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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100:1-5)_감사설교(4)

by 똑똑이채널 2022.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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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어제까지 새벽시간에 전도서를 읽고 묵상하며 말씀을 나눴습니다.

‘전도서’는 히브리어로 ‘코헬렛’이라고 하죠.

‘설교자’ 또는 ‘모임에서 가르치는 강연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어떤 학자는 솔로몬의 또 다른 이름이 ‘코헬렛’이지 않나 말하기도 하죠.

 

전도서의 큰 주제가 무엇이었습니까?

인생의 황혼의 때를 바라보는 솔로몬이 자기 인생의 뒤안길을 돌아보며 헛된 인생을 살지 말라는 것이었죠.

솔로몬은 다윗의 배다른 19명 아들 중에 10번째 아들로 태어났고, 왕이 될 자격조차 없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왕위에 올랐죠.

그는 재위 4년만에 7년에 걸쳐 성전을 지었고 13년에 걸쳐 자기 왕궁을 건축했죠.

그때부터 권력의 최정점에 서서 산해진미를 먹고 천 명의 처첩을 거느리며 살다가 B.C.931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죠. 

30대에 왕위에 오른 그는 40년간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인생 70세에 서해안의 석양 노을처럼 역사 속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인생의 황혼기를 바라보면서 후세대를 향해 남긴 교훈이 전도서였습니다.

아무리 젊음의 때에 모든 걸 쥐락펴락하며 살아왔지만 돌이켜보니 그 모두가 헛되고 헛된 것뿐이었다는 것이죠.

전도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 중에 하나가 ‘헛되다’인데 37번이나 기록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죠.

그러나 솔로몬이 전도서를 통해 교훈하고자 하는 것은 인생무쌍이나 허무주의를 강조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과 무관한 젊음은 헛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삶임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이죠.

전도서에 ‘지혜’ ‘지혜자’라는 말이 무려 43회나 기록돼 있는 이유도 그것이죠.

 

(깨달음)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왜 지혜로운 삶일까요?

하나님과 무관한 삶은 영원한 생명과 무관한 채 이 땅의 삶으로 끝나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사는 삶은 영원한 세계에 접속돼 있는 영원한 삶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란 어떤 삶이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귀신을 섬기면 화를 면하기 때문에 섬기는,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게 아니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분이 절대적인 빛이시기에 그분 앞에 서면 내가 더러운 죄인임을 알고 섬기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제물 삼기까지 나를 구원해주셨기에 하나님을 영적인 아버지로 믿고 따르는 삶을 말하는 것이죠.

 

(인용)하나님을 영적인 아버지로 믿고 따르는 삶이란 쉽게 말하면 ‘목자와 양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겠죠.

동아프리카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현지 목자들의 틈바귀 속에서 자란 ‘필립 켈러’라는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분은 청년 시절에 8년간 양을 치면서 살았는데, 그가 쓴 〈양과 목자〉라는 책을 보면 양의 특성을 이렇게 설명해줍니다.

 

양은 스스로 보호하지 못하는 무력한 짐승이다.

이리나 승냥이가 나타나면 겁에 질려 도망치거나 덤불에 숨어 버린다.

양은 한 번 뒤집히면 혼자서 몸을 뒤집고 일어나지 못한다. 

양은 자기를 돌보지 못하는 짐승이라 그냥 두면 독초를 먹고 더러운 물을 마셔 병에 걸리고 만다. 

양은 근시라서 가까운 것은 보지만 멀리 있는 것은 보지 못한다.

들짐승이 나타나도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길을 잘 잃어버리는 이유가 그것이다.

양은 전염병에 약하기 때문에 들판에 가면 목자가 염소를 풀어 놓아 흩어지게 해야 한다.

그렇기에 양이 건강하게 자라려면 선한 목자를 만나야 한다.

양의 행복은 전적으로 목자에게 달려 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합니까?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양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 주지 않습니까?

 

목자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 없이는 나 스스로 내 영혼을 지킬 수도 보호할 수도 없는 양과 같은 존재라는 것 말이죠.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해 주지 않으면 나 보기에 좋은 길을 좇다가 그만 독초와 오염된 걸 먹고 병에 걸리는 존재 말이죠.

근시안적인 눈만 갖고 있어서 이 세상의 크고 화려한 것에만 집착한 채 영원한 것을 보지 못하고 길을 잃는 존재 말이죠.

 

그처럼 연약한 양과 같은 존재인 우리에게는 영생의 목자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이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고 동행해주시는 은혜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양처럼 사는 인생이 영원에 접속된 삶이요 진정 지혜로운 삶인 줄 믿습니다.

 

(찬양)여호와 나의 목자 내게 부족없네 푸르른 초장 위에 나의 몸 누이시네

선한 목자 오 나의 목자여 생수가 넘치는 곳 날 인도 하시네

 

내 영혼 소생하며 자기 이름위해 의의 길 인도하니 골짜기 두렴없네

선한 목자 오 나의 목자여 생수가 넘치는 곳 날 인도 하시네

 

(역배)시편은 총 150편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 중에 다윗이 쓴 시가 73편이나 됩니다.

그 150편의 시들 중에 작자미상의 시는 50편이 있습니다. 

시편 95편-100편도 실은 작자 미상의 시입니다.

 

그 시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고 했죠.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에 대해 찬양과 감사의 고백을 하는 시 곧 신정시(神政詩)라는 것이죠.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00편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찬양하는 시편 중의 하나입니다.

더욱이 이 100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문을 향할 때 감사의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나아가며 부른 찬양의 시입니다.

이 시편 기자는 맨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예배하러 나아갈 때 큰 소리로 외치며 찬양하라고 권고하죠.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1-2절)

 

하나님께 예배할 때 즐거운 찬송을 부르라, 히브리어로 ‘루아’라는 단어는, 전심을 다해 찬양하며 소리치는 걸 말합니다.

광양 행진 때나 광야에서 대적들을 치러 나갈 때 나팔 소리를 울러퍼지게 하듯이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걸 말하죠.

하나님은 모든 전쟁에 능하신 분이시기에 영적 전쟁에 승리자이신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개처럼 끌려다니는 인생을 살았는데 그곳에서 해방시켜주셨으니 어찌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나도 브닌나로 인해 개처럼 끌려가는 인생을 살았는데 그 삶을 청산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어찌 기쁨으로 감사하며 찬양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죠.

내 인생에 넘기 힘든 장벽과도 같은 장애물을 넘어서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케 했을 때 큰 소리를 찬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개처럼 끌려다니는 내 인생에서 참된 해결책을 맛보게 해 주셨을 때 하나님의 은혜에 기쁨으로 나아가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우리의 인생의 주관자요 통치자로서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기를 원하시는 아바 아버지이신 줄 믿습니다.

 

(본문)본문 3절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께 즐거운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며 나아가야 하는지를 일깨워준 말씀이죠.

다시 한 번 본문 3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원해)하나님의 자녀들이 왜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는 것입니까?

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며 그분 앞에 나아가 경배하도록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바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그 분의 소유요 그 분의 백성이요 그 분이 기르시는 양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양’으로 기록된 히브리어 ‘쫀’(צֹאן)은 ‘작은 짐승’(small cattle)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흔히 ‘양’(sheep)으로 쓰이지만 ‘염소’(goats)도 함께 쓰이는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번제를 바칠 때 양을 바치기도 했지만 염소도 바쳤기 때문이죠(레1:10, 레5:6).

 

(깨달음)더욱이 당시의 목자는 양을 키울 때 양무리 속에 염소를 넣어서 함께 키웠기 때문입니다.

왜 그 당시 목자들은 양 무리 속에 염소를 함께 넣어서 키웠겠습니까?

양은 전염병에 약한 짐승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문에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양들을 일부러 벌여놓기 위해 양무리 속에 염소를 넣어 키우는 것이죠.

그래야 양들이 서로 떨어져서 지내게 되고, 통풍도 잘 되고 전염병도 막을 수 있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기 때문에 말이죠.

 

이 모든 것을 누가 미리 조치하는 것입니까?

양들의 상태를 매일매일 체크하고 살피고 돌보는 목자가 그렇게 하는 것이죠.

양을 잡기 위해서 염소를 넣는 게 아니라 양의 건강을 위해서 말이죠. 

 

그런가 하면 양들 중에는 목자를 잘 따르는 양만 있는 게 아니라 한 눈 팔고 해매는 습성이 있는 양도 있겠죠.

그럴 때 목자가 어떻게 할까요?

그런 양들은 목자가 발을 부러트린다고 합니다.

발을 부러뜨려서라도 그 양의 습성을 고쳐놓기 위해서 말이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 눈 팔다가 이리나 승냥이 떼에게 공격당해 잡아 먹히기 때문이죠.

 

(적용)어떻습니까?

우리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양인 우리를 돌보시고 먹이고 기르시는 과정이 바로 그와 같지 않겠습니까?

내가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잘 듣고 따르면 좋으련만 이 세상 들판을 누비다보면 세상 들판에만 풀 빠질 때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면 목자이신 주님께서 마귀 사탄과 같은 이리와 승냥이 떼에게 잡아 먹히지 않도록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당신의 품에 있기 하시는 것이죠.

때로는 영적인 전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염소의 뿔로 들이받는 것과 같은 삶의 환경을 만들어서 우리를 강건케 하시는 우리의 목자이시죠.

 

(원성)그래서 다윗은 목자되시는 주님을 향해 시편 23편을 통해 그렇게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깨달음)다윗도 15살이 되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기 전까지 양치기의 삶, 어린 목동의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배다른 7명의 형들은 집에서 편안하게 살 때 그 홀로 외롭게 양치기의 삶으로 전전긍긍했죠.

그러나 그때마다 다윗은 자신에게 맡겨 준 양들을 최선을 다해 돌보았고 먹이고 키우고 이끌었습니다.

때론 곰과 사자의 발톱 속에서 그 양떼들을 지키고자 물맷돌 실력을 키워 지켜냈던 다윗이었죠. 

 

어렸을 때는 그렇게 자신에게 맡긴 양들을 돌봤는데, 그가 장성하면서 사울 왕의 칼날을 피해 도망쳐 다닐때는요?

그때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목자가 되셔서 다윗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인도해주신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까닭에 다윗은 어디로 가든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자신과 동행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자기 생을 맡겼던 것이죠.

 

(주문)그렇기에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우리가 목자되시는 주님께 각자 인생을 의탁하며 사는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신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는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네 인생의 남은 때를 솔로몬처럼 헛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니더냐?”

“네 인생의 남은 때를 목자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의탁하며 영생의 삶에 접속하여 살고 있느냐?”

“양은 스스로 보호도 못하고 뒤집히면 혼자 일어나지 못하는데 너도 그렇게 연약한 양이지 않더냐?”

“양은 그냥 두면 독초를 먹고 더러운 물을 마셔 전염병에 걸리는데 너도 그런 것은 아니더냐?”

“양은 근시안적이라 당장의 눈 앞에 것만 바라보고 좇아 사는데 너도 그런 양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더냐?”

“다윗도 어릴 때 양을 돌본 목동이요 목자였는데 장성한 그가 사울에게 쫓길 때 하나님께서 목자로 지켜주지 않았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 인생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영원한 목자이신 하나님께 네 인생을 의탁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목자이신 주님께서 네 영혼을 보호해주시고 근시안적인 너의 눈을 영원을 바라보는 눈을 갖도록 은혜를 베풀지 않겠느냐?”

“목자이신 주님께서 세상의 전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염소도 보내시고 너의 다리를 부러뜨리면서까지 너를 돌보지 않겠느냐?”

“네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도 목자되신 주님께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너를 품어주지 않겠느냐?”

 

(찬양)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양 푸른 풀밭 맑은 시냇 물가로 나를 늘 인도 하여 주신다

예쁜 새들 노래하는 아침과 노을 비끼는 고운 황혼에 사랑하는 나의 목자 음성이 나를 언제나 불러 주신다

못된 짐승 나를 해치 못하고 거친 비바람 상치 못하리 나의 주님 강한 손을 펼치사 나를 주야로 지켜 주신다

[후렴]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 주시니 내게 부족함 전혀 없어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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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2022년 다니엘기도회 5일차 간증자로 나선 전은주 전도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어노인팅 예배인도자로 활동하면서 ‘교회여 일어나라’, ‘내 영혼은 안전합니다’ 등의 곡들을 작곡한 분입니다.

그렇게 왕성하게 활동한 전도사님이지만 어린 시절은 너무나도 암울하게 자랐죠.

 

사실 그녀는 태어날 때 왼쪽 눈이 거의 감겨 있는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선천성 안검하수였던 것이죠.

5살까지 몇 개월에 한 번씩 실로 눈을 뜨게 했다가, 왼쪽 허벅지 피부를 이식하는 3번의 대형수술을 받았죠.

 

그 수술로 눈은 뜨게 되었는지만 또 다른 짝짝이 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입학하자마자 눈병신이라고 소문이 났죠. 

그 때문에 학교에서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고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에게 놀림과 조롱을 받았죠.

 

그런 상황에서 외할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는데 그녀가 위안을 삼으며 부른 노래는 “죄짐 맡은 우리 구주”였죠.

그 찬송이 그 당시 그녀에게는 최선의 기도였죠.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그때부터 외할머니를 따라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 온갖 예배에 참석하며 기도했죠.

그때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기도했던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왼쪽 눈에 손을 대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자고 나면 제 두 눈 크기가 똑같게 해 주세요.”

 

그런데 사춘기가 지날 때까지도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해주지 않았습니다.

그 후 믿음이 조금 성장했을 때는 ‘만약 주님의 뜻이 아니라면’하는 기도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제 양쪽 눈 크기가 똑같게 해 주세요. 만약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병원 앞에서 놀리려고 기다리는 아이들이 없게 해 주세요.”

 

물론 그 기도에도 하나님은 응답해주지 않았습니다.

더욱 괴로웠던 건 교회 친구들이 교회에선 잘 지냈는데 학교에만 가면 변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중학교 때 잠시 방황하다가 고등학교 때 다시금 주님 품에 돌아왔습니다.

그때 주님 품에 돌아온 건 하나님이 필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해 보겠다는 뜻에서 말이죠.

“하나님, 제가 이렇게 열심히 헌신하는데 이제는 제 기도에 들어주실 때가 되지 않았나요?”하고 말이죠.

 

그러다가 신학교를 가게 되었고 찬양사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그녀는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계시나요? 저는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요?”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나님, 제가 신약성경 다 읽을 때까지 저에게 제발 한 마디만 해 주세요.”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원망하며 대들다시피 하면서 기도를 했던 그녀였죠.

 

그 과정에서 마태복음 1장을 읽어나가는데 ‘임마누엘’이라는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진짜 함께 하시는데 제 인생이 이렇습니까?”하고 또 다른 불만도 터져나왔습니다.

 

그러다 마태복음 28장을 읽어나가는데 그때 주님께서 찾아와 만나주신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깨달음)그때까지 수없이 읽은 말씀인데 성령님께서 그녀의 심령 속에 역사하신 순간이었죠.

사실 그 말씀은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많이 읽고 들었던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 중에 가장 크게 와 닿았던 말씀은 그것이었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하는 말씀 말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왕따시키고 조롱한 친구들에게 주님의 능력을 받아, 세상에서 잘 돼서 보란 듯이 복수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죠.

 

그런데 그 날은 한 번 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그 말씀이 그녀의 심령을 사로잡기 시작했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때 비로소 성령님께서 그녀와 ‘함께 하시는 확신’, 여태껏 함께 해 오셨고, 앞으로도 목자처럼 함께 인도해 주실 주님의 확신을 불어넣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왕따당하며 힘들고 괴로웠던 고통들이 다 녹아내렸죠.

 

물론 그 후에도 삶의 상황은 바뀐 게 없지만 그녀의 중심은 언제나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목자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확신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적용)제가 그분의 간증을 들을 때 제 삶에 오버랩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불면증에 시달릴 때 경기도 양평에 있는 기도원에 올라갔었죠.

그때 한 달간 기도원지기로 살면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누렸습니다.

 

군대 갔다가 온 후에 세상에서 방황하다가 다시금 그 기도원에 올라간 일이 있었죠.

그때 성령님께서는 기도원 원장님의 음성을 통해 이렇게 제게 말씀해주셨죠.

“그때 그 하나님 지금이라고 변했겠느냐. 성권아 하나님은 네가 변하지 않으면 절대 변하지 않아”

“하나님은 그나 지금이나 너를 사랑하고 계셔.”

 

(내기도)바로 그것이 목자되시는 하나님의 은혜안에 거하는 삶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실지 알 수 있겠죠.

“그래요, 주님. 세상을 살아갈 때 힘들고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목자되시는 하나님을 의심할 때가 있어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는데 제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어요.”

“친구들이 왕따시키고 친한 사람이 배신을 하면 힘들고 괴로워 하나님을 원망할 때도 있어요.”

“하나님께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열심히 헌신하는데도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지 않을 때 하나님을 불신할 때도 있어요.”

“전은주 전도사님도 실은 그런 상황이었는데 주님께서는 그 분에게 말씀으로 찾아와 그 분의 심령에 깊이 새겨주셨네요.”

“주님, 저에게도 말씀으로 찾아와 저의 목자되신 주님을 제가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역사해주시길 원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간절히 찾는 자들이 만날 것이니라(잠8:17)라고 하신 주님께서 저에게도 만나주세요.”

“너를 만나주시고 너를 사랑하신 목자되신 그때 그 하나님. 지금이라고 변했겠느냐. 네가 변하지 않으면 절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심을 확신하며 살게 해 주세요.”

 

(찬양)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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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되시는 아바 아버지시오 우리는 그 분의 기르시는 양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고 넘어지면 돌아설 수 없고 영적인 전염병에도 약한 존재이지 않습니까?

그때마다 목자되신 주님께서 우리 앞에서 인도해주시고 영적인 원수도 몰아내면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다윗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선천성 안검하수 때문에 이식수술을 한 후에도 왕따당하는 괴로움을 지녔던 전도사님도 마찬가지였죠.

하나님을 믿지만 해결받지 못하고 응답받지 못한 삶 때문에 신앙생활에 기쁨도 없이 괴로웠던 그분이죠.

하지만 하나님께 의탁하며 간구할 때 말씀속에서 목자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 주셨습니다.

“볼찌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우리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런 은혜를 베푸시고 목자로서 친히 인도해주시는 아바 아버지이신 줄 믿습니다.

그 은혜가 저와 여분들에게도 충만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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