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고후 9:1-6) 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고후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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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8장 1절 이후의 내용은 고린도교회에 대한 사도 바울의 구제연보에 대한 권면입니다..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때 예루살렘교회에 극심한 흉년을 왔죠.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걸 듣고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까지도 함께 해서 예루살렘교회에 구제 연보를 보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가 다투고 또 거짓 사도들의 침투로 혼란을 겪게 되자 구제연보 자체가 흐지부지되었죠. 반면에 마게도냐의 교회 성도들은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넘치는 구제의 연보를 했죠. 그런 상반된 모습을 모였는데, 바울이 이 네 번째 편지를 쓰면서 그들의 신앙이 다시 회복된 것을 알고서 바로 구제연보를 권면하게 된 것입니다. 너희들이 전에 자발적으로 구제연보를 하려다가 멈춘 그 선한 일을 완결하라고 말이죠.

물론 바울은 그 선한 일을 위해 디도 혼자만 보내지 않았죠. 마게도냐 교회들로부터 인정받는 형제도 함께 보냈죠. 지금 바울이 마게도냐에서 고린도후서를 쓰고 있는데, 그 교회들이 천거한 형제를 함께 보낸 것이죠. 그런데 그 두 사람도 부족하다고 생각한 바울은 또 한 사람을 뽑아, 세 명으로 가게 했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그 거액의 연보를 전달하는 선한 일이 비방받지 않게 철두철미했죠.

왜 그랬습니까? 21절에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그 ‘선한 일’은 ‘칼로스’(καλός)로서 옳은 일이요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걸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죠. ‘조심하다’는 헬라어 ‘프로노에오’(προνοέω)는 ‘예측한다’(foresee)입니다. 물론 20절의 ‘조심하다’는 ‘스텔로’가 나오는데 ‘신발을 가지런히 정돈하다’는 뜻이죠. 21절의 ‘조심하다’는 ‘미리예측한다’는 뜻이고요.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선한 일을 하지만 모든 일들을 예측해서 신발을 정돈하듯이 정성껏 대처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철두철미하게 세 사람을 보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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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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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제 9장 1절로 넘어갑니다.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구제 연보’를 성도 섬기는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제 연보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죠.

왜 그렇습니까? 2절에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원함’이란 ‘열성’을 뜻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교회의 구제 필요성을 언급할 필요가 없는데, 그것은 바로 헌금에 대한 너희들의 열정 곧 뜨거운 마음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서울에 있는 교회가 강원도 산간벽지에 지교회를 세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교회가 서울의 교회를 위해 구제헌금을 할까요? 거의 못하죠. 그런데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먼저 나서서 구제하자고 할 정도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러니 그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2절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 ‘아가야’란 고린도가 있는 로마 행정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전라도 같은 곳입니다. 그 아가야의 수도 이름이 고린도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일 년 전부터 구제 연보를 준비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을 ‘자랑했다면서’ 과거형으로 기록하고 있죠. 물론 헬라어 원문은 현재형입니다. 바울은 예전에 한 번 고린도교회가 이런 열정을 가졌다가 그친 게 아니라 지금도 마게도냐 사람들에게 자랑할 정도라는 것입니다. 비록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중단했지만 그 열정은 지금도 있다는 뜻이죠. 그만큼 마게도냐 교회의 성도들이 구제 연보를 한 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 때문에 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열정이 마게도냐 전 지역의 교회 성도들에게 본이 되고 분발케 한 것이었습니다. 뭔가 자극제가 된 것입니다.

 

3절에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가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이 형제들이란’ 구제 연보를 위해 보낸 디도와 함께 한 두 사람, 총 세 사람을 말한 것입니다. 그 세 사람을 보낸 것은 그 일에 너희의 자랑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비록 지금은 구제연보를 중단했지만, 그들이 믿음이 없거나 나빠서가 아니라, 그들에게는 여전히 열정이 있다는 것을, 마게도냐에서 간 그 형제에게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에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가 준비하지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무슨 말입니까? 바울이 마게도냐에서 고린도후서를 쓴 뒤에, 직접 고린도교회를 찾아가게 되죠. 그래서 갔는데, 바울이 그토록 그들의 열성을 자랑했는데, 가고 보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구제 연보를 안 한다면 어떻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들이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은 고사하고, 너희들의 열정을 자랑했던 나마저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물론 잘못 보면 오해할 수 있죠. 바울이 신앙을 회복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구제연보를 시작하라고 한 게 자기 체면이나 살리고자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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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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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절에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이것은 바울이 가기 전에 먼저 형제들을 보내서, 자신들이 시작한 연보를 다 끝내도록 하라는 것이죠. 그래야 그 연보가 참 연보가 되고 억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사람들을 먼저 보내서 너희들이 연보하도록 하겠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 ‘연보’에 각주 2가 있는데 ‘복’이라고 돼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2절에도 ‘연보’가 있는데 ‘하플로테스’입니다. 이 단어는 인간에 대한 너그러움, 인간에게 베푸는 관대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연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설명하면서, 지금 5절에서는 ‘율로기아’라는 헬라어로 바꿔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연보가 곧 ‘복’이라는 말입니다. 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구제 연보를 끝내라고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복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어려움에 처한 형제를 위해 나의 것을 나누고자 연보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복을 받는 비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 가기 전에 너희들이 미리 완결하길 원한다는 것이죠.

 

6절입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바울은 이 말씀을 잠언서 11장 24절의 말씀 곧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하는 말씀을 변용하여 쓴 것입니다. 평생을 물질의 노예가 돼서 아끼는 사람이 있는데, 오히려 평생 모라잠 가운데 사는 사람이 있죠. 반대로 저렇게 해서 모이는 게 있을까 싶은데 계속 베풀다 보니까, 항상 줄게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6절에서 그 예를 들어 쓴 것입니다.

여기에 ‘적게’라는 말은 ‘페이도메노스’(φειδομένως)로서 ‘인색하다’(sparingly)는 뜻입니다. 인색하게 심는 자는 인색하게 거둔다는 것이죠. 농부가 봄에 씨를 뿌려요. 자기 바구니에 수북하게 있는데 그게 아까워서 밭에 인색하게 뿌려요. 가을에 풍성하게 거둘 수가 없겠죠. 내가 어려운 사람이 곁에 있는데도 인색해요. 그래서 내가 과도히 아끼면서 인색하게 사는데, 내가 어려움에 처할 때 도리어 내가 인색함을 당하게 되죠. 그래서 흩어 구제하여도 부하게 된다는 잠언서 말씀이 맞다는 걸 주님께서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내가 물질로 구제 연보하는 그 복을 심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의 통로로 쓰신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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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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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과도하게 아껴도 가난하게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흩어 구제해도 부하게 되는 사람이 있듯이 저와 여러분이 후자의 사람이 되길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일에 억지가 아닌 복이 되는 구제 연보의 삶을 살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그와 같은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삶에 함께 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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