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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잠언

정직한 자 중에 은혜가(잠14:1-35)

by 똑똑이채널 2022.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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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1장 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건축을 명령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이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하는 말씀이 그것이죠. 그때의 ‘지혜’ 역시 잠언에 기록된 ‘지혜’ 곧 ‘호크마’와 같은 단어입니다. 놀랍게도 성막과 관련된 그 지혜는 건축기술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 것이죠.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구약성경의 지혜서 중의 한 권인 ‘잠언’에 나타난 지혜 역시 우리 자신들의 인생건축기술집으로 받아들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오늘 읽은 잠언 14장도 계속해서 2행시의 대구형식으로 기록된 35개의 잠언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 잠언들 역시 ‘지혜로운 삶의 증표’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15장까지 이어지죠.

 

본문 1절에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이 말씀은 ‘지혜로운 여자는 집을 세우지만, 어리석은 여자는 제 손으로 집을 무너뜨린다’는 의미입니다. 출애굽기 2장에 등장하는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그 가정을 세운 여인입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모든 사내 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할 때 그녀는 믿음과 용기를 갖고 모세를 죽이지 않았고, 울음소리가 점점 거세질 무렵엔 ‘테바’ 곧 갈대상자에 모세를 넣어서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맡기며 나일강에 띄워보냈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딸 곧 공주와 그녀를 따르는 시녀들을 보내서 모세를 물에서 건져올리게 했고, 애굽 의 왕자로 자라면서 모든 애굽의 교육과 군사훈련을 다 거치게 하셨죠. 결국 모세는 그 애굽 궁중의 40년, 또 미디안 광야의 40년 삶을 마친 후에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는 지도자로 부름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건축자가 된 셈이었죠. 그 모든 일의 시작이 지혜로운 여인 곧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믿음과 용기의 결단에 의해 시작된 일이라는 점입니다. 그녀의 지혜로움이 그 가정을 세우게 되었고, 그녀의 믿음과 용기가 이스라엘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건축하게 된 시작점이었습니다. 

그런 지혜로운 여인은 또 있습니다. 한나라는 여인도 그렇죠. 남편 엘가나가 한나를 더 사랑했지만 자식은 브닌나라는 여인이 낳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브닌나가 한나를 멸시하자, 한나는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안고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소원기도를 올렸고, 그녀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민족의 지도자인 사무엘을 낳게 해 주셨죠. 중요한 것은 한나는 소원기도를 드릴 때의 심정, 아이를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그 처음 먹은 마음을 끝까지 지킨 여인이라는 점이었죠. 바로 그녀의 그런 지혜로움과 순전한 믿음의 자세를 통해 그 가정을 새롭게 세워주셨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였던 엘리 제사장 시대의 다음을 이어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바르게 세우게 하는 영적인 건축의 시대로 삼은 계기가 바로 한나의 순전한 믿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거죠.

그러나 미련한 여인은 집을 허문다고 했습니다. 그런 여인이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잠언 12장 4절의 말씀 곧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같게 하느니라.”하는 말씀을 생각할 때 떠올린 여인이 있었죠. 이른바 북왕국 이스라엘의 7대 왕인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이 그처럼 한 가정을 파멸로 몬 여인이요, 한 나라를 송두리째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한 장본인이라고 말입니다. 그녀는 본래 이스라엘 여인이 아니라 이방 시돈 지역의 왕의 딸이었죠. 바로 바알과 아세라 신을 숭배한 여인이었고, 그녀가 그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이스라엘 전역에 퍼뜨렸고, 심지어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교육하고 키운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런 미련한 여인 때문에 아합도 패가망신하고, 그 나라도 완전히 망가지게 되었죠. 물론 그 시대에 엘리야를 비롯한 7천명의 남은자를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셔서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준비하셨습니다.

또 미련한 여인이 있습니다. 이른바 남유다 왕국의 7대 왕이자 유일한 여왕인 ‘아달랴’가 그녀죠. 그녀는 이세벨과 똑같이 남편 여호람을 꼬드겨서 하나님의 법을 떠나게 만들었고, 8년 통치뒤 남편이 죽고 그 아들 아하시야가 1년간 통치하다가 죽음을 당했을 때, 그때 그녀가 전면에 등장하여 왕위를 잇고자 했죠. 그때 자신의 친손자 72명을 모조리 도륙내버렸습니다. 그리고 유다 땅을 우상의 신전으로 가득채웠죠. 놀라운 것은 그녀가 바로 북왕국 7대 왕인 아합과 이세벨, 그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키우고 교육시킨 이세벨의 딸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런 지혜로운 여인과 미련한 여인이, 비단 여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겠습니까? 솔로몬이 ‘내 아들아’하고 잠언의 두 번째 책을 우리에게 전하고자 할 때 그것은 남편들 곧 남자들도 예외지이 않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주춧돌 곧 반석을 삼아야 하고, ‘삶의 건축 기술집’인 성경 말씀 특별히 잠언서의 내용을 따라 인생의 집을 쌓아 올리는 시공자(施工者)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이 ‘삶이라는 집’, ‘인생이라는 집’을 바르게 건축하는데 필요한 ‘영적인 벽돌들’은무엇이겠습니까? 바로 2절에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하느니라.” 또 9절에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11절에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인생의 집을 세우는데 필요한 재료 중의 하나가 바로 ‘정직’이라는 벽돌입니다. 그래야만 세상의 부정함 속에서도 정직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삶을 부요함을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이죠.

물론 정직을 통해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로, 물질의 풍요를 누리게 된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이웃을 업신여기거나 빈곤한 자를 모른 채 하는 그런 어리석은 자로 살아서는 안 되겠죠. 21절에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31절에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그만큼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곧 주님을 공경하는 것임을 밝힌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날 동안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할 수 있는 것인가를 일깨워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4:20) 하는 말씀과 똑같은 격입니다.

2013년 홍콩 정치경제리스크 컨설턴시(PERC)의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아시아 선진국 중 부패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로 선정되었습니다. ‘국가청렴도의 지표’ 중 부패지수 1등이었다는 것이죠. 아울러 한국투명성 기구가 한국갤럽을 통해 2012년 9월부터 3월까지 전국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의 직역별 부패지수’ 곧 ‘가장 부패되었다고 여겨지는 직업의 영역’ 중 첫 번째는 정당이었습니다(70%). 두 번째는 국회였습니다(64%). 그런데 3위가 어디였을까요?43%로 종교단체였습니다. 물론 교회도 포함이 되죠. 교회란 건물이나 제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들의 모임이기에 종교가 부패했다면, 세상 사람들의 눈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투명하지 못하고 부정직하게 비춰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길을 회복하는 것도, 그리고 주님께 귀한 물질의 은총을 받는 것도, 더 나아가 가난한 이들과 어려운 형편에 처한 이들에게 나눌 수 있는 길도, 실은 정직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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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쪼록 오늘 하나님의 말씀인 잠언 14장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직’이라는 벽돌로 오늘 우리 삶의 집을 잘 지어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정직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며, 삶을 부요함으로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잠언(箴言)의 잠(箴)자는 대나무 죽(竹)자와 모두 함(咸)자를 합한 글자입니다. 함(咸)에는 ‘봉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떨어진 옷을 깁거나 자루를 꿰맬 때 대나무로 만든 바늘을 썼습니다. 이 대바늘이 바로 잠(箴)입니다. 잠언이란 바로 우리 삶의 헤어지고 구멍난 부분을 꿰메주는 영적 바늘인 것입니다. 우리의 부정직함으로 인해 삶이라는 건축물에 구멍 난 곳이 있지는 않는지 확인해 보는 이 새벽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혹여라도 그런 곳이 있다면 정직한 삶으로 그 곳을 메움으로 주님의 은총이 임하길 바랍니다.

 

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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