예수의 탄생도 이미 800년 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언약해 주셨고 성취해주셨듯이 주님의 재림도 성경에 약속해 주셨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기 예수의 탄생도 왕실이나 궁궐이나 예배당이 아니라 말구유에 오셨던 것처럼 주님의 재림도 밭을 갈고 맷돌 가는 현장에 오신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니 주어진 현장에 최선을 다하면서 매일 주님께 더 가까이 주님을 더 원하고 갈망할 때 현재의 너에게 찾아와주지 않겠느냐?”

 

(찬양)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 가리라

주의 영광 온 땅 덮을 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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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YES24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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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19세기 미국의 부흥 전도자 무디 목사는 수십만 명을 주님께로 인도한 사람입니다.

그는 하루에 한 사람에게 반드시 복음을 전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하루는 아무에게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려고 했지만 책임을 완수하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밤중에 거리에 서서 말씀으로 권유할 대상자를 찾는데 술 주정꾼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다짜고짜 그에게 다가가 “예수님을 아시나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술주정꾼은 ‘예수’라는 말을 듣자마자 화부터 벌컥 냈다고 합니다.

무디는 그 사람 때문에 지쳐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3개월 후에 무디의 집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는데 바로 그 술 주정꾼이었습니다.

그 술주정꾼이 고백하길, 그날 밤 예수님을 아느냐는 말에 크게 화를 냈는데, 그 말이 귓전에서 계속 떠나지 않아 예수님을 를 믿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까?

복음의 씨앗은 일상의 삶 속에 누군가에 뿌리면 성령님께서 그 심령에 역사하실 때 열매맺게 된다는 것이죠.

주님께서는 특별한 장소 특별한 사람에게 정해놓고 찾아오시는 분이 아니라 일상의 현장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이들에게 얼마든지 찾아오시는 분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예화2)‘프레드릭 놀란’ 선교사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북아프리카에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고 너무 극심한 탄압을 받아 원수들을 피해 도망을 쳤죠.

 

이제 언덕을 지나 계곡으로 쫓겨 다니는데 마땅히 숨을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길 옆에 작은 동굴이 있어서 그 속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때 그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 속에 문득 밀려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분께 매달리며 기도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제가 이렇게 죽는 건가요? 제 사명이 이것으로 끝인가요?”

그토록 절박한 심정으로 그 동굴 안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갑자기 거미가 나타나더니 동굴 입구를 향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거미가 동굴 입구를 가로질러 순식간에 거미줄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자신을 쫓아오던 자들이 그 동굴 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그리고는 그 동굴을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죠.

그들은 동굴 입구에 거미줄이 쳐 있는 것을 봤고 그 거미줄을 건드린 흔적이 없는 걸 알고 지나쳐갔습니다.

 

그들이 다 떠나갔을 때 프레드릭 놀란 선교사님은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하며 외쳤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거미줄도 벽과 같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벽도 거미줄 같습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현장 속에 주님께서는 미물과도 같은 거미를 움직여 역사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특별한 형체를 지닌 모습이나 음성으로 찾아오기도 하지만, 일상의 미물까지도 움직여 찾아오시는 분이란 사실입니다.

 

지금도 일상의 현장속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주님의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에게 초림의 예수, 재림의 예수님께서는 친히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어떤 기도를 주님께 드릴 때 기뻐받으실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주님은 특별한 장소 특별한 공간에 오시는 분이 아니라 일상의 삶의 한복판에 찾아오시는 분이시네요.”

전도하는 걸 잊어버리다가 그날 밤중에 술주정꾼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그에게도 찾아와주시는 주님이셨네요.”

복음을 전하다 동굴에 피해들어갔는데 미물인 거미가 친 거미줄을 통해서도 주님은 그 현장에 임해주셨어요.”

주님, 제가 어떤 삶을 살지라도 주어진 현장에 최선을 다해 살게 하시고 그 속에서 하루 한 명일도 복음을 전하게 해 주세요.”

바로 그곳에 초림의 예수님, 그리고 재림의 예수님께서 지금도 현존하시는 모습으로 제게 임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찬양)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 가리라

주의 영광 온 땅 덮을 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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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YES24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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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고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는 대림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전 8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약속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신실하게 성취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란 그 약속도 성경을 통해 약속하신 바요 성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의 목자들, 그 시대에 죄인취급받고 냄새나는 그들을 주님은 선택하셔서 그들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려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목숨을 다하면서 주어진 양떼를 돌보는데 한 밤 중까지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바로 그런 자들의 현장에 친히 찾아오시고 또 재림하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일을 맡았던지 그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하시고 그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한 사람이도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밤중에 양떼를 돌보는 목자들의 현장에, 술주정꾼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 현장에, 복음을 전하다 동굴에 숨어든 그 현장에, 친히 임해주셨습니다.

내가 어떤 삶을 살든지 매일매일 신실하게 주님을 사모하며 주님의 사귐을 바라며, 하루 한 명에게라도 복음을 전할 때 주님께서 놀라운 역사로 우리 각자에게 임재해주실 줄 믿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삶에 현장에 주님께서 임하시는 놀라운 은혜가 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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