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하나님의 산 호렙에(출3:1-5)_2025년 2월 23일 주일설교문 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하나님의 산 호렙에(출3:1-5)_2025년 2월 23일 주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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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논지)갓난 아이가 태어나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어른들을 정화시켜 줍니다.

갓 태어난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와 아빠도 그렇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마찬가지죠.

그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 속에 굳어 버린 어른들의 마음들을 녹여 줍니다.

 

그런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부모는 긴장하게 되죠.

부모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그 아이가 살아주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때는 아이가 스승 노릇을 합니다.

 

(깨달음)그토록 순진 무구한 아이도 점차 세상에 길들이면서 서서히 어른의 세계를 닮아가게 되죠.

어른의 세계라고 해서 무조건 잘못됐다는 게 아닙니다.

어린 아이의 순진무구한 모습과 달리 많이 굳은 모습, 딱딱한 모습, 강퍅한 모습으로 사는 경향이 많죠.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0:15)

 

어린 아이의 순진무구한 그 마음 자체로 주님을 모시고 사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화2)지난 주 목요일 날 평소 알고 지낸 두 목사님과 광주에 다녀왔습니다.

한 목사님의 일을 도와주기 위함이었죠.

광주를 오가면서 오래전 천국을 보고 온 입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금빛 찬란한 천국의 모습을 이야기했습니다.

보좌에 앉아 계신 주님의 빛이 너무 강렬해서 주님의 발치밖에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한 분은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에 입신해서 천국을 보고 왔습니다.

또 다른 한 분은 자기 아들이 초등학생 때 본 이야기를 기억해서 생생하게 전해줬습니다.

그때 나도 살짝 그분들의 이야기에 얹었죠.

경기도 양평 구국성지기도원의 기도원지기로 일하면서 한 달 간 살았던 이야기 말이죠.

그때 금식을 하고 성경 1독을 처음 했는데, 어느날 내 영혼이 빠져 천장에서 방바닦에 누워 있는 내 육체를 봤다고 말이죠.

또 장흥에서 교육전도사로 섬길 때 그곳에서 부흥집회를 하는데 이제 내 영혼이 빠져 천국으로 올라가는가 싶었는데, 모기가 물어서 깨어났다고 말이죠.

 

그런데 두 분 다 주님께서 어깨를 툭툭 치면서 그렇게 말씀했다고 해요.

‘어서 가라’하고 말이죠.

그 후에 초등학생인 그 아들은 게임중독과 같은 삶에서 벗어나 모든 일에 앞장서고 따뜻하고 치열하게 세상을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그 어린 시절의 입신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요.

 

(깨달음)물론 다른 한 분은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에 본 것과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에 본 것의 차이일까요?

중요한 것은 입신의 세계는 성경에 기초해서 볼 때 대부분 비슷하거나 자기 주관적인 모습이 강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때의 그 황홀함에 취해 산다면 매번 입신만 하려고 꿈꾸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는 그것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더욱 따뜻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도록 ‘어서 가라’하고 말씀하신 것이었죠.

 

(적용)그렇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장에 어떤 곳이든지 간에 그곳에서 주님의 말씀을 어린 아이처럼 받들며 산다면 그곳이 입신의 세계요 하나님의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어떤 곳에서 일하건간에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를 모시고 살아간다면 바로 그곳이 거룩한 산이요 하나님의 예배처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날 예배당에 모여 함께 예배하는 것도 삶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어린 아이처럼 받들며 살기 위함이요 삶의 일터에서 주님의 임재 속에 살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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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애굽 땅에서 430년간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셔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 해방의 지도자로 삼고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셨죠.

본래 모세는 애굽의 파라오가 모든 히브리의 사내 아이들을 다 죽이라고 히브리 산파들에게 명령하던 시절에 태어났죠.

그러나 히브리 산파들은 파라오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경외하는 이들이라 히브리 사내 아이들이 태어나도 죽일 수가 없었죠.

모세도 바로 그런 시절에 태어났고 모세의 엄마 요게벳과 아버지 아므람은 집에서 숨소리를 죽이며 키웠죠.

하지만 그 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자 더 이상 집에서 키울 수가 없어서 결단을 하죠.

이집트의 나일강에 아이가 떠밀려가도록 갈대상자에 역청을 발라 그 속에 넣고 나일강에 놔뒀죠.

 

때마침 그때 파라오의 공주가 그곳에 시녀들을 데리고 목욕하러 왔고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갈대상자에서 꺼냈죠.

그때부터 자기 양아들로 키운 공주였는데 물에서 건져냈다는 뜻으로 ‘모세’라고 이름을 지었죠.

물론 궁중에 데리고 가려고 할 때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유모를 소개해줬고 그 유모가 다름 아닌 모세의 친어머니 요게벳이었죠.

 

그렇게 궁중에서 모세가 40년을 살아가면서 애굽의 정치문화경제 그 모든 것을 배웠고 군사학까지 다 습득한 모세였죠.

그런데 유모요 어머니로부터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을 인지받았는데 어느날 애굽 병사가 동족 히브리인을 못할게 굴자 모세가 때려 죽이고 모레에 묻어버렸죠.

다음날은 동족끼리 다투고 있을 때 그 일을 중재하려고 할 때 전날에 행한 일들을 다 알고 있었고 그것이 탄로날까 두려워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버렸죠.

그곳에서 이드로를 만났고 빈털털이로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이들의 딸 십보라와 결혼했고 두 아들 게르솜과 므라리를 낳게 되었죠.

 

그렇게 미디안의 양치기로 40년 세월을 보내고 있을 그때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에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깨달음)어떻습니까?

요셉이 살던 시절에는 애굽의 고센 땅에서 그래도 행복한 삶을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요셉이 죽고 요셉을 알지 못한 새로운 파라오가 등장할때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고된 노역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면서 날마다 부르짖고 통곡하면서 이 삶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하지 않았겠습니까?

그야말로 그들의 삶이 황폐한 황무지 같고 가시 같은 난제들로 가득한 삶이었죠.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드디어 그 백성의 해방을 이끌 지도자 모세를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운명도 실은 버려질 인생이요 나일강에 떠밀려가다가 죽을지도 모를 인생 아니었습니까?

모세의 운명도 실은 황폐한 황무지 인생이요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모를 가시 같은 난제들로 가득찬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면, 하나님께서 건져내시며,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지 않습니까?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22:22)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3:7)

 

(적용)하나님께서 그 인생에 찾아오시면 아무리 막힌 인생이라도 하나님께서 활짝 열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간섭하시면 누구도 그 인생의 길을 막을 수가 없다는 뜻이죠.

 

(본문)오늘 본문은 그 모세를 어느 산에서 불렀는지 말씀하는데 다시 한 번 1절 말씀을 읽어보시겠습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3:1)

 

(원해)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만나주신 산은 호렙산입니다.

우리말 ‘호렙’은 히브리어 ‘호레브’(חָרַב)입니다.

그 뜻은 ‘광야’(desert)입니다.

호레브의 원형동사 ‘하라브’(חָרַב)는 ‘황폐하다’ ‘말랐다’ ‘끝났다’는 뜻입니다.

호렙산은 그야말로 황무지와 다를 바 없는 산이란 의미입니다.

뭔가 하나님께서 임재할만한,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줄 만한 특별한 뭐가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호렙산을 수식하는 단어가 있죠.

‘하나님의 산’이라고 말입니다.

 

(깨달음)왜 황무지 같은 호렙산을 하나님의 산이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아무리 봐도 평범하고 다른 산처럼 돌로 가득찬 황무지라 할지라도 그곳에 하나님의 현현,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산이라 ‘하나님의 산’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 후에 모세가 호렙산에 올라가 40일간 머물면서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과 레위기의 율법서와 성막설계도를 받아 내려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그 산에서 더디 내려오자 황금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건져낸 여호와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우상을 만든 일이 있었죠.

그때 하나님께서 그 주동자를 칼로 처단토록 해서 하나님 앞에 헌신하도록 했는데 레위 지파가 나서서 그일을 헌신했습니다(출32:26-28).

바로 그 칼이 히브리어로 ‘헤레브’(חֶרֶב)인데 앞서 말한 호레브의 원형동사 ‘하라브’와 똑같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황무지와 같은 그 황폐한 곳에 하나님의 현현이 임하고, 하나님 앞에 새롭게 헌신하는 장소가 ‘하나님의 산’이 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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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그런데 그 호렙산이 시내산으로 불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19:2)

모세가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그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령대로 시내 산에 올라가니”(34:3)

그가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추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에 강림하셨고 그의 오른손에는 그들을 위해 번쩍이는 불이 있도다”(33:2)

 

(원해)우리말 ‘시내산’의 ‘시내’는 히브리어로 ‘시나이’(סִינַי)로 ‘가시’(thorny)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제 다음주에 살펴볼 ‘떨기나무’도 히브리어로 ‘스네’(סְנֶה)로 ‘가시 덤불’(thorny bush)과 같은 잡초를 뜻하는 말입니다.

‘시나이’와 ‘스네’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깨달음)그렇기에 시내산 자체가 뭔가 특별한 곳이라 하나님의 산이라 불린 것은 아닙니다.

시내산도 호렙산과 같은 의미가 있는 곳이기에 하나님의 산으로 불린 것이죠.

이른바 이스라엘 백성이 가시 같은 애굽의 고통에 시달릴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며 사는 곳이 ‘하나님의 산’이라는 것 말입니다.

 

(적용)그래서 시내산과 호렙산은 다른 두 곳의 산이 따로 있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산맥에 속하는 두 고지대의 이름일 수 있라는 점이죠.

같은 유달산이라도 노적봉이 있고 일등바위가 있고 이등바위가 있듯이 말이죠.

 

전통적으로 그 산이 ‘이집트’에 있다고 여겼는데 최근엔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산이 어느 위치에 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의미에 있지 않겠습니까?

삶의 환경이 황무지와 같고, 비록 가시 같은 난제들로 가득차 있어도, 하나님의 임재안에 거하고 하나의 말씀을 어린 아이들처럼 받들며 산다면 그곳이 하나님의 산이 된다는 것 말입니다.

내가 살아가고 있고 내가 일하는 현장이 그 어떤 곳이든지간에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를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고자 순종한다면, 바로 그곳이 입신의 세계요 하나님의 산이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신발을 벗으라고 말씀했던 것이죠.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황무지같고 가시같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을 받드는 하나님의 산과 같은 세상을 사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갓난 아이는 그 자체로 어른들을 정화시켜주고 커가면서는 부모 뜻대로 안되기에 실은 스승과 같은 존재이지 않겠느냐?”

주님께서는 그런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받들어야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지 않았더냐?”

초등학교 시절의 그 아이가 입신해서 천국을 보고 주님의 빛을 봤지만 주님께서 어깨를 툭 치면서 어서 가라하고 세상을 향해 뜨겁고 치열하게 살도록 하신 것 아니었더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이유도, 그 백성의 지도자로 모세를 부르신 것도 바로 그런 이치이지 않더냐?”

모세가 황무지 같고 가시 같은 호렙산과 시내산에 있을 때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 때 그 산이 하나님의 산이 되게 한 것 아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어떤 삶을 살고 있든지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면 바로 그곳이 호렙산이요 하나님의 산이지 않겠느냐?”

네가 어떤 일터의 현장에 있을지라도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헌신하며 산다면 그곳이 시내산이요 하나님의 산이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산도 세속의 현장에 있는 산이요 하나님의 교회도 세속의 현장에 있는 교회요 예수님도 세속의 현장에 오셨고 구원도 세속 속에 있는 현장에 있는 이들에게 찾아오신 것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오늘 너를 부르시고 보내신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산다면 그곳에 하나님의 산임을 네가 기억하고 살았으면 좋겠구나.”

 

(찬양)하늘의 문을 여소서 이곳을 주목하소서 주를 향한 노래가 꺼지지 않으니 하늘을 열고 보소서

이곳에 임재하소서 주님을 기다립니다 기도의 향기가 하늘에 닿으니 주여 임재하여 주소서

이곳에 오셔서 이곳에 앉으소서 이곳에서 드리는 예배를 받으소서

주님의 이름이 주님의 이름만이 오직 주의 이름만 이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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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마태복음 17장 1-5절 말씀이 다음과 같은데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깨달음)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보고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곳을 보통 ‘변화산’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그 산에서 휘황 찬란한 모습의 영채로 변화되셨기 때문에 부른 이름입니다.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은 그 산이 갈릴리 호숫가에서 남서쪽으로 17km정도 떨어진 높이 575m의 다볼산이라고 추정을 하죠.

‘다볼산’이란 의미는 그저 ‘높은산’이란 뜻입니다.

그 산에 모세와 엘리야의 영채가 내려와 예수님을 만나는 그 장면을 제자들이 목격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이 산에 주님을 위해, 모세를 위해, 엘리야를 위해 초막 셋을 짓고 아예 사시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빛난 구름과 함께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하고 말이죠.

 

(적용)무엇을 깨닫게 합니까?

호렙산과 시내산에 특별한 곳이라 하나님의 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앞에 헌신할 때 그곳이 하나님의 산이 되는 것이었죠.

마찬가지로 변화산도 특별한 곳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모세처럼 엘리야처럼 얼마든지 능력의 모습으로 역사하시는 분임을 일깨워주는 산이 변화산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과연 그때 예수님은 무릉도원과 같은 그곳, 입신을 통해 보게 된 그 황홀한 그곳에 눌러 살자고 하셨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곧장 산 아래 세상 사람들이 사는 그곳을 향해 내려가자고 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신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도 죄로 물든 세상을 구원코자 함이요 비록 황무지 같고 가시처럼 얽히고 설킨 이 세상을 하나님의나라로 삼고자 함이셨습니다.

그만큼 우리 자신이 모세와 같고 엘리야와 같은 그 능력의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곳이 바로 변화산이요 이 세상 한복판도 얼마든지 변화산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화)그리스도인이 된 사람과 신자가 아닌 친구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래 자네 그리스도인이 됐다지?”

“그렇다네.”

“그럼 그리스도에 대해 많이 알겠군, 어디 좀 들어보세. 그리스도는 어디서 태어났지?”

“모르겠는 걸.”

“그리스도는 몇 살 때 죽었지?”

“모르겠네.”

“그리스도는 설교를 몇 차례나 했나?”

“몰라.”

“아니,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고선 그리스도에 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잖은가?”

 

“그러네. 자네 말이 맞네. 아닌 게 아니라 난 아는 게 없어서 부끄럽네.”

“하지만 이 사실 하나는 분명히 알고 있지.”

“3년 전 난 주정뱅이요 빚도 많았고, 내 가정은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지. 저녁마다 처자식들은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걸 무서워 했어.”

“그러나 이젠 술도 끊었고, 빚도 갚았고, 우리 가정은 화목해졌네.”

“저녁마다 아이들은 나를 목이 빠져라고 기다리게 되었거든”

“이게 모두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주신 축복일세”

“또한 그 분이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나는 알고 있다네”

“이것이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네.”

 

(깨달음)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 게 중요한 일이겠습니까?

그것은 자칫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머리만 신자로 남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주님을 만난 이후에 삶이 얼마나 변화되었는가, 하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내 생명의 주인이시고, 그 분이 모세와 같은 영적인 지도자요, 엘리야와 같은 부활승천의 주인공임을 믿는다면, 그 분의 말씀안에서 한걸음한걸음 변화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사는 변화산이지 않겠습니까?

 

(내기도)그렇기에 주님 앞에 기도할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제가 어떤 삶을 살던지 그곳이 호렙산이요 그곳에 시내산이요 그곳에 변화산이 되게 해주세요.”

입신과 같은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시고 주님을 만나는 체험은 중요하지만 비록 입신과 체험이 없을지라도 삶 속에 주님의 임재를 모시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어린 아이처럼 살게 해 주세요.”

그렇게 살아가는 내 삶이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가족과 자녀들이 기뻐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될 때 그곳이 바로 변화산이요 하나님의 산인 줄 믿습니다.”

오늘도 내 삶의 환경이 황무지같고 내 일터에 가시같은 일들이 많아도 매 순간순간 주님의 임재를 모시고 주님의 말씀 앞에 변화되는 삶을 살게 해 주세요.”

그것이 나를 새롭게 변화시킨 주님의 능력이요 그 삶을 통해 전도의 문을 활짝 열어주셔서 주님의 상급을 받게 하실 줄 믿습니다.”

 

(찬양)너 어디 가든지 순종하라 너 어디 있든지 충성하라

주 너의 하나님 왕 되신 주 영원히 주님만 찬양하라

너 무엇하든지 진실하라 너 무엇하든지 성실하라

주 너의 하나님 도우시리 어디를 가든지 정직하라

너 어느 때든지 기도하라 너 어느 때든지 감사하라

주 너의 하나님 돌보시리 너 어느 때든지 기뻐하라

너 고난 속에서 평화하라 너 핍박 속에서 감사하라

주 너의 하나님 함께하리 승리의 주님을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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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호렙산을 하나님의 산으로 시내산을 하나님의 산으로 삼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다볼산을 변화산으로 삼으시는 분입니다.

내 삶이 황무지같고 가시 같은 환경일지라도 그곳에 주님의 임재와 주님께 헌신할 때 그곳이 하나님의 산입니다.

내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씩 하나씩 변화될 때 그곳이 시내산이요 그곳이 변화산인 줄 믿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곳이 어떤 곳이든지, 내가 일하는 현장이 어떤 곳이든지, 그곳에 주님의 임재를 보시고 말씀에 순종하는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새롭게 역사하시고 가정과 일터를 새롭게 세우시고, 주님을 모르는 이들에게까지 선한 영향력을 베풀어 전도의 증인으로 삼아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은혜와 역사가 충만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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