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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발췌)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이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부산대학병원 응급실의 게시판에 붙어 있는 <항상 감사하기>라는 글을 어느 분이 올린 것입니다.
“10대의 자녀가 반항하면 그건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있다는 것이고,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직장과 재산이 있다는 것이고,
파티를 하고나서 치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면 그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옷이 몸에 좀 끼인다면 그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고,
깎아야 될 잔디, 닦아야 될 유리, 고쳐야 할 하수구가 있다면 그건 나의 집이 있다는 것이고,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자리 하나가 있다면 그건 내가 걸을 수 있는데다 차도 있다는 것이고,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건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고,
교회에서 뒷자리 아줌마의 엉터리 찬송이 영 거슬린다면 그건 내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이고,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있다면 그건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이고,
온 몸이 피곤하고 뻐근해 진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을 했다는 것이고,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있는 것이고,
이메일이 너무 많이 쏟아진다면 그건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겠지요.”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생각지도 못한 일로 부산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생각하게 해 주는 글 아니겠습니까?
응급실 앞에서 왠지 불안에 떨고 초조할 가족들이 그 글을 읽고 작은 위로와 소망이라도 품도록 하는 것 말이죠.
자녀가 반항하고, 난방비 많이 들고, 온몸이 피곤하고, 집에 손 볼 곳이 많으면, 얼마나 답답하고 짜증날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우리의 생각을 바꿔보면 도리어 그것이 감사요 복된 일일 수 있다는 사실이죠.
믿음이 없고 부정적인 사람은 어떤 일을 겪어도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찰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매사에 감사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은 그 어떤 고난 앞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뜻”(살전5:18)을 받들며 살게 되는 법이죠.
(적용)누구나 다 아는 영어단어가 있습니다.
‘생각한다’ 바로 그 단어가 영어로 ‘Think’이죠.
그런데 이 단어는 감사하다는 말인 ‘Thank’와 어원이 같다고 하죠.
무슨 일이든지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오히려 하나님 앞에 감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감사를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생각하지 않고 살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점도 그렇습니다.
감옥과 수도원은 ‘고립’된 장소라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죠.
미국의 데이빗 소퍼 목사님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감옥과 수도원의 근본적인 차이는 단지 불평하느냐, 아니면 감사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수감된 죄수가 수도자와 같은 감사의 마음을 가질 때 감옥은 수도원으로 승화될 것이고 수도자가 불평의 마음을 가질 때 수도원은 감옥으로 전락할 것이다”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감옥도 수도원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자족하는 마음이 없으면 비록 왕궁에 산다해도 감옥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해 줍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전7:14)
형통한 날에 기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곤고한 날에는 불평이 터져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불평하고 원망하기보다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상황과 환경속에서 분명코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는 길이 보일 것이란 말씀이죠.
왜죠?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 두 가지를 병행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형통한 것도 주님의 은혜요, 곤고한 날도 주님의 은혜의 날이 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인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찬양)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 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헤쳐나온 풍랑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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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시편은 150편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 중 다윗이 쓴 시가 73편이요 작자미상의 시는 50편입니다.
시편 95편-100편도 실은 작자 미상의 시인데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에 대해 감사의 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아바 아버지라는 고백의 시죠.
시편 100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사의 예물을 가지고 성전 문에 들어가 감사하며 찬양했던 노래죠.
본문도 맨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큰 소리로 감사와 찬양을 하며 그분께 나가라고 권고하죠.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지난 시간에 양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봤죠.
양은 스스로를 보호할 것이 하나도 없는 짐승입니다.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도 없고 발도 빠르지 않습니다.
뿔이 있기는 하지만 뒤로 말려 있습니다.
양은 지극히 근시라서 바로 앞의 것만 볼 뿐 멀리 있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자칫 한 마리 양이 멀리 보지 못한 채 뛰어갔다가는 뒤따르는 양들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죠.
양은 전염병에 취약한 짐승이라 붙어 있지 않도록 목자가 염소 떼를 넣어서 양을 키우죠.
고집이 세고 목자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양은 그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목자의 품에서 키워나갑니다.
(깨달음)우리는 나 스스로 영혼을 지킬 수 없기에 목자되신 주님께서 내 영혼을 보호해주셔야 하죠.
이 세상을 향한 근시안을 갖고 있는 나 자신이기에 목자되신 주님께서 영생을 바라보는 은혜를 베푸시죠.
고집이 세기 때문에 목자되신 주님께서 염소 떼의 환경으로,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주님 품에 거하게 하시죠.
(적용)어느 성악가가 노래를 가장 잘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 목에 힘을 빼는 성악가가 노래를 가장 잘 부릅니다.
어느 피아니스트가 가장 피아노를 잘 치겠습니까?
그 어깨에 힘을 뺀 피아니스트가 가장 피아노를 잘 칩니다.
어느 양이 가장 잘 자라고 가장 풍성한 꼴을 먹고 살 수 있겠습니까?
자기 고집을 내려놓는 양이 목자의 사랑을 받기에 잘 자라고 풍성한 꼴을 먹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죠.
(본문)본문 4절은 그분의 문에 들어갈 때 그분의 궁정에 들어갈 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하라고 권고합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원해)‘문’(gate)이 히브리어로 ‘솨아르’(שַׁעַר)인데 시장 문 왕궁 문 천국 문을 뜻하는 말입니다.
‘궁정’이란 히브리어로 ‘하쩨르’(חָצֵר)로 ‘울타리를 친 곳’(enclosures) 또 ‘법정’(court)을 뜻하는 말이죠.
이스라엘 백성이 그분의 문에 들어간다는 건 만 왕의 왕이신 성전 문에 들어가 경배하는 걸 말하죠.
머잖아 천국 문에 입성해 이십사 장로와 천군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습을 상상케 하죠.
그분의 궁정에 들어간다는 건 그분의 법정 곧 그분의 백보좌 심판대 앞에 나아가는 모습을 연상케 하죠.
그분의 백보좌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은 믿지 않는 자들에겐 영벌의 심판대요 믿는 자들에겐 상급의 심판대(고후5:10)입니다.
(깨달음)그러니 우리가 주님께 감사와 찬양의 예배를 드릴 때 무엇을 생각하며 경배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머잖아 천국문에 입성해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습과 같다는 거죠.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오는 것은 그분의 백보좌 심판대 앞에서 받을 상급을 생각하면서 나아가는 것이고요.
(원해2)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송축할지어다’는 히브리어 ‘바라크’(בָּרַךְ)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축복하다’(to bless)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무릎을 꿇다’(to kneel)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할 때 ‘축복한다’는 말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향할 때 무릎을 꿇고 송축하는 거죠.
왜 우리가 그분께 무릎을 꿇으며 송축하는 것입니까?
그분 만이 우리에게 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죠.
(깨달음2)그래서 그 분의 이름을 뭐라고 고백하면서 부르고 있습니까?
1절에 ‘여호와’, 2절도 ‘여호와’, 3절도 ‘여호와’, 4절도 ‘그’ 곧 ‘여호와’, 5절도 ‘여호와’라고 고백하죠.
‘여호와’란 히브리어 ‘하야’(הָיָה)에서 온 말로 ‘존재하다’ ‘스스로 있는 자’(출3:14)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이 만들어낸 신이 아니라 본래부터 존재하는 분이라는 뜻이죠.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시기에 우리 인간에게 복을 주시는 주관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분만이 현세와 내세를 다스릴 뿐만 아니라 그분만이 천국과 지옥의 주관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분께 바라크 무릎을 꿇고 송축할 수 있는 것이요 그분은 우리에게 바라크 무한한 복을 주시는 분이시죠.
(예화)여러분 그 유명한 성철(性徹) 스님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하는 유명한 법어를 남긴 분이죠.
물론 그 말은 성철 스님이 새로 지어낸 말이 아니죠.
700년전 중국의 다섯 분의 큰스님이 금강경을 해설한〈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이 있죠.
그 책 속에 “산시산(山是山) 수시수(水是水) 불재하처(佛在何處)”라는 말이 있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데 부처님이 어디에 계시단 말인가”하는 야보(冶父) 스님의 시구입니다.
그걸 성철 스님이 앞 구절만 인용한 것이죠.
그런데 성철 스님이 그 말을 해서 유명한 게 아니라 열심히 도를 닦았던 까닭이죠.
그분은 장좌불와(長坐不臥)라고 눕지 않고 15년간 앉아서 도룰 닦있고 옷 한 벌로 50년을 입었죠.
더욱이 철조망을 쳐놓고 나가지 않도록 하면서 수십 년 간 도를 닦은 분으로 유명합니다.
그랬던 그분이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뭐라고 고백했는지 아십니까?
“내가 남들을 속인 죄가 수미산(須彌山)보다도 더 높아서 아비지옥(阿鼻地獄)에 가서 갈기갈기 찢겨죽을 것이다”
(깨달음)왜 우리가 하나님만을 향해 무릎을 꿇고 송축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죠.
성철 스님이 15년간 앉아서 도를 닦고, 철조망 치고 도를 닦아도, 아비지옥에 찢겨 죽는다고 고백할 뿐이었죠.
자신이 지은 죄가 수미산 보다 높다고, 자신이 지은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거죠.
불교나 타종교나 무속의 세계에는 그만큼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영생의 구원이 없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분을 향해 바라크 무릎을 꿇고 송축할 수 있고, 그분은 우리를 향해 바라크 마음껏 복을 부어주실 있는 분이시죠.
(주문)그렇기에 추수감사주일인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우리에게 영생의 복을 베푸시는 분이기에 주님께 송축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거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어떤 일을 겪든지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하고 감사하면서 살아 왔느냐?”
“자녀가 반항하고, 난방비 많이 들고, 온몸이 피곤하고, 집에 손 볼 곳이 많아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며 살아 왔느냐?”
“너는 목자되신 주님께서 염소떼의 환경으로 몰아넣어도, 너의 다리를 부러뜨려도, 목자이신 주님께 감사하면서 섬겼느냐?”
“너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머잖아 입성할 천국에 들어가 24장로와 천군천사와 함께 경배할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배하고 있느냐?”
“너는 불교나 타종교나 무속의 세계에 죄사함과 구원이 없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네 죄를 용서해주시고 영생을 선물하시는 분인 줄 믿고 있느냐?”
“너는 2022년 하반기의 삶을 목자되신 여호와께서 친히 인도해주심을 믿고 지금도 바라크 그 분을 향해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송축하고 있느냐?”
“사랑하는 내 딸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여호와 하나님께 바라크 네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송축하는 것은 네게 좋은 일과 행복한 일이 넘쳐나서 그런 것이더냐?”
“설령 2022년 한 해 동안에 좋은 일과 행복한 일이 넘쳐나지 않고 오히려 짜증나고 답답한 일을 겪었어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때 오히려 바라크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송축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난방비가 많이 나왔다면 네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지 않더냐?”
“너의 뒷자리에서 누군가 찬송을 부를 때 음정과 박자가 잘 맞지 않는다는 건 너의 귀로 아직은 들을 수 있다는 증거이지 않더냐?”
“온 몸이 힘들게 느껴진다면 네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증이요, 이른 아침 자명종 소리에 깨단면 네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지 않더냐?”
“아무리 눕지 않고 도를 닦고 철조망을 치고 도를 닦아도 자기 몸도 구원치 못한 불자나 다른 종교인들과 달리 주님께서는 너에게 십자가의 사랑으로 값없이 영생을 베풀어주셨으니 어찌 감사할 수 있지 않겠느냐”
“2022년 한 해 동안 너의 기도에 장미꽃처럼 응답해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장미꽃 가시처럼 양의 다리를 꺾는 것처럼 너의 환경을 몰아넣었어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 도리어 감사할 수 있지 않겠느냐?”
“2022년 하반기의 삶을 지금껏 살아오면서 너의 목으로 물한 모금 마시고 너의 오른손으로 밥숟가락을 넘길 수 있는 것만도 어찌 하나님 앞에 바라크 하나님을 향해 송축하고 감사할 수 있는 일이지 않겠느냐?”
(찬양)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 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헤쳐나온 풍랑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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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다니엘 디포(D. Defoe)가 쓴 〈로빈슨 크루소〉라는 소설이 있죠.
영화로도 에니메이션으로도 나온 유명한 작품입니다.
중산층의 아들로 태어난 로빈슨 크루소는 법조인이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바다로 항해하길 좋아했죠.
처음 국제무역선에 몸을 실었을 때는 많은 돈을 거머쥐었는데, 그 후에 노예무역선에 몸을 실었을 때 폭풍을 만나 조난당한 채 어느 무인도에 도착하죠.
바로 그 무인도에서 28년간 살아온 삶의 과정을 그린 것이 로빈슨 크루소라는 작품이죠.
그가 무인도 섬에서 28년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물에 빠져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에 대해 매 순간 순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았죠.
섬에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았고요.
섬에 위험한 짐승이 있었다면 잡혀 먹혔을 텐데 그곳에 위험한 짐승이 없게 하심도 감사했죠.
그 섬이 여름철에 최적화된 곳이라 더운 날씨에도 옷이 필요치 않아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발췌)그래서 영국의 수필가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은 그런 멋진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주소는 두 곳에 있다. 한 곳은 하늘나라이고 다른 한 곳은 감사하는 성도의 마음이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며 사는 자에게 늘 함께 하신다는 것이죠.
(발췌)2022년 제 14일차 다니엘 기도회 강사로 모영국 목사님이 나와서 간증을 전했습니다.
그분은 지금 60대인데, 30살 무렵에 태안반도 시골 교회에 부임해 열심히 목회했고 교회도 많은 부흥을 했죠.
그런데 교회주일학교 학생 두 명이 바닷가에서 빠져 죽었고 그 일로 교회를 떠나려고 했는데 교우들이 붙잡았죠.
그 후에 뼈를 묻을 각오로 열심히 목회를 했는데 그만 교모세포종에 걸려 교회에 폐를 않끼치고자 사임하고 천안에 올라왔죠.
‘교모세포종’이란 뇌의 한 중앙에 암이 생겨 수술도 못하는 지경인데 췌장암보다 훨씬 더 무서운 암이라고 하죠.
더욱이 그 분의 교모세포종은 발견됐을 때 4기 곧 말기암 상태였습니다.
처음 서울대병원에서 진단받을 때는 의사들이 협진을 하면서 “3개월 넘지 못합니다”하고 말을 해줬습니다.
그때 방사선 약이 너무 독해서 다른 신체 부위에 닿지 않도록 장갑을 끼고 약을 먹었죠.
그러다 3개월을 넘어서고 6개월이 지나면서 강단에서 설교하고 죽어야 되겠다 싶어서 교회를 개척했죠.
그 후에는 만나는 목사님들에게, 선배든 후배든 그 어떤 목사님에게 안수기도를 부탁하면서 “제가 10년만 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하고 기도를 부탁했죠.
그 분은 올해 12월이 되면 다시금 검사를 받는데, 처음 발병한 때로부터 5년이 지난다고 하죠.
그래서 지금도 그 분은 아침마다 일어나면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찬양을 올립니다.”하고 외친다고 하죠.
그리고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행복합니다, 승리하게 하소서”를 세 번 외친다고 합니다.
그 다음 교회와 성도들을 축복하고 암세포가 사라지고 몸의 각 기능이 회복되기를 간구한다고 합니다.
사실 그 분은 간증을 하면서도 오른쪽 눈은 보이지 않고, 오른쪽 손과 오른쪽 발도 마비상태였죠.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제가 오른손으로 밥 한 숟가락 떠먹을 수 있도록 회복케 해 주세요”하는 게 기도 제목이었죠.
아침에 목욕탕에서 기도할 때도 그 형편 속에서 “할렐루야. 아멘”을 30번씩 외친다고 하죠.
(깨달음)〈기이한 도우심〉을 주제로 간증과 설교를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가는 그 목사님의 모습을 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의 모습은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어느 불구자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너는 저분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 않더냐?”
“저 목사님은 교모세포종으로 언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지 모르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감사하며 살고 있지 않느냐?”
“지금 저분이 서 있는 자리가 실은 너의 자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너는 더더욱 감사할 수 있지 않겠느냐”
(발췌)〈로빈슨 크루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도 그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반대 처지가 되어 보지 않고는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잃어야 그 가치를 깨닫는 모양이다.”
(적용)우리는 열등감 때문에 누군가 크고 놀라운 일을 성취했을 때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 일까, 하고 생각하기가 쉽죠.
하지만 나를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면, 우리 안의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때 나의 시선은 나보다 더 크고 화려한 업적을 달성한 사람에게 쏠리는 게 아니라 나보다 더 연약한 자들에게 쏠리게 되죠.
그러면서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본래 당신과 같은 처지 속에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하나님께서 지금의 내 모습으로 살게 해 주신 것이로구나.”
“내가 당신처럼 보지 못하고 오른손과 오른발을 쓸 수 없을 위치에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지금의 이 모습으로 살게 해 주신 거구나.”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저 분의 자리요 저분의 자리가 내 자리일지도 모르는데, 지금 주님께서 이 자리에 살게 해 주신 거구나.”
(내기도) 그러니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제 삶의 자리가 어떤 자리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잃지 않고 살게 해 주세요.”
“교모세포종으로 인해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모영국 목사님의 삶이 제가 살아야 할 삶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제게 이런 삶을 살게 하신 것도 주님의 은혜예요.”
“사람들은 열등감 때문에 더 크고 화려한 위치에 서지 못해 괴로워하는데, 주님 주님께서 제 안에 계셔서 제 안의 모든 열등감이 사라지게 해 주세요.”
“그래서 지금 나의 모습을 허락하신 주님 앞에 더욱더 감사하며 살게 해주세요.”
“지금도 이 세상에는 눈이 보이지 않고, 손과 다리가 마비가 된 상태 속에서, 심지어 다리를 절단하고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실은 제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주님께서 지금 이 모습으로 살게 해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입니다.”
“주님, 매일 30번씩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님을 경배하며 일평생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베풀어주시옵소서.”
(찬양)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눈물 날 일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는 것
비록 짧은 작은 삶 주 뜻대로 사는 것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세상은 알 수 없는 하나님 선물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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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그분만이 복을 주시는 주관자이시게에 그분께 바라크 무릎꿇고 송축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송축하는 것은 좋은 일과 큰 업적과 결실을 이루었기 때문만은 아니죠.
오히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맞이했을 때도 그속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실 섭리를 생각하면 충분히 감사하고 송축할 수 있는 것이죠.
장미꽃과 같은 선물을 베풀어주실 때도 감사하거니와 장미꽃 가시 앞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난방비가 많이 나오고 이른 아침에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깰 수밖에 없어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사한 일들입니다.
교모세포종으로 시한부인생을 살고 있고 오른쪽 눈이 안 보이고 팔과 다리가 마비됐어도 하루 30번씩 할렐루야 아멘 하며 감사하며 사는 그 목사님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누군가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렵게 사는 분이 있다면, 혹여라도 내가 그 자리에 있고 그가 내 자리에 있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이 자리에 두신 것이니, 그또한 감사할 일 아니겠습니까?
별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달빛을 주시고 달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햇빛을 주시고 햇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영원히 지지 않는 주님의 은혜의 빛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와 같은 은총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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