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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를 ‘기쁨의 편지’라 하는 이유
빌립보서는 바울이 감옥 안에서도 성령으로 기뻐하고 있, 그 넘치는 기쁨을 감옥 밖에 있는 빌립보 교인들과 함께 나누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모아 준 헌금을 바울에게 전달하기 위해 바울을 찾아간 에바브로디도, 바울의 옥바라지를 하게 된 에바브라디도를 통해 듣게 된 빌립보교회 안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빌립보교회는 루디아의 집에서 그 집 식구들과 간수장의 집 식구들이 함께 교회를 이루며 시작했는데, 그 이후에 중심이 된 부녀들이 있었죠. 유오디오와 순두게 같은 여인들 말이죠. 문제는 그녀들이 한 뜻이 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가 있었는데, 갈라디아교회에 침투한 할례파들처럼 빌립보교회 안에도 그런 할례파들이 침투해 교회를 영적으로 어지럽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이른바 빌리보교회의 내적인 어려움들이었죠.
빌립보교회에 어떤 외적인 어려움들이 있었습니까?
어제 읽은 1장 30절에서 밝혀주고 있었습니다.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빌1:30)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을 찾아온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빌립보교회의 외적인 문제에 대해 듣게 된 것입니다. 그 외적인 문제가 무엇이었을까요? 성경학자들은 로마제국 시대의 황제를 신처럼 떠받들게 하는 황제숭배사상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 당시 황제를 신처럼 떠받들지 않으면 모든 물건을 매매할 수도 없고, 상업행위를 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황제숭배와 같은 이교도들의 핍박이 빌립보교회의 외적인 어려움들이었습니다.
그처럼 빌립보교회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바울을 위해 에바브로디도란 사람을 보내 옥바라지를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으니, 어찌 바울이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어찌 그 교회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순수한 열심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교회의 내외적인 상황에 상처를 받을 수 있고, 심할 경우 분열될 수도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다시금 오늘 본문을 통해 빌립보 성도들이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야 하는지 사랑과 관심을 갖고 아비의 심정으로 펜을 들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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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BR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BR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BR 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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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4절까지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됨의 기초를 놓으라고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1-4절 말씀이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여기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으라’는 것이죠. 가정에서도 내우외환에 휩싸일 때 어떻게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가? 온 가족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똘똘 뭉칠 때에 헤쳐나 갈 수 있죠. 회사의 위기도 마찬가지고, 국가적인 상황도, 외부적인 위협 요소가 닥쳐올 때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 되는 게 중요하죠. 바울이 지금 그런 권면으로,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자신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마음과 자세로 주의 일을 섬기라고 권면하는 것이죠.
이어지는 5-11절은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서로를 돌아보도록 강조합니다.
그렇게 본을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소개해 줍니다.
같이 읽어보실까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성자 하나님으로서 성부 하나님과 본체이시죠. 그런 권위와 그런 지위와 그런 위치를 지니고 있는 분인데도, 그 분은 그 모든 것들을 비우셨다고 밝혀줍니다. 그것이 헬라어로 ‘케노스’(κενός) 영어로 empty ‘텅 비우다’는 뜻이죠. 자기 관점 자기 방식 자기 주권 자기 자아 등 그 모든 것들을 다 ‘비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비천한 말구유통에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고 마침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것이죠.
그런데 바울이 왜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겠습니까? 빌립보교회의 성도들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의 감격과 기쁨은 누리려 하면서도,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고난 그리고 복종의 모습은 본받으려고 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너희들도 함께 자기 욕심, 자기 허영, 자기 주권, 자기 자아를 비우고 주님처럼 종의 모습으로 서로를 높여주고, 서로를 격려하며, 서로를 세워주는 마음으로 낮아져야 하지 않겠느냐, 하고 이야기고자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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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BR 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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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자기를 비우고 종의 형체로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그것으로 끝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죠. 주님은 그렇게 비우고 복종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주님을 가장 높은 보좌로 올리셨고,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무릎을 꿇고 그 주님을 향해 경배하고 찬가를 부르는 영광을 누리게 해 주셨다고 바울이 밝혀주고 있습니다.
왜 그런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너희 빌립보교회 성도들이여, 너희들도 자신을 비우고, 주님의 은혜의 이끄심 속에 종의 발자취를 따라 섬기고 낮아지면, 그때 주님께서 너희들을 존귀하게 세워주실 것이다, 하는 뜻에서 권면하는 것이죠. 바꿔 말해 절대로 너희들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거나, 남을 무시하거나, 하지 말라는 것이죠. 철저하게 자기를 낮추고 비워내면,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높이실 때가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야고보 사도가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10)고 권면하는 말이기도 하죠. 더욱이 예수님께서도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10:44)하고 말씀하신 바이기도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 바울도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9:19)에서 고백한 내용이기도 하죠.
이것은 요셉도 그렇고 모세도 그렇고 다윗도 그렇고,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을 빚으시는 주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요셉도 13년 동안 옥살이라는 낮추심, 곧 그를 비우게 하시는 과정이 있었죠. 모세도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그를 낮추심, 곧 그를 비우게 하시는 과정이 있었죠. 심지어 다윗도 19살에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그 이후 8년 넘게 광야를 도망쳐 다니며 자기를 낮추고 비우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과정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삶은 홀로 그렇게 살아서 되는 일이 아니었죠. 홀로와 함께 더불어의 삶을 통해서 그렇게 낮추시고, 비우게 하시고, 종의 삶을 살게 하신 것이었죠.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집 사람들과 감옥 속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더불어의 삶 속에서 낮아지고 비워내게 하셨고, 모세도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그 집 사람들과 또 광야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낮아지고 비우게 하셨고, 다윗도 광야에서 함께 도망쳐다닌 사람들을 통해 낮추시고 비워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요셉을 국무총리로,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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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야긴과 보아스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BR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BR 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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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께서 스스로 비우시고 낮아지시고 종의 형체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런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서 그런 은혜를 부어주셔서, 훗날에 가장 존귀한 자들로 상을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은혜가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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